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시그널 뮤직이나, 화면조정 시간, 백화점 매장, CF, 몇몇
영화 삽입곡 등에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대부분이 폴모리아의
음악이다.
프랑스의 샹송을 중심으로 전세에게 유명한 음악은 클래식이나 팝송을 불문하고
자기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맞게 편곡을 하기도 하고 작곡도 하면서
세계무대를 한때 사로잡은 팝 오케스트라의 거장이다.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는 가끔 한번씩 한국에서도 공연, 아름다운 선율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1998년 11월29일 일본공연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하는데,
폴모리아의 소개와 함께 고별 연주 사요나라 콘서트.
Paul
Mauriat는 쇼팽을 무척 좋아 하였다고 한다. 쇼팽의 연습곡(ETUDE)을 폴모리아풍으로 편곡하여 연주를 하고 있다. 연습곡은 전주곡과
더불어 쇼팽의 독창적 새로운 형식의 피아노 곡이다. 피아노 연주가의 기교를 연마시킴과 동시에 순수한 음악연구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연습곡은 피아노 지도곡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연주곡이다. 정교하고 치밀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며, 정서를 전달하면서
음악을 아름답게 표현한다.
THE TRAMP는 우리말로
방랑자 또는 떠돌이라는 뜻이다. 가운을 입은 떠돌이가 무대에 나와 가운안에 숨겨논 악기를 연주하며 관객을 웃낀다.
1960년경
프랑스는 자국인보다는 미국이나 이탈리아 음악가들을 더 대접해 주는 분위기였다. 폴 모리아는 1963년경 Del Roma라는 가명으로 다른 유명한
프랑스 음악가들인 Franck Pourcel(프랑크 푸르셀)과 Laymond LeFevre(레이몽 르페브르)와 함께 공동으로
"Chariot(샤리오)"라는 샹송을 발표한다.
이 곡은 Petula Clark이라는 가수에 의해 유럽 전역에 히트를 기록했고,
다음해 Norman Gimbel과 Arthur Altman에 의해 영어로 개사되어 "I will follow him"이라는 곡으로
재탄생되어 Little Peggy March에 의해 미국 챠트 1위를 기록하며 폴
모리아의 최초의 히트곡이 된다.
이 곡은 바로 우피 골드버그 주연의 `Sister Act'의 삽입되어 다시 대히트를 했던 바로 그
곡이다.
1965년 드디어 폴 모리아는 Philips 레이블에 전속 계약을 하며 "Le Grand
Orchestre de Paul Mauriat"라는 이름으로 40세가 되서야 완전한 솔로 아티스트로 독립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솔로 아티스트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다른 샹송 가수들의 작곡/편곡자로 활약하는데 이 시기엔 Mireille Mathieu의 뮤직 디렉터가
되어 "Mon credo", "Seuls au monde"등 그녀의 히트곡을 작곡해 준다.
졸업 후 클래식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폴모리아는 오히려 팝음악과 재즈에 의 관심갖게 되고 이에
사로잡히게 된다. 파리음악원을 졸업한 그는 17세의 젊은 나이에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몇 년 동안 유럽 지역을 공연하며 다녔다.
그후 폴모리아는 얼마 전 타계한 Frank Pourcel(프랑크 푸르셀) 오케스트라의 피아니스트
등을 거치며 계속 활동을 해오다가 한 음반 제작자의 제의로 샹송의 거장 Charles Aznavour의 앨범에 편곡과 지휘자로 참여하면서부터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다.
한편 Paul Mauriat는 1960년대 들어와 자신만의 독특하고 현대적인 비트감을 지니면서도
멜로디를 선명하게 해 주는 편곡스타일로 자신의 앨범들을 발표한다. 그의 작곡품인 "Rendez-vous au Lavandou", "La
longue marche" 등의 곡이 불란서 전국에서 히트를 하게 되어 작곡가로도 활약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