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악 놀이>
단조로운 농사일에 음악으로써 생기를 불어넣고 노동의 고달픔을 잠시 잊을 수 있도록 하는 농악놀이는 ‘굿, 풍장, 매구’등의 이름으로도 불리워지며, 그 연원은 아득한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경생활이 정착되고 난 후, 경작물의 풍요로운 수확을 비는 농경제의(農耕祭儀)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되는 이 농악놀이는, 오늘날에도 경쟁적인 성격의 놀이에 있어서 자기편의 사기를 북돋워주는 응원의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는 부락단위에 군대조련에도 쓰였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 5월 파종기, 6월 김매기, 8월 한가위, 10월 추수기에 정기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농악놀이는 꽹과리, 북, 장고, 소고, 징 등의 악기를 연주하며, 기본적인 복색은 광목이나 무명으로 만든 저고리, 바지에 짚신을 신는다.
한편, 이 놀이는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각각의 악기를 담당하도록 하여 농악대를 펴성하는데, 간가지의 색옷, 색띠 등으로 이를 구별하는 등 매우 조직적이며, 놀이의 순서와 형식도 비교적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농악놀이는 지역적인 차이가 약간 있으나, 대개 기본구조는 같은 것이며 명절에 행할 때는 ‘기원의식’의 측면이, 농번기에 행할때는 ‘놀이’의 측면이 강하게 부각된다.
<윷놀이>
본래 농경생활의 습속에서 시작되었다는 윷놀이는 그 기원이 삼국시대에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윷놀이의 끝수단위의 명칭은 ‘도, 개, 걸, 윷, 모’라 불리우고 있는데, 이는 일년 중 세초에만 행하는 윷놀이는 농사의 흉풍을 점치는 일종의 점술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정초에 가족과 친지가 모인 안방이나 동네의 공터, 시장터 등에서 남녀노소가 함께 즐기는 오락이 되어있다.
<제기차기>
제기차기는 사내아이들이 주로 겨울철에 행하는 놀이이다. 한가운데 구멍이 뚫어져 있는 엽전이나 쇠붙이 등에 한지, 헝겊, 털실을 달아서 만든 제기를 땅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회수를 거듭하여 발로 차 올리는 놀이로서, 가장 많은 회수를 기록한 사람이 우승을 차지한다. 제기차기는 반드시 겨울철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을 분 아니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놀이여서, ‘두발로 차기’, ‘땅에 한발 안대고 차기’등 기본적인 기술 외에도 갖가지의 놀이방법이 있다.
<다리밟기 놀이>
정월 대보름날 밤에 사람들이 밤거리로 몰려나와 다리를 밟고 다니는 풍속인 답교와 관계를 가지며 시작된 놀이. 한국어로는 ‘다리’가 교량을 지칭하는 말인 ‘다리’와 같은 음을 지녔는데,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거나 무거운 수레가 지나가도 무너지지 않는 굳건한 교량에 빗대어 교량을 밟고 다니면 일년동안 다리병이 없으며, 열두달이 액땜을 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네뛰기>
북방의 유목민이 체력단련을 위하여 그네뛰기를 했던 것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까지 전해진 것이라 한다. 고려시대의 문헌에서 이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볼 수가 있는데, 당시는 남녀 모두가 즐기는 놀이였으며, 왕실과 권신들이 많은 돈을 들여 행사를 치룰 정도로 중시되었던 놀이이다. 조선시대의 소설 “춘향전”에서 춘향이가 그네를 뛰는 장면이 잘 묘사되어 있고, 또 이도령과 단오날 광한루에서 처음 만난 것이 그네뛰기하던 때로서 널리 알려져 잇듯이 많은 청춘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엮어낸 장소가 되기도 했다.
점차로 여성위주의 놀이로 흘러온 이 그네뛰기는 여성의 민속놀이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며, 지금도 향토의 제전이나 축제 행사의 하나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네는 한사람이 뛰는 경우와 두 사람이 함께 뛰는 경우가 있고, 경기를 벌일 때에는 가장 높이 올라가는 사람에게 가장 많은 점수가 주어진다.
<강강술래>
전라남도의 해안지방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강강술래는 민족의 최대 명절인 추석을 전후하여, 달밤에 아녀자들이 노래와 함께 원무를 추는 놀이이다. 마침 추수를 거둔 시기여서 햇곡으로 지은 음식과 술을 차려놓고 조상에게 제례를 드린 후, 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달빛이 휘황한 가을밤의 강강술래는 신비로운 느낌을 갖게 하는 환상적인 분위기속에서 진행된다. 남성이 참가하지 않는, 여성들만의 이 놀이는 동네의 아낙네들이 손에 손을 잡고 커다란 원을 그린 후, 빙빙 돌면서 춤을 추는데 도중에 ‘문턱넘기놀이’, ‘멍석말이놀이’, ‘남생이놀이’, ‘쥐잡기놀이’ 등을 함께 섞어서 한층 흥을 돋우기도 한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이순신장군의 일화와 관계가 있는 이 놀이는 병정들의 수가 모자라, 인근 마을의 부녀자들로 하여금 산 위에 올라서 원무를 추게하여 그 숫자가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왜적의 사기를 꺾었다는 이야기로 너무나 유명하다
<널뛰기>
음력 설날에 아녀자들끼리 모여서 즐기는 놀이의 하나이다. 길다란 널빤지의 양족 길이가 같도록 중간부분을 밑받침대 위에 걸친 다음, 양족 끈에 한사람씩 올라서서 번갈아 가며 뛰고 구른다. 고려시대 때에는 이 놀이가 매우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당시 봉건사회에서 행동의 제약을 많이 받았던 아녀자들이 설빔을 곱게 차려입고 마음껏 즐기며 맵시를 자랑할 수 있는 기 회가 주어지는 날이었으므로, 한적한 규중생활로 인한 운동부족을 해소하는 데에도 큰 의의가 있었다.
<놋다리밟기>
해마다 음력 정월의 대보름날 밤에 몸단장을 곱게 한 젊은 부녀자들이 모여서 행하는 놀이이다. 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람들이 모이면 모두일렬로 늘어서서, 각자 앞사람의 허리를 두 손으로 껴안은 채 엎드린다. 그 다음에는 어린 소녀를 뽑아서 사람들의 등을 밟고 지나가게 하고, 키큰 사람 둘이서 양쪽으로 그 소녀의 손을 잡아 부축해 준다. 이 때, 놋다리 밟기의 노래가 불리워지며 그 가사 속에는 이 놀이가 생겨난 배경이 잘나타나 있다. 고려시대의 공민왕이 중국의 홍건적에게 쫓기어 안동지방으로 파천했던 일이 있었는데, 당시 함께 갔던 왕비인 노국공주가 시내를 건널 때, 쉽게 건널 수 있도록 사람다리를 놓았던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노래속에는 여러 가지 궁중의 의복, 집기, 음식 등을 지칭하는 말이 나오며, 이 ‘놋다리’라는 말의 뜻은 “시냇물 위에 놓은 다리”라고 한다.
<탑돌이>
탑돌이는 고대의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민족적인 종교가 된 불교에서 유래한다. 원래, 불교의 신자들이 절에서 승려들과 함께 불탑을 돌면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미하고 자기의 염원을 빌었던 데서 시작된 탑돌이는, 불교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가면서부터 일반주민들도 많이 참가하는 놀이가 되었다.
신라 원성왕때의 탑돌이에 관한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해오고 있는데, 당시는 4월 초파일부터 15일까지 많은 사람들이 경주의 흥륜사에서 탑돌이를 행하였다고 한다. 그 후, 탑돌이는 스스로의 소원성취를 비는 외에도 국태민안과 태평 성대를 기구하는 국가적 차원의 놀이로 이어졌으나, 지금은 단절되어 그 자취를 찾아 보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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