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lationship between the artists Henri Matisse and Pablo Picasso is the subject of a new exhibition at the Kimbell Art Museum in Fort Worth, Texas, called "Matisse and Picasso: A Gentle Rivalry." The theme of this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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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 twist: Picasso's Acrobat, 1930
(Photo: Estate of Pablo Picasso/Arists Rights Society) |
아방가르드의 선두 주자 : 마티스와 피카소 피카소의 연인이었던 프랑수아즈 길로(FranCoise Gilot)는 자서전 <피카소와 함께한 삶>에서 피카소의 어두운 파리 작업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현란한 색상의 마티스 그림이었다”고 회고했다. 피카소가 파리에 온 1904년부터 앙리 마티스가 사망한 1954년까지 두 화가는 세계 아방가르드의 거두 자리를 놓고 경쟁했을 뿐 아니라 서로에게 가장 날카로운 비평가이자 가장 열렬한 팬이었다. 마티스는 임종을 앞둔 어느 날, 피카소에게 “우리 둘 중 한 명이 죽으면 세상에 다시 없는 대화 상대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의 테이트 현대미술관은 마티스와 피카소 간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탐색할 수 있는 1백30점의 회화와 조각을 한자리에 모았다.
8월 18일까지 열리는 <마티스와 피카소>전은 입체파 형성기부터 마티스가 색종이 오려 붙이기 기법을 발전시킨 1950년대까지를 조망한다. 이 시기에 마티스는 이미 아방가르드 사조의 총아로 자리 잡은 반면, 피카소는 아직 자신만의 양식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 두 사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층 수준 높은 혁신의 단계로 서로를 끌어올렸다. 마티스는 자신과 피카소가 “극과 극처럼 다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말 그랬다. 두 화가는 세계를 분할한 다음 각자 상반되는 부분을 점유한 것 같다. 마티스는 색채, 빛, 조화를 구상화한 반면 피카소는 눈에 보이는 세계를 탐구했다. 마티스는 시선을 밖으로 돌려 세계를 관찰했지만, 피카소는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며 갈등하는 정신세계를 묘사하려고 애썼다.
About the Exhibition
Matisse Picasso is the first exhibition dedicated to the lifelong dialogue between two of the most important artists of the twentieth century. Struck by each other's genius since they met in 1906, each recognized the other to be his only true rival and measure of his success. Matisse Picasso tells the compelling story of two artists who, by looking at and learning from one another for nearly half a century, were driven to ever higher levels of accomplishment, and despite their personal differences, were closer in spirit than any other two artists of that time.
마티스의 그림을 표절한 세기의 명작, <아비뇽의 처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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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wer of Two: Matisse's Acrobats, 1952.
(Photo: Matisse Private Collection/Artists Rights Society) |
1915년 파리에서 열린 <마티스와 피카소>전에 부치는 서문에서 프랑스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는 마티스의 작품을 ‘눈부신 빛의 과일’ 오렌지에 비유했다. 반 고흐가 그렇듯 마티스의 그림들은 생명에 깃든 온갖 경이를 찬미하고 있다. 반면 피카소의 과일에는 난해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피카소는 1919년 그린 정물화에서 인류 최초의 반항을 재현했다. 이 그림에는 사과 두 개가 웅크린 여자 같은 형상을 한 주전자 위에 위태롭게 놓여 있고, 다른 두 개는 마치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것처럼 탁자에 나동그라져 있다. 사실 두 화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많은 평론가들은 두 화가의 유사성을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보면 서로가 주고받은 영향이 분명히 드러난다. 마티스의 작품은 평소보다 조금 더 어두워 보이고, 피카소의 그림에서는 마티스의 테마를 볼 수 있다. 두 화가가 서로의 작품을 표절하다시피 한 적도 있다. 1906년 알제리를 방문한 마티스는 원주민 가면에 관심을 갖게 됐다.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푸른 누드(Blue Nude)>를 발표했다. 이 작품에 나타난 근육질의 왜곡된 육체와 격렬한 에로티시즘은 평단에 큰 충격을 던졌다. 평론가들은 마티스가 전통 예술 형식을 조롱한다고 생각했다. <푸른 누드>에 화답이라도 하듯 1907년 피카소가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아비뇽의 처녀들>을 발표했을 때, 마티스는 자신이 먼저 발견한 원주민 미술을 피카소가 도용한 것에 충격을 받았다. 1년 후인 1908년, 마티스는 <아비뇽의 처녀들>에 대한 대답으로 서양미술의 새 흐름을 개척한 <거북이와 수영하는 사람들(Bathers with a Turtle)>을 내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