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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오스트리아 도나우강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에곤 쉴레는,
그의 부모의 표현을 빌리자면, 두 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쉴레의 데생에는 비정상적으로 비틀린 모습과
과격한 포즈를 한 어린 소녀의 누드화가 많이 있습니다.
적나라하게 성적인 부분을 강조한 모습,
심지어 자위하는 소녀 혹은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거리나 공원에서 놀고 있는 여자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해 모델로 그린 적이 많다.
한번은 이런 모습을 수상하게 여긴 이웃들이
“미성년자 유괴”와 “풍기문란”의 명목으로 쉴레를 고소하여
24일 동안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하였습니다.
어른들 뿐만이 아니라 어린이도 성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던 쉴레의 인식을
당시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재판 결과로 자신의 그림이 불태워지는 모욕을 당한 뒤 쉴레는 은둔 생활을 하다가,
1914년 옆집의 총명하고 조신한 여인을 발견하고 결혼을 생각하게 됩니다.
당시 쉴레에게는 17살의 나이에
그에게 찾아와 4년 동안 모델과 부인 역할을 해주며 동거하던 여자 발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정하게도 그는 “나는 결혼을 할 작정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발리와는 아니지요.”라고 친구에게 말합니다.
일년 뒤 쉴레는 부모님의 결혼 기념일에 결혼식을 올리고 4일 뒤 입대를 합니다.
군대에서도 쉴레는 재능을 인정받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아틀리에와 박물관 근무 라는 혜택을 얻었습니다.
게다가 전시회도 하죠.
당시의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와 전쟁 중이었습니다.
1918년 즈음, 쉴레는 여러 전시회와 그룹의 초대를 받기도 하고,
그림이 비싼 가격에 팔렸으며 애호가들도 생겼습니다.
Ergon Schiele (1890-1918) "안톤 페슈카의 초상1909"
![](https://t1.daumcdn.net/cafefile/pds26/7_n_m_163J3_7fST_000_00_0000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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