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무원들은 ‘촛불혁명’과 ‘촛불시민’의 명령을 수행하는 도구?
: ‘핵무장한 적과 상대하고 있는 한국의 지도부가 적과 계급투쟁론을 공유한다는 것은 모험이다. 이 낡은 증오의 과학이 관념에 머물지 않고 세상으로 튀어나올 때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이다.’
趙甲濟(조갑제닷컴 대표)
E=mc²
문재인 정권의 작동원리를 파악하면 앞으로 전개될 이 세력의 전략, 전술, 정책, 목표를 내다 볼 수 있고, 약점과 강점을 알 수 있으며 대책도 세울 수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작동원리는 단순하다. 세상을 바꾸고 우주를 새롭게 보게 만든 가장 유명한 공식 E=mc²이 대표적이다. 1905년 스위스의 특허국 직원으로 일하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특수 상대성 논문에 붙은 공식이다. E는 에너지, m은 질량, c는 빛의 속도이다. 질량은 에너지, 에너지는 질량으로 전환될 수 있는데 이때 줄어드는 질량에 광속(光速)의 제곱을 곱한 어마어마한 수치만큼 에너지가 생긴다. 이 원리를 응용한 것이 원자폭탄과 원자력 발전이다. 우라늄이 핵분열로 수십 g 없어지면서 생긴 에너지가 도시 하나를 날려버린다.
이 공식의 위대성은 아무 관계없이 보였던 에너지, 질량, 빛을 하나로 통합시킨 점이다. 아인슈타인은 실험을 통하여 공식을 알아낸 게 아니라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이미 알려진 물리학 지식에 천재적 상상력과 영감(靈感)을 보태어 발견해낸 원리다. 여기서 많은 부수적 지식과 물건들이 생산되었다. 태양을 포함한 모든 별들이 이 공식에 따라서 에너지를 분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블랙홀의 존재를 예언하였으며 극장 비상구를 밝히는 불빛이나 부엌의 연기 감지기도 이 공식에 의하여 작동한다.
나는 심심풀이로 E=mc² 공식을 문재인 정권의 작동원리에 응용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물론 분석의 편의를 위한 것이고 정치현상에 자연현상의 공식이 정확히 적용될 수는 없는 것이다. 나의 가설은 E=mc² 에서 E를 권력, m을 대중(mass), c를 ‘계급투쟁론(class struggle)의 선전’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선거를 통하여 권력을 만드는 대중민주주의 체제에선 대중이 권력의 산파(産婆) 역할을 한다. 권력은 대중으로부터 자동적으로 생기는 게 아니라 여론을 가진 대중이어야 권력을 만든다. 정당이 바로 대중의 여론을 조직하여 권력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다. 여론의 조직은 정보화 사회에서 주로 선전을 통한다. 중국 공산당 간부는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선전부를 장악하지 못하여 권력을 놓쳤다”는 말을 하였다. 선전을 통한 여론 조작이 전체주의 체제에서도 권력 유지에 핵심적인 중요성을 갖는데 여론이 정권의 운명을 결정하는 민주체제의 지도자가 언론의 관리에 실패, 권력 유지에 실패하였음을 통렬하게 비판한 말이었다.
光速으로 전개되는 선동
E=mc² 공식은 질량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매개로 광속(光速)의 제곱(c²)이라는 엄청난 수치를 설정하였다. 요사이 정치의 영역에서 선전 선동은 그야말로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신속하고 널리 영향을 끼친다. 정보를 광속으로 전달하는 텔레비전, 라디오, SNS(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스마트폰 등)가 상호작용을 통하여 만들어내는 정보의 양과 속도는 가히 c²의 세계이다. 다양한 언론매체의 등장으로 한국인들은 매일 잠자는 시간(약 8시간)만큼이나 언론(신문, 방송, 스마트폰 등)과 접촉, 영향을 많이 받는다. 대학생들의 현대사 인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언론, 학교(교수, 교사 등), 가정 순으로 조사되었다(연세대 류석춘 교수).
그런데 왜 나는 이 c를 ‘계급투쟁론(Class Struggle) 선전’으로 가정한 것인가? 정치선전 중 가장 효과가 있는 것은 계급투쟁론에 기초한 구호이다. 계급투쟁론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을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권력투쟁으로 규정한다. 칼 마르크스가 완성한 계급투쟁론은 학문을 위한 것이 아니라 피지배계급(노동자, 농민 등)이 지배계급을 타도하여 정권을 잡기 위한 수단이다. 이 수단의 핵심은 계급투쟁론으로 인간의 본성인 불만, 열등감, 증오심을 조직화하여 이를 저항적 정의감으로 포장하는 기술이다. ‘증오의 과학’인 셈이다. 한국은 봉건적 지배와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계급투쟁론이 먹힐 수 있는 민족성과 역사적 토양을 갖고 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심리에는 ‘계투(階鬪)’ 선동이 잘 먹힌다.
한국 선거 역사상 가장 유명한 구호는 1956년 대통령 선거 때 야당 후보 신익희(申翼熙) 진영이 내건 ‘못살겠다 갈아보자’였다. 신익희가 투표 며칠을 남겨놓고 급사(急死)하지 않았더라면 당선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대통령을 몰락시킨 ‘촛불세력’의 구호, ‘이게 나라냐’ ‘적폐청산’도 같은 부류이다.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는 ‘노예로 가는 길’에서 사회의 하부층을 상대로 한 네거티브 선동이 먹히면 최악의 인간들이 정상(頂上)에 오를 수 있다고 분석하였다.
<이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선동은 ‘네거티브 프로그램’이다. 인간의 본성(本性)은 긍정적인 프로그램보다는 외부의 적에 대한 증오심이나 내부의 잘 사는 사람들에 대한 질투심을 중심으로 뭉치기가 더 쉽게 되어 있다. ‘우리’와 ‘그들’을 대칭시키고, 외부 그룹에 대한 단결된 싸움을 선동한다. 이런 선동은 대중을 한 덩어리로 묶어내는 데 필수적이다. 내부 지지층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불러내기 위하여서도 필요하다. 나치는 내부의 적으로서 유대인들을 설정, 그들에 대한 증오심을 선동하였고, 소련공산당은 지주(地主)들에 대한 적개심을 선동하여 지지층을 확대 강화했다.>
‘계급투쟁론’이란 열쇠
계급투쟁론적 프레임으로 만들어진 폭로성 정보가 이를 광속(光速)으로 전달하는 정보기술 및 그런 정보에 매일 7~8시간씩 노출되는 인간 환경과 결합되면 c²의 폭발력을 갖는다. 지난 해 10월부터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c²의 파상공세에 직면, 한 번도 반격을 해보지 못하고 선동의 블랙홀로 끌려 들어가 정권도 놓치고 감옥에 간 것이다. c²를 주도한 것은 언론, 촛불시위 주도 좌파 단체, 그리고 야당이었다. 이들이 쏟아내는 부정적 정보의 홍수에 검찰, 법원, 헌법재판소도 휩쓸려 들어가 사실과 법리도 무력화되었고 현존 권력이 무너지고 새로운 권력이 탄생한 것이다. 이 c²를 장악한 세력이 대중(m)의 여론을 조직, 문재인 정권(E)를 만들어 냈다고 본다면 E=mc²의 공식은 ‘이해하기 힘든 상황 전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작동원리를 이해하는 열쇠는 계급투쟁론이다. 한국에선 ‘계급투쟁론’이 ‘민중민주주의’나 ‘진보적 민주주의’로 불린다. 2014년 12월의 헌법재판소 결정(통합진보당 해산) 등의 판례에 의하여 민중민주주의는 계급투쟁론과 같은 맥락의 이념으로 판단되었다. 공산주의 활동이 불법화된 나라에서 흔히 쓰는 위장명칭인 셈이다.
헌재 결정문은, <(민중민주주의는) 주권자의 범위를 민중에 한정하고 민중에 대비되는 일부 특정 집단에 대해 적대적인 관계로 설정하고 있으므로, 피청구인(주-통진당) 주도세력이 내세우는 민중주권주의는 국민을 주권자로 보는 국민주권주의와 다르고, 국민을 변혁의 주체와 변혁의 대상 또는 규제의 대상으로 구분하는> 것으로서 계급주의를 금지시킨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하였다. ‘민중’을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동의어로 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계급투쟁론적 민중사관으로 써진 좌편향 국사 교과서를 대체(代替)하기 위하여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한 국정 교과서 편찬을 반대하였고, 계급투쟁론(민중민주주의)으로 뭉친 통진당 해산 결정에도 반대하였다. 대통령이 된 후 그는 국정 교과서 폐기를 지시하고, 통진당 해산 결정에 유일하게 반대하였던 김이수 헌법재판관을 소장 후보로 지명하였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권의 작동원리에 해당하는 대통령의 이념적 가치관은 계급투쟁론과 관련 지어 분석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통합진보당 해산 반대가 헌법수호 의지?
문재인 대통령의 이념적 가치관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는, 김이수 헌법재판관을 소장 후보로 결정,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출하면서 그의 소수의견을 ‘헌법질서 수호 의지’라고 높게 평가한 점이다.
<헌재 재판관으로 재직하면서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에서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는 기각 의견을 내는 등 헌법질서를 수호하고 확립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정당이라고 규정, 8 대 1로 해산을 결정하였다. 국헌(國憲)을 수호하겠다고 선서한 대통령이 反헌법적 정당 해산 결정에서 반대소수의견을 낸 행위를 ‘헌법질서 수호 및 확립’이라고 본 것은 그의 헌법관·역사관·대북관(對北觀)이 기존의 해석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시사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소 언행에 비춰 이는 자연스러운 인사 결정이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통진당 해산에 비판적이었을 뿐 아니라 선거기간 중 헌법 제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와 배치되는 국가연합 또는 낮은단계연방제 통일방안을 자신의 소신으로 표명한 이다. 김 재판관은 연방제 통일방안이 헌법 위반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연합이나 낮은단계연방제 통일을 추진하고 위헌(違憲) 시비가 일어나 헌법재판소에 제소되고 만약 그때 김이수 재판관이 소장으로 있다면 어떤 결정이 내려질 것인가?
통진당 해산에 찬성한 8명의 재판관들은 이 당이 사용하는 정치적 용어, 즉 진보 민주 민중 평등 변혁 자주 통일 등을 글자 뜻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분석, 용어의 참뜻을 밝혀내려고 애쓴 데 반해 김이수 재판관은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는 통진당을, 선의(善意)를 가진 진보적 성향의 개혁 세력으로 본다.
<피청구인은 자신의 현실인식에 기초하여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점진적 개혁, 개선보다 근본적인 변화, 대안체제의 수립이 필요하다고 보고, 광의의 사회주의적 대안체제로서 ‘진보적 민주주의’체제를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사회주의는 허용될 수 있나?
사회주의 이론의 핵심은 계급투쟁론이고, 국민주권에 입각한 자유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없는 이유는 이게 필연적으로 계급독재를 지향(志向)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적 대안체제로서 ‘진보적 민주주의’체제>는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특권을 부정하는 국민주권론에 기초한 대한민국 헌법 체제 안에선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사회주의 허용’은 헌법 개정을 통해서도 불가능하다. 국체(國體) 변경을 가져오는, 즉 자신을 부정하는 헌법개정은 어느 나라에서도 불허(不許)된다.
김이수 재판관은 통진당 해산 반대 의견에서 파격적인 주장을 하였다.
<적어도 북한이 대외적, 공식적으로는 사회주의 이념을 내세우고 있는 점은 분명하고, 그들의 정치적 노선이 표면적으로 사회주의적 지향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의 계승, 발전을 내세웠던 민주노동당으로부터 태동하였고, 여전히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내포하는 강령을 내세우고 있는 피청구인의 주장이 북한의 그것과 일정 부분 유사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족사의 정통성과 삶의 양식을 놓고 공산주의자(사회주의자)와 타협이 절대로 불가능한 이념전쟁을 벌이고 있는 나라이다. 이념전쟁에서는 적(敵)의 이념과 가치관을 공유하거나 추종하는 것이 바로 반역인데도 김 재판관은 <일정 부분 유사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고 변호하였다. <이 현상의 원인을 오직 피청구인이 북한을 추종했기 때문이라고만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해석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그의 말은 이렇게 고쳐야 한다.
<이 현상의 원인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해석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통일방안에 대한 중대한 오해
金 재판관은 통진당이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방안이 盧泰愚(노태우) 정부 이후 대한민국의 공식 통일방안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놀라운 주장도 하였다.
<한편 북한의 통일방안과 유사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피청구인(통진당 지칭)의 연방제 통일방안의 주된 취지는 남과 북이 대등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점에 있는데, 사실 이는 노태우 정부 이후 여러 정부에서 통일을 위한 해법으로 제시하는 바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현재에도 우리 사회의 여러 정당들과 전문가들에 의해 수용되고 있는 방안이다.>
재판관 8명의 법정의견에서 통진당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심도 있게 다뤄졌다. 통진당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북한식 연방제 통일방안과 같은데, 이는 남한에서 종북세력이 집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뒤엎고 대한민국이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로 흡수되도록 하는 징검다리이다. 즉, 통진당이 내세우는 진보적 민주주의, 민중주권, 자주적 정부, 사회 변혁, 연방제 등은 모두가 한반도를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로 통일하기 위한 전술적 용어들이다. 쉽게 말하면 통진당이 북한노동당의 충실한 하수인(下手人)이 되어 대한민국을 항거 불능 상태로 만든 다음 북(北)의 공산 독재 체제에 먹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대한민국 정부의 통일방안은 한결같이 교류와 평화적 공존 과정을 거쳐 자유민주적 통일국가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사회주의 독재를 지향하는 통진당의 통일방안과는 공통점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장하는 국가연합 통일방안도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을 금지한 헌법에 위배되며 낮은단계연방제는 적화통일방안이므로 헌법이 받아들일 수 없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국회인사청문회장에서 5·18 당시 군 법무관으로서 사형을 선고했던 버스 운전사 배 모 씨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헌법재판소는 김 후보자가 배 씨에게 과거 사형을 선고한 이유에 대하여 “피고인은 단순히 운전만 한 것이 아니라 버스를 운전해 경찰 저지선을 뚫는 과정에서 경찰 4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경상을 입는 일이 발생했다”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인정돼 1980년 소요 살인죄로 사형이 선고됐다”고 설명했다. 배 씨는 사형 선고를 받고 32개월가량 복역한 뒤 사형집행이 면제돼 풀려났고, 1997년 재심을 청구해 무죄 선고를 받았다.
경찰관 네 명은 이렇게 죽어갔다
김이수 재판관이 마치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그 앞에서 머리를 숙이게 하였던 배 씨가 무슨 행동을 하였는지 알아보자. 나는 배 씨가 모는 버스를 목격하였던 당시 전투경찰 남동성 씨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의 증언을 정리한다.
<나는 경북 대구의 경북대학교 정외과 2년을 마치고 전투경찰관으로 입대, 전남 도경 2기동대 소속으로 광주에서 근무하다가 광주사태를 맞게 됐다. 광주사태가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던 5월20일 밤, 나는 전남도청 앞에서 데모대를 막고 있었다. 광주의 밤하늘은 여기저기서 타오르는 불길로 환했다. ‘타닥타닥’ 불타는 소리와 가끔 ‘펑!’하면서 치솟는 화염이 전장을 방불케 했다. 우리 전경부대는 도청 앞의 네거리 중 노동청 광주지방 사무소 쪽의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약 100m 떨어진 곳에 주유소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이 군중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데모대는 이 주유소에서 기름을 퍼내 차에 불을 질러, 불타는 차들을 우리 쪽으로 계속 밀어붙였다. 트럭, 버스, 승용차, 지프 등 갖가지 차들이 슬금슬금 밀려오다가 중간 지대에서 멈췄다. 불타거나 불탄 차들이 서로 뒤엉켜 절로 바리케이드가 쳐진 형세였다.
밤 9시쯤 됐을까, 군중 쪽에서 버스가 한 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버스는 부서지고 불탄 차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와 우리 전경(戰警)부대를 향해 질주하는 게 아닌가. 나는 “피해라!”하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그 버스를 향해 돌을 집어 던졌다.
그때 우리는 최루탄이 거의 떨어져 데모대가 몰려오면 투석(投石)으로 대항하고 있었다. 전경들은 양쪽으로 쫙 흩어졌다. 버스는 속도를 늦추며 오른쪽에 있는 담벼락을 긁으면서 스르르 멈추었다.
버스 쪽으로 달려가 보니 어둠 속에서 비명이 새나오고 있었다. 버스와 담벼락 사이에 경찰관들이 여러 명 끼거나 깔려 뒤엉켜 있는 게 아닌가. “어머니! 어머니!”하는 신음이 들렸다. 우리는 끌어내려고 팔, 다리를 잡아당겼다. 벌써 축 늘어진 팔, 다리였다.
거의 같은 순간 운전석에서 두 사람이 튀어나오더니 담벼락을 넘고 달아나는 게 보였다. 한 사람은 이미 달아났고 다른 한 사람이 담벼락에 다리를 걸친 순간, 두 명의 경찰관들이 달려들어 이 뚱뚱한 사람의 다리를 붙들고 늘어졌다. 그는 뒷발길질을 하여 뿌리치고는 달아났다.
우리는 플래시로 버스 바퀴를 밝히면서 사상자들을 끌어내 병원으로 옮겼다. 경찰관들은 사고 당시 담벼락 밑에 앉아서 잠시 쉬고 있었다. 전열(前列)에 있었던 젊은 전경대원들은 달려오는 버스를 보고 피해 달아날 수가 있었으나 이들 경찰관들은 앉아 있다가 뒤늦게 버스를 피하기 위해 담벼락에 붙어 서 있다가 버스와 담 사이에 끼이거나 깔린 것이었다.
(편집자 주: 이 사고로 함평경찰서 소속 정춘길 경장, 강정웅 순경, 이세홍 순경, 박기웅 순경 등 네 명이 숨졌고 김대민 순경 등 네 명이 중상을 있었다. 버스를 몬 운전사 2명은 그 뒤 경찰에 구속, 복역하다 석방됐다. 이들은 군중들이 버스를 탈취, 밀지 않으면 죽인다고 위협하여 몰고 가다가 연기 등으로 앞이 보이지 않게 되자 차를 세웠는데 그런 사고가 났다고 진술했다.)>
이런 배 씨에게 사형을 선고한 행위를 사과한 김이수 재판관을 과연 ‘헌법수호 의지’가 확고한 사람으로 볼 수 있는가는 별론(別論)으로 하고서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그를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한 것은 통진당 해산 반대 의견을 낸 점에 대하여 특별한 호감을 가지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