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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의 김대중
연구(17) 미공개 자료를 중심으로 쓰는 김대중 연구⑤-6; 6·15선언 제2항은 무허가
통일방안에 의한 「국가 정체성의 변조」 기도?; 趙 甲 濟 月刊朝鮮 편집위원
「상징적 통일의 제1보」란 함정 金大中식 통일방안의 한
특징은 이처럼 「상징적 통일의 제1보」라는 말을 써 가면서 통일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통일단계 진입의 공식화를 서둘고 있다는 점이다.
赤化통일을 향해 가는 북한 통일방안과 자유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한국의 통일방안이 갖는 타협이 불가능한 본질을
애써 무시하고, 지엽적이고 형식적인 공통점만 접점으로 설정하여 통일의 제1보로 나아가자는 발상은 침몰하는 배에 서둘러 몸을 묶는 것과 같은,
북한 정권의 對南전략에 결정적으로 말려드는 길이기도 하다. 상징적 통일의 개시를 선언하면 통일을 명분으로
하여 북한 정권은 남한의 국가보안법 철폐와 주한미군의 철수를 그 전제조건으로 내세울 것이다. 상징적 통일의 제1보란 개념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통일에 대해 아주 전술적이고 선동적인 접근을 하려는 자세를 드러낸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북한에 말려들든지 그들을 이롭게 할 것이다.
이런 상징적 통일의 제1보가 헌법 개정을 통하지 않고 남북 당국의 결단 만으로써도 가능하다는 金大中식 발상은
민주주의의 원칙을 무시하고 국가의 정체성을 輕視(경시)한 놀라운 독단이자 헌법정신에 위반된다. 金大中
대통령의 이런 생각을 잘 아는 사람들은 金正日이 서울을 방문한 자리에서 두 사람이 통일 진입 선언 같은 것을 하여 한국 사회를 대혼란에 빠뜨리지
않을까 우려하였던 것이다. 金大中씨가 말해 온 상징적 통일의 제1보 진입이란 민족사의 正統 정부이자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인 대한민국을 민족사의 이단이자 헌법상의 반란집단인 북한 정권과 同格으로 格下시킨 다음,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와 가장 크게
실패한 집단을 서둘러 공동운명체로 묶어버리는 결과를 빚는다. 동반자살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이런 國體 변경을 양측 정권 담당자의 결단으로 해치울
수 있다는 발상이야말로 李長春 대사가 말한 대로 「국가 正體性 變造」에 해당할 것이다. 2001년
1월22일자 노동신문은 「북남공동선언은 우리의 낮은 단계의 련방제안과 남측의 련합제안의 공통성을 살리고 장차 련방제 통일에로 나가는 길을
명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02년 1월10일자 노동신문도 6·15 남북공동선언은 「련방제 방식의
통일에로 나가는 길을 명시함으로써 조국통일을 위한 공동의 설계도를 가지고 확신성 있게 통일에로 나갈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였다」고 주장했다.
거대한 통일전선의 검은 그림자 지난
5월24일자 조선중앙통신은 6·15 공동선언의 제2항을 문제삼은 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에 대해 「북과 남이 분열된 이래 처음으로 공동의 통일방도를
확정한 것인데도 리회창은 겨레의 념원과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여 공공연히 이를 부정해 나섬으로써 민족의 원쑤, 통일의 원쑤로서의 본색을 여지 없이
드러냈다」고 공격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丁世鉉 통일부 장관은 지난 5월30일 「6·15 선언 2항은
통일방안에 대한 합의가 아니다」며 「남북의 통일방안이 서로 현재의 체제와 제도를 유지한다는 공통성이 있으므로 화해 협력과 평화정착을 통해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상호체제가 다른 상황에서 연방제는 실현이 불가능하다」며
「북측은 기존 고려연방제에 낮은 단계라는 과도개념을 설정함으로써 우리의 연합제 개념을 수용하고 이에 접근해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짜 노동신문은 논평을 통해서 기존의 주장을 바꿔 이렇게 말했다.
<이것(편집자 注: 6·15선언 제2항)은 북과 남이 통일방안에 대해 완전히 합의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의 통일방안의 공통점을 인식한 데 기초하여 그것을 적극 살려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리회창이 북과 남의 통일방안에
공통점이 있을 수 없다고 전면부정하면서 무턱대고 그를 폐지해야 한다고 떠들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초보의 초보도 모르는 無知의 표현이 아니고
무엇인가> 원래 북한 정권의 발언을 가지고 진실성을 기준으로 하여 비판한다는 것은 시간낭비이다.
공산주의자들은 계급혁명에 득이 되면 무엇이든 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짓말, 상호모순, 선동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6·15 선언 2항에 대해
그들 스스로가 「조국통일을 위한 공동의 설계도」, 「통일에의 초석」, 「분열 이후 최초의 통일방도 확정」이라고 해놓고는 金大中 정부가 공격을
당하니 「통일방안에 대해 합의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고 있다. 이런 앞뒤 안 맞는 거짓말은 한국에서
곤경에 처한 세력을 도와주고 反金正日 세력을 공격하기 위한 자료로 만든 것이다. 한국內 친북세력은 북한 정권 나팔수의 이런 자기부정적 말바꾸기를
그대로 받아들여 李會昌 후보를 냉전적이라고 공격할 것이다. 6·15 선언 제2항에 의해 남북간에 거대한
통일전선의 검은 그림자가 형성되었으며 남북간에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현실적인 힘을 쓰고 있다는 증거는 많다. 이번 大選은 한국이 연방제 족쇄를
스스로 풀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 공산정권下에서 살고 있는
겁니까』 연방제를 고리로 한 金正日과 金大中 세력의 협력관계가 反헌법·反대한민국의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기게 하는 사례가 많다. 金大中 정권과 그 지지세력이 민족의 원수·反국가단체인 북한 정권보다도 한국內 애국
主流 세력을 자신들의 적으로 삼고 있는 것 같은 彼我 구분의 혼란이 발생한 것이다. ※남북 문제에서 金大中
정권과 친북세력 및 金正日 정권이 같은 편에 서고, 한국사회의 주류층과 애국세력 및 부시 행정부가 반대편에 서는 경우가 많아졌다. 노동당
규약에서 한국의 赤化를 명기해 놓은 金正日 정권이 우리 군대가 자신들을 主敵으로 규정한 것을 취소하라고 억지를 펴자 金大中 정권과 친북세력들이
북한 편을 들어 결국은 主敵이라고 적힌 「국방백서」의 발간을 보류하게 한 예가 대표적이다. 張忠植 적십자사
총재가 月刊朝鮮과 인터뷰하면서 한 말을 꼬투리로 잡아 북한정권이 그의 퇴진을 요구하자 남한內의 친북세력이 이에 호응했고 결국 그렇게 되었다.
한국內 요직의 인사권을 金正日이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스개는 더 이상 우스개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뒤엎으려고 했던 남로당 세력, 친북세력, 간첩, 그리고 대한민국의 법규정을 무시했던 세력이 金大中 정권 및 친북세력의 방치와 비호·응원 속에서
행동의 자유를 얻거나 민주투사로 둔갑하고 있다. 金日成으로부터 돈을 받아 간첩죄로 약10년형을 살고 나온
사람이 국회의원에 출마하는가 하면 국가기관이 盧泰愚 정부 시절 경찰관 일곱 명을 불에 타 죽게 하였던 방화치사범들을 민주화 운동가라고 인정해
주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金正日 추종 세력에 대한 비판과 수사는 눈치를 봐야 하는 분위기가
언론·공안기관에 형성되었다.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하여, 한국의 주류 진보세력을 이끌었던 李承晩·朴正熙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직함을 생략하고
민족반역자이자 민족사의 守舊세력인 金日成에겐 꼭 주석, 金正日에겐 꼭 위원장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애국
인사들은 대한민국을 지키는 활동을 할 때는 꼭 휴대전화를 써 가면서, 공안기관의 감시를 의식해가면서 독립운동 하듯이 조심하고 있다.
巨惡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대한민국에서 확산됨으로써 도덕의 기준이 허물어져 사회윤리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金大中 정권의 부패는 상당 부분 여기에서 기인한다. 북한 정권을 악의 집단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한국인이
갖춰야 할 도덕의 기본인데, 국민들의 가장 큰 교사이기도 한 대통령이 나서서 金正日을 효성이 있는 사람·노벨 평화상을 함께 받았어야 했을
사람으로 칭찬하고 있으니 정권과 측근과 친인척의 善惡 판별능력 마비와 부패는 예정된 일이었다. ※金大中
정권의 가장 큰 부패는 金正日과 그 추종세력을 존중하면서 탈북자, 납북자, 在北 국군포로를 무시·냉대함으로써 국가의 윤리를 포기하고 국민들의
자존심을 구긴 일일 것이다. 대한민국이 어떤 존재인가,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 대한민국이
과연 국민 편인가, 대한민국은 명예와 자존심을 아는 존재인가 등등의 懷疑(회의)를 낳게 만든 지난 5년의 國政 운영은 金大中 대통령의
對北觀·국가관을 반영한 것이다. 금강산 관광 사업이 赤字가 나 중단될 위기에 처하자 정부가 나서서
국민세금으로 금강산 관광자들에게 공돈을 줌으로써 그 돈이 金正日의 비자금 호주머니로 들어가게 만든 것만큼 無道한 국가적 부패는 없을 것이다.
※局地的으로는 6·25 때 좌익한테 학살당했던 애국인사들 가족이 학살자 가족들의 눈치를 보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동의大 사태 때 학생들이 던진 화염병으로 죽은 경찰관의 어머니가 한 말 - 『그렇다면 내 아들의 屍身을 국립묘지에서 파가야 하는
겁니까』, 또 다른 유족이 한 말 - 『우리가 지금 공산정권下에서 살고 있습니까』란 말은 金大中 대통령에게 던지는 질문이 된다.
※金大中 집권 이후 한국 사회에서 강화된 친북세력은 체제불만층을 규합하여 가며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金正日을 善이라고 생각한다는 유권자들이 대구·경북 유권자들보다 많은 약40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세력은 역사와 나라 발전의 걸림돌이다. 前近代的인 유산들, 즉 무능·나태·거짓·선동·모함의 전문가들인
金正日 추종·굴종세력은 한국을 赤化시킬 능력은 없겠지만 한국의 先進化와 한국 주도의 통일을 저지할 능력은 충분할 것이다.
赤化는 불가능해도 先進化 저지는 가능 이런 맥락에서
金大中 대통령은 민족사의 엄중한 평가에 직면할 것이다. 역사는 金大中 대통령이 金正日 정권을 강화시켜줌으로써 북한 동포들의 고통을 장기화시켰으며
한국 사회를 분열시킴으로써 발전의 동력을 약화시켰다는 판단을 할 가능성이 있다. 햇볕정책은 金正日 정권을
변화시키는 데는 실패했고 한국을 변화시키는 데는 성공한 것이다. 그런 변화를 가능케 한 金大中 이념의 뿌리는 좌익 행동대원 시절, 연방제 제안과
韓民統 조직의 좌경모험 시절까지 거슬러 오르고 金日成-金正日의 2代에 걸친 공들임은 6·15 선언 제2항으로 결실된 것이다. 월드컵과 테헤란로의
현란함 뒤에서 번져가고 있는 前近代化·親北·부패 세력의 毒素를 다음 정권과 애국세력이 제거할 수 있을 것인가에 조국의 命運이 달려
있다.● <18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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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의 김대중
연구(18) 미공개 자료를 중심으로 쓰는 김대중 연구⑥-1; 6·15선언 제2항은 무허가
통일방안에 의한 「국가 정체성의 변조」 기도?; 趙 甲 濟 月刊朝鮮 편집위원
근본적 도전행위 金大中 대통령과 그의 정권이 지난
5년간에 걸쳐 일관되게 추진해 온 對北·對內 정책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대한민국을 대한민국이게 만드는 조건과 가치와 원칙에 대한 근본적
도전행위가 그것이다. 대한민국은 反共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을 딛고 선 나라이다. 이 이념은 헌법으로 구체화되어
있다. 우리 헌법은 「북한정권을 국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 「통일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북한 체제를 평화적으로 흡수하는 것이다」고 우리에게
강제하고 있다. 이런 명령에 따라 국군은 북한정권과 그 군대를 主敵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북한정권의 연방제
통일방안에 찬동하는 행위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해 왔다. 金大中 정부는 남북 頂上회담을 전후하여 냉전구조
해체란 깃발을 내걸었다. 세계적인 냉전은 공산권의 붕괴로 종식되었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냉전도 金正日 정권의 붕괴로써만 해체될 수 있다. 金大中
세력(정부·여당·외곽조직)은 그러나 냉전구조 해체를 외치면서 북한정권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포기했다. 오히려 금강산 관광 따위의 金正日 정권을
강화시키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였다. 「북한정권=主敵論」 등 한국의 안보구조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핵심요소를 없애려는 이상한 정책도 계속해
왔다. 냉전구조 해체를 명분으로 삼아 대한민국을 해체하려고 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이제 그의 임기를 수개월 남겨놓은 시점이다. 金大中 세력이 추진한 對北·對內 정책을 총괄하여 그 利敵性,
違憲性 여부를 검토할 때이다. 먼저 북한군에겐 이롭고 우리 軍에겐 불리했던(때로는
치명적인) 열두 가지 事例를 소개한다. 1. 일방적 지뢰 철거:북한정권은 京義線 연결 공사에 착수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敵의 主攻路上 남쪽의 지뢰를 먼저 철거했다. 2. 영해 침범에 굴욕적 대응:북한 선박이
우리 영해를 침범해도 우리 해군 함정은 경고사격도 없이 『나가달라』고 사정했고 이런 軍의 대응에 대해 金대통령은 『적절한 것이었다』고 칭찬했다.
같은 시기 북한군은 실수로 북방한계선을 넘은 우리 어선에 조준사격을 가했다. 3. 남침 함정에도 먼저 쏘면
안 된다:金 대통령은 우리 해군에 대해 북방한계선을 지키되 먼저 쏘면 안 된다고 구체적으로 지시함으로써 현장 지휘관들의 신축적인 대응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런 지시는 적에게 선제공격을 당하지 않고도 越線남침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그들의 모험을 결과적으로 고무하였다.
그 결과는 2002년 6월29일 불법 월선한 북한 함정에게 선제 기습을 제도적으로 허용하여 우리 해군의 고속정이 침몰하는 사태로 나타났다.
4. 월남참전이 죄인가:국군과 국민이 자랑해 온 월남참전에 대해 베트남 국가주석에게 金대통령이 사과했다.
대다수 국민과 군인들은 월남참전이 駐韓 미군의 감축을 막아 우리 안보를 튼튼히 하고 여러 가지 경제적 이득을 올린 민족사상 최초의 해외진출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5. 전쟁범죄자를 主敵이라 불러선 안 된다?:金대통령 측근은 국군이 북한군을 主敵이라
公稱(공칭)하지 못하도록 여러 각도의 압력을 군 지휘부에 넣었다. 6. 공산폭동 진압 국군 卑下:金大中
정권이 主導하여 통과시킨 제주 4·3 사건 특별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공산폭동을 진압한 우리 국군의 역할을 격하시키는 분위기가 조장되고 있다.
7. 간첩 北送:전향을 거부한 남파 간첩과 빨치산 출신자들을 北送시켜 주면서 在北 국군 포로의 송환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8. 러시아 편들고 미국에 반대:러시아의 ABM(탄도미사일 방어망 건설 금지 조약)
강화 정책에 동조함으로써 군사동맹국 미국이 추진하는 미사일 방어망(MD:Missile Defense) 정책에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부시가 악마적 정권인 金正日을 향해서 「악의 축」이라고 부르자 여당이 들고일어나 동맹국 정부를 비난함으로써 사실상 韓美의 共敵을 두둔하였다.
9. 韓美 연합훈련 축소:북한정권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명분下에서 韓美 연합훈련을 축소시켰다. 같은 기간
북한정권은 사상 최대 규모의 훈련을 실시했고 병력의 前進 배치를 강화했음에도 金大中 정부는 이를 국민들에게 제때에 알리지 않았다.
10. 主敵에게 국민세금으로 군자금 제공:금강산 관광사업으로 북한 측에 들어가는 현금이 무기 구입 등
군사력의 강화에 轉用되고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國庫 보조까지 해가면서 사실상의 對北 군사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11. 금강산 댐 건설에 침묵:金大中 정부 및 그 지지 세력은 우리 軍과 국민들의 생활 및 안전에 매우
중요한, 금강산 댐 건설에 의한 북한강 상류 차단 및 부실 공사로 인한 붕괴 위험에 대해서 북한 측에 공식적인 항의나 요구를 하지 않고 있다.
금강산 댐 붕괴 위험에 대해서도 국민들에게 제때에 알리지 않았다. 12. 속은 것인가, 속인 것인가:金大中
대통령은 6·15 남북 頂上회담 직후 여러 차례 이 회담의 2大 업적을 자랑했다. 金正日과 전쟁을 안 하기로 합의했다는 것, 그리고 金正日이
駐韓미군은 통일 이후까지 주둔해도 좋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이었다. 그후 金正日은 西海를 기습 도발했으며 駐韓미군 철수를 계속 주장하고 있다. 그는
작년 푸틴과 회담을 마치고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서도 駐韓미군 철수를 요구했다. 林東源 당시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서 『金正日이 통일 이후까지
주둔해도 좋다고 한 駐韓미군은 지금과 같은 성격이 아니라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자세를 버린 일종의 평화유지군이다』는 취지의 증언을 하여 金大中
대통령의 발언을 사실상의 과장보고로 만들었다. 이로써 金大中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과장되고 왜곡된 보고를 한 것이든지, 金正日에게 속은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북한군의 기습을 용이하게 이상 열두
가지 사례를 분석해 보면 세 가지의 의도성 또는 방향성이 드러난다. 첫째, 북한군의 對南 기습력을 강화시키는
것들이다. 京義線 복원공사를 하면서 남쪽의 지뢰들을 먼저 철거한 것, 불법적으로 영해나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主敵의 선박에 대해서 대통령이 나서서
먼저 쏘지 말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내려 현장 지휘관의 재량권을 제약한 것, 금강산 赤字 관광의 보전을 명분으로 하여 우리 세금을 主敵의 對南
군사력 강화에 바치고 있는 것, 서로 전쟁을 안 하기로 했다든지 金正日이 駐韓미군의 계속 주둔에 동의했다는 믿을 수 없는 말을 대통령이 확산시켜
對敵 경계심을 약화시킨 사례들은 모두 북한군의 기습을 용이하게 하는 반면 우리의 방어를 약화시킨 것들이다.
둘째, 국군의 존립근거와 士氣를 약화시켰다. 국군이 자랑으로 삼고 있는 월남전 파병에 대해서 대통령이 나서서
당시의 敵國 원수에게 사과하고, 국군의 제주도 공산 폭동 진압 행위를 문제삼고, 6·25 기습남침을 벌였던 민족반역 집단이자 戰犯 집단인
북한정권과 軍에 대해서 최대 피해자인 국군이 主敵이라고 부르지 못하도록 하는 압력을 행사하고 在北 국군포로들을 외면한 것들이 그런 사례들이다.
셋째, 駐韓미군에 대한 대통령의 이상한 발언, 부시의 「악의 축」 발언에 대해 여당이 미국을 거세게 비판하고
나옴으로써 사실상 金正日을 편든 점, 러시아를 편들어 동맹국의 가장 중요한 국방 전략을 결과적으로 반대한 사실들은 韓美 군사 동맹관계를
약화시켰다. 金大中 지지 세력의 일부가 反美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서 크나 큰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위의 열두 가지 사례는 金大中 대통령의 어떤 입장을 반영하는 것인가. 이는 애국인가, 반역인가, 아니면 남북 간의 중립인가.
「민족사의 정통성과 삶의 양식을 놓고 싸우는 타협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 南北 무장 대치상황의
본질이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대결에서 중립은 없다. 더구나 남쪽의 대통령이 이 대치상황에서 중립에 서려고
한다면 이는 안정환이 한국-이탈리아戰에서 중립에 서는 것과 같다. 공직자가 대한민국과 북한정권의 대결에서, 즉 민족사의 정통과 이단의 대결에서
중립을 선택한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利敵 또는 親이단 행위로 연결될 수 있다. 평화를 명분으로 하여 남북 간에 중립지대를 만든 것이 외국인들에게
좋게 보여 金대통령으로 하여금 노벨 평화상을 받게 했을지는 모른다. 그 평화상 덕분에 악당의 힘이 더욱 세어지고 善人들의 고통과 불안이 깊어지며
연장되고 있다면 한국인들과는 상관없는 賞이다. 金대통령이 그 賞을 받기 위해, 또 받은 이후 수상자로서의
체면에 연연하여 金正日과 상대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안전과 이익을 약화시킨 점이 없는가는 앞으로 연구 대상이다.
金大中 세력(정권·여당·외곽조직)은 대한민국의 핵심 가치관(민족사적 정통성·헌법 등 핵심
가치)에 대한 도전·비판·공격을 일관되게 계속했다. 같은 기간 이 세력은 金正日 정권에 대하여 본질적인 비판을 전혀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金正日의 입장을 도와주거나 해명해 주고 강화해 주는 정책도 폈다. 국민의 가장 큰 교사인 대통령의 이런
언동은 국민들의 공민윤리를 혼란에 빠뜨렸다. 金大中 대통령 때문에 무엇이 惡이고 善인지를 가르쳐야 하는, 자녀 및 후세 교육이 어려운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대통령과 그 지지세력이 대한민국에 공격적이고 金正日에게 굴종적(또는 우호적)이었다는 이
對照는 黃長燁씨 같은 전문가들 눈에 「金大中과 金正日의 결탁관계」로 비쳐지기도 했다. 지난 5년은 대한민국에 대한 金大中의 도전과 金大中에 대한
대한민국의 응전 과정이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아홉 가지 관련 사례를 소개한다. 13. 보안법의 근본적 개정
추진:金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의 근본적 개정을 추진했다. 그 핵심은 우리 헌법이 강제하고 있는 부분, 즉 대한민국은 북한을 反국가단체로 봐야 한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金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이 있으면 南北교류가 불가능하다는 선동적 논리를 구사하면서 북한정권을 反국가단체로 보는 현재의
보안법은 문제가 있다고 언급했다. 보안법은 정상적인 南北교류를 저해하지 않는다. 다만 非정상적인 南北교류, 즉 간첩·공작·반역적 南北교류를
저지하려는 법이다. 우리가 북한정권을 反국가단체가 아닌 국가로 인정하면 한반도에 두 개 주권국가를 허용함으로써 분단을 영구화하는 것이 되며
대한민국을 민족사적 정통국가 반열에서 제외하는 것이 된다. 14. 태극기 대신 한반도旗:시드니 올림픽에서
태극기가 퇴각하고 정체불명의 한반도旗가 등장했다.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통정부의 國旗를 헌법상 반란집단의 叛旗와 동격으로 취급하여 같이 물린
것이다. 15. 방화치사범을 민주화운동가로 인정:대통령 및 총리 직속의 위원회는 盧泰愚·金泳三 민주 정부 때
발생한 불법시위, 불법조직, 좌익행동, 방화치사상 등 범죄의 주모자들을 민주화운동가로 인정했다. 16. 불법
장려:金大中 대통령은 非정부단체의 불법 낙선운동을 권장하였다. 17. 납북어부 외면:1970년에 납북된
어부가 28년 만에 탈출하여 재외 공관을 찾아가 구원을 호소하자 金大中 정권下의 외교관은 『당신 세금 냈어요. 왜 국가를 괴롭히려고 그래요』라고
문전박대했다. 이 어부는 민간인에 의해 구출되어 귀환했다. 18. 金正日에게 극존칭:국정원은 공식 발표문에서
「金正日 위원장께서 서울을 방문하시며」라는 극존칭을 썼다. 자기 나라 국가원수한테도 쓰지 않은 존칭이다.
19. 巨惡을 미화:金大中 대통령은 反國家단체의 수괴이자 전쟁범죄자이며 테러지령자인 金正日에 대해 「효성이
있고 견식이 있는 지도자」로서 「노벨 평화상을 함께 받지 못해 아쉽다」는 취지의 발언을 함으로써 한반도의 巨惡을 미화, 한국인의 공중도덕을
어지럽혔다. 20. 적화통일방안 상당 부분 수용:金大中 대통령은 6·15 선언 제2항에서 金正日의 對南 赤化
전략인 연방제(낮은 단계 연방제)에 대해서 「남측 통일방안(연합제)과 공통성이 있으므로 그 방향으로 통일을 논의해 가기로 하였다」고 하여
결과적으로 북한정권 측의 對南 적화 공작을 상당 부분 수용하였다. 金大中 대통령이 말한 연합제는 대한민국의 공식 통일방안의 연합제가 아니라
국민과 국회로부터 허가를 받지 않은 자신의 私的인 통일방안의 연합제이므로 이 행위는 무허가 공무집행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21. 6·25 남침은 조상 책임:金大中 대통령은 6·15 회담 이후에는 6·25 남침전쟁의 책임이
金日成에게 있다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남침 책임을 조상과 日帝, 그리고 미국과 소련에게 전가하는 論法을 구사하였다.
22. 「유감」을 「사과」라고 왜곡:2002년 6월29일 西海 기습에 대해 북한 측 차관보급 관리가
「유감」이라 표현한 것을 金대통령은 「사과」라고 해석하여 받아들였다. 그 며칠 뒤 북한 당국은 西海도발이 「한국의 강경파가 미국의 對北 적대
정책에 따라 일으킨 계획적 도발」이란 요지의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유감」이 「사과」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上記 열 가지 사례의 공통점은 金大中 대통령이 대한민국은 민족사를 대표하는 정통국가이며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국가라는 점에 대해서 확신이 없거나 약함을 보여준다. 우리 헌법은 북한정권을 절대로 국가로 인정해선 안 되고 反國家단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강제하고 있다. 金대통령은 또 金正日이 본질적으로 테러리스트, 전쟁범죄자, 민족반역자란 도덕적이고 사실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그를
미화하는 데 앞장섬으로써 한국인들에게 善과 惡을 구별하지 못하게 하는 교육적 역효과를 가져왔다. <19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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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의 김대중
연구(19) 미공개 자료를 중심으로 쓰는 김대중 연구⑥-2; 6·15선언 제2항은 무허가
통일방안에 의한 「국가 정체성의 변조」 기도?; 趙 甲 濟 月刊朝鮮 편집위원
金大中 대통령·정권·세력은 金正日에게 굴종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 국민들의 자존심을 훼손하였다. 여섯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23. 북한정권의 억지를 받아들여 張忠植
총재 해임:북한정권이 張忠植 韓赤 총재의 月刊朝鮮 인터뷰 기사 내용을 트집잡아 그의 해임을 요구하자 金大中 정부는 이 억지를 수용하는 모습으로
張忠植 총재를 경질했다. 24. 黃長燁 訪美 불허:金正日이 싫어하는 黃長燁씨의 訪美를 불법적으로 저지하고
그의 활동을 제약하였다. 25. 납치범 北送:일본인 납치범인 거물간첩 辛光洙를 北送시켜 주면서 일본인
피랍자의 生死를 확인도, 송환도 요구하지 않았다. 26. 北美 호칭:金大中 대통령은 北美라고 호칭하여 反國家
단체를 동맹국보다도 우선시키는 논법을 사용하고 있다. 27. 北의 하급관리와 동격이 된 한국 측 장관:우리의
장관급 인사가 북한의 하급 관리와 동등한 자격으로 회담하는 관례가 지속되고 있다. 28. 좌익 발호
방치:金大中 세력(정권·여당·외곽단체 및 지지세력)은 金正日과 그를 추종하는 남한內 좌익세력에 대해 헌법의 명령대로 적대적 태도를 취하여야 할
의무를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방관적(또는 우호적) 태도를 취하여 그들의 발호를 허용하였다. 金大中
정권下의 공권력은 좌익수사를 소극적으로 하는 한편 한민족과 함께 애환을 같이 해오면서 체제를 지키고 강화해 왔던 朝鮮日報·東亞日報 두 民族紙를
탄압했다. 두 民族紙에 대한 세무조사는 金正日정권과 국내 좌파의 적극적인 응원下에서 이뤄졌다. 이런 행동은
국민들 눈에 金大中 정부를 비겁한 모습으로 비치게 하였다. 한편, 金正日을 비판·견제해 온 黃長燁, 朝鮮日報·東亞日報, 야당, 공안기관 출신들에
대한 金大中 정권 및 그 원호세력의 집중견제와 공격은 많은 국민들 사이에 「비겁한 자의 오만, 또는 金正日 편들어 대한민국 중심 세력
때리기」라는 의혹을 강하게 심었다. 자기 나라와 국민에 대해선 가혹하고 主敵에 대해선 굴욕적이었던 대통령 때문에 국민들은 정말 자존심이 상했다.
金大中 대통령·정권·세력은 金正日의 대변자 또는 심부름꾼역을 自任(자임)한 듯한 행동을
보였다. 다섯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29. 西海도발 축소:2002년 6월29일 西海도발 사태가 나자 金大中
정부는 金正日의 책임을 의도적으로 축소시키는 해석을 내리고 미국에 대해서 예정된 對北 특사 파견의 이행을 촉구하였다.
30.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로비:아웅산 테러, 대한항공 테러의 직접 지령자인 金正日이 테러에 대해
인정·사과·책임자 처벌을 하나도 하지 않고 있는 마당에 金大中 정부가 나서서 미국에 대해 북한정권을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부탁하였다고 한다. 31. 金正日은 변하고 있다?:金大中 대통령·정권·세력은 계기가 있을 때마다 金正日은
변하고 있다, 金正日은 개혁개방할 것이라는 예언을 되풀이했다. 32. 부시 비판하여 金正日 변호:金正日이
약속을 어기고 한국 정부와의 대화에 나서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金正日에게 문책하려 하지 않고 부시 행정부의 對北 강경 정책 때문이란 억지 논리를
만들어 확산시켰다. 33. 전쟁하자는 거냐?:金大中 세력은 西海도발 같은 무력 기습에 대해 국내 여론이
강력한 응징을 주장하면 『그렇다면 전쟁하자는 이야기냐』는 식의 선동적 논리로써 북한정권의 입장과 자신들의 굴종을 옹호하였다. 응징에는 전쟁
이외에 局地的 응징과 경제제재 등 수많은 평화적 방법이 있다는 것을 무시한 막말들이 정권 측 인사들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민족사의 정통국가를 대표하는 金大中 대통령이 민족반역 집단의 수괴에게 보여준 이런 굴욕적인
모습은 수많은 한국인에게 참을 수 없는 모멸감과 분노를 가져다 주었다. 대통령은 국가의 권위와 국민들의 자존심을 지켜내야 할 책무를 지고 있다.
그런 책무를 던져버리고 굴욕과 굴종을 자원한 모습에서 국민들의 金正日에 대한 분노는 金大中 대통령에 대한 경멸로 바뀌었고 이는 민주당에 대한
거의 무조건적 거부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민들의 국가적 자존심은 主敵에 대한 정의감 및 적대감과 함께 중요한 안보 자산이다.
金大中 대통령·정권·세력들은 對北 지원이나 對北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사실을
과장·왜곡하거나 나중에 거짓말로 밝혀지는 행동을 거듭하고 있다. 여섯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34.
북한特需론:金대통령은 2000년 초에 중동 特需를 능가하는 북한 特需가 올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오일 머니가 쌓이고 있던 1970년대의 중동과
수백만 명이 굶어죽은 북한을 동등하게 비교한 과장이었다. 35. 개성 공단:『개성 공단에서 1년 내에
생산품이 나온다』 36. 철의 실크로드:京義線 연결에 의한 철의 실크로드 구상은 북한 측이 첫 삽도 뜨지
않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 37. 陸路관광 실종:작년 정부는 현대아산이 북한정권 측과 맺은 합의서상의 금강산
陸路관광 허용을 主근거로 하여 적자로 허덕이던 현대 측에 국가 예산 수백억원을 대주는 조치를 취했다. 육로관광을 하면 赤字를 면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면서. 1년이 지난 지금 陸路관광의 성사는커녕 남북 간에는 그 과제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금강산 관광사업이 부도직전으로
몰리자 정부는 다시 관광객들에게 공돈을 대주는 방식의 철면피한(또는 利敵행위) 지원을 해주고 있다. 38.
林東源의 對국민 보고:지난 4월3~5일 金大中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金正日을 만나고 온 林東源 외교안보 특보는 동부와 서부에서 남북 간에 철로
및 도로를 빨리 연결하기로 했다고 발표하였으나, 7월 말 현재 실질적인 진척이 없다. 39. 정상회담
발표문도 믿을 수 없다면?:金大中 대통령은 모리 일본 수상과 회담한 이후 대변인을 통해서 「일본이 북한과 修交하기 전에 對北 지원을 하기로
했다」는 식으로 발표했으나 그런 합의는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위와 같은 허위·과장·왜곡 사태가 발생한
원인은 金正日이 워낙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데다 金大中 대통령과 측근들이 金正日의 말을 믿었다가 속는가 하면 자신들의 희망사항까지 보태어 과장을
거듭한 때문일 것이다. 사기꾼의 대변자는 자동적으로 사기꾼이 된다. 金大中 정부는 국가와
국민, 그리고 헌법이 그들에게 강제한 의무를 태만히 하고 있다. 반드시 해야 할 그 무엇을 안 하고 있는 이유를 들어보는 것도 金大中의 진실을
아는 한 방법이다. 생각나는 대로 여섯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40. 고무찬양 방치:金正日 정권을 고무
찬양하는 표현물이 범람하고 있음에도 수사를 하지 않아 국가보안법의 상당 부분을 死文化시켰다. 41. 主敵에게
뇌물 방치:訪北 인사와 단체들이 뇌물을 주고 북한에 들어가 金日成 동상과 유해 앞에서 절하는 행동을 방치하고 있다. 우리의 금품을 받아달라면서
主敵에게 뇌물을 바치는 정신병적인 짓이 화해 협력이란 말 뒤에서 벌어지고 있다. 42. 간첩수사 저조:간첩
검거 실적이 저조하다. 공안기관이 간첩수사도 집권층의 눈치를 봐가면서 해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43.
남침 기념행사 축소:6·25 남침 50주년 행사를 축소시켰다. 44. 좌익인사 訪北 허용:좌익인사들의 평양
방문을 막지 않아 작년의 8·15 방북단 소동 같은 일이 벌어졌다. 45. 북한인권문제 침묵:국내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예민한 관심을 보이는 金大中 대통령은 탈북자, 在北 국군포로 및 납북자 송환, 북한 내 강제수용소 등 북한 인권문제를 제대로
제기한 적이 없다. 대한민국에 대한 존중심과 애정의 결여
金大中 정부는 지난 5년간 金正日이 싫어할 일은 하지 않고 그가 좋아할 일만 찾아서 해왔다면 과연 과장인가.
黃長燁, 朝鮮日報·東亞日報, 국군 등 金正日이 싫어하는 남한內 애국세력에 대해서 金大中 세력이 보여온 공격적·적대적 자세와 親北 좌파세력에 대한
관용적 자세는 무엇을 뜻하는가. 이상 열거한 마흔다섯 가지 사례는 일관된 공통점을 갖고 있다. 金正日정권에겐
이롭고, 대한민국에는 불리한 결과를 내고야 말 言動과 정책과 조치란 점이다. 金大中 대통령의 上記 정책에서는
대한민국에 대한 존중, 애정,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上記 정책에선 金正日 정권에 대한 분노와
정의감 및 북한주민에 대한 동정심이 보이지 않는다. 유태인의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잔인한
자를 동정하는 자는 동정받아야 할 자에게 잔인하다」 南北무장·이념 대치상황에서 대한민국 사람이 조국에 대한
확신과 존중의 마음이 결여되고 그런 마음이 金正日 정권에 대한 적대감·분노·정의감의 不在와 결합될 때는 親北 또는 중립의 좌표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중립지대가 존재할 수 없는 南北대결 구도에서 한국인이 중립적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金日成
父子 정권에 유리한 행동을 초래할 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는 말이다. 「무덤의 평화」,
「노예의 평화」 이런 모든 수상한 현상의 진원지는 金大中 대통령이다.
金大中씨의 생애를 연구하면 上記 마흔다섯 가지 정책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일관성이 발견된다.
金大中씨의 일관성, 즉 대한민국과 북한주민들에 대해서는 냉담하고 북한정권에 대해서는 우호·관용적인 그의 對北觀과 국가관은 그가 20代 초반에
좌익 행동대원이었다는 점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젊었을 때 가졌던 이념적 세계관은 나중에 그 사람이 설사 전향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세계관에
찌꺼기로 남아 있게 된다. 金大中씨의 경우, 張勉 정부 시절을 빼고는 줄곧 歷代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감시당하고 납치당했으며 구속당하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 내용을 살펴보건대 억울한 면도 있으나 좌경모험에서 온 처벌인 경우도 있다. 이런
金大中씨에 대해서 역대 북한정권은 우호적인 응원을 보냈고, 포섭 대상으로 삼아 공작한 증거도 있다.
金大中씨로서는 대한민국 역대 정부에 대해 反感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이런 감정은 대한민국이란
국가에 대한 反感 내지 냉담함으로 轉移(전이)되었을 개연성이 있다. 좌익 경험에 뿌리를 둔 것 같은
金大中씨의 일관된 對北觀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권력에 의지하여 上記 마흔다섯 가지 항목이 제시하는 바와 같은 정책과 현상들로 실천되었다.
金大中씨는 1972~1973년 북한정권의 下手 기관인 한민통 결성과 관련해 1980년에는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 그가 대통령이 된 후 보여준 정책들은 그런 유죄 선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념을 완전히 바꾸지는 않았음을 示唆(시사)한다.
위 마흔다섯 가지 항목의 성격은 大韓民國의 정통성·정체성·헌법정신 등 우리 체제의 핵심 가치관에 대한
본질적인 도전이다. 우리 헌법이 권력자에 의한 이런 도전까지도 허용할 수 있는 것인지 국민들은 그 헌법체계에 물어볼 의무가 있다.
간첩이나 반역자가 자유민주주의자로 위장해 대통령이 되고 그 직권을 악용해 對北 武力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한민국에서는 모든 국민이 다음과 같은 의무와 권리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현직 정치인들이 적과 내통하는지를 감시하는 일. 西海 사태 이후 미국 대통령부와 한국 청와대의 반응을
비교한 한 사람이 말했다. 『누가 어느 나라 대통령이고?』 金正日을 가장
걱정해 주는 사람은 金大中 대통령이고, 대한민국을 가장 걱정해 주는 사람은 부시 대통령이었다는 얘기였다.
金大中 대통령이 한참 나이 어린 金正日을 대하는 태도는 극진하다 못해 가련해 보이기도 한다. 살인마에게
가족들을 여러 명 잃은 집안의 家長이 자기 집안의 원수인 살인마에게 金大中 대통령처럼 굴욕적으로 대했다고 한다면 그 마을 사람들은 이 家長을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 그가 받은 노벨 평화상이 대한민국과 국민들의 굴욕을 딛고 얻은 賞이라면 무슨 가치가
있을까. 正義 없는 평화란 「무덤의 평화」, 「노예의 평화」가 아니던가. 그가 말하는 평화는 金正日의 장기집권을 보장하는 평화일 뿐 대한민국과
북한동포 7000만에게는 非평화가 아니던가. <20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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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의 김대중
연구(20) 미공개 자료를 중심으로 쓰는 김대중 연구⑥-3; 6·15선언 제2항은 무허가
통일방안에 의한 「국가 정체성의 변조」 기도?; 趙 甲 濟 月刊朝鮮 편집위원
민족·통일·평화·화해의 이름 아래서
金大中 대통령과 그 세력들은 對北 정책에서 金正日에게 유리하고 대한민국에 불리한 조치들을
취하면서 평화·화해·협력·통일·민족이란 명분을 들고나와 그 당위성을 설명하곤 했다. 그들이 내세운 평화를
자세히 따져보면 한반도의 영구 평화가 아니라 金正日 한 사람을 위한 평화이고, 나머지 7000만 민족에겐 불안인 경우가 많았다.
불법 남침한 북한 함정을 향해서는 경고사격을 해야 한다. 불응하면 조준사격을 해야 우리의 평화가 지켜지는데,
金大中 세력은 명백한 월선행위에도 선제사격을 못 하도록 했기 때문에 우리 국군이 희생됨으로써 金正日의 평화를 지켜주려다가 우리 국군이 평화를
잃어버리는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金大中 세력이 말하는 협력도 마찬가지였다. 금강산 관광사업이 적자를 보면
경제원리에 따라 처리해야 하는데, 화해와 협력이란 명분을 내세워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관광객들에게 보조해 주고 이 돈은 북한정권에 들어가니
이것은 국고를 털어 主敵의 군자금을 대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런 협력은 쌍방향이 아닌 일방적 퍼주기, 즉 갖다바치기와 다름이 없다. 일종의
뇌물인 것이다. 主敵이 그 뇌물로써 우리를 위협하는 포탄을 산다면 이는 자살적 행위이다. 金大中 세력이
말하는 화해는 굴종인 경우가 많았다. 화해란 가해자가 사과할 때 피해자가 이를 받아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金正日은 자신이 직접 지령한 대한항공
폭파사건에 대해서 한 번도 인정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金大中 정부는 그럼에도 미국 정부에 대해서 북한정권을 테러지원 국가 명단에서 제외시켜
주도록 로비를 했다고 한다. 金正日의 눈에는 이런 일을 알아서 해주는 金大中 정부가 기특하게 보였을
것이지만, 미국 입장에선 한심하다 못해 「자존심도 모르는 정부」라고 속으로는 경멸했을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아무리 작은 나라라도 원칙과
자존심을 견지할 때 큰 나라가 우습게 대하지 못하는 법이다. 金大中 세력이 내세워 온 통일이란 것도 속을
들여다 보면 영구 분단에 불과하다. 북한정권과 대화하면서 흡수통일을 하겠다고 공언할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안 하겠다는 말을 해서는 헌법정신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이는 자유통일의 의지를 공개적으로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金大中 정부는 북한주민이 봉기할 때 우리는 국군을 보내
金正日 정권을 지켜줄 생각인가. 金大中 개인의 통일방안은 1993년까지는 최종적인 통일조국의 정치이념을
백지로 남겨놓은 애매한 것이었다. 그 이후 정치적 필요에 따라 자유민주주의 방식으로 통일되어야 한다고 공언하기 시작했지만 이런 노선 변경은
전술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남북한의 다른 체제를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연방이란 「이불」을 덮어씌우자는 말장난이다.
이는 對南 적화통일을 추진하기 위한 속임수이다. 연방제 통일방안을 字句(자구) 그대로 해석하면 이념 분단을
계속하자는 것이고, 의도를 해석하면 적화통일을 위한 속임수이다. 따라서 金大中 통일방안과 金正日의 통일방안에
공통점이 있다는 말은 對南 적화통일에 합의한 것인지, 분단고착에 합의한 것인지, 서로를 속이기로 합의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대한민국의
공식 통일방안(盧泰愚 정부가 만든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자유통일 방안이므로 金正日의 통일방안과 공통점이 없지만 金大中 통일방안과 金正日
통일방안은 공통점이 있다!? 金大中 세력이 통일을 이야기할 때는 통일을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핵심 가치관도
양보 내지 희생할 수 있다는 의미로 쓰인 경우가 있었다. 시드니 올림픽 때 태극기를 치워버리고 한반도旗를 앞세운 것은 어떤 경우에도 내릴 수
없는 국가 상징물을 위선적 민족통일론을 위해 희생시킨 사례에 해당한다. 金大中 세력이 말하는 「민족」이란
말도 마찬가지이다. 민족을 위해(그것도 민족반역자를 위해) 국가의 원칙을 양보하자는 의미이거나, 金正日의 反인류적, 反민족적 테러 행위도 동족이
한 짓이니 덮어두고 넘어가자는 식으로 쓰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민족론은 나치의 아리안족 우월주의와 같은 인종차별과 다름 없다. 金大中 세력은
동족에게 온갖 악행을 가한 민족반역 세력까지도 민족의 범주 안에 넣어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행동하는 욕심 여기서 金大中 대통령의 독특한 語法을 알
필요가 있다. 1. 그는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스스로를 칭했지만 비자금 모집, 친인척의 부패 등 기존 정치판의
부패관습을 추종 확대함으로써 행동하는 욕심이 되어버렸다. 2. 그는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再출마의
준비에 들어갔다. 3. 그는 북방한계선을 지키되 먼저 쏘지는 말라고 지시하여 사실상 지킬 수 없도록 했다.
4. 그는 「국민의 정부」라고 칭하면서 지역 편중 인사로 「地緣 정부」를 만들고 말았다.
5. 그는 햇볕정책의 제1원칙으로 안보철저를 내세웠으나 흡수통일 반대를 또 다른 원칙으로 제시함으로써 안보를
약화시켰다. 6. 金大中 세력은 냉전구조 해체를 주장했으나 실제로 벌여나간 일들을 보면 대한민국 해체,
북한의 냉전구조 존속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긴다. 7. 그는 집권하면 정치보복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으나 집권한 뒤 보복 수사가 여러 건 있었다.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 쪽에서 낙선한 사람을 표적으로 하여 집중적으로 수사를 진행시킨
것은 한국정치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8. 그는 생산적 복지를 내세우면서 분배위주의 소비적 복지정책을
폈다. 9. 그는 자기 편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통일방안을 갖고 가서 金正日과 합의해 놓았다고 자랑하고,
다음날 야당 당수에겐 盧泰愚의 통일방안으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10. 그는 두 아들에 대한 엄정 수사를
지시해 놓았는데, 청와대 비서는 법무장관에게 홍업씨의 구속 수사를 못 하도록 부탁을 했다고 한다. 11.
그는 金鍾泌 총재와 내각제 개헌을 하겠다고 약속해 놓고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강화에 힘썼다. 12. 그는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은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13. 그렇다면 그는 우회전 깜빡이를 켜면서
좌회전하는 사람인가. 정직하지 못한 대통령과 사기꾼의 관계
金大中 대통령의 언행을 분석해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애국심의 결여, 善惡구분 능력, 즉 도덕성과
정의감의 결여, 정직성의 결여, 동정심의 결여, 양심의 가책 결여가 그것이다. 과장, 선동, 虛言, 위선, 변명의 능력은 잘 발달되어 있는 것
같다. 좌익형 인간이란 존재가 있다. 공산주의는 인간이 가진 정신적 가치를 낮추어 본다. 유물사관을 신봉하는
그들은 인간의 정신마저도 물질세계에 종속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정신적인 면을 무시하는 사람은 인간, 그 자체를 경멸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미꾸라지의 정신적인 면을 무시하기 때문에 추어탕을 먹을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공산주의 이론의 기둥 가운데 하나인 계급투쟁은 인간사회를 적대관계로 설정했다. 자본가나 지주를 敵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이들을 타도, 학살, 고문하는 것을 「혁명」이나 「해방」이란 말로 미화·찬양한다. 인간의 증오심을 자극, 확대시키는
기술자들에게서 정의감이나 동정심 그리고 인권의식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들은 권력을 잡는 데 유리할 때만 인권을 외친다.
공산주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계급을 국가보다 중시한다. 좌익은 본질적으로 反국가적이다. 계급 간의 갈등을
증폭시켜서 국가의 통합성과 정통성을 깨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하겠다는 자들이지만 계급투쟁이 어려운 조건에서는 민족을 들고 나와 국가를 파괴하려
한다. 이들은 원초적으로 애국심을 미워한다. 공산주의자들의 도덕관은 간단하다. 그들에게 유리한 것,
계급혁명에 도움이 되는 그 어떤 것도 善이다. 유물론, 계급투쟁, 증오심, 顚倒된 도덕관의 종합은 양심의
마비로 나타난다. 양심이 빠진 인간은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것이다. 한국 내 친북좌익들의 행태를 분석해 보면 정상적인 인간으로선 할 수 없는
행동을 태연히 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金大中 대통령의 행태와 좌익형 인간의 일반적 행태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서는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일부 권력자와 정치인들의 행태가 좌익형 인간의 행태와 닮은 점도 있기 때문에 그의
행동 중 어느 것이 어느 쪽으로부터 온 영향인지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속단은 금물이다.
다만 한 가지 정직성의 결여에 대해선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한국사회가 선진화되어야 한다는 말은
합리화되어야 한다는 말이고, 합리는 정직을 딛고서만 가능하다. 한 사회의 정직성의 합계가 그 사회의 선진度일 것이다. 정직성이 결여된 대통령은
사회 발전의 장애물이란 이야기이다. 金大中 대통령한테 누구나 할 수 있는 평가, 사실들이 너무나 명백하여
고소 위험도, 반론의 여지도 없는 지적은 『귀하는 정직하지 못한 인간이다』는 것이다. 정직하지 못한 대통령이 사기꾼보다 더한 金正日을 상대했으니
오늘날 南北관계의 일대 혼선은 당연한 일이다. 도전과 응전
역사는 1998~2003년에 걸친 金大中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金大中의 도전과 대한민국의 응전
과정이 아닐까. 대다수 한국인들과 다른 역사관, 국가관, 對北觀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지난
5년간 한국사회가 反대한민국 세력의 발호에 의하여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에 빠져들게 된 원인이 되었다. 金大中
대통령은 한국의 현대사를 부정적으로 보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한 확신이 약했으며, 金正日 정권에 대한 분노와 정의감의 발로를 보여주지
않았다. 한국인으로서는 매우 예외적인 이런 현상은 광복 직후 그가 좌익 행동대원이었다는 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법을 지키면서 건전한 시민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원칙에 합의할 필요가 있다.
金正日 정권은 민족사의 異端세력이고 헌법상 반란집단이며, 도덕적으로는 惡이고 戰犯이란 사실에 同意하지 않으면 국민의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金大中 대통령은 이 점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다수 국민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생각을
행동으로, 정책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도전자가 되었던 것이다. 예외적 한국인이 평민으로
살아가기도 힘든 세상인데 그가 국군통수권자이기도 한 「제왕적 대통령」 자리에 올라 공권력의 뒷받침을 받으면서 평소의 그런 소신에 입각한
對北·외교·언론정책을 추진해 갔으니 한국사회가 요동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국가든 개인이든 惡을 惡으로
보지 않으려는 자세는 자신의 정체성에 문제를 야기한다. 부시 행정부가 金正日 정권을 「악의 축」이라고 정확하게 규정하자 金大中 정권은 화들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비겁자는 용기 있는 사람이 나타날 때 반기는 것이 아니라 당황하는 법이다. 그 勇者에 의해서 자신의 비겁성이 만천하에
알려질 위기에 직면하기 때문에. 金大中은 金正日에게 졌을지 모르지만…
大韓民國은 反共 자유민주주의의 주춧돌을 딛고 선 나라이다. 옛날의 反共은
反蘇·反中共·反金日成·反南勞黨이었고, 지금의 反共은 反金正日과 親북한동포이다. 金大中 대통령이 金正日을
惡으로 보지 않은 당연한 결과는 북한동포들의 고통에 대한 외면이었다. 金正日에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북한동포의 고통을 동정하지 않는다. 반대로
金正日을 증오하는 사람은 반드시 북한동포를 동정하게 되어 있다. 金大中 대통령은 轉向을 거부하고 金正日에게
충성을 맹세한 북한간첩과 빨치산을 북송시켜 주면서 대한민국을 잊지 못하고 있는 在北 국군포로와 납북어부를 구출해 오려는 어떤 실질적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탈북자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중국內 우리 외교공관에 들어올 때만 마지못해 받아주었다. 심지어
납북 어부가 탈출하여 외교공관을 찾아왔을 때도 외교관은 문전박대를 했다. 이 외교관은 그렇게 해도 처벌받지 않을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공무원은
대통령의 언동을 기준으로 삼아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지식인은 관념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지만 건전한
생활인들은 市場, 직업 등 생동하는 현실 속에서 호흡하므로 오랫동안 위선과 선동에 빠져 있지는 않는다. 이런 생활인들이 역사 무대의 前面에
주인공으로 등장할 때가 있다. 총선, 大選, 지방선거, 월드컵 거리응원 때. 2000년 4·13 총선 직전에
발표된 「南北 頂上회담 개최」는 다수 유권자들의 경계심을 자극하여 한나라당을 제1당으로 만들게 함으로써 역효과를 낳았다. 그 뒤의 再보선이나
지방선거 때마다 한국사회의 主流세력은 金大中 세력의 도전에 대하여 표로써 응전해 왔고 이것은 서서히 金대통령의 지도력과 추진력을 약화시켰다.
南北 대결구도의 본질은 「민족사의 정통성과 삶의 양식을 놓고 싸우는 타협이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다.
이 대결의 당사자는 「金大中 對 金正日」이 아니고 「대한민국 주류세력 對 金正日」이었다. 이 대결에서 金大中은 金正日에 졌을지 모르지만 金大中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주류세력이 각성하여 金正日에 반대하고 金大中을 비판·견제하고 나섰으므로 「金大中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승리하고 있는
중이다. <21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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