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4장 15절 - 5장 2절
18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사람의 일생을 돌이켜 보면 좋았을 때는 모두 과거에 속하고 현재는 항상 고난과 고통의 날로만 생각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던 순간은 별로 없었고, 설령 행복을 느꼈다고 하여도 잠깐이고 그 대신 기나긴 고난의 밤이 나를 덮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고난의 때에 인간은 성숙하고, 깊이 생각하고, 기도하게 되고, 반성하며, 발전하며 믿음이 보여지는 때입니다.
고난이 없는 자는 절대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할 기회가 없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함으로 더 큰 유익을 얻습니다.
시편 119편 71절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을 당하면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1.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니까요
주의 율례라고 함은 하나님의 정하신 규례와 법칙인데 우리가 주님의 율례에 나를 비추어 볼 때에 나는 죄인임을 깨닫게 되고 주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참된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참된 나를 발견한다 함은 나의 연약함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나의 마음이 살이 쪄서 교만하고, 내노라고 자랑 할 것이 많고 나의 건강과 힘과 재물을 의지하고 살았지만 고난을 당하니 다 지방은 사라지고 피골이 상접한 연약한 자가 되어 겸손한 내가 되고 지난 과거의 모든 잘못을 깨닫게 됩니다. 이 같이 나를 아는 것 이상의 큰 은혜는 없습니다.
2. 돈 보다 세상에 더 귀한 것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세상은 천천 은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고 있기 때문에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고난을 당하니 천천 은금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천천 은금보다 귀하고, 사랑이 귀하고, 건강이 귀하고, 생명이 귀하고, 주님이 더 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고난 중에 갖는 믿음이 가장 최상급의 좋은 믿음입니다.
고난 중에 갖는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있는 믿음임으로 항상 정격하고 좋은 믿음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믿음, 능력 있는 믿음을 갖고 살기를 원하지만 이러한 믿음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고난이 극심하지 않음으로 아직 다른 것을 의지하고 믿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 있습니다.
1. 상식이 하나님의 능력을 막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겪어 온 평상적인 일들이 믿음 보다 더 크게 역사 하여 믿음의 능력을 막습니다.
병이 들면 병원에 가야하고, 머리가 아프면 약을 먹어야 한다는 상식이 믿음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당시에는 병원도 없었고 좋은 약도 없을 때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오래 장수하였습니다.
노아는 950세를 살았고 므드셀라는 969세를 살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들 보다 10배나 더 오래 살고 장수하였습니다. 우리가 늙으면 죽고 병약하여진다는 상식을 갖고 있는 한 믿음으로 인한 건강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돈이 없으면 못살고 가난하게 산다는 상식을 갖고 있는 한, 또 만족하고 여유 있게 살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한, 믿음으로 오는 부요는 얻지 못합니다.
어느 선교사가 배를 타고 강줄기를 올라가는데 강 가운데에 큰 바위가 있어서 선교 길을 막고 있어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내가 주의 복음을 전하려고 선교지에 가는데 저 바위가 가로막고 있어서 더 갈 수가 없으니 주님의 크신 능력으로 저 바위를 옮겨 주시든지 깨어 부셔 주던지 하여 달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기도를 오래 하여도 그 바위는 그대로 있더니 어느 날 비가 억수로 쏟아지더니 강물이 불어서 그 바위를 감추어 버려 배가 그 바위를 넘어서 선교지에 갔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바라고 원하는 나의 방법을 따라서 응답을 하여 주시지는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은 나의 생각을 초월하여 바위를 넘어 갈 수 있는 믿음을 주셔서 어려움을 이기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없애 주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내 인간의 상식과 경험이 믿음 보다 앞서 있는 한 믿음으로 인한 기적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 상식과 경험을 버리고 주님의 능력과 방법에 매낄 때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기적으로 능력을 베풀어주십니다.
갈릴리 바다에 풍랑이 일어났을 때에 어부 출신들인 제자들이 자기의 지금까지의 경험과 방법을 동원하여 배를 풍랑에서 벗어나 보려고 하였지만 배가 더 흔들리고 침몰하게 되었을 때에 자기의 상식과 방법을 버리고 주무시고 있는 주님을 깨워 주님께서 이를 해결하여 주시기를 바랐더니 주님은 주님의 방법으로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어 이 어려움에서 해결을 주셨습니다.
나의 방법을 포기하고 주님께 모든 어려움을 매낄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내가 상상치도 못한 능력으로 이를 해결하여 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2. 과학이 세상 지식이 주님의 능력을 막습니다.
기적과 주의 능력은 과학을 초월하는 것이요, 상식과 과학과 세상 지식을 초월하는 것이 기적이요 과학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 기적입니다.
과학이 만나를 설명하지 못하고, 홍해를 가른 일을 설명하지 못하고, 여호수아가 기브온 전쟁에서 기도를 함으로 해가 중천에 서 있었던 것을 인정은 하지만 설명을 하지 못하는 것이 과학입니다.
히스기야가 해 그림자를 20분간 뒤로 가기를 원 할 때에 하나님이 해 그림자를 뒤로 가게 한 것도 인정을 하면서도 설명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과학이 설명하는 것만을 믿으려고 하기 때문에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주님의 능력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학이란 것은 주님의 능력을 오게 하는 것의 장애물이란 것을 알고 항상 나의 지식과 세상 지식과 과학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이를 구 할 때에 우리에게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기적이 임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과학으로 설명하려 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3. 마귀가 믿음으로 인하여 오는 주님의 능력의 기적을 막습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마귀가 욕심을 갖다 주고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거짓으로 속이고 진리를 떠나게 하고 진실된 마음이 없게 하므로 믿음으로 오는 기적을 막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기도 제목을 보면 욕심을 채워 달라고 하는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욕심으로 구하는 사람들은 의심을 쉽게 갖게 됩니다. 야고보서 1장이나 4장에는 정욕으로,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기도를 하나 응답을 받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의심과 욕심은 마귀가 역사 하는 기도이므로 마귀를 쫓아내고 의심 없이 욕심을 물리치고 오직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오늘 얻을 만나를 위하여, 주의 영광을 위하여 의심과 욕심이 없는 기도를 할 때에 바로 기적의 응답이 내려오는 법입니다.
기도 할 때에 마귀를 물리치며 욕심을 물리치며 주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구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기도를 함으로 주의 능력으로 받고 먹고사는 성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4. 육신의 연약함이 믿음으로 오는 기적을 막습니다.
사람이 피곤하거나 피로하거나 인정에 지나쳐도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1992년 8월 17일에 사모가 폐기공이 되어 응급실에 갑자기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수술하기 전에 기도를 하여 달라고 하여 문을 닫고 주위의 의사와 간호원을 다 내 보내고 손을 잡고 기도를 하는데 다른 사람이 병들었을 때에 수없이 많이 병원에 심방을 가서 기도를 청산유수같이 잘 하던 목사가 기도가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기도를 처음 하는 사람같이 떠듬거리며 몇 마디하고 말은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기 위하여서는 내 몸을 잘 돌아보아 건강을 유지하고 있어야 항상 능력 있는 기도를 할 수 있고, 개인감정을 떠난 공인으로 기도를 할 때에 능력 있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남은 이때를 주의 능력을 힘입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환경이 지금 어렵고 바랄 수 없는 중에 있다고 하여도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능력의 도우심을 바라보고 역전승을 하는 우리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 어려움이 나의 종착역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하나의 과정으로 여기고 종착역이 중요하지 중간 역은 중요하지 않음을 알고 지금의 고난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바랄 수 없는 환경의 어려움이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1. 욥과 같이 바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함
욥기서는 욥이 재산이 다 없어지고 자녀가 모두 죽고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하고 도망가고 몸에는 병이 들어 깨진 기왓장으로 몸을 긁고 있어야 하는 비참한 환경에 이르렀습니다.
욥은 바랄 수 없는 환경에 있었지만 믿음을 갖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욥기 6장 10절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무정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우리도 욥과 같이 의롭게 살아가는 동안에도 무정한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몸이 병이 듦으로, 가족과 이별하고, 친구의 조롱을 받으며, 재산이 없어지고 망하는 가운데 있다 하여도 우리는 이러한 바랄 수 없는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을 지키며 살아 갈 때에 하나님은 이러한 무정한 고통 속에서 나를 건져 주시고 다시 일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의 역사를 베풀어주십니다.
욥이 이러한 바랄 수 없는 중에 하나님을 바라고 믿음을 지키고 있을 때에 욥의 결말은 갑절의 축복으로, 장수의 복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보니 남겨진 재산이 있어서 그것을 가지고 장사를 하여 갑절의 복을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하심으로 각 사람이 욥에게 금 한 조각과 금 고리 등을 가져다가 줌으로 이 것을 재산의 기초를 삼아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베풀어주심으로 전보다 갑절이나 더한 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무정한 고통 속에서도 여호와의 말씀을 버리지 않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여호와를 경외하며 살 때에 하나님은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믿음을 갖고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욥의 말년과 같은 복으로 채워 주십니다.
2. 아브라함과 같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이 되어야 함.
로마서 4장 18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이시니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안 될 것을 될 것으로 믿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며 행동으로 옮길 때에 하나님은 이것을 믿음이라 하시고 의롭다고 하시며 하나님의 능력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100세 된 할아버지와 90세 된 할머니가 아들을 낳게 된다니 이는 도무지 인간의 계산으로는 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이시니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 감사를 하며 천만인의 어미, 아비라고 부르면서 살 때에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이를 의롭다 하시며 기뻐하시고 이삭을 낳게 하여 주시었습니다.
이삭이 성장한 후에는 모리아산으로 가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할 때에 히브리서에 기록 된 대로 아들을 죽여도 하나님께서 다시 아들을 살려 내실 것을 믿고 이삭을 드린 아브라함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란 것은 바랄 수 없는 중에 이것을 이루어 질 줄로 여기고 확신하여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이와 같이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믿는 것이요,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3. 다윗같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어야 합니다.
사무엘상 17장에는 골리앗과 다윗을 비교하여 말하였습니다.
골리앗은 키가 2 m 9 cm(여섯 규빗 한뼘) 이요 어려서부터 싸움 대장입니다. 창자루가 베틀 채와 같다고 하였으니 삼국지의 여포나 관운장, 장비와 같은 장수입니다.
골리앗과 싸우러 나간 다윗은 홍안 소년입니다. 골리앗은 창과 칼을 들고 나오고 다윗은 막대기와 돌멩이입니다. 어린갑을 입은 장수와 T-Shirt 입고 싸우는 싸움입니다.
다윗을 골리앗과 비교할 때에 도무지 승리를 바랄 수 없는 환경이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고 믿음으로 담대히 나갔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 - 47절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바랄 수 없는 상황이지만 하나님을 바라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가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여 기적으로 골리앗의 골이 깨져 죽게 하는 승리를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사울 왕과 많은 사람들이 골리앗과 자기를 비교하여 볼 때에 도무지 상대가 될 수가 없음을 알고 무서워 떨고 있었지만 다윗은 골리앗과 하나님을 비교하며 믿음으로 나아 갈 때에 하나님은 기적으로 승리를 주셨습니다.
우리도 산과 같은 문제가 있을 때에 산과 같은 문제와 나를 비교하지 말고 산과 같은 문제와 하나님을 비교하여 믿음으로 나아 갈 때에 하나님은 기적으로, 능력으로 우리를 이기게 하시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게 하십니다.
바랄 수 없는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능력은 능치 못함이 없음을 믿음으로 보이며 나아 갈 때에 하나님은 골리앗을 이기는 다윗과 같이 오늘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4. 바울과 같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나아가야 합니다.
디모데 전서 1장 13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사도 바울은 예수를 알기 전에는 예수를 믿는 사람을 잡아 가두고 예수쟁이를 잡으러 다니는 사람으로 핍박자입니다.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많이 한 바울이지만 주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후에 회개를 하고 평생을 주님을 전도하며 헌신한 바울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과거에 바울과 같이 도무지 용서받지 못할 일을 많이 한 사람이라고 하여도 회개하고 나면 하나님은 도무지 인간적으로는 용서가 안 되는 환경에 있었다 하여도 다시 귀하게 쓰시는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용서를 바랄 수 없는 죄를 지으며 살아 왔다 하여도 주님의 은혜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다시 일으켜 바울을 쓰신 주님께서 나도 역시 들어 쓰실 것을 믿으며 믿음으로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 번 실수로 버리시는 주님은 아닙니다.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다시 쓰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기로 한 후에도 예수님은 가롯 유다에게 여러 차례 회개의 기회를 주시며 내가 떡을 찍어다 주는 사람이 그 사람이다 하시며 가롯 유다에게 떡을 찍어다 주었고, 나와 함께 손을 넣는 자가 그 사람이다 하며 가롯 유다의 회개의 양심을 찔렀고, 나를 파는 사람은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극한 자극을 주는 말을 하며 회개의 기회를 주며 양심을 찌르는 말을 하였지만 마귀에게 사로잡혀 양심이 화인을 맞아 무감각하여 예수님의 지적을 듣고서도 회개하지 않고 마귀의 일을 따르다가 망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못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회개를 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우리가 용서를 바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여도 주님의 은혜를 바라고 믿음을 가질 때에는 주님은 주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구원하여 주시고 다시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를 바라고 기도하며 회개하며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들에게 회개한 바울을 들어 쓰시고 회개한 베드로를 다시 쓰신 주님은 우리들도 동일한 은혜로 다시 주님을 위하여 일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바랄 수 없는 상황 중에 바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감으로 주님의 큰 은총을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정리 :
욥은 무정한 고통 속에서 바랄 수 없는 물질적, 육신적, 가정적인 쫄딱 망한 고통 속에서도 재기를 바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주의 말씀을 붙들고 바라 볼 때에 하나님은 전보다 갑절이나 더한 복을 주시었습니다.
우리도 무정한 고통 속에 살아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을 바라고 살아 갈 때에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로 이 고통에서 건져 주시고 전보다 더한 복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인간의 상식과 과학으로 도무지 되어 질 수 없는 상황이지만 믿음으로 바라고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행동으로 옮기는 일을 할 때에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을 보시고 이를 믿음이라 하시고 의롭다고 하시었습니다.
인간의 상식으로, 경험으로, 지식으로, 과학으로 도무지 바랄 수 없는 일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바라봄으로 나아 갈 때에 하나님은 믿음이 좋다고 하시며 의롭다 하시며 기적으로 해결하여 주십니다.
다윗도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상대적으로 비교가 되지 않는 바라볼 수 없는 상대이지만 하나님과 골리앗을 비교하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 갈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우리도 나와 문제를 비교하지 말고 문제와 하나님을 비교하여 믿음으로 나아 갈 때에 하나님의 능력의 도우심이 나타나서 승리자가 됩니다.
바울은 과거에 도무지 용서를 바라 볼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지만 회개 할 때에 하나님은 바라볼 수 없는 과거에서 해방을 주시고 오히려 크게 쓰임을 받는 은혜를 주시었습니다.
우리도 돌아보기도 부끄러운 죄와 허물과 과거를 가졌다고 하여도 예수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회개하며 나갈 때에 베드로와 같이 바울과 같이 쓰임을 받는 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정말로 바랄 수 없는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고 믿음으로 회개하며 나아 갈 때에 하나님은 은혜로 다시 용서하시고 귀하게 쓰시는 것을 잊지 말고 항상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행함이 있는 성도로 하나님의 기적의 도우심을 항상 받으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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