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외국작가 畵壇

가깝고도 먼 당신, 모나리자 (걸작으로 보는 서양미술사) 中

鶴山 徐 仁 2007. 8. 15. 09:54






 

명화는 왜 유명할까? (걸작으로 보는 서양미술사)
아멜리아 아레나스 | 정선이 역 | 다빈치 | 2002.01.26 | 219p 

가깝고도 먼 당신,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모나리자>-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거리고 관객들이 겹겹이 둘러서서 목을 길게 빼고 있다. 단 한 번만이라도 그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듯하다. '유명한 영화배우가 나타났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프랑스 루브르 미술관의 두꺼운 방탄유리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세계 최고의 명화' <모나리자> 앞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그 앞에는 비디오 카메라를 든 사람 한둘이 으레 서 있기 마련인데, 모나리자가 눈을 깜박하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파인더를 응시한 채 꼼짝하지 않고 있다. 만약 그런 바람이라면 차라리 화집이나 그림엽서를 가져다 놓고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것이 더 좋으리라. 그러나 어느 쪽이든 <모나리자>의 본성을 꿰뚫어보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나리자>에는 여인의 자태를 넘어선 어떤 '인간 관계'가 암시되어 있고, 그 '인간 관계'가 무엇인지 알아내기는 그리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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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리자> 1503∼1514년(추정), 판넬에 유채 77×53㎝ 루브르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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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리자는 미소를 머금고 당신을 바라본다. "당신에 대해서 하나에서 열까지 모조리 알고 있어요"라고 말하려는 듯하다. 그렇다면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상대는 누구일까? 이 그림을 의뢰한 늙은 남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였을까, 아니면 모나리자를 자신의 애인으로 만들었다는 권력자 줄리아노 데 메디치였을까. 어쨌든 깊이 파고들면 대답은 하나, 레오나르도에게로 다다른다. 모나리자는 자신을 응시하는 레오나르도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녀의 예리한 시선은 화가의 본심을 꿰뚫고 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이 자리의 주인공은 모나리자임이 분명하다. 신체 윤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모나리자가 그늘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푹신한 팔걸이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주 편안한 자세임에도 목덜미만은 서 있는 사람처럼 꼿꼿하게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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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2.jpg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정취가 담긴 정원이 그림의 배경이리라 짐작하겠지만, 전혀 다른 풍경이 전개된다. 험준한 바위산이 다소나마 부드럽게 보이는 것은 짙게 드리워진 안개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계절과 시각을 헤아릴 단서는 찾을 수 없고, 마치 늑대나 박쥐의 소굴로 딱 알맞아 보인다.이런 환영과 같은 경치와 모나리자는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룬다. 모나리자의 오른쪽에 보이는 다리는 어깨에 걸친 숄의 주름에서 나온 것 같으며, 왼쪽 꼬불거리는 작은 길의 불그스름한 빛은 모나리자 소매의 구릿빛이 메아리친 것 같다. 다리와 그 밑을 통과하는 길에서 사람의 흔적을 발견하지만 시선을 위로 올릴수록 원시 자연의 낯선 풍광이 이어진다. 이어서 얼굴 주위의 근접하기 어려워 보이는 얼어붙은 대지가 따뜻하면서도 친밀한 모나리자의 시선과 어우러져 복잡한 인상을 만든다.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화면 속에 모든 것이 세심한 배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레오나르도는 모나리자와 풍경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기 위해 배경의 여기저기를 손가락으로 문질러서 흐릿하게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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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세히 보면 모나리자에게는 외부의 빛이 전혀 닿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신을 감싸는 황금빛 그늘은 촛불의 어른거림을 연상시키는데, 그래서인지 모나리자는 열린 창이 아니라 그림 앞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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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 담비를 안은 여인> 1489∼1490년, 판넬에 유채 54.8×40.3㎝ 개인소장  

 
011.jpg<모나리자>의 위대함에 관해서 논하다 보면 점점 더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져든다. 자연의 구조를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했던 천재가 자연 묘사를 왜 이렇게 뒤틀린 방법으로 표현했는지 쉽게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가 사람들에게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알려주려고 일부러 복잡한 방법을 썼다는 설도 있고, 미완성작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긴 시간의 흐름과, 그림 위에 두껍게 니스 칠을 하여 정교하고 세밀하게 표현된 몇 군데가 보이지 않게 된 것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또한 해를 거듭하는 동안 화면의 좌우 몇 센티미터를 잃고 말았고,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긴 세월 동안 여러 차례 표면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맨 바깥쪽의 얇은 색채를 잃었다는 점이다. 
 이 그림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글인 조르조 바사리(1511∼1574, 이탈리아의 화가 겸 건축가)의 『미술가 열전』을 읽으면 다른 그림을 설명한 것처럼 느껴진다. 바사리는 모나리자의 붉은 입술과 촉촉한 눈동자, 가느다란 속눈썹, 관자놀이를 향해 서서히 사라지는 옅은 눈썹 등에 대해 웅변을 토하며 '디테일이 너무나 정확해서 모나리자의 맥박마저 들릴 듯하다'라고 적고 있다. 매우 흥미로운 이 글은 잇따른 <모나리자> 숭배의 시발점이 된 것 같다. 하지만 바사리 역시 실물은 보지 못했다(레오나르도 사후, 이 작품은 프랑수아 1세의 궁정인 퐁텐블로 성으로 옮겨져 루브르 미술관에 전시될 때까지 그곳에 보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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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유행했던 소문으로는 모나리자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 화가 자신이 만들어낸 이상형이라는 말도 있었다. 또 수수께끼 같은 화면에서 전해지는 충만감을 지적하며, 화가가 스스로를 상징적으로 그린 것이라고도 했다. <모나리자>의 젊은 얼굴에서 50세인 화가의 용모를 부분적으로 비교한 사람도 있는데, 모나리자는 늙은 동성애자의 마음속 자화상으로 그의 의식에 내재된 여성성의 발로라는 것이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프로이트의 해석이다. 그는 근접하기 어렵지만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강하게 남는 <모나리자>(그리고 레오나르도가 그린 모든 부인상)의 아름다움은 홀로 사는 어머니 카테리나에 대한 사모의 정이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레오나르도는 젖을 떼자마자 곧바로 아버지 일가에 의해 어머니와 떨어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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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나리자>가 위대하게 된 것은  
훌륭한 예술성 덕분만은 아니다.  
레오나르도가 의도하고 학자들이 상상한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걸작이란 보는 사람이 작가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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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디 워홀 <모나리자> 1963년, 캔버스에 아크릴과 실크스크린 319.4×208.6㎝  
 
015-1.jpg 마르셀 뒤샹 1919년, <모나리자> 복제에 연필 20×12㎝  

 레오나르도가 수년에 걸쳐 이 그림을 제작하고서도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사실까지도 화가와 작품 사이의 갈등과 집착을 찾아내려는 로맨틱한 상상에 박차를 가한다. 1503년에 그렸지만 레오나르도가 세상을 떠나고 15년이 흐른 후에도 이 그림이 아틀리에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는 사실을 보면, 의뢰 받은 그림은 미완성품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은 여러 점 가운데 한 점에 불과할 수도 있다(이 그림에 담긴 심리와 성에 얽힌 수수께끼를 한층 깊게 하기 위해서 샹티유이의 콘데 미술관에는 현존하지 않는 <모나리자>의 원작을 모사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모나리자의 나체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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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리자>는 미술사를 장식한 멋진 초상화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아름다움에서나 신비성에서 <모나리자>를 능가하는 작품도 많다. 하지만 <모나리자>를 직접 눈으로 보면 아무래도 그림에 대한 이야기들, 읽었던 책, 전에 보았던 티셔츠와 수많은 잡지 광고 등이 떠오른다. 그런 소문과 학문적인 연구 그리고 로맨틱한 공상이야말로, 그림 표면의 섬세한 균열과 수세기를 거치며 들러붙은 먼지보다도 더, 그림 보는 눈을 가로막기도 하고 풍부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한 <모나리자> 숭배에 대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20세기의 화가들은 너무나도 유명한 이 부인에게 경의를 표하는 한편으로 <모나리자>로 상징되는 옛 명인들의 엄한 권위에 골탕을 먹일 궁리도 해왔다. 살바도르 달리필립 할스만의 카메라 앞에서 <모나리자>를 패러디하여 화려하게 여장한 동성애자로 변장했다. 마르셀 뒤샹은 모나리자에 콧수염을 붙인 후 "L.H.O.O.Q"라고 캡션을 달았다. "LOOK!"이라는 철자를 잘못 쓴 척했지만 프랑스어로 이 스펠링을 발음하면 '이 여자는 암내가 난다'는 의미이다. 앤디 워홀은 모나리자의 유명한 얼굴을 대조가 매우 강렬한 실크스크린 인쇄로 몇 배로 늘려 이 그림이 걸작이 된 이유를 부각시켰다. 즉 옛날부터 수많은 화가들이 모사하고 미술관에서 복사판을 쏟아내는 데다 대량생산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모나리자 상품이 비약적으로 수를 늘린 탓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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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jpg 미술 연구가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모나리자>의 대중적 인기를 한탄하며 '동경의 대상'을 교양 없는 대중에게 빼앗겼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모나리자>가 위대하게 된 것은 훌륭한 예술성 덕분만은 아니다. 레오나르도가 의도하고 학자들이 상상한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렸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걸작이란 보는 사람이 작가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흔히 미술관이나 학자들이 내세우는 딱딱하고 거북한 해석의 울타리 때문에 대중이 작품에 다가가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울타리를 뛰어넘을 때 비로소 걸작은 탄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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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철장신구를 한 여인> 1490∼1495년, 판넬에 유채 62×44㎝ 루브르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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