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 민통선 너머에 울진촌이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경북 울진 말을 쓰고 울진식 '덤벙김치'를 담가 먹는다.
6·25로 쑥대밭, 지뢰밭이 돼버린 벌판에 울진 사람 66가구 300여명이 옮겨온 것은 1960년 봄.
태풍 사라에 모든 것을 잃은 뒤 정부 말만 믿고 이주해왔다가 모진 삶에 빠졌다.
지뢰를 밟아 목숨이나 발을 잃은 이가 한둘 아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피땀으로 '조국강산의 중심 농토'를 일궜다는 자부심으로 살았다.
▶ 양구 '단장(斷腸)의 능선' 931고지엔 프랑스 노병의 유골이 깃들어 있다.
나바르 일등병은 1951년 이 격전지에서 유탄에 맞아 귀국했다.
치료가 끝나자 1953년 다시 와 여러 고지 쟁탈전에서 활약했다.
그는 2004년 세상을 뜨며 "단장의 능선에 유골을 뿌려달라"고 했다.
춘천의 언론인 함광복씨가 30년 가까이 비무장지대 일대를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 듣고 모은 얘기들이다. 그에게 6·25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역사다.
▶ 경기도 양평의 지평리 전투를 기리는
'지평리를 사랑하는 모임'이 그제 전투 현장에 미군 참전용사를 초청해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미군과 프랑스군이 중공군을 막아 반격의 계기가 된 지평리 전투를 재평가해오면서
지난 2년 미국에 수소문해 찾은 생존자다. 프랑스군과 중공군 참전자도 초청할 것이라 한다.
모임 대표인 변호사 김성수씨는 "중요한 역사적 순간을 누군가는 기록하고 기념해야 한다"고 했다.
▶ 영국 기자 앤드루 새먼은 임진강 전투를 얼마 전 책으로 재현해냈다.
"6·25가 잊혀져 가는 게 안타까워서
" 2년 동안 영국군 참전용사 50여명을 인터뷰해 쓴 '마지막 총알'이다.
저명한 미국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40년 취재 끝에 2007년 남긴 유작
'콜디스트 윈터'에서 6·25의 전모를 박진감 넘치는 다큐멘터리로 풀어냈다.
그 역시 참전용사 수백명을 인터뷰했다.
▶ 정작 국내엔 6·25를 손에 잡힐 듯 재구성한 저술이 드물다.
대부분 기록과 숫자에 의존하고 정치 이념과 국제 정세로 재단하려 든다.
6·25가 왜곡되고 잊혀진 전쟁이 돼버린 큰 이유다.
증언을 채록(採錄)하는 구술사(口述史)는 이제 중요한 역사 연구방법으로 인정받는다.
사람들은 강렬한 사건은 놀랍도록 오래 정확히 기억한다.
그러나 6·25를 증언해줄 사람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6·25를 '살아 숨쉬는 역사'로 되살리려면 땀 냄새 밴 저술이 많이 나와야 한다.
-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