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4.04.18. 03:10
지난 16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어려운 국민을 돕고 민생을 챙기는 것이 정부의 존재 이유"라며 "그런 측면에서 이번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2024.4.16/뉴스1
16일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전한 인터넷 기사에 댓글이 수천 개 달렸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추진해도 국민들이 변화를 느끼지 못하면”이라는 대목을 대부분 겨냥했다. “좋은 정책을 못 알아보는 국민의 무지를 탓한 것 아니냐”는 요지다. 이런 반응에 놀란 대통령실이 “국민 뜻 못 받들어 죄송”이라는 대통령 비공개 발언을 추가로 내놨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총선 직전 의대 증원 관련 담화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대통령이 ‘2000명 증원’의 타당성을 장시간에 걸쳐 설명한 뒤 “더 좋은 안을 내면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국민들은 대통령이 2000명을 고수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정책실장이 “2000명 숫자에 매몰되지 않는다”고 보충 설명했지만 헛수고였다. 두 차례 입장 표명 모두 잃은 것이 더 많았다.
친윤 의원은 소셜미디어에 “지난 총선에 비해 의석은 103석에서 108석으로 5석 늘어났고, 민주당과의 득표율 차는 8.4%p 차에서 5.4%p 차로 줄어들었다”고 썼다. 선거에서 지기는 했지만 4년 전에 비해 선전했다는 취지다. 탄핵이라는 핵폭탄 맞고 초토화됐던 야당 시절 패배와 대통령 임기 2년도 안 된 시점의 집권당 패배를 단순 비교하며 위안을 얻으려는 ‘정신 승리’에 아연해진다.
지난 주말 광화문 태극기 집회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대한 성토장이었다. “한동훈 때문에 총선 쫄딱 망했다”면서 ‘정치 저능아’ ‘정신이 오락가락’이라고 비난했다. 용산 대통령실도 선거 패배 원인을 “한동훈의 공천 실패와 전략 미스”로 꼽고 있다고 한다. 주변에서 주로 듣는 총선 관전평은 디올백 늪에서 허덕이던 여당을 한동훈이 건져내나 싶었더니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 황상무 회칼 발언, 대통령 51분 의료 담화로 이어진 3연타석 악재로 도로아미타불이 됐다는 쪽이다. ‘이재명·조국 심판’에 올인한 구호와 한동훈 개인 세일즈에 치중한 방식을 문제 삼을 수는 있다. 그러나 몇몇 친윤 배제 공천을 겨냥한 대통령실 분노는 과녁을 벗어났다. 수도권 접전지에서 대통령과 거리가 먼 후보일수록 경쟁력이 높았다는 사례가 차고 넘친다.
이번 총선을 전후한 여당 의석은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윤 대통령과 친윤은 여태까지 해왔던 방식대로 밀고 나가도 별문제 없다고 여기는 분위기다. 이만저만 착각이 아니다. 대통령 취임 때 물려받은 여소야대와 대통령 총선 패배로 자초한 여소야대는 하늘과 땅 차이다.
행정부와 국회의 대립을 보는 국민 관점부터 달라진다. 그동안은 새로 선출한 대통령을 예전 국회가 훼방 놓는지를 감시했다면, 앞으로는 새로 구성된 국회를 대통령이 존중하는지를 따져 묻게 된다. 대통령과 집권당 관계도 바뀌게 마련이다. 지난 2년 동안 대통령 친위대들이 당의 군기를 잡고, 다른 의원들은 총선 공천권 눈치를 보며 딴소리를 못 냈다. 총선을 거치며 적잖은 친윤들이 국민들의 심판을 받았다. 어렵사리 살아 돌아온 의원들은 총선 기간 용산발 악재에 가슴 졸였던 원망을 곱씹고 있다. 앞으로 여당 의원들의 우선순위는 대통령 심기가 아니라 차기 정권 재창출이다.
192석의 범야권은 거세게 대통령을 뒤흔들 태세다. 채상병 사건을 신호탄으로 각종 특검법 시리즈가 쏟아진다. 핵심 과녁은 김건희 특검법이다. 지난 연말 연초 각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을 반대한다는 응답이 60% 이상이었다. 거부권 지지 응답은 그 절반인 30% 내외였다. 총선 이후 대통령이 특검법을 수용해야 한다는 여론은 보다 강화됐다고 봐야 한다. 이번에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재의결 절차로 이어지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국민 절대다수가 요구하는 특검법을 반대하는 것은 집권당 입장에서 큰 부담이 된다. 만약 집권당 일부가 수용 쪽으로 돌아서면서 재의결을 통과하면 당정 관계는 파탄 상태로 돌입한다. 8석 여유의 안전판이 특검법을 부결시킬 수도 있다. 당연히 민심은 들끓고 다음 대선에서 여야 후보들은 재수사를 약속할 수밖에 없게 된다. 현 정권과 차기 정권, 김 여사는 어느 쪽에서 더 공정한 수사를 받을 수 있을까.
자신의 허약해진 몸 상태를 인식 못 하고 헬스장에서 무거운 덤벨을 들어 올리려다 큰 탈이 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선거에서 져 골병이 든 정권에도 마찬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어디가 얼마나 망가졌는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분위기다. 그래서 더 걱정스럽다.
김창균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