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한국 음악 마당

졸업식 노래 (1946)

鶴山 徐 仁 2008. 2. 24. 17:32
졸업식 노래 (1946)
어린이 노래 3 (0000)
작사 : 윤석중 / 작곡 : 정순철 (1946)
Track No. 51 - 졸업식 노래
 
졸업 노래
작사 : 윤석중 / 작곡 : 정순철
1절 (후배들 합창)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물려 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2절 (졸업생들 합창)
잘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 갑니다.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얼른 자라서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
3절 (다함께)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
영화 "선생 김봉두"에서 졸업식
     
▲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전교생이 부른 졸업식 노래에 재학생 중 한 학생이 선배들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종일 기자 parkji@janews.co.kr
     
동심세계에 노래날개 달아 시대정신 알알이 
1929년 동요작곡집 수록 '우리 애기 행진곡'
▲ 정순철선생이 우리나라 동요 보급에 앞장섰다고 소개된 신문 보도 내용.
색동회 창립 동인인 정순철은 윤석중과 함께 우리 동요의 보급에 앞장선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1929년 펴낸 동요작곡집 1집 갈닙피리에는 '우리 애기 행진곡'이 실려 있는데 이는 일제가 우리 글과 말을 억제하고 일본 동요 보급에 혈안이 됐던 당시 창작돼 전국적으로 큰 박수를 받았다. 특히 부르기가 쉬워서 전국 방방곡곡의 유치원과 소학교에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선풍적 인기를 없었던 것으로 유명한 곡이다. 우리지역의 동요작곡가 정순철은 이렇듯 동심 세계에 노래의 날개를 달아 시대정신을 알알이 보급했던 문화 인물로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그는 특히 반세기가 지나도록 숱한 세대의 가슴을 울렸던 '졸업식 노래'(1946년)의 작곡가인데 해방을 맞고도 우리 노래로 만든 적당한 졸업식 노래가 없던 시절, 교육당국이 윤석중 선생에게 급히 간청해 하루만에 지어진 것이 바로 윤석중 작사, 정순철 작곡의 '졸업식 노래'다.
최근 들어 이 노래의 작곡가가 옥천 출신의 정순철(鄭淳哲, 1901∼1950 납북)임을 아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올해초만해도 6·25 전쟁 중 납북된 선생에 대한 조명은 간헐적으로만 이뤄져 왔다.
그가 동심을 주목하고 어린이 운동을 하며 곡을 쓴데는 그의 출생 배경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데 그의 외조부가 동학 2세 교주 해월 최시형이었음을 증명하는 자료들이 발견되며 이해를 돕고 있다. 천도교 재단이 운영하는 수운회관에 따르면 정순철의 출생비화는 이렇다.
해월 최시형 선생은 '최 보따리'라는 별명이 붙었을 만큼 동학을 박해하는 관가를 피해 산간벽지를 누비며 피신생활을 했고 이런 상황에서 김씨 부인은 동학혁명이 일어나던 1894년 가을 외동딸 최윤(崔潤)과 충청도 옥천관가에 잡혀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러나 당시 옥천군수가 아전 정주현(鄭注鉉)에게 최윤을 데려다 살라고 주어버림으로써 정순철이 태어났다는 것. 시집식구들은 정순철의 어머니를 '역적의 딸'이라고 눈총을 주게 되며 결국 아들 순철은 집을 뛰쳐나와 서울로 올라와 초등학교를 다니게 된다. 당시는 동학 3세 교주 의암 손병희 선생에 의해 1905년 천도교(天道敎)로 재탄생했던 시기로 정순철은 천도교인 친척집에 머물며 의암의 배려로 천도교가 경영하던 보성중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이후 손병희 선생의 셋째 사위인 소파 방정환과 함께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떠나 동양음악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하며 방정환, 손진태, 진장섭, 고한승 등과 함께 '색동회'를 만들어 어린이문화운동에 동참했다는 것이 수운회관의 설명이다.
정순철의 장남 정문화씨(82)는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아버지가 지인들로부터 '한국의 베토벤'이라고 불렸다고 회고했다. 그에 따르면 아버지 정순철은 어린시절 서울로 올라온 후 줄곧 어머니 최윤과 떨어져 살았으며 '핍박을 견디지 못한 외할머니가 고모과 함께 계룡산으로 떠나고 나서는 외할아버지가 후실을 얻으며' 사실상 가족관계는 단절된다.
또 정순철과 유독 친분이 두터웠던 지인으로는 마해송과 윤석중, 이헌구씨 등과의 교제가 많았다고 술회했다. 그는 아버지는 작곡가로서는 물론 교육자로서도 북으로만 가지 않았다면 우뚝한 인물이 됐을 것이라고 아쉬워 했다.
한편 정순철이 어린이운동을 열정적으로 전개한 것은 1926년으로 그는 색동회 멤버들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어린이운동단체인 '천도교 소년회'(1921년 5월 1일 창립)와 연계해 천도교 대교당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초창기 어린이운동을 이끌어 나갔다.
또 1930년대에는 정인섭·이헌구와 함께 녹양회(綠陽會)라는 동극단체를 만들어 '색동저고리' '백설공주' '에밀레종' '허수아비' 등을 발표했고 특히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하던 이헌구와 함께 많은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심을 통해 시대정신을 말하고자 했던 동요 작곡가 정순철. 어린이지 제11권(1933년 2월)에는 그가 왜 동요를 썼는지 엿볼 수 있는 구절이 나온다.
노래는 쓸쓸한 사람에게는 충실하고 유순한 동무가 되어주고 홀로 외로울 때 마음이 아프고 괴로울 때 그 외로움과 괴로움을 잠재워도 줍니다.…(중략)…기쁠 때 기쁨을 나누어주며 슬플 때 슬픔을 나누어주는 둘도 없는 친한 동무가 있다면 그것은 노래뿐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 중부매일 기획취재팀  jb@jbnews.com
     
어린이 노래 운동의 선구자 정순철은 누구인가?
정순철(鄭淳哲, 1901∼1950 납북) : 국민 동요 ‘짝자꿍’을 작곡한 정순철(鄭淳哲·1901년 생·사진)은 ‘반달’의 윤극영, ‘오빠생각’의 박태준, ‘봉선화’의 홍난파 등과 1920년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요작가였다. 동학 2세 교주인 최시형의 외손자이기도 한 정순철은 충북 옥천군 청산면 교평리에서 태어나 방정환, 정병기 등과 함께 색동회를 조직했으며 1929년 동요작곡집 ‘갈닙피리’를 발행했다. 여기 수록됐던 ‘우리 아기 행진곡’(짝자꿍)은 당시에도 어른 아이가 모두 즐겨 부르던 동요다. 해방 후 작곡한 ‘졸업식 노래’ 역시 온국민의 노래가 되었다. 정순철은 1930년대에는 정인섭 이헌구 등과 함께 녹양회라는 동요동극 단체를 만들어 ‘색동저고리’ ‘백설회’ ‘에밀레종’ ‘허수아비’ 등의 동극을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방정환과 가깝게 지내며 초기 어린이 운동을 이끌었으며 동요운동의 선구자인 셈이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6.25 때 납북되었기 때문이며 그간의 모든 행적이 매몰된 것이다. 본관은 연일(延日)이고 어릴때 이름은 분답이며 자는 성춘(星春)이다. 청산에서 보통학교를 다니던 정순철은 학교를 중퇴하고 집을 나와 옥천역에서 화물차에 몰래 숨어 타 서울로 올라갔다. 이후 동학 3세 교주인 손병희의 배려로 보성중학교에 입학했으며 김기전, 방정환 등의 주도로 결성한 천도교소년회에 입회해 활동했다. 천도교청년회가 월간지 ‘개벽’을 창간하고 여성운동, 농민운동, 체육운동 등을 전개하면서 대중을 계몽하는데 앞장섰으며 그 산하단체인 소년회는 1923년 3월부터 월간 ‘어린이’를 창간하고 소년계몽운동을 주도했다.
천도교 소년회의 이 운동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어린이 문화운동과 어린이 인권운동이었다. 정순철이 방정환과 함께 어린이 운동단체인 ‘색동회’를 창립하는 일에 참여 한것은 함께 유학중일 때인 1923년이었다. ‘색동회’는 1923년 3월 16 발족해 5월 1일 방정환을 중심으로 정순철, 윤극영, 마해송 등이 가입해 이날을 어린이날로 제정한 것이다. 윤극영과는 일본유학시절 함께 지냈으며 어려운 형편에서도 동경음악대학을 다니며 음악공부를 계속했다. ‘어린이’잡지에 어린이들이 부를 창작동요를 작곡해 발표, 보급하는데 앞장 섰으며 동경유학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와서도 서울 경운동의 천도교 대교당을 중심으로 각종 어린이 운동을 전개했다.
동요작곡집 1집 ‘갈닢피리’에는 ‘짝자꿍’을 비롯해 ‘까치야’ ‘여름비’ ‘나뭇잎배’ ‘갈잎피리’ 등이 수록돼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정순철의 노래들은 잡지 ‘어린이’에 발표된 ‘형제별’(1923)을 비롯, 조선일보에 발표된 ‘자장가’(1928), 윤석중이 작사하고 정순철이 곡을 붙인 ‘졸업식 노래’(1948)까지 36곡이다. 이 외에도 ‘조선동요백곡집’(1946) 상권에 수록된 ‘시골밤’ ‘아기별’ ‘어깨동무’ 등을 합하면 40여곡에 이른다. 이중 ‘짝자꿍’은 경성중앙방송국 전파를 타고 방송되어 국민동요로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정순철은 1931년부터 34년까지 경성보육학교에 재직했으며 1939년부터 41년까지 두 번째로 음악공부를 하러 동경에 들렀다. 1948년에는 서울 성신여고에서 교편생활을 시작 했으며 재직 당시 별명은 ‘한국의 베토벤’이라고 했다. 성신여고 재직시 6.25가 발생했고 학교 교장이 피난 가며 정순철에게 부탁하자 학교에 혼자 남아 있던 정순철은 인민군이 후퇴하던 9월 28일 납북된 것으로 전해진다. 가족들은 9월 29일을 기일로 정하고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 북한 음악사에서도 정순철은 중요한 동요작가로 다뤄진다. △지난 4일 아동청소년 문학회 세미나서 발표한 도종환시인의 ‘어린이 노래 운동의 선구자, 정순철’의 주제 발표문에서 요약.
<정리/김정애> : ⓒ 동양일보(http://www.dynews.co.kr)
참고 :
정순철은 윤극영과 함께 '색동회' 동인으로서 1929년에 정순철 동요작곡집 제1집「갈닙피리」를 발행했는데, 여기에는〈우리 애기 행진곡(짝짝궁)〉을 비롯해서 9곡이 들어 있으며, 모두 멜로디뿐이고 반주는 없다. 그의 대표작은 물론〈우리 애기 행진곡〉이지만, 이밖에도〈갈닙피리〉는 명작에 속한다고 나는 생각하며,〈여름비〉,〈늙은 잠자리〉,〈나무닙배〉등도 아름다운 곡이다. 「조선동요 백곡집 상권」(1946년, 조선아동문화협회발행)에 의하면〈봄〉,〈새나라의 어린이〉,〈시골밤〉,〈아기별〉,〈어깨동무〉,〈옛이야기〉,〈진달래〉가 들어있는데, 거의 불려지지 않으며 〈졸업가〉만이 지금도 애창되고 있다. 정순철은 작품이 너무도 적은데다가 짧은 곡이 비교적 많으므로 유치원 동요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갈닙피리〉는 8마디의 짧은 곡이긴 하나 서정적이고도 말할 수 있다. 〈갈닙피리〉는 8마디의 짧은 곡이긴 하나 서정적이고도 한국적이다. 정순철과 윤극영의 공통점은 멜로디뿐이고 반주곡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한국전쟁중 납북 1901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난 정순철은1950년 한국전쟁중 납북돼 행방이 묘연하다. 이런 가운데 올해 도종환 시인은 '옥천에서 자란 정순철은 동학 2세 교주 해월 최시형의 외손자'임을 증명하는 자료들을 발표했다.
시인은 정순철 선생의 고향인 충북 옥천에서 그가 동학 2세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의 외손자임을 확인케 하는 제적부를 발견했으며 그의 동요집 발굴작업와 연구를 통해 선생에 대한 문단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정순철은 1931년부터 경성보육학교에서, 1939년에는 다시 동경에서 3년간 음악공부에 전념했으며 귀국후에는 1942년 중앙보육학교(중앙대 전신) 음악교사로 재직했고 해방후 서울무학여고와 성신여고에서 음악교사로 활동하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성신여고에 재직하고 있던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서울이 점령당하자 당시 여성 교장은 정순철에게 학교를 맡겨놓고 피신했으며 9.25 수복 당시 정순철은 유엔군 반격으로 퇴각하던 인민군에 의해 납북된다. 후손들은 수복 다음날인 9월 29일을 정순철 선생의 기일로 정해 현재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했다.
정순철은 윤극영과 함께 '색동회'동인으로서 1929년에 정순철 동요작곡집 제1집 갈닙피리를 발행한 것으로 유명한데 여기에는 '우리 애기 행진곡(짝짝꿍)'을 비롯해 아홉곡이 수록돼 있다. 그의 대표작은 '우리 애기 행진곡'이지만 이밖에도 갈닙피리가 명작에 속하며 여름비와 늙은 잠자리, 나무닙배 등의 아름다운 곡들이 있다.
색동회는 1923년 5월 1일 일제 암흑기에 소파 방정환을 중심으로 강영호, 정순철, 진장섭, 손진태, 고한흥, 정병기, 조준기 선생 등 8명이 일본에서 조직했으며 1921년 소파 방정환 선생이 창안한 '어린이'라는 말을 쓰기로 하고 어린이날을 제정해 어린이 문화운동과 어린이 인권운동, 구국운동을 전개한 한국 최초의 어린이 문화운동 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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