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F. 케네디 ! 미국 제 35대 대통령.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제는 전설이 되어 버린 人物. 패기와 자신감과 결단력으로 전 세계인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 주었던 위대한 지도자. 영웅 부재 시대에 불굴의 의지와 신념의, 진정한영도자여였던 케네디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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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의 취임 연설
중
『자, 미국 국민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자, 미국 국민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自問해 보십시오』
"And so, my fellow Americans,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케네디의 묘비
케네디의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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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케네디의
묘비
취임 연설문
All this
will not be finished in the first one hundred days.
(여러분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물어 보십시오.)
(이 모든 일은 100일 정도의 짧은 시간으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Nor will it be finished in the first one
thousand days,
(천일 안에도 이룰 수 없습니다. )
nor in the life of this administration,
(이 행정부의 임기 중에는 물론, )
nor even perhaps in our lifetime on this
planet.
(아니 이 지구상에서 우리의 생애 안에도 이뤄지지 않을
것입니다.)
Now the trumpet summons us again…
(그런데 이제 그 나팔 소리가 다시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
as a call to bear the burden of a long twilight struggle,
year in and year out…a struggle against the common enemies of man: tyranny,
poverty, disease, and war itself.
(이것은 언제나 『소망 중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견디며』 끊임없이 계속되는지구전, 즉 독재정치, 빈곤, 질병, 그리고 전쟁 자체라는 인류 공동의 敵에 항거하는 싸움을 이겨낼 짐을
지라는 부름인 것입니다.)
The energy,
(열정과 )
the faith,
(신념과 )
the devotion which we bring to
this endeavor will light our country
(헌신이 우리의 조국, 그리고 조국에 봉사하는 모든 국민들을 밝게 비춰줄 것이며 )
and all who serve it-and the glow from that fire can truly light
the world.
(거기서 나오는 찬란한 불꽃이 진정 온 세상을 밝혀 줄 것입니다. )
And so, my fellow Americans,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그러므로 국민 여러분, 여러분의 나라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My fellow citizens of the world:ask not what America will do for
you,
(세계의 동료 시민 여러분, 미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는가를 묻지 말고 )
but what together we can do for the freedom of man.
(인류의 자유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물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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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추세츠주(州) 브루클린 출생.
하버드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였으며, 학위논문 〈영국은 왜 잠자고 있었나 Why England Slept〉(1940)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해군에 복무하였는데 그가 승선한 어뢰정이 일본 구축함의 공격을 받아 격침되었으나 정장(艇長)으로서
부하를 잘 구출하여 전쟁의 영웅이 되기도 하였다. 1946년 매사추세츠주 제11구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투신하였으며, 1952년 같은
구에서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53년 《타임 헤럴드》의 사진기자 재클린 부피에와 결혼하였으며, 1957년 《용기 있는 사람들
Profiles in Courage》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1958년 상원의원으로 재선되었으며, 1960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 뉴 프런티어(New
Frontier)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미국 국민의 헌신적인 협력을 호소하여 공화당 후보 R.M.닉슨을 누르고
승리하였다. 1961년 미국 역사상 최연소이자 최초의 가톨릭 신자로서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이 되었다. 케네디와 닉슨 간의 텔레비전 토론은
미국의 대통령선거운동에 새로운 장을 열어놓았으며,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웅변과 재기를 무기삼아 국민에게 호소하는 방법을 자주 이용하였으며, 또한
기자회견 등에서도 텔레비전을 유효하게 활용하였다. 그러나 내정면에서는 의회와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하여 두드러진 업적을 이룩하지 못하였다.
한편 외교면에서는 쿠바미사일위기에 즈음하여 핵전쟁의 위험을 무릅쓰고 소련의 총리 N.S.흐루시초프와 대결한 결과,
미국은 쿠바를 침략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대신에 소련은 미사일 ·폭격기 등을 쿠바에서 철수하고, 미국측의 사찰을 인정함으로써 소련과의 극적인
타협을 이루게 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소련과 부분적인 핵실험금지조약을 체결하였고, 미 ·소 간의 해빙무드가 형성되었다. 또한 중남미 여러 나라와
‘진보를 위한 동맹’을 결성하였고, 평화봉사단을 창설하기도 하였다. 베트남 개입에도 신중한 태도를 취하였으며, 중국 본토와의 재수교를 재선 후의
최대 과제로 삼았으나, 1963년 11월 22일 유세지인 텍사스주 댈러스시에서 자동차 퍼레이드 중 암살자의 흉탄에 치명상을 입고 사망하였다.
뉴 프런티어(New
Frontier)
대통령 취임 후에도 내외정책의 기본정신으로 삼았다. 개척자 정신의 상징인 프런티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자는
것으로, 국내문제의 개선과 해외의 후진지역에 대한 민주주의 추진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D.D.아이젠하워 시대의 침체된 정치에 싫증을 느끼던 많은 미국 청년들이 이에 호응하여 세계를 향한 평화부대들이
생겨났지만,국내정책은 국회의 반대로 실현을 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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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너와집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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