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 값이 민심인 시대다. 사람들은 민심이란 표현에 쉽게 주술(呪術)에 걸린다. 민심이 천심이라고 하면 다들 경배한다. 그렇다고 표심이 민심을 온전히 반영하는가. 어쨌든 이번 총선은 여당인 국민의힘이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참패했다.
4년 전에는 야당으로서 참패하더니, 이번에는 집권 여당으로서 참패했다. 보수의 초토화 위기에서 겨우 불씨를 살리고도 집권당의 이점을 활용 못 하고, 세 번 연속 다수당 자리를 놓치면서 정치적 소수 세력이 됐다. 이 점에 대해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을 듯싶다.
비리와 막말에도 문제 후보 당선
도덕적 심판과 선거 결과 어긋나
그래도 보수 정당은 품격 지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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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치 전문가들이 보수 세력의 몰락 원인을 잘 짚어주겠지만, 나는 인문학자로서 이번 총선에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했는가를 살펴보고 싶다. 이번 총선은 요컨대 ‘명품백’이 ‘대장동’을 이긴 총선으로 볼 수 있겠다.
애초부터 이번 총선은 리스크와 리스크의 대결이었다. 명품백 리스크가 가라앉나 싶었지만 이를 다시 상기시킨 것은 ‘이종섭 호주 대사 사태’였다. 결과적으로 이번 총선을 통해 사람들은 천문학적 집단 비리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대장동 사건에 놀라울 정도로 관대했고, 반면 명품백 전달 동영상에는 더 분노했다.
몇 년 전에 아파트값이 수억 원 폭등한 것은 그러려니 하면서 지금 대파 몇천 원이 오른 것에는 분노했다. 이런 분노는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선거 막판에 민주당 김준혁 후보의 검증되지 않은 일련의 역사 해석, 양문석 후보의 거액 편법 대출 및 강남 아파트 매입 의혹 등 초대형 악재가 터져도 보란 듯이 대장동 변호사 다섯 명 전원이 당선했다. 지금 우리는 분노 정치의 시대에 들어섰다. 말하자면 정치가 도덕에 감응하지 못하는, 울울한 잿빛 시대에 들어서고 만 것이다.
정치의 정(政)자는 ‘바를 정(正)자’였다. 공자가 그랬다. “그대가 올바르면 누가 감히 올바르지 않겠는가.” 정치인이 반듯하면 국민도 반듯해진다. 정치는 반듯함을 실현하는 행위다. 공자 같은 선현의 시대에는 지도자가 분노를 표출하고 백성이 이에 따르는 게 정치 행위라는 생각일랑 전혀 하지 않았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정치 이전에 주술이 있었다. 정치는 제정(祭政)일치의 주술을 극복하기 위해 생겨났다. 그런데 정치가 주술을 걸면 사람들은 주술에 걸리고, 주술에 걸린 사람들이 다시 누군가에게 주술을 걸면 정치는 반듯함을 잃고 악순환에 빠진다.
나는 이번 총선을 지켜보면서 한국사회의 젠더 감수성이 아직 흐릿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깊이 들여다볼 문제다. 하늘도 놀랄 이대생 성 상납을 주장한 김준혁 후보는 물론, 미투(me too) 성범죄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몬 민주당 여성 후보도 당선했다. 야당 대표가 ‘이·채·양·명·주(이태원·채상병·양평도로·명품백·주가조작)’라는 주문을 줄기차게 외자 여론이 술렁거렸다. 이러니까 정치인들이 무슨 망언인들 못 하랴.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결과적으로 압승했지만, 완승은 아니다. 선거 과정에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면서 낮은 도덕 감수성을 자명하게 보여줘서다. 국회의원 의석 몇 석을 포기하더라도 여전히 절반을 훌쩍 넘긴 거대 야당인데, 서울 강북을에서 특정 후보를 내치기 위해 잇따라 문제 있는 후보를 버젓이 공천하고, 김준혁·양문석 후보 등을 굳이 끝까지 비호해야 했을까. 선거에서 의석에 따라 여의도의 갑과 을 위치가 수시로 뒤바뀐다 해도 선과 악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퇴행을 우리는 결코 수용할 수 없다.
나는 22대 국회에 입성할 보수적인 소수 정치 세력이 급격히 빛바래가는 ‘보수의 품격’을 그래도 지키라고 주문하고 싶다. 또한 나쁜 정객처럼 대파 한 단에 정치적 주술을 걸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정치적 심판과 도덕적 심판이 별개가 아니라는 가능성의 실마리를 보여준 2030 세대에게 나라의 미래를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을 두고 ‘국민의 위대한 승리’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이야말로 비리 종합세트라는 대장동의 기억을 애써 지운 선거다. 비리가 있어도, 막말을 쏟아내도 부적격자를 제대로 여과하지 못하는 선거 시스템의 기능 부전을 재확인한 선거로 기억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송희복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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