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외국작가 畵壇

[스크랩] 열매가 아름다운 우정들 - 마티스와 피카소,세잔과피사로

鶴山 徐 仁 2008. 8. 7. 08:48

 



 
1 폴 세잔의 <자화상(Self-Portrait)>. 세잔은 자화상을 가장 많이 남긴 화가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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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의 정물화 중 가장 유명한 <사과가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Apples)>. 정물화의 대가인 세잔은 50여 점의 정물화를 남겼다. 그중 <수프 그릇이 있는 정물>은 배경에 피사로의 그림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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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이 피사로의 작품을 참고했듯이 피사로 역시 세잔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 세잔의 <큰 소나무>에서 영감을 받아 피사로가 1898년에 그린 작품.
4 역사상 가장 위대한 풍경화가로 평가받는 피사로의 <자화상(Self-Portrait)>.

 

A Fruitful Friendship

CEZANNE AND PISSARRO GET A NEW LOOK IN NEW YORK.

뉴욕에서 세잔느와 피사로를 새롭게 본다는 것

NEWSWEEK

 


대미술의 개척자들 : 세잔과 피사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5월 30일까지 열리는 <현대미술의 개척 : 세잔과 피사로 1865~1885>전은 파리 북서쪽 시골 마을에서 20년 동안 함께하면서 흥미로운 예술적 대화를 나눈 두 미술가의 창조적 관계와 우정에 초점을 맞춘다. 두 화가는 1861년 파리에서 만났다. 프로방스에서 태어난 폴 세잔은 카리브 해에서 태어난 유대인 카미유 피사로보다 아홉 살이나 어렸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파리 예술계의 아웃사이더였고, 자신들의 직업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중산층 출신이었다. 이번 전시회는 오랫동안 세잔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피사로가 세잔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고,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세잔은 피사로가 그림을 그리던 곳을 찾아다녔고, 피사로가 그린 풍경화 <루브시엔>을 모방하기 위해 그 작품을 빌린 적도 있다. <루브시엔>은 미묘한 색상의 변화를 인상파 화풍으로 처리한 작품이다. 여기서 영감을 받은 세잔은 대담한 평행 붓놀림으로 작고 치밀한 풍경화를 그렸다. 심지어 유사점이 전혀 없는 세잔의 <수프 그릇이 있는 정물>과 피사로의 <세잔의 초상> 같은 작품에서도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피사로의 그림이 배경에 등장하는 것이다.

 

New Yorkers have seen Picasso alongside Matisse, and Manet displayed next to Velazquez. Now, in "Pioneering Modern Painting: Cezanne and Pissarro 1865-1885,"

 

 

같은 과수원 그렸어도 화풍은 전혀 달라
이 전시회에서는 재능 있는 두 화가가 서로 도와가며 자신만의 화풍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나란히 서서 같은 풍경을 그렸어도 차이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피사로의 인상주의 작품 <코트 생드니즈, 퐁투아즈의 과수원(Orchard, Cote Saint-Denise, at Pontoise)>은 빛, 세부 묘사, 투명한 색감을 통해 자연을 가장 밝게 빛나는 형태로 보여준다. 세잔의 <과수원(Orchard)>은 깊고 선명한 색, 대담한 붓놀림과 대각선을 사용해 그린 것이 특징이다. 세잔은 본질을 담기 위해 풍경의 일부를 과감히 생략했다. 같은 과수원을 그렸지만 두 화가의 그림은 분위기나 색조가 확연히 다르다. 물론 초기 풍경화에서 피사로가 세잔에게 미친 영향은 컸다. 그러나 그들은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아니었던 듯하다. 그들의 그림을 보면 둘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알 수 있다. 세잔의 <두 화병(Two Vases of Flowers)>은 피사로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빛과 색으로 가득하며, 피사로의 <퐁투아즈 에르미타주 풍경(Landscape at L’Hermitage, Pontoise)>에서는 세잔의 어둡고 음침한 색과 양감이 떠오른다. 피사로는 일찍부터 세잔이 모더니즘의 선두 주자가 될 것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서로 헤어져 피사로는 신인상주의로 복귀하고, 세잔은 프로방스로 돌아갔지만 수년이 흐른 뒤에도 세잔은 계속 피사로의 그림을 주시했다. 세잔은 “만약 피사로가 늘 1870년처럼만 그림을 그렸다면 우리 중에서 가장 훌륭한 미술가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현대 회화 거장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굉장한 찬사다.

 

 

The artists met in Paris in 1861. Paul Cezanne, born in Provence, was nine years younger than Camille Pissarro, a Jew from the Caribbean. Both were outsiders in the Parisian art world and came from bourgeois families that disapproved of their metier. Both also believed in anarchism and were workaholics who lived for their art. Cezanne boasted that his paintings would shock the establishment; Pissarro declared that art could be saved only by setting the Louvre on fire.

 

 

 

The Dance, by Matisse; Girl in Blue, by Picasso

Picasso vs. Matisse: MoMA's Subway Series

The battle of the titans of twentieth-century art is taking place in Long Island City, which brings up a new issue: Which is New York's left bank?

 

1 1951년에 그린 <미모사(Mimosa)>는 왜 마티스의 이름 앞에 ‘색채의 마술사’라는 수식어가 붙는지 증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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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가 1946년, 77세에 제작한 가위 그림 <재즈-어항에서 수영하는 여자>. 선과 색의 충돌을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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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가 네 번째 연인이자 가장 창조적인 영감을 준 마리테레즈를 그린 <마리테레즈>.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인 <꿈> 역시 마리테레즈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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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피카소의 작품 <해변을 뛰는 두 여인(Two Women Running on the Beach)>이 최초로 일반에 공개된다.

 

Illustration by Mark Alan Stamat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artists Henri Matisse and Pablo Picasso is the subject of a new exhibition at the Kimbell Art Museum in Fort Worth, Texas, called "Matisse and Picasso: A Gentle Rivalry." The theme of this show,

 


Modern twist: Picasso's Acrobat, 1930  
(Photo: Estate of Pablo Picasso/Arists Rights Society)


아방가르드의 선두 주자 : 마티스와 피카소

피카소의 연인이었던 프랑수아즈 길로(FranCoise Gilot)는 자서전 <피카소와 함께한 삶>에서 피카소의 어두운 파리 작업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현란한 색상의 마티스 그림이었다”고 회고했다. 피카소가 파리에 온 1904년부터 앙리 마티스가 사망한 1954년까지 두 화가는 세계 아방가르드의 거두 자리를 놓고 경쟁했을 뿐 아니라 서로에게 가장 날카로운 비평가이자 가장 열렬한 팬이었다. 마티스는 임종을 앞둔 어느 날, 피카소에게 “우리 둘 중 한 명이 죽으면 세상에 다시 없는 대화 상대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의 테이트 현대미술관은 마티스와 피카소 간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탐색할 수 있는 1백30점의 회화와 조각을 한자리에 모았다.

 

8월 18일까지 열리는 <마티스와 피카소>전은 입체파 형성기부터 마티스가 색종이 오려 붙이기 기법을 발전시킨 1950년대까지를 조망한다. 이 시기에 마티스는 이미 아방가르드 사조의 총아로 자리 잡은 반면, 피카소는 아직 자신만의 양식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 두 사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층 수준 높은 혁신의 단계로 서로를 끌어올렸다. 마티스는 자신과 피카소가 “극과 극처럼 다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말 그랬다. 두 화가는 세계를 분할한 다음 각자 상반되는 부분을 점유한 것 같다. 마티스는 색채, 빛, 조화를 구상화한 반면 피카소는 눈에 보이는 세계를 탐구했다. 마티스는 시선을 밖으로 돌려 세계를 관찰했지만, 피카소는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며 갈등하는 정신세계를 묘사하려고 애썼다.

 

About the Exhibition

Matisse Picasso is the first exhibition dedicated to the lifelong dialogue between two of the most important artists of the twentieth century. Struck by each other's genius since they met in 1906, each recognized the other to be his only true rival and measure of his success. Matisse Picasso tells the compelling story of two artists who, by looking at and learning from one another for nearly half a century, were driven to ever higher levels of accomplishment, and despite their personal differences, were closer in spirit than any other two artists of that time.

 

마티스의 그림을 표절한 세기의 명작, <아비뇽의 처녀들>


The Power of Two: Matisse's Acrobats, 1952.  
(Photo: Matisse Private Collection/Artists Rights Society)

1915년 파리에서 열린 <마티스와 피카소>전에 부치는 서문에서 프랑스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는 마티스의 작품을 ‘눈부신 빛의 과일’ 오렌지에 비유했다. 반 고흐가 그렇듯 마티스의 그림들은 생명에 깃든 온갖 경이를 찬미하고 있다. 반면 피카소의 과일에는 난해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피카소는 1919년 그린 정물화에서 인류 최초의 반항을 재현했다. 이 그림에는 사과 두 개가 웅크린 여자 같은 형상을 한 주전자 위에 위태롭게 놓여 있고, 다른 두 개는 마치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것처럼 탁자에 나동그라져 있다. 사실 두 화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많은 평론가들은 두 화가의 유사성을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보면 서로가 주고받은 영향이 분명히 드러난다. 마티스의 작품은 평소보다 조금 더 어두워 보이고, 피카소의 그림에서는 마티스의 테마를 볼 수 있다. 두 화가가 서로의 작품을 표절하다시피 한 적도 있다. 1906년 알제리를 방문한 마티스는 원주민 가면에 관심을 갖게 됐다.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푸른 누드(Blue Nude)>를 발표했다. 이 작품에 나타난 근육질의 왜곡된 육체와 격렬한 에로티시즘은 평단에 큰 충격을 던졌다. 평론가들은 마티스가 전통 예술 형식을 조롱한다고 생각했다. <푸른 누드>에 화답이라도 하듯 1907년 피카소가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아비뇽의 처녀들>을 발표했을 때, 마티스는 자신이 먼저 발견한 원주민 미술을 피카소가 도용한 것에 충격을 받았다. 1년 후인 1908년, 마티스는 <아비뇽의 처녀들>에 대한 대답으로 서양미술의 새 흐름을 개척한 <거북이와 수영하는 사람들(Bathers with a Turtle)>을 내놓았다.

Matisse is a cool, calm, Northern European artist. Picasso is a hot, temperamental Spaniard. Matisse famously said that a painting should be like a comfortable armchair. His paintings are harmonious, luxurious, and soothing. Picasso can virtually copy a Matisse tableau without producing anything like the same effect. In his rendition, the same fruit on a pedestal contains an element of dissonance, disturbance, and even violence. Where Matisse is sensuous, Picasso is sexual. Matisse loves fabric. Picasso loves flesh.

 

 

 

<출처;tong.nate.com/wjdtndl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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