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想像나래 마당

고종황제

鶴山 徐 仁 2009. 6. 9. 13:05

고종 황제



고종황제

 

고종황제



고종황제



고종황제



고종황제



고종황제



고종과 순종. 조선시대 왕과 왕세자가 입었던 붉은색 곤룡포
차림으로 1890년무렵의 모습이다.
아직 국호가 대한제국으로 바뀌기 전이라,
고종이 황제가 아니기 때문에 황룡포가 아닌 홍룡포 차림이다



고종황제와 신하들의 모습.



1910년 한일병탄 직후 덕수궁 석조전 앞에서 자리를 함께 한
조선총독부 고위관리들과
대한제국 황족들.
앞줄 가운데 모자를 벗은 사람이 고종 황제이고,
그 오른쪽이 순종, 고종의 왼쪽은 영친왕이고,
그 옆은 데라우치 초대 조선총독.



고종이 대한제국 초기 러시아 황제에게 보낸 국한문친서.
고종은 1909년 초 국외망명을 시도할 정도로 일제의
한국침략에 강경하게 맞선 군주였다.



일본 관리들이 쓰는 모자와 의상을 입고 궁궐을 나선 고종.
왕의 행차때 사용하는 일산을 받쳐들고 있지만
어가를 매고 있는 사람들은 일본인들이다.
1919년 촬영.


1919년 집무를 보기 위해 겨울옷을 입고 선원정에서
인정전으로 나서고 있는 고종황제의 모습



러시아 공사관 내 고종 황제 거실. 황제용 더블 베드-
황태자용 싱글 베드-응접 세트가 전부였고,
옆 방에서 상궁 둘이
번갈아 기거하며 수발을 들었다.



고종이 파천해 집정할 당시의 러시아 공사관.



고종황제의 후궁 양씨(1882년생, 덕혜옹주의 생모).



엄황귀비. 명성황후의 상궁으로 있다가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고종황제를 모셨고,
 이어 왕자 은(영친왕)을 낳았다.
1906년에 진명여학교를 설립,
한국 근대교육사업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권오창화백이 그린 명성황후 진영.



1903년 11월 29일자 [보스턴 선데이 포스트]지에 보도된
고종황제와 미국인 에밀리 브라운양 결혼 기사.
[유일한 미국인 황후 어떻게 대관했는가]라는 제목으로
브라운양의 클로즈업된 모습과,
고종과 브라운 양이 일산(日傘)으로 가린 연(輦.임금의 수레)을
타고 궁을 나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대한문 앞을 지나고 있는 고종황제의 국상행렬.



고종황제 국장때 바닥에 엎드려 통곡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고종황제 국상 전날의 대한문 앞 모습.



1921년 고종황제 제사때의 모습. 중앙이 순종황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