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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한국 외교의 세 가지 덫

鶴山 徐 仁 2024. 4. 7. 14:14

[선데이 칼럼] 한국 외교의 세 가지 덫

중앙선데이 입력 2024.04.06 00:1


“우리는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믿지 않는다. 우리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현실에 대한 망상에 빠지지 않게 최대한 노력한다.”

1815년 나폴레옹 전쟁 종결 후, 비엔나 체제를 구축해서 유럽 평화를 이끌었던 오스트리아의 명재상 메테르니히의 외교에 대한 경구다. 이는 지금의 한국 외교에도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지금 국제질서는 6~7년 전부터 질적으로 바뀌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에게 대단히 중요한, 미국과 중국이 더 이상 포용과 협력이 아니라 대결과 경쟁을 하는 시대로 진입했다. 이는 우리 외교에 심각한 도전이다. 그리고 지난 60년간 한국이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이루어내는데 큰 기여를 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대표적인 사례다. 게다가 북한은 더 이상 남북 관계가 특수 민족 관계가 아니라면서, 전술핵을 탑재한 초음속 미사일로 몇 분 만에 남쪽을 초토화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미·중 관계 등 국제질서 크게 변화
국내 정치권 진영 논리 집착 여전
감성 배제하고 철저히 이익 따져야
국가 관계에선 선의도 기대 말아야

선데이 칼럼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외교 담론은 메테르니히가 강조하는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대응책 마련보다, 국내 정치의 진영 논리, 감성적 접근, 희망적 사고의 덫에 걸려있다.

첫째, 국내 정치의 진영 논리의 덫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보수는 친미·친일·반중·반북, 진보는 반미·반일·친중·친북이라는 이분법이 통념처럼 되어버렸다. 문제는 그러한 미·중·일·북한 등 대상국들의 외교 정책이나 그들 상호 관계가 크게 변했는데도 우리는 그런 것과 아랑곳없이 국내 정치 진영 논리에 따라 이미 정해진 친(親)과 반(反)의 고정된 처방을 자동적으로 내놓는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바깥 국제 정치의 현실을 우리 국내 정치가 못(또는 안) 따라간다. 외교 현안이 터졌을 때도 국제 관계 변화 속에서 그 현안의 핵심과 국익 극대화의 방법이라는 본질 문제에는 천착하지 못하고 진영 간의 피상적인 말싸움에 그치기 일쑤다.

예를 들어 한·일 관계가 그렇다. 급변하는 국제 관계 속에서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각각 우리에게 올 득(得)과 실(失)이 무엇인지 예리하게 따져 비교하면서 설득하려는 자세를 볼 수 없다. 현 정부는 진영 싸움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거국적 관점에서 한·일 관계 개선이 지금의 험난한 국제 환경 때문에 어떻게 득이 실보다 큰지,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했다. 야당도 왜 한·일 관계 개선이 국익에 실이 득보다 큰지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주로 국민감정에 호소했다.

둘째, 감성적 접근의 덫이다. 많은 국민들이 철저한 이익 계산이 아니라 호불호의 감성으로 외교 문제에 접근한다. 아마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나라 이름 앞에 친 또는 반이라는 접두어를 붙여, 친미·친중·반미·반중과 같은 말들을 사용할 것이다. 나라에 무엇이 이득이 되느냐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좋고 싫고의 감성이 앞서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생각을 국익 중심으로 모으기보다, 그들의 감성에 영합해 당파 이익을 추구한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어 거래적 접근을 한다면, 그것은 싫다 좋다의 문제로 그칠 일이 아니지 않은가?

셋째,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의 덫이다. 외교는 국가 간의 관계로 개인 간의 관계와 질적으로 다르다. 개인 간의 관계에서는 이쪽이 선의로 대하면 저쪽도 선의로 대할 것이라는 기대가 통할 수 있다. 설령 개인 간의 관계가 잘못돼도 당사자 한 사람으로 끝난다. 그러나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가 잘못되면 수백만, 수천만 명이 피해를 본다. 그렇기에 개인 간에 적용되는 도덕관념이나 행동 기준을 국가관계에 그대로 적용하려 하면 큰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과거 우리 정부들은 중국에 잘해주면 중국도 상응하는 호의로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며 중국을 대했다. 그러다 보니 무엇보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한·중 관계 그 자체보다 미국과의 전략 경쟁의 종속 변수로 다루어 온 점을 간과했다. 중국은 2010년 명백한 국제법 위반인 북한의 연평도 포격 때도 양비론을 주장했고, 사드 배치 때에도 한국에 경제 제재를 가해 한·미 간의 거리를 벌리려 했다.

내주 총선은 한국 외교의 방향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외교를 둘러싼 논쟁도 분분해질 것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외교 문제를 국가 전체의 이익 관점에서 냉철하게 따지고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과 진영 논리에 호소하며 국내 정치 게임의 제물로 삼을 가능성이다. 그 경우 국민들은 큰 혼란에 빠지고 국제 사회는 냉소를 보낼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당면한 국제 정치 현실에 대한 진지한 토론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메테르니히의 경구대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현실에 대한 망상”에 빠지지 않으려는 국민적 노력을 기대한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옥중서신에서 밝혔듯 ‘서생적(書生的) 문제의식’은 갖더라도 철저한 ‘상인적(商人的) 현실감각’에 입각해 국익을 따지고 그것을 달성할 전략을 모색하길 희망한다. 부디 필자가 너무 많은 것을 소망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외교통상부 장관

1815년 나폴레옹 전쟁 종결 후, 비엔나 체제를 구축해서 유럽 평화를 이끌었던 오스트리아의 명재상 메테르니히의 외교에 대한 경구다. 이는 지금의 한국 외교에도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지금 국제질서는 6~7년 전부터 질적으로 바뀌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에게 대단히 중요한, 미국과 중국이 더 이상 포용과 협력이 아니라 대결과 경쟁을 하는 시대로 진입했다. 이는 우리 외교에 심각한 도전이다. 그리고 지난 60년간 한국이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이루어내는데 큰 기여를 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크게 위협받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대표적인 사례다. 게다가 북한은 더 이상 남북 관계가 특수 민족 관계가 아니라면서, 전술핵을 탑재한 초음속 미사일로 몇 분 만에 남쪽을 초토화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미·중 관계 등 국제질서 크게 변화
국내 정치권 진영 논리 집착 여전
감성 배제하고 철저히 이익 따져야
국가 관계에선 선의도 기대 말아야

선데이 칼럼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외교 담론은 메테르니히가 강조하는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대응책 마련보다, 국내 정치의 진영 논리, 감성적 접근, 희망적 사고의 덫에 걸려있다.

첫째, 국내 정치의 진영 논리의 덫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보수는 친미·친일·반중·반북, 진보는 반미·반일·친중·친북이라는 이분법이 통념처럼 되어버렸다. 문제는 그러한 미·중·일·북한 등 대상국들의 외교 정책이나 그들 상호 관계가 크게 변했는데도 우리는 그런 것과 아랑곳없이 국내 정치 진영 논리에 따라 이미 정해진 친(親)과 반(反)의 고정된 처방을 자동적으로 내놓는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바깥 국제 정치의 현실을 우리 국내 정치가 못(또는 안) 따라간다. 외교 현안이 터졌을 때도 국제 관계 변화 속에서 그 현안의 핵심과 국익 극대화의 방법이라는 본질 문제에는 천착하지 못하고 진영 간의 피상적인 말싸움에 그치기 일쑤다.

예를 들어 한·일 관계가 그렇다. 급변하는 국제 관계 속에서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각각 우리에게 올 득(得)과 실(失)이 무엇인지 예리하게 따져 비교하면서 설득하려는 자세를 볼 수 없다. 현 정부는 진영 싸움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거국적 관점에서 한·일 관계 개선이 지금의 험난한 국제 환경 때문에 어떻게 득이 실보다 큰지,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했다. 야당도 왜 한·일 관계 개선이 국익에 실이 득보다 큰지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주로 국민감정에 호소했다.

둘째, 감성적 접근의 덫이다. 많은 국민들이 철저한 이익 계산이 아니라 호불호의 감성으로 외교 문제에 접근한다. 아마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나라 이름 앞에 친 또는 반이라는 접두어를 붙여, 친미·친중·반미·반중과 같은 말들을 사용할 것이다. 나라에 무엇이 이득이 되느냐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좋고 싫고의 감성이 앞서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생각을 국익 중심으로 모으기보다, 그들의 감성에 영합해 당파 이익을 추구한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어 거래적 접근을 한다면, 그것은 싫다 좋다의 문제로 그칠 일이 아니지 않은가?

셋째,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의 덫이다. 외교는 국가 간의 관계로 개인 간의 관계와 질적으로 다르다. 개인 간의 관계에서는 이쪽이 선의로 대하면 저쪽도 선의로 대할 것이라는 기대가 통할 수 있다. 설령 개인 간의 관계가 잘못돼도 당사자 한 사람으로 끝난다. 그러나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가 잘못되면 수백만, 수천만 명이 피해를 본다. 그렇기에 개인 간에 적용되는 도덕관념이나 행동 기준을 국가관계에 그대로 적용하려 하면 큰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과거 우리 정부들은 중국에 잘해주면 중국도 상응하는 호의로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며 중국을 대했다. 그러다 보니 무엇보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한·중 관계 그 자체보다 미국과의 전략 경쟁의 종속 변수로 다루어 온 점을 간과했다. 중국은 2010년 명백한 국제법 위반인 북한의 연평도 포격 때도 양비론을 주장했고, 사드 배치 때에도 한국에 경제 제재를 가해 한·미 간의 거리를 벌리려 했다.

내주 총선은 한국 외교의 방향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외교를 둘러싼 논쟁도 분분해질 것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외교 문제를 국가 전체의 이익 관점에서 냉철하게 따지고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과 진영 논리에 호소하며 국내 정치 게임의 제물로 삼을 가능성이다. 그 경우 국민들은 큰 혼란에 빠지고 국제 사회는 냉소를 보낼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당면한 국제 정치 현실에 대한 진지한 토론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메테르니히의 경구대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현실에 대한 망상”에 빠지지 않으려는 국민적 노력을 기대한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옥중서신에서 밝혔듯 ‘서생적(書生的) 문제의식’은 갖더라도 철저한 ‘상인적(商人的) 현실감각’에 입각해 국익을 따지고 그것을 달성할 전략을 모색하길 희망한다. 부디 필자가 너무 많은 것을 소망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외교통상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