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북한>
2006년1월호 (통권 409호) 게재 2006년 한반도 정세전망 (남북관계) 李東馥 [전
국회의원/남북고위급회담 대표/명지대 초빙교수] 1. 개관 지난
7월26일부터 8월7일까지, 그리고 9월13일부터 19일까지 두 단계로 나누어 진행된 제4차 베이징 <6자회담>에서 참가국들은 6개
항목으로 구성된 ‘공동성명’에 합의하여 이를 발표했다. 이 ‘공동성명’이 발표된 뒤 노무현 정권의 ‘자화자찬’은 하늘을 찌르는 것이었다.
<국가안보회의>의 의장으로 6자회담 전략을 주도했던 정동영(鄭東泳) 통일부장관은 ‘공동성명’의 타결을 가리켜 “한국 외교의 승리”이며
“이제 북핵 문제가 해결 길로 유턴했고 한반도 비핵화와 영국평화 구축을 향한 거보가 시작되었다”면서 이것은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의
시발점”이라고 거창하게 추켜세웠다.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장관도 “지금 북핵 문제는 실질적인 해결 국면에 진입했다”고 정동영 장관의 낙관론에
가세했다. 정동영 장관의 ‘대언장담’은 끝이 없었다. 그는 북한이 “①핵실험 보류 → ②핵 이전 금지 →
③핵 추가생산 금지 → ④검증을 통한 핵활동 중지ㆍ폐기 → ⑤핵무기 확산금지조약(NPT)ㆍ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 복귀 등 5단계
이정표를 제시했다”면서 이에 따라 “검증이 수반되는 핵포기에는 3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9.19 ‘공동성명’ 발표
후 거의 매일처럼 새로운 장밋빛 그림을 그려 내놓았다. “향후 9-13년간 대북 에너지 지원 비용으로 6조5천억 내지 11조원이
소요된다”ㆍ“앞으로 적어도 매년 2조-3조원의 통일촉진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ㆍ“앞으로 3년 안에 1천개 정도의 공장이 개성공단에
입주한다”ㆍ“남북연합으로 가기 위해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 검토가 필요하다”ㆍ“한국이 미-북간의 보증기관 역할을 담당한다” 등등이다.
정 장관에 의하면 남북관계 발전의 ‘남은 최대 장애물’은 ‘북한’이 아니라 “우리(남한)의 내부에 존재하는
내부냉전”이었다. 따라서 ‘앞으로 남은 과제’는 “내부통합을 통한 남북통합”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6자회담>의 9월19일자
‘공동성명’이 “북핵 문제의 본질적 해결과 남북관계의 진전을 동시에 추구한 (노무현 정권의) 병행전략”의 성과라면서 “한반도의 작은 평화장전으로
기록될 9.19 ‘공동성명’을 절대로 훼손할 수 없고 이를 이행하고 실천하는 데 정부와 국민이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한 노무현 정권의 ‘처방’은 더욱 확대된 ‘대북 퍼주기’였다. 노 정권은 9.19 ‘공동성명’의
‘대가’로 전력 200만 kw의 대북 직접 공급을 거듭 약속했고 2006년 남북협력기금으로 2005년보다 110.3%가 증액된
2조6,334억원을 책정하여 국회에 제출했다. 금년보다 78.8%가 증액된 1조2,632억원의 남북협력 계정과 150.9%가 증액된
1조3,702억원의 경수로 계정으로 구성된 새해 남북협력기금의 재원에는 국채를 발행해서 조달하는 4,500억원이 포함되어 있다. 한나라당이 이
같이 대폭 증액된 남북협력기금 중 1조3천억원의 삭감을 요구하자 정부ㆍ여당 쪽에서는 “남북협력기금은 평화보장 비용”이라고 펄쩍 뛰면서 오히려
“내년부터 5년간 쌀과 비료 외로 농업과 경공업ㆍ수산ㆍ광업ㆍ과학기술ㆍ전력 등 6개 분야에 걸쳐 모두 5조2,500억원을 북한에 지원한다”는
‘경추위 등 합의사항 이행 관련 연도별 소요액’ 추정으로 대응하고 있다. 2. 장밋빛 그림의 타당성 --
북핵은 해결되는가? 문제는 이 같은 노 정권의 장밋빛 그림이 과연 현실과 부합되는 것인가의 여부다.
2006년은 물론 그 이후의 남북관계가 그에 따라서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분명해 지고 있는 것은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이 노 정권에서 말하는 것처럼 ‘한반도의 작은 평화장전’으로 기능할 가능성은 실제로는 희박해 보인다는 것이다. 9.19
‘공동성명’ 발표 이후의 상황의 흐름은 노 정권의 ‘자화자찬’과는 큰 거리를 보여준다.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은커녕
<6자회담> 계속 진행 전망 자체가 밝지 않은 것이다. 노 정권의 ‘자화자찬’과는 달리 베이징
<6자회담>은 9월19일 문제의 ‘공동성명’을 발표한 4차 회담 마지막 날 회의의 종료 무렵부터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북한이
“<핵비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하기 전에 미국이 먼저 경수로를 제공하라”는
요구를 ‘전제조건’으로 들고 나온 것이다. 이 같은 북한의 행동은 엄밀하게 말하면 9.19 ‘공동성명’의 명백한 위반이다. ‘공동성명’에서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한다는 것과 함께 “조속한 시일 내에 NPT와 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했다
이와 동시에 ‘다른 참가국’들은 “적절한 시기에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한다는 데 “동의”했다. 문면에 따른다면 이 양자 간의
선후관계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선(‘조속한 시일 내’) NPT 및 IAEA 안전조치 복귀ㆍ후(‘적절한 시기’) 경수로 ‘제공 여부
논의’”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이 선후관계를 일방적으로 도치시킬 뿐 아니라 ‘경수로’에 대해서는 ‘논의’를
‘제공’으로 둔갑시키는 일방적인 ‘멋대로 해석’을 들고 나왔다. 9.19 ‘공동성명’ 발표 후 베이징에서는
11월9일 제5차 <6자회담>이 열렸다. 그러나 부산 'APEC 정상회의'(11월18-19일)를 이유로 사흘 만에 ‘정회’로 들어간
이 회담은 속개 여부가 지금 매우 불투명하다. 11월11일 ‘정회’ 시점에서의 설왕설래(說往說來)는 이 회담이 12월중에 제주도에서 열리는
<참가국 수석대표 회동>을 거쳐 빠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 1월 중에 속개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제주도 수석대표
회동>은 이미 물을 건너 간 것 같고 ‘정회’ 중인 제5차 <6자회담>이 과연 당초 거론되었던 대로 내년 1월 중에 속개될
것인지의 여부 자체가 아예 오리무중이다. 북한은 경수로 외로 또 하나의 ‘장애물’을 들고 나왔다. 이번에는
미국 행정부가 지난 9월 “위조 달러를 유통시키고 마약 등의 불법적 국제거래 대금을 세탁”한 것으로 들어난 마카오 소재 중국계 은행 ‘방코 델타
아시아’(BDA)에 대해 취한 금융제재 조치를 시비 거리로 삼아 이의 취소를 사실상 <6자회담> 계속의 또 하나의 ‘전제조건’으로
들고 나섰다. 이에 대해 미국은 문제의 ‘금융제재’와 <6자회담>은 상호 무관하기 때문에 북한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새로운 난관이 조성된 것이다. 그러나 <6자회담>의 진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9.19 ‘공동성명’의 내용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동성명’의 합의사항들은
<6자회담>의 파국을 모면하기 위한 미봉일 뿐이지 북한 핵문제 해결에는 한 발짝도 가까워진 것이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공동성명’은
말로는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재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말은 ‘비핵화’지만 실제로 북한이 뜻하는 것은 여전히 ‘북한의 핵’을 대상으로
하는 ‘비핵화’가 아니라 “미국의 대북 핵공격 위협”을 대상으로 하는 ‘비핵지대화’다. ‘검증’의 ‘방법’과 ‘대상’에 관해서는 여전히
동상이몽이다.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이 무엇을 말하는지도 여전히 분명치 않고 더구나 북한은 ‘고농축 우라늄’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르쇠로 완강하게 시인을 거부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상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해 주면 북한의 그 다음 행동수순은 정해져 있다. <6자회담>에서 북한만을 상대로
하는 ‘핵 포기’ 논의를 거부하고 북한의 핵문제도 미국ㆍ러시아ㆍ영국ㆍ프랑스ㆍ중국ㆍ인도ㆍ파키스탄ㆍ이스라엘 등 다른 ‘핵보유국’들의 핵문제와 함께
다자간의 ‘전략무기 감축협상’의 차원에서 다룰 것을 요구할 작정이다. ‘장애물’은 더 있다. ‘공동성명’에서는 애매하게 표현했지만 북한은 이른바
‘미-북 평화협정’ 체결과 ‘미-북 국교정상화’도 ‘핵포기’의 ‘전제조건’으로 고집할 작정이다. 북한은 이를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폐기”로
아직 표현하고 있지만 그 실제 의미는 “한-미 안보동맹의 해체”를 뜻한다. 결국 북한의 ‘핵 포기’는 부지하세월이 되는 것이다.
3. 노 정권의 계산 -- <6자회담>과 2007년 대선과의
함수관계 이 같은 상황에 대한 미국의 대처에는 모호한 점이 없지 않다. 우선 미국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은
모든 일에 우선하여 이라크 상황에 어떻게든지 종지부를 찍는 데 총력이 경주되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그 동안 헌법 제정에 이어 새 정부 구성을
위한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미국은 모든 희생을 무릅쓰고 이 같은 정치일정을 차질 없이 진행시킴으로써 내년도에는 전면 철군은 몰라도 상당수의
미군을 귀환시킴으로써 국내외에서 부시 행정부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운 입장을 극복하는 데 전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에게 북한 핵문제는
아직 ‘해결’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고 그러한 뜻에서 “시간을 벌기 위해” <6자회담>의 틀을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징후로 볼 때, 미국은 이미 <6자회담>을 무대로 하는 북한
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은 “무망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음에 틀림없어 보인다. 이에 따라 <6자회담>에서의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전에 없이 단호해 지고 있다. 이 같은 미국의 입장은 “미국은 북한의 핵 프로그람을 중단시키기 위해 계속 끝없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지 않을 것”이라는 크리스토퍼 힐 <6자회담> 수석대표의 말이나 북한의 격렬한 반발에도 아랑곳함이 없이 북한을 거듭
‘범죄정권’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알렉산더 버시바우 신임 주한 미국대사의 발언의 행간에서 읽혀지고 있다.
특히 지난 9월부터 강화되고 있는 북한 금융기관 또는 북한과 거래 중인 외국 금융기관에 대한 미 행정부의 제재조치는 그 같은 조치가 주로 해외에
있는 북한 독재자 김정일(金正日)의 비자금 은행 계좌를 노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 목표가 결국 김정일 정권이 아니냐는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해가 2005년에서 2006년으로 넘어가면서 부시 행정부의 희망대로 이라크의 정치적 상황이 안정의 길로 접어들기만 한다면
미국의 대북정책은 북한에 대한 외교ㆍ경제ㆍ군사적 제재의 단계적 에스컬레이션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북핵 폐기의 가장 확실한 방안으로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밀어붙이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것이 아니냐는 추리가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이 같은 미국의
움직임에 대한 노무현 정권의 대응이 문제다. 노 정권의 대응은 “중국과 손을 잡고 미국과 북한 사이를 중재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말이 ‘중재’지 실제로는 그 동안의 행적으로 미루어 볼 때 사실상 “북한의 편에 서서 미국을 설득하겠다”는 것으로 보아야 할 듯 하다.
이미 쟁점화 된 문제들에 관해서는 ‘경수로’의 경우는 “미국의 경수로 제공 ‘약속’과 북한의 NPT와 IAEA 안전조치 복귀 ‘약속’을
교환”하는 절충을, 그리고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나 버시바우 주한 대사 등 부시 행정부 요로들의 자극적 대북 발언에 대해서는 ‘자제’를
요구하는 쪽으로 ‘줄타기’를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노 정권의 ‘줄타기’ 노력이 주효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 정도로 북한이
만족해 할 것인지도 문제이지만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끌려 들어올 공산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정권의 이른바 ‘미-북간 중재 노력’은 지속될 것 같다. 이를 필요로 하는 정치적 계산이 있기 때문이다. 노 정권의 당면한 최대
관심사는 오는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을 또 다시 물리치고 정권을 재창출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끄는 ‘참여정부’라는 이름의
좌파정부를 구성하는 친북ㆍ좌익ㆍ반미 성향의 정치세력은 2007년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에 실패할 경우 그들의 처지가 김대중ㆍ노무현 정권 출현
이전의 ‘정치적 음달’의 신세로 회귀하여 보수회귀의 역풍 속에서 그들 스스로가 ‘과거사’로 전락할 가능성을 두려워하고 있다. 따라서 2007년
대선은 이들에게 절대절명의 결전장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앞길에는 적색(赤色) 신호등이 켜져
있다. 그 동안 정치, 외교, 안보, 사회, 문화 등 내치ㆍ외교ㆍ안보의 모든 국정 영역에서 이룩한 업적은 없고 있다면 국정 전반을 난마처럼
헝클어 놓은 것뿐인 노무현 정권으로서는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제시할 이렇다 할 ‘업적’이 없는 정권이 되어
있다. 들고 나가서 ‘심판’을 받을 ‘업적’이 없는 것이다. 그 결과 여론조사 결과는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지지도는 20% 이하에서 바닥을
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노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에게 불가피한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40대 이상의 중ㆍ장ㆍ노년층의 표밭을
공략하는 것은 체념하고 39세 미만의 청ㆍ소년들의 표로 승부하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청ㆍ소년 유권자들의
‘표심’을 농락하기 위해 노 대통령과 그의 지지세력의 손에 들려진 ‘요술방망이’가 곧 ‘북한의 김정일’이다.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의 ‘협력’을
얻어 조작된 남북간 ‘민족공조’의 허상(虛像)을 가지고 초ㆍ중ㆍ고등학교에서 ‘전교조’ 교사들의 영향으로 ‘반미’ㆍ‘반일’과 ‘반보수’ 정서에
젖어 있는 10대ㆍ20대ㆍ30대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하여 열린우리당 지지로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의 조바심은 2007년까지
어떻게 해서든지 남북관계를 파국 없이 끌고 가겠다는 것이고 이를 위해 북한측의 협력이 절대로 필요하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남북관계가 일시적으로
경색되는 경우, 또는 북핵 문제 해결이 지체되는 경우에는 일체 그 책임을 ‘미국’과 ‘일본’ 그리고 국내 ‘보수세력’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청ㆍ소년 유권자들의 ‘반미’ㆍ‘반일’ㆍ‘반보수’ 정서를 더욱 자극하겠다는 계산이다. 4. 전망
2007년의 대선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2006년의 남북관계는 남한에서 전개될 대선 정국의 흐름과 밀접한
함수관계를 형성하면서 전개될 것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 같은 상황은 북한의 김정일에게 전례 없는 ‘황금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 동안
김정일이 이끄는 북한의 ‘생존 외교’는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통미봉남(通美封南)’과 ‘통남봉미(通南封美)’의 두 카드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핵’은 버리지 않은 채 이를 ‘공갈 카드’로 활용하는 ‘벼랑 끝 외교’(brinkmanship diplomacy)로 ‘반대급부’를 극대화시키는
재미를 만끽해 왔다. 이제 2006년, 그리고 적어도 그 상반기에는, 북한의 선택은 ‘통남봉미’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봉미’로
<6자회담>의 진전을 억제하고 그 책임은 중국 및 남한과 협력하여 미국에게 전가시키면서 ‘통남’으로 북의 정치적ㆍ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이미 새 해 대북 경제원조 재원으로 2조6,334억원의 남북협력기금을
정부제출 예산안에 계상해 놓고 있다. 물론 2006년도 대북 지원 규모가 여기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 포함하여
민간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대북 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으로부터는 이에 더하여 추가적 요구가 제기되어 있다. 작년 10월에 있었던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에서 북한은 남측에 대해 31개 품목의 신발 6000만 켤레, 7개 품목의 양복 2000만
벌(3만톤), 3개 품목의 비누 2억개(2만톤)를 만들 수 있는 원자재 지원을 요구했다. 북한 주민(2300만명) 전체가 입고 신을 수 있는
양으로 2천억원 이상의 연간 지원액이 추정되는 분량이다. 쌀과 비료와 마찬가지로 옷과 신발, 비누도 한번 주기 시작하면 보나마나 해마다
보내주어야 하는 악순환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 대가로 북한의 지하자원 채굴권을 제시했지만 채굴 및 수송 설비를 남측이 떠맡아야 하기
때문에 채산성이 없다. 북한의 요구는 사실상 그냥 달라는 것이다. 사실은 노무현 정권은 보다 “통이 큰”
대북 경제지원 패키지로 북한의 환심을 살 생각이었다. 정동영 장관은 “2020년까지 남북경제공동체 형성”을 목표로 제시하면서 정부 안에
“종합적ㆍ포괄적 대북 경협계획 수립을 위한 태스크 포스”를 정부 안에 이미 구성ㆍ발족시켜 놓았다. 그러나, 이 같은 노무현 정권의 의욕적인 대북
‘러브 콜’에 제동이 걸렸다. 북한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북한이 베트남처럼 가는 것”이라는 정 장관의 발언을 문제 삼아 시비를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북한은 “남한이 원하는 내용과 방식”이 아니라 “북한 스스로가 원하는 내용과 방법”으로 남으로부터의 경협을 묶어 두겠다는 속셈을
분명히 한 것이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북한의 요구는 경제지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은 이미
제16차 <남북장관급 회담> 때부터 “남쪽에서 실시되는 모든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중지”ㆍ“상대방에 대한 모든 비난 중지”와 아울러
“북측 지역을 방문하는 남측 인사들에 대한 남한 정부의 ‘방문지 제한’ 해제”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특히 방북 남측 인사들에게
김일성의 유해가 위치해 있는 소위 ‘금수산 의사당’ 참배를 강요할 생각을 노골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2007년 대선과 관련하여 북한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과 그 지지세력들이 2006년 중에 북한의 이 같은 정치적ㆍ경제적 요구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주목의
대상이다. 그러나 2006년의 남북관계는 <6자회담>의 부침(浮沈)에 의하여 크게 좌우될 것이
틀림없다. ‘봉미’의 대상이 된 미국의 부시 행정부의 대북 자세는 최근 눈에 띄게 경직일로를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아직 그렇게 될 것인지를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지만, 다행히 이라크의 정정(政情)이 안정 쪽으로 돌아서서 미국이 이라크로부터 발을 뽑을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하게 될 경우
미국은 더 이상 <6자회담>의 ‘포로’로 스스로를 방치하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최근 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과 유엔총회에서의 <북한인권 결의안> 채택, 그리고 워싱턴과 서울에서 성공적으로 개최된 <북한인권 국제대회>의 여세를
몰아 이제는 “북한의 정권교체” 쪽으로 공세의 예봉을 돌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은 새로운 ‘선택’의 시련에
직면하게 된다. 미국이 노무현 정권의 대북 ‘유화정책’에 제동을 걸고 나설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김정일의 도움”이 절대화되는 2007년 대선 전략의 ‘포로’가 된 노무현 정권과 그 지지세력은 그 같은 미국의 움직임에 저항하고 그 결과
한-미 동맹관계에 새로운 파국이 초래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ㆍ미ㆍ일 3국간의 전통적인 북핵문제 조정기구인 ‘대북정책조정그룹’(TCOG)이
한국과 미ㆍ일간의 견해차이로 ‘이미 붕괴’되었으며 이 때문에 ‘6자회담의 공동화’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는 일본 <상케이>
신문의 최근 보도는 그러한 맥락에서 음미해 보아야 할 대목이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