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최준호의 사이언스&] KSTAR 주역 이경수 박사 단독 인터뷰
‘인공태양’ 한국형 핵융합연구로(KSTAR) 개발을 주도하고,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의 2인자(사무차장)를 지낸 핵융합 석학 이경수(67) 박사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핵융합발전 스타트업 ‘인에이블퓨전’(Enable Fusion)을 창업한다. 다음달 6일 창업을 공식 발표하고, 중순에 법인 설립을 완료할 예정이다. 스타트업에는 재계와 과학계의 거물들이 대거 참여한다. 포스코DX와 KT의 사장을 지내고 스타트업 창업과 기업공개(IPO) 등의 경험이 많은 최두환 박사가 최고경영자(CEO)로 합류한다. 이 박사는 연구ㆍ개발을 책임지는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을 예정이다. 이외에도 권오준 전 포스코 회장이 경영자문을, 정기정 ITER 한국사업단장과 황용석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최원호 KAIST 물리학과 교수, 박현거 UNIST 명예교수(전 미국 프린스턴대 플라스마 물리연구소 연구위원)가 기술자문을 맡는다. 국내 주요 중공업 기업들도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한다. 대전 핵융합에너지연구원 자문위원으로 있는 이 박사를 최근 인터뷰했다. 그는 지난 정부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차관급)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경수 전 과기정통부 혁신본부장이 대전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본관 1층 전시실에서 태양모델을 뒤로 하고 핵융합발전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김성태 프리랜서
핵융합발전은 아직 먼 미래 에너지원인데, 워낙 거대 프로젝트다. 스타트업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이미 미국 등 세계 주요국에 40개가 넘는 핵융합발전 스타트업들이 생겨났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분사한 스타트업 커먼웰스퓨전시스템(CFS)은 자본금 20억 달러(2조6000억원)로 시작했다. 일본도 교토퓨저니어링이라고 교토대에서 출발한 스타트업인데, 122억엔(약 1068억원)가량을 투자받고, 직원도 100명이 넘는다. 이들은 국가 단위에서 추진 중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와 별도로, 일정을 당겨 실제 핵융합발전로를 직접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국제기구 사무차장 시절 이경수 박사. 프랑스 카다라슈의 ITER 공사현장 앞에 섰다. [사진 ITER국제기구]
한국을 포함한 세계 7개국이 연합한 ITER는 2042년 열출력 500㎿, 에너지 증폭률(Q) 10(핵융합 반응으로 방출되는 에너지가 주입된 에너지보다 10배 많다는 뜻) 이상을 목표로 핵융합실험로를 짓고 있다. 이와 별도로 개별 국가 단위에서도 중국과 한국도 핵융합장치를 만들어 상용화를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들이 내다보는 핵융합발전 상용화의 시점은 2050년 이후다. 하지만 핵융합 스타트업들은 이르면 2030년 상용화를 내걸고 있다.
내달 중순 인에이블퓨전 설립
재계ㆍ과학계 거물 대거 영입
대기업도 전략적 투자자 참여
"핵융합발전 조기 상용화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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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에이블퓨전도 핵융합발전로를 목표로 하는가.
우리나라에선 핵융합 스타트업을 한다고 몇 조원을 모으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핵융합발전 제작을 위한 플랫폼 비즈니스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장점은 제조업이 강하다는 점이다. 창원과 울산 등지에 있는 기업들은 KSTAR도 만들어봤고, ITER의 주요부품들을 납품한 실적이 있다. 인에블퓨전은 이런 개별 기업들의 제조 능력에 인공지능(AI)ㆍ로봇공학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더해 핵융합발전 관련 '토털 솔루션 공급자'로서 역할을 할 계획이다. 일종의 핵융합발전 파운드리라고 하면 이해하기 쉽겠다. 실제 핵융합로를 만드는 세계 주요 핵융합 스타트업과 정부 주도 프로젝트가 수요처다. 이미 그들과 비즈니스 차원에서 소통하고 있고, 내년 하반기쯤 매출도 발생할 것으로 본다. 중장기적으로는 자회사를 만들어 핵융합발전로를 직접 제작하는 혁신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목표도 가지고 있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중공업 기업 삼흥기계의 2공장에서 직원들이 프랑스 카다라슈에서 건설 중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프로젝트에 들어갈 핵심 부품을 점검하고 있다.. [중앙포토]
사업 성격상 돈이 많이 들 것 같다. 자본금은 얼마로 시작하나.
일단 150억원으로 출발한다. 국내 주요 대기업ㆍ중견기업들이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초기 자본을 구성하고 있다. 대부분 KSTAR와 ITER 주요 부품 제작 및 공급에 참여한 경험이 있어 핵융합발전로에 대한 노하우와 이해가 깊은 기업들이다. 처음엔 정부 돈을 안 받을 생각이다. 정부 R&D 자금을 받으면 빨리 움직이고 결정하고 목표를 찾아가는 데 어려움이 있다.
회사는 어디에 두나.
마케팅과 재무ㆍ투자 등을 맡을 본사를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두고,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센터는 국가핵융합에너지연구원ㆍ원자력연구원 등과 긴밀한 소통을 위해 대전 연구개발특구 내 사이언스센터에 둘 예정이다.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의 중견기업 비츠로넥스텍이 KSTAR 토카막에 들어갈 텅스텐 디버터를 점검하고 있다. 텅스턴 디버터는 섭씨 1억도의 플라즈마를 견디는 소재다. 김경록 기자
과학자와 연구자ㆍ행정가로서 평생을 보냈다. 은퇴할 나이에 웬 스타트업 창업인가.
과기정통부 혁신본부장 시절에 ‘한국은 왜 핵융합 스타트업을 안 하느냐’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나도 핵융합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돕겠다고 여기저기 이야기했지만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나이가 이미 있지만 ‘국내에선 나 아니면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을 1년 정도 했다. 나는 KSTAR와 ITER 둘을 모두 주도해 봤다. 지금 세계 주요국들에 핵융합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이나 영국 등에 비해 상용화 착수가 늦었다. 머잖아 KSTAR 연구가 완성되고 우리나라도 핵융합발전로 제작 능력을 갖추게 될 때 이걸 상용화로 받아줄 수 있는 민간기업이 있어야 한다. 그 토대를 내가 마련해보겠다. 선진국보다 뒤지고 있는 핵융합발전 상용화를 도중에 따라잡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21대 국회에서 과학기술인 영입 차원으로 더불어민주당 비례 18번을 받은 상태다. 정치는 접는 건가.
그렇다. 스타트업을 시작하면서 두 가지를 다 할 수는 없지 않나. 우리나라 과학계의 대변인으로 정치계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비례 순번이 밀리는 바람에 결국 참여하지 못했다. 이제 나이도 꽤 많은 편이라 다시 도전해도 초선 비례대표로 할 수 있는 일엔 한계가 있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계, 특히 핵융합 쪽에 기여할 수 있는 게 스타트업이라 생각했다.
이경수
1956년생 대구 생.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 선임연구원 등을 거쳐 1991년 귀국한 뒤 기초과학지원연구소 핵융합연구개발사업단장, 국가핵융합연구소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한국사업단장, 제2대 국가핵융합연구소장,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부총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 본부장(차관급)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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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대전=최준호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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