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想像나래 마당

비운의 高宗황제와 황실가족

鶴山 徐 仁 2008. 7. 7. 14:22


 부축받는 고종 고종 황제(왼쪽 중앙)가 1918년 1월 15일 창덕궁 선원전(선대왕의 어진을 모신 곳)에 예를 올리기 위해 침소인 덕수궁 함녕전을 나서고 있다.
오른편 무리의 중심부에서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정면을 보고 있는 사람이 영친왕.
고종을 부축하고 있는 이들은 왕의 시종으로 짐작된다.
승하 1년 전의 원로한 모습인 고종 황제는 일곱 번째 아들인 영친왕이 8년 만에 귀국하자 조상들에게 예를 올리기 위해 어려운 행차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1919년 1월 22일 고종이 서거했다.


일본식으로 치러진 고종 장례(①,②)

처음엔 조선 황실의 법도에 따라 진행되던 장례 절차가 일본 왕의 "(일본식) 국장으로 치르라"는 칙령에 따라 돌연 일본식으로 바뀌었다.
사진은 2월 9일 고종이 기거하던 함녕전에서 일본식 장례 의식인 '봉고제'를 치르는 모습이다. 다수의 조선 대신들이 삼베두건 등 조선식 장례복을 입고 있는 반면 맨 안쪽 단상 위에 앉은 제관장과 부제관장은 일본식 의례복을 입고 있다.
사진 왼쪽 맨 앞의 콧수염 기른 이가 하세가와 요시미치 총독, 안경을 끼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제복 차림 남자는 야마가타 이사부로 정무총감이다.
아래 사진은 제관장을 맡은 이토 히로쿠니 공작(앞쪽)과 부제관장으로 임명된 조동윤 남작. 조동윤은 병조참판을 지냈던 친일파.

덕혜옹주 일본 유학(③)
1925년 3월 28일 일본으로 떠나는 고종 황제의 막내딸 덕혜옹주가 부산항으로 떠나는 기차의 난간에 서 있다. 옆에 선 이는 당시 황실을 좌지우지하던 한창수 이왕직 장관이다. 덕혜옹주의 일본 유학은 사실상 볼모살이나 마찬가지였다.



경성유치원에 간 영친왕 군복 차림의 영친왕이 1918년 1월25일 경성유치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찍은 사진이다.
당시 사진첩 기록을 보면 그는 원아들의 재롱 섞인 유희를 감상했다고 한다.
원아 가운데는 그의 동생 의친왕의 아들인 이우가 포함되어 있었다.



대한문을 빠져나오는 고종황제 장례행렬, 1919년 1월22일.



방과후 덕혜옹주 시종과 함께 수업을 마친 덕혜옹주가 교문을 나와 마차에 오르려 하는
모습을 찍었다.
일본풍의 교복 치마를 입고 머리에는 양식 모자를 쓴 그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모습이다. 뒤에는 한복을 입은 시종이 겉옷을 들고 따르고 있다.




덕혜옹주가 일본 학교 교실에서 수업하는 모습이다.



1918년 영친왕의 조선 방문 당시.



 황실 가족과 총독부 관료들 1918년 영친왕의 조선 방문 당시 황실 가족과 총독부 관료들이 연회 뒤 덕수궁 석조전에서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매일신보〉에도 실렸던 사진으로 가운데 앉은 양복 코트 차림의 노인이 고종이며 그의 왼쪽이 영친왕, 오른쪽이 순종이다.
영친왕 왼쪽에 있는 이가 당시 조선총독 하세가와. 순종 오른쪽 첫번째 인물은 동생인 의친왕이며 두번째 인물은 총독부 실세였던 야마가타 정무총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