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精神修養 마당

기도문

鶴山 徐 仁 2009. 5. 25. 10:17

            타고르의 기도, 우리들의 기도문

 

  타고르의 <기도>는 교훈적인 시입니다. 주자십계훈(朱子十戒訓)처럼 생활지침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기도

                                     타고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생의 싸움터에서 함께 싸울

동료를 보내 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스스로의 힘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내 자신의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 않도록 하시고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민들레교실 1. 진정한 기도

  이 시는 단순한 기도라기보다 기도의 의미를 통찰한 진정한 기도시입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기도는 기복(祈福) 신앙적인 내용이 태반이기 때문입니다. 즉 위험과 고통을 피하고, 반려자와 친구를 바라고, 구원과 성공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타고르는 두려움과 고통의 극복을 원하고, 자력과 자유를 강조하고, 성공보다는 실패의 참뜻을 깨닫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타고르처럼 여러분이 하는 기도를 한 번 반성해 보고, 깊은 기도의 시를 써 보세요.


  민들레교실 2.

  맥아더의 기도의 시도 우리나라의 가정에 액자로 표구되어 걸려 있을 정도로 유명한 합니다. 감상하고 자녀들을 위한 기도의 시를 한 번 써 보세요.


기도

                             맥아더


내게 이런 자녀를 주옵소서.

약할 때에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와

두려울 때에 자신을 잃지 않는 대담성을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자녀를 내게 주옵소서.

생각할 때에 고집하지 않게 하시고

주를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기초임을

아는 자녀를 내게 허락하옵소서.

원하옵나니 그를 평탄하고 안이한 길로 인도하지 마옵시고

고난과 도전에 직면하여 분투 항거할 줄 알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폭풍우 속에선 용감히 싸울 줄 알고

패자를 관용할 줄 알도록 가르쳐 주옵소서.

그 마음이 깨끗한 그 목표가 높은 자녀를 남을 정복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자녀를

장래를 바라봄과 동시에 지난날을 잊지 않는 자녀를 내게 주옵소서.

이런 것들을 허락하신 다음

이에 대하여 내 아들에게 유머를 알게 하시고

생을 엄숙하게 살아감과 동시에 생을 즐길 줄 알게 하옵소서.

자기 자신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게 하시고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하시사

참된 위대성은 소박함에 있음을 알게 하시고

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으며

참된 힘은 온유함에 있음을 명심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나 아버지는 어느 날 내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접시꽃교실 1. 불교의 기도

  불교에서 아미타불은 48개 서원을 세웠고, 석가모니는 500서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보살은 4가지 서원을 세우니 바로 사홍서원(四弘誓願)입니다. 홍(弘)은 넓고 크다는 뜻이고, 서원(誓願)이란 맹세하여 바란다는 뜻이니 사홍서원은 기도(祈禱)나 마찬 가지입니다. 사홍서원은,

 

  첫째,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입니다. 한없는 중생들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입니다.

  둘째, 번뇌무량서원단(煩惱無量誓願斷)입니다. 한없는 번뇌를 모두 끊겠다는 서원입니다.

  셋째, 법문무진서원학(法門無盡誓願學)입니다. 다함없는 법문을 모두 배우겠다는 서원입니다.

  넷째,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입니다. 더없이 높은 불도를 이루겠다는 서원입니다.


여러분도 아미타불처럼 48가지, 아니면 석가모니처럼 500가지 서원을 본받다 한 번 세워 보세요. 적어도 4가지 서원을 시답게 세워 보세요. 

 

  접시꽃교실 2. 기독교의 기도문

  기독교의 공동예배에서 사용하는 주요 기도문은 루가와 마태오의 복음서 두 가지입니다. 학자들은 루가의 본문이 원문에 더 가깝고, 마태오의 본문에만 있는 구절들은 예배문이 첨가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기도문은 유대교와 공통되는 3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찬양(讚揚), 간구(懇求), 다가올 신의 나라에 대한 갈망(渴望)입니다. 주기도문은 도입문과 7가지 간구(懇求)로 이루어져 있는데, 공동번역성서의 주기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쑥부쟁이교실 1. 일원상 서원문

 

  일원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입정처(入定處)이요, 유무초월의 생사문(生死門)인 바,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本源)이요, 제불 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性品)으로


  능이성유상(能以成有常)하고 능이성무상(能以成無常)하여 유상으로 보면 상주불멸로 여여자연(如如自然)하여 무량세계를 전개하였고, 무상으로 보면 우주의 상주괴공(成住壞空)과 만물의 생노병사(生老病死)와 사생(四生)의 심신작용을 따라 육도(六途)로 변화를 시켜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으로 혹은 은생어해(恩生於害)로 혹은 해생어(害生於恩)으로 이와 같이 무량세계를 전개하였나니,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 받아서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또는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또는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써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도록까지 서원함.     


  일원상 서원문은 일원상의 정체, 유무상 무량세계의 본질, 수행의 방법을 제시하면서 그 위력과 체성에 합하기를 바라는 기도문입니다.


  영국의 철학자 러셀은 그의 방에 일원(一圓)을 걸어 놓았다고 합니다. 일원이 진리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도교에선 일원을 무극(無極)이라고 하였고, 무극에서 태극(太極)이, 태극에서 음양(陰陽)이, 음양에서 만물(萬物)이 생겼다고 봅니다.


  소태산은 만법이 한 근원에서 나왔고, 만물이 한 체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중심으로 일원을 소재로 하여 기도의 시를 한 번 써 보세요.   


  쑥부쟁이교실 2. 주자십계훈

  원불교의 일원상서원문(一圓相誓願文)은 기도문이지만 <일상수행의 요법>도 일종의 생활기도문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여러 성인들의 말씀도 살아가는데 명심해야 할 좌우명(座右銘)이라고 볼 수 있는데, 다음 주자의 십계훈(十戒訓)을 감상해 보세요. 그리고 자기 혹은 자녀들에게 줄 열 가지 교훈을 시로 정리해 보세요.


               朱子十戒訓 주자십계훈


不孝父母死後悔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뒤에 뉘우친다.

不親家族疏後悔 가족에게 친하게 대하지 않으면 멀어진 뒤에 뉘우친다.

少不勤學老後悔 젊어서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뉘우친다.

安不思難敗後悔 편안할 때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한 뒤에 뉘우친다.

春不耕種秋後悔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뉘우친다.

富不儉用貧後悔 풍족할 때 아껴 쓰지 않으면 가난해진 뒤에 뉘우친다.

不治垣墻盜後悔 담장을 제대로 고치지 않으면 도둑맞은 뒤에 뉘우친다.

色不謹愼病後悔 색을 삼가지 않으면 병든 뒤에 뉘우친다.

醉中妄言醒後悔 술에 취해 망령된 말을 하고 술 깬 뒤에 뉘우친다.

不接賓客去後悔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면 떠난 뒤에 뉘우친다.

 

  쑥부쟁이교실 3. 한용운과 타고르

  1929년 3월 28일 일본 동경(東京)에 들렀던 타고르는 동아일보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글귀를 써 주었습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든 등촉(燈燭 ; 등불)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만해 한용운은 1923년에 김억이 번역한 <기탄잘리>를 읽고 그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만해는 타고르를 비판하는 시를 썼습니다.


  타고르의 시'Gardenisto'를 읽고

                                                        한용운

  벗이여, 나의 벗이여. 애인의 무덤 위에 피어 있는 꽃처럼 나를 울리는 벗이여.

  작은 새의 자취도 없는 사막의 밤에 문득 만난 님처럼 나를 기쁘게 하는 벗이여.

  그대는 옛 무덤을 깨치고 하늘까지 사무치는 백골(白骨)의 향기입니다.

  그대는 화환을 만들려고 떨어진 꽃을 줍다가 다른 가지에 걸려서 주운 꽃을 헤치고 부르는 절망인 희망의 노래입니다.


  벗이여, 깨어진 사랑에 우는 벗이여.

  눈물의 능히 떨어진 꽃을 옛 가지에 도로 피게 할 수는 없습니다.

  눈물이 떨어진 꽃에 뿌리지 말고 꽃나무 밑의 티끌에 뿌리셔요.


  벗이여, 나의 벗이여.

  죽음의 향기가 아무리 좋다 하여도 백골의 입술에 입 맞출 수는 없습니다.

  그의 무덤을 황금의 노래로 그물치지 마셔요. 무덤 위에 피 묻은 깃대를 세우셔요.

  그러나, 죽은 대지가 시인의 노래를 거쳐서 움직이는 것을 봄바람은 말합니다.


  벗이여, 부끄럽습니다. 나는 그대의 노래를 들을 때에 어떻게 부끄럽고 떨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나의 님을 떠나 홀로 그 노래를 듣는 까닭입니다.


  이 시는 상징적인데, 긍정과 부정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즉 만해는 타고르의 시를 읽고 처음에 기쁨과 희망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타고르가 현실을 부정하고 내세나 피안의 세계에 몰두하는 점은 비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역사와 사회에 헌신하고 투쟁하는 시를 써야 한다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고,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투쟁하여 ‘피 묻은 깃대를 세우는’ 혁명가라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인도 부라만 교의 전통을 계승한 타고르의 명상적이고 종교적인 시를 공부해 왔습니다. 불교는 부라만 교에 반대하여 창조주를 부인하고 무아(無我)를 통한 해탈을 강조한 한 종교입니다. 스님이고 혁명가이고 시인인 만해는 타고르의 영향을 받았지만, <타고르를 읽고>에서 밝힌 것처럼 분명히 타고르와 다른 점을 명시하였습니다. 즉 타고르의 임은 범신론적이지만, 기독교의 신처럼 절대자이면서 창조주인 성격이 아주 강합니다. 그러나 만해의 임은 상징적이어서 포괄적이지만 아무래도 연인이면서 조국, 그리고 범신론적인 경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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