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새벽종소리] 2012년10월18일 QT - 두려움을 이기려면 (도서/사진/말씀)

鶴山 徐 仁 2012. 10. 18. 12:08



두려움을 이기려면


행동에는 강력한 요소가 들어 있다. 어떤 일을 하기가 두려울 때, 대부분의 경우, 일단 시작하면 생각하던 것보다 덜 무서워진다. 행동이 없으면 두려움만 잔뜩 생긴다. 그 우유부단한 상태가 정신적, 심리적 무력감을 불러일으켜 우리가 원하는 많은 일들을 하지 못하게 한다. 늘 자신을 의심하고, 모든 각도에서 분석하고, ‘이렇게 되면 어쩌지? 저렇게 되면 어쩌지?’하며 심리전을 펴는 사람들은 절대로 삶을 누리지 못한다.
-마르코스 윗의 [두려움을 이기는 영혼] 중에서-

우리의 믿음은 오히려 행함으로 강력해집니다. 두려움을 이기려면 먼저 믿음으로 행하면 됩니다. 행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생각한 것보다 두려움이 힘을 잃습니다. 믿음의 첫발을 옮기면 내 안에 있던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습니다. 환경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두려움을 이깁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탈 그리고 가면
자신의 모습이 아닌 또 새로운 자아를 입혀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하며, 무섭게도 하고, 웃기게도 하는 탈과 가면.
지금 드러나는 나의 표정은 탈을 쓴 것인가, 가면을 쓴 것인가.. 정직한 나의 모습인가.
탈을 쓰고 살 것인가
가면을 쓰고 사람을 대할 것인가
글쓴이 : 정기환 필리핀 마닐라 거주, 선교사
한인 디아스포라 포럼(www.handifo.com) 상임총무
인터넷 라디오 방송 KCN 섬김이 되고 싶은 삶 - '다리놓는 사람', '유통하는 사람'
지혜 있는 자들아 - 욥 34:1-15
1 엘리후가 말하여 이르되
2 지혜 있는 자들아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 자들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
3 입이 음식물의 맛을 분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4 우리가 정의를 가려내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
5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6 내가 정당함에도 거짓말쟁이라 하였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화살로 상처를 입었노라 하니
7 어떤 사람이 욥과 같으랴 욥이 비방하기를 물마시듯 하며
8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 한패가 되어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9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
10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11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
12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
13 누가 땅을 그에게 맡겼느냐 누가 온 세상을 그에게 맡겼느냐
14 그가 만일 뜻을 정하시고 그의 영과 목숨을 거두실진대
15 모든 육체가 다 함께 죽으며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리라
엘리후의 입바른 소리가 계속됩니다. 특히 이 두 번째 변론에서는 하나님이 불공평하시다고 불평한 욥의 비판에 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장의 주제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입니다. 즉 하나님은 항상 의로운 일만을 행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존재이시므로 결코 잘못을 행하실 수 없습니다. 설령 욥에게 불의해 보이시는 일 조차도 실제로는 다 의로운 일이고 공평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엘리후가 모든 지혜 있는 자들, 지식 있는 자들에게 강변하고 싶은 메시지입니다(1절).

말을 분별하라
<입이 음식물의 맛을 분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3절).
얼마 전 TV에서 프로 골퍼 신지애의 토크쇼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지방에서 개척교회를 하며 월 80만원의 생활비를 받던 시절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입원해 치료를 받던 때 자기가 골프 국가대표선수 상비군에 박탁되자 병석의 어머니가 몹시 기뻐하시며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로부터 며칠 뒤 실제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그 일로 신지애는 말이 씨가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으며 그 때부터 말이 없어졌고 말을 극히 조심하게 됐다고 고백했습니다. 엘리후도 여기서 특히 욥의 말을 문제 삼았습니다. 욥이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나의 의를 막으셨고 내가 정당함에도 거짓말쟁이라 하였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화살로 상처를 입었노라>(5-6절)며 하나님 <비방하기를 마치 물 마시듯>(7절) 했다고 합니다. 말 조심하십시오. 말을 분별하십시오.

행위를 따라 갚으신다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11절).
하나님은 모든 이에게 공의로우십니다. 선을 행하면 상을 받게 될 것이고, 악을 행하면 벌을 받거나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8).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롬 2:7). 우리는 자유인으로 무엇이든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무엇을 결단하고 행하든 자신의 선택에 대해 준엄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물론 그 책임은 현세에서도 져야 하지만 내세에서도 피할 수 없습니다.

흙으로 돌아가리라
<모든 육체가 다 함께 죽으며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리라>(15절).
하나님은 언제든 우리를 티끌로 돌아가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이 손을 대시면 우리는 마치 산소 호흡기로 연명하던 환자에게서 호흡기를 떼 내듯 금방 심장이 멎어 죽고 맙니다. 하나님께는 그렇게 우리에게 빌려주셨던 생명을 언제든 회수해 가실 수 있는 권한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 12:20).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의 주제도 실존, 즉 <현존재>(Dasein)란 결국 <죽음에로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실존이 늘 직면하는 <불안>이란 개념도 <무>라는 비존재의 위협이라고 합니다. 죽음이란 인간의 모든 허무와 불안과 불행의 원천입니다. 그러나 실존의 진정한 주체자이신 하나님 앞에서의 죽음은 오히려 영원한 안식과 행복의 관문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차 없이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준엄한 본질임을 한 순간도 잊지 마시고 늘 마음에 깊이 새기십시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