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고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 실린 이호우 시인의 시 '달밤'을 떠올릴 때면 어김없이 내 고향, 안동 지례가 선연히 그려진다. 이제는 안동댐으로 물에 잠겨 수몰지구가 되었지만, 낙동강 한 줄기가 동네 앞으로 굽이 흐르던 곳이었다.
'어리석어도 좋으니 어질어라.' 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이 가르침은 내 인생의 소중한 교훈이 되고 있다. 아버지는 산이 높고 골이 깊은 안동 두메산골에 우리 8남매 자녀들과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간이학교를 세우시고 평생 교장으로 지내셨다. 아버지께서 종종 시내 교장회의에 다녀오실 때면 대나무 우산을 사 오시곤 했다. 당시 기름을 입힌 대나무 종이우산은 시골에서 구하기 힘든 것으로 비 오는 날에는 형제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했다. 나는 모형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멀쩡한 대나무 우산을 며칠을 못 가 망가뜨리곤 했다. 그렇게 수없이 만들어도 왜 네 비행기는 한 번도 날지 못하느냐고 친척 어른이 놀리셨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끈질긴 실험에 꾸중을 내리지 않으시고 묵묵히 지켜보기만 하셨다.
아버지는 자기 이득과 욕심에 영특해서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보다는 콩과 보리도 잘 구별 못 하는 숙맥불변(菽麥不辨)의 바보가 되어도 차라리 정직하고 어질게 살 것을 가르치셨다. 사리사욕만 추구하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보다 좀 어수룩해도 어진 사람으로 살 것을 원하셨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 고향 안동 지례마을은 숙맥들이 많이 살던 곳이었던 것 같다.
우리 동네는 태백산 줄기가 첩첩이 굽이지는 낙동강 지류에 약 40여 가구가 모여 살던 집성촌이었다.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어 해 뜨는 시간은 늦고 해지는 시간은 빨라 하루 낮이 짧았다. 마을 사람들은 경치 좋은 자연 속에서 순박하게 살았고, 대개 조상 때부터 밭농사 아니면 학문에 전념했다. 심심산골에서 어떻게 학자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었느냐고 의아해서 묻는 사람들에게 형님은 지례 동네는 앞뒤가 산으로 꽉 막혀 있어 공부밖에 할 줄 모르는 숙맥들만 살기 때문에 그렇지요라고 웃으며 대답하기도 했다.
대학 시절, 서울에서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가정교사로 지낼 때였다. 가르치던 학생 부모님의 고향이 이북인지라 방학이 되면 우리 집을 고향 삼도록 나는 그 학생을 종종 시골집으로 데리고 갔다. 어느 겨울 방학, 그 학생 집에서 굴비 한 두름을 부모님께 드리라고 챙겨주셨다. 버스도 아예 들어가지 않는 깊은 동네인지라 우리들은 안동 시내에서 버스를 내려 재도 넘고 개울을 건너 시골 논둑길을 따라 십리도 넘는 길을 걸었다. 집에 도착해보니 어깨에 걸친 굴비줄에는 굴비 몇 마리만 남은 것이 아닌가. 낭패스러웠다!
그런데 그날 저녁이 되자 마을 사람들이 굴비를 하나씩 가지고 집으로 찾아왔다. 마침 장날, 시내에 다녀오던 중 논둑길에 떨어져 있는 굴비를 주운 동네분들이 서울에서 방학이 되어 내려온 양동댁 넷째 아들과 그가 가르치는 학생 손님이 들고온 굴비라 생각하여 주워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덕분에 잃었던 굴비를 거의 다 회수할 수 있었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은 취할 줄 모르는 욕심 없는 동네 분들의 순박함이 아직도 내게 훈훈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우리 집안은 식구들이 모일 때면 자신들의 어리석은 실수담을 드러내면서 자신에게도 숙맥기가 있다고 유쾌하게 인정한다. 하루는 우리 집 아들이 대학 유학길에 오를 때 일이다. 마침 큰 태풍으로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올림픽대교가 잠겼던 날이었다. 행여나 비행기 탑승 시간을 놓칠까 막힌 길을 돌아 마음을 졸이며 겨우 공항에 도착했다. 온 친지가 배웅을 앞두고 출국장에 모인 자리에서 아들은 여권 수속 직전에 아빠, 어떡해요. 여권을 안 가지고 왔는데요.라고 말했다. 순간 그곳에 모인 친지들 모두가 아연실색했다. 그때 아버지가 웃으시며 허, 그 녀석…. 숙맥기가 있는 걸 보니 과연 우리 집 자손임이 틀림없네!라고 하셔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어처구니없는 손자의 실수를 용납하시는 할아버지의 배려와 유머 앞에 손자는 그날 사건을 큰 교훈으로 깊이 되새겼을 것이다.
몇 년 전, 대기업 인사팀 대리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해외 신입사원 채용을 위해 미국에서 2명의 한동대 출신 대학원생을 면접 봤다고 했다. 면접을 보면서 앞사람에게 넌지시 며칠 뒤에도 만날 한동대 출신에 대해 그 사람이 어떠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때 그는 그 친구 참 대단한 친구입니다. 저보다 훨씬 더 똑똑한 친구예요라고 대답했다. 며칠 뒤, 또 다른 한동대 졸업생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더니, 그 친구가 저보다 더 유능합니다라고 진심으로 칭찬했다는 것이다. 한 명만 뽑아야 했기 때문에 경쟁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서로 친구를 세워주는 마음에 그 간부사원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결국 둘 다 놓치기 아까운 사람이라 모두 채용을 하게 되었다는 연락이 왔던 것이다. 자기 눈앞에 찾아온 좋은 기회를 놓칠지도 모르지만 서로를 세워주는 숙맥불변의 미학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다가오는 추운 겨울을 앞두고 서로의 가슴을 녹여줄 수 있는 숙맥불변의 감동으로 더욱 훈훈해졌으면 좋겠다.
( 예술촌에서 옮겨 왔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