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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광수의 세계

鶴山 徐 仁 2005. 12. 21. 13:40

 

 

마광수 나는아직도 야한여자가 좋다
 


녹색의자로 초대 합니다
아직 문손잡이가 허리 위에 닿던 시절에 그의 이름을 처음 보았다. 책 표지에 붙어있던 예쁘장한 이름 사라 그 사라의 연인 마광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른들의 대화와 뉴스, 신문의 귀퉁이에서 그의 이름을 다시 들을 수 있었다.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탄식과 분노들 그때의 세상은 대체 왜 그리 문제 될 것이 많았던 것일까..
어쩔 수 없이 인터뷰어에게 ‘마광수’라는 이름 석자는 어떤 한 개인의 아이덴티티와는 별개로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아이콘으로 느껴진다. 한 개인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아닌 시대의 아픔과 폭력을 그리는 이름. 그가 겪은 비극은 우리 시대의 손실이다. 시대와의 불화로 인해 한 전도유망한 교수의 십여 년이 간단히 정지 버튼 하나로 화이트 노이즈로 채워졌다. 만천하에 우리 사는 곳의 잔혹함과 무차별성, 그리고 무지함이 그 이름 석자를 통해 드러나 버린 것이다.
마광수 교수는 현재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광마 잡담’,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까지 세 권의 신간을 출간한 상태고 이목일씨와 함께 합동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오랜만에 모습을 나타낸 그는 제법 수척해져 있었지만 여전히 야한 삶을 주창한다.

햇살이 밝게 비치는 연구실에서 진행된 이번 인터뷰는 매우 잔잔하고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이 기록은 평소처럼 바쁘게 키보드 위에서 널뛰던 손가락의 움직임을 막는다. 과연 그는 왜 그리도 극진히 ‘야한’ 길만을 택해야 했을까.

한국 근대문학 최초의 반유교 반봉건주의
여기서, 마광수 교수가 말하는 야하다, 야해지라는 말의 의미를 한 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앞서 말한 것처럼 인터뷰어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마광수 교수에 대해 박아둔 고정적인 이미지는 그것이 호의적이건 비호의적이건 편견에 다름 아니다. 그것이 본인에게 득이 되건 실이 되건 현실과 동떨어진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소설이란 것은 어디까지나 대리배설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화자와 작자를 쉽게 동일시하고, 캐릭터를 단순화 해버린다. ‘이렇게나 생생한 묘사의 야한 소설을 쓴 사람이니, 분명히 이 모든 것을 경험했을 것’, ‘그런 것들을 전부 경험한 사람이라면 볼 것도 없다’ 등의 아주 단순하고 위험한 추론과정들이 현실로 승격한 것이 92년의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일 것이다. 실제로 필화사건 당시, 법정에서는 소설의 내용을 거론하며 교수와 제자간의 불륜을 추궁했다고도 한다.“국내에서 페티시즘이니 피어싱, 염색, 스와핑이니 하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그런 것들을 묘사하는 글을 쓴 건 거의 최초였죠. 요즘에야 나오는 이야기를 90년대 초에 썼으니. 전 한 번도 미국에 가 본 적도 없어요. 전부 원서를 읽고 공부해서 쓴 거지.”
그는 어린 시절엔 체육을 잘 못해서 책 읽는 게 일이었다는 문학소년이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에 영감을 준 것도 유년시절 인상 깊게 읽었던 ‘금병매'나 ‘요재지이'같은 책이었다. 그는 83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윤동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바 있으며, 이전에도 ‘시학', ‘문학과 성',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등의 성(姓 )문학 관련 이론서를 다수 출간하기도 했다.
이런 뻔한 권위를 빌려오지 않더라도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그의 소설들이 단순히 작자가 겪은 방탕한 삶을 체화해서 단숨에 써버린 책들이 아니란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즐거운 사라'는 경고조치를 당하기 이전에 8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던 책이다. 이후 일본에서 출간됐을 당시에 한 평론가는 ‘한국 근대문학 최초의 반유교 반봉건주의 작품이다'라고 평가를 하기도 했다. 동의를 하건 하지 않건, 한 사람이 반평생에 걸쳐 연구하고 고민해온 장르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하물며 거기에 법적인 잣대를 들이댄다는 건 대단히 황당한 시도이고 말이다.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설은 재미이고 현실 도피죠. 유희.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소설들은 대부분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주려고 노력하죠. 그 이유가 교훈주의, 엄숙주의, 양반주의 이런 것들 때문이에요. 약하게 쓰면 당한다는 강박적 의식이랄까. 나도 논문은 어렵게 써요. 상징시학이니 카타르시스니. 예전에 강준만 교수가 말하길, 논문은 그렇게 어렵게 쓰면서 소설은 왜 그렇게 쉽게 써서 욕을 먹느냐. 전술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한 적도 있는데… 소설은 소설이지 논문이 아니잖아요.”
그렇다. 그는 왜 그리도 극진히 ‘야한'길을 택하는 것일까. 우울증을 앓기도 하고 동료교수, 문인들에게서 배신감을 느끼며 탄식해도 그는 여전히 펜을 잡고 야한 글들을 써 나간다. 신작인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는 그 의문에 대한 얼마간의 대답을 제공한다. 그에게 ‘야함' 이란 것은 억압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사유를 갈망하는 자연스러운 의지에 다름 아니다. ‘마광수 교수 살리기'에서 한 교수는 그를 두고 ‘도저한 자유주의자'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야하다는 것은 자유로움을 말하는 거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는데, 먼저 자유로워 져야 진리를 발견할 수 있죠. 진리를 먼저 정해놓으면 도그마가 되고 폭력이 되기 쉽죠. 마녀재판으로 이어지고. 진리란 건 절대 고정되어서는 안 되는 거죠. 유연해야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자유를 주면 방종해 진다고 하면서 억압을 하지만 억눌린 욕망들이 터져 나오는 모습들을 보세요. 소위 권위 있는 사람들이 낮에는 근엄한 모습을 하고 밤이 되면 밤거리에서 가장 추하고 악랄하게 행동하는 걸 많이 볼 수 있어요. 나는 자유를 줘야 자유 안에서 자율이 생긴다고 믿어요.” 그는 우리가 상상하는 레테르 붙인 싸구려 야함에 매몰된 인생을 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행여 그를 매도하거나 그에게 실망하지는 말자. 그는 ‘도저한 자유주의자'다운 ‘야한' 인생을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으므로.‘내일 모레면 내 나이도 환갑'이라며 허허 웃는 그는 늘어가는 흰머리를 안타까이 여길지는 몰라도 여전히 야한 여자와 야한 인생을 사랑하는 마광수 교수다. 두 달쯤 전, 그는 홈페이지를 열었다. 현재 그의 홈페이지 ‘광마클럽'에는 1만여 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다. 최근 팬 카페도 생겼다고 하는데, 그는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 용기를 많이 얻었을 수 있었다고 이야기 한다. “예전엔 ‘사라이즘' 이런 말이 있었는데 요즘은 ‘마광쉬즘' 이란 단어들을 쓰더군요. 놀랐어요. 어떤 데에 가보니까 나에 대한 자료들을 꼼꼼히 모아놓은 곳도 있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렇게 학생들한테, 인터넷에서 용기를 많이 얻었죠.”
그는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문학강의를 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전폭적인 지지와 인기를 얻고 있는 강의의 과제는 에로틱 환타지 소설 써내기. 야하게 써낼수록 점수를 잘 받는다고 한다.“야하게 쓰라고, 결국 솔직해 지라는 얘기죠. 처음에는 모두 머뭇거리면서 어떻게 써야 될지를 몰라서 당황하는데 곧잘 써내는 것들 보면 내가 깜짝 놀랄 정도로 기발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와요. ‘교수님만 보시는 거지요?’ 하고 확인하는 학생들도 있고.”
마광수 교수의 강의는 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인기가 있었다. 이 부분은 상당히 묘한 구석이 있는 이야기이다. 마광수 교수에 대한 사회의 애증의 한 단면이라고 할까. 동기와 제자들이 나이가 들어 대학교수가 된 다음 결국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는 부분을 상기해보면 더더욱 묘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걸 나잇값이라고 표현한 바 있어요. 젊은이들이 불안한 구석이 있죠. 모두들 젊었을 땐 다 야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30만 되어도 벌써부터 보수주의가 되고 40만 먹으면 권위주의자가 되어 버리죠. 그래서 나는 ‘제발 나잇값 하지 말아라’ 라고 말해요. 나 역시 앞으로도 나잇값을 안 할 생각이에요.” 마광수 교수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만큼이나 잘못된 편견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야하다는 말에 대한 또 다른 곡해. 그는 60~70년대 그리고 암울했던 십여 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놀랄 만큼의 진보를 이룬 셈이지만, 공감대가 넓어졌을지언정 사람들의 생각은 더더욱 보수화 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보였다.
야해져라,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나 때는 사라가 염색을 하고 피어싱을 하고 돌아다닌 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요즘 그런 걸로 잡혀가진 않잖아요. 진짜 파격적으로 하고 다니는 학생들도 있고. 하지만 겉모습은 그렇게 옛날보다 과감해졌을망정 생각은 여전히, 어쩌면 훨씬 더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거죠. 막상 입을 열면 대단히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발언들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아요. 그래서 하는 말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야해지라는 거예요. 겉으로만 야하지 말고. 생각까지. 속속들이 야해지라고.”
나이가 들면 변하게 마련이고, 사회에 나가면 변하게 마련이다. 그게 어디 비단 개인만의 탓이랴.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임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마광수 교수는 이 황금 같은 4년을 칙칙하게 낭비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이 땅의 젊은이들아 모두 야해지라.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니.

 

 

 

 

김유리 학생리포터 kyrmars@paran.com ·사진 황승희 Studio Zip

Fr. 대학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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