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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당원'으로부터 정당을 지킬 때

鶴山 徐 仁 2023. 3. 3. 18:38
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갓 당원'으로부터 정당을 지킬 때

 
중앙일보 입력 2023.03.03 00:45 업데이트 2023.03.03 16:12

인간을 원자처럼 행동한다고 여기고 물리학 법칙을 적용한 학자가 있다. ‘사회물리학(sociophysics)’을 일군 프랑스인 세르주 갈람이다. 2004년 말 르몽드 기자로부터 이런 다짐을 받은 일이 있다.
“진정 당신의 결론이 활자화되는 걸 바라느냐. 당신 이론은 멋지다. 하지만 결론은 허튼소리다. 장차 모든 신뢰를 잃을 수 있다.”
그는 고심했다. 다시 기자가 말했다. "활자는 오래 간다. 언제든 당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유럽연합(EU) 신헌법 인준 여부에 대한 그의 예측을 두고서다. 당시만 해도 통과가 기정사실이었다. 찬성이 70%, 반대가 20%였다. 주요 인물이나 언론 모두 찬성 쪽이었다. 그러나 갈람 모델에선 달랐다. 반대가 20%인데 투표일까지 다섯 달이나 남아 결국 반대 진영이 승리할 것이라고 나왔다.
갈람도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하고 공표를 택했다. 이듬해 5월 모두의 예상을 깨고(단 갈람만 빼고) 신헌법안은 부결됐다. 반대가 55%였다.
갈람의 연구 결과 중엔 이처럼 ‘생각을 바꾸지 않은 결집층’(고정표층)이 있으면 당장 소수여도 결국 우세한 여론으로 바뀐다는 게 있다. 어느 정도 소수여도 그렇게 되는지도 계산했는데 특정 조건에서 17%였다. 사회물리학자 전탁수는 “주변과 의견을 교환하며 사회 전체 의견을 조정하는 민주적 절차를 밟아서 다수결을 할 경우, 20%도 안 되는 소수파의 확고한 의견이 나머지 일반 유권자 전체 의견보다 우선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라며 “민주제 아래에서 소수에 의한 독재가 나타난다는 뜻”(『은하의 한구석에서 과학을 이야기하다』)이라고 설명했다. 소수파가 올바른 쪽이라면 다행이다. 세상일이 어디 그러기 쉬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관련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1월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에 앞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인사하고 있다. [뉴스1]
 
실제 여의도에서 반례를 목격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지하는 이른바 ‘개딸’들이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사실상 ‘정치적으론 가결’되자 비명 의원들을 향해 비난·조롱·협박·압력을 쏟아낸다. 이낙연 전 총리를 지목해 출당을 요구하거나 심지어 정청래 최고위원(이 대표의 우군)에게도 “당원이다. 의원은 부결이냐, 가결이냐. 의견을 표명해 달라. 너무 한심해서 문자 보낸다. 다음에 심판하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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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크게 오해하는 게 있다. 정당의 주인이 당원이란 진정한 의미 말이다. 매사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는 존재를 뜻하는 건 아니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그보다 복잡미묘하다. 주권은 "오로지 시민 전체 총회(총선·대선·지방선거)에서만 발생하는 집합적 권리”(박상훈 정치발전소 교장)여서 아무리 ‘주권자’라 해도 매사 ‘1/전체 국민’만큼의 주권을 가진 양 행세할 수 없다. 당원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전당대회 등 당 기구들이 주권기관이라고 봐야 한다. 박 교장은 “갓 들어온 당원들, 매집된 당원들, 동원된 당원들이 모든 것을 당원에게 넘기라고 하고, 누구는 쫓아내고 누구는 일하게 하고, 자신들과 자신들이 지지하는 대표가 마음대로 정당을 이끌게 하는 건 전체주의라고 하지 민주주의라고 하지 않는다”고까지 말한다. 더구나 당의 오랜 전통이나 지향을 외면한 채 이런 행태를 벌인다면? 바로 '이재명 민주당'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국민의힘 사정은 나을까. 글쎄다.
문제는 갈람의 지적대로 “일단 소그룹이 똬리를 틀게 되면 이들을 없애기 어렵다. 그러려면 비민주적 방식을 써야 하는데, 이 때문에 자체의 민주적 구조가 파괴”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나심 탈레브 같은 이는 아예 우리 사회가 "양보하지 않는 소수에게는 불관용, 그 이상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갓 당원’에게 포획된 정당을 구할 수 있을까. 당장은 어려울 것이다. 미덥지 않겠지만 기존 당 기구에 발언권을 좀 더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원내도 그중 하나다. 의원들은 그래도 좀 더 복잡하고 정치적 사고를 한다는 게 이번 체포동의안 국면에서도 드러났다.
 
고정애 Chief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