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죽음을 인정해야 환생한다
자유 민주 대한민국 진영(이를 편의상 '보수' 또는 '우파'라고도 부르지만 모두 다 썩 맞아떨어지는 명칭은 아니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묘수는 없다. 일단 둑이 무너져 내려 한창 밀리고 있는 마당에, 게다가 내부에서 서로 총질을 하고 욕설을 퍼부어대는 마당에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꺼낼 게제가 아니다. 지금은 붕괴하고 분해되고 해체되는 판이지, 재건과 재활을 논할,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극단적인 비관론과 터무니없는 낙관은 둘 다 부질없다. 요행을 바라서도 안 된다. 상대방의 실수나 바라고 있어서도 안 된다. 그런 건 다 미신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우선은 냉철한 평가다. 지금은 피일시(彼一時)의 세(勢)다. 3. 1 독립선언문에 나오는 말이다. '지금 당장은 그들의 세상'이란 뜻이다. 스스로 '진보'라고 자임하는 '운동권+그 심파(sympathizer, 동조자)'들이 득세한 상황이다. '보수'라고 불리는 측은 이 세를 막을 힘을 잃고 지리멸렬 해졌다.
이 상태에선 재건이니 재활이니 하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사치스럽고 버겁다. 실력도 없고 국민다수의 지지도 못 받고 당(黨)도 패잔병들이고 존경도 못 받고 사랑도 못 받고 빈축이나 사고 분열돼 있고 꽝 때리는 이론능력과 선전선동 능력도 없고 전투력과 희생정신도 없는 '보수'가 지금 당장 무슨 수로 재건-재활을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일단 죽어야 할 것 같다. 죽어야만 한다기보다, 죽고 있는 객관적 사실과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인지(認知)라도 해야 하리란 것이다. "난 안 죽었어, 안 죽을래, 내가 왜 죽어?" 해보았자 다 소용 없는 일이다. 죽을 땐 죽는 것이다. 세종 시(市)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표가 우수수 쏟아진 것만 봐도, 심지어는 국가공무원들까지 '보수'를 등졌다는 게 명백히 드러난 셈이다. 그러니 이게 '보수'가 죽은 것 아니고 뭔가? 그렇다. '보수'는 죽었다. 윤회(輪回)가 있다면 앞으로 다시 태어나겠지만, 환생도 일단 죽어야 오는 것이다. 지금은 죽음을 살고 있는, 그래야 할 기간이다. 티베트 불교에서 말하는 삶과 환생의 중간기간(bardo)이다.
죽는다는 것은 정치적으론 뭘 말하는가? 지금의 '보수 정치권'과 '보수 계(界)'가 일단 실패했음을 솔직하게 자인하고 얼마간(얼마 동안이어여 할지는 필자도 모른다)은 숙연하고 침통한 '성찰적 침잠(착 가라앉는 것)'의 시간을 가져야 하리란 것이다. 실패한 자로서 자책 없이 떠들지만 말고, 남 탓하지 말고, 뭘 하겠다고 중뿔나게 나서지 말고, 남은 고깃덩이나마 차지하려 아귀다툼 하지 말고, 추태 부리지 말고, 그냥 좀 정관(靜觀, 조용히 지켜보는)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그럼 아예 판 거두자는 소리냐고? 아예 망해버리자는 소리냐고? 그건 아니다. 환생을 준비하기 위해 업(業)을 씻자는 이야기다. 어떻게? 원리원칙 그대로라면 지금의 '보수정치권'은 일단 자잔 해체해버렸으면, 그래서 처음부터 새로운 역군들이 새로 시작했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당위성은 있되 현실성은 없다. 새 사람이 말이 그렇지 어디 그렇게 많은가? 젊다고 해서 다 청신한 것도 아니다. 젊은 패가 오히려 늙은 패 뺨치게 속(俗)된 경우도 많다. 그래서 막상 새 사람 모이자 해도 나올 인구가 별로 없다.
결국 지금의 '보수' 정치인들 가운데 누군가를 중심인물로 만들어주어 그로 하여금 신장개업을 하게 해 줄 수밖에 없다. 누구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 일도 일단은 진지한 죽음의 기간을 거쳐 논의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지금은 죽음을 살아야 할 시간이다. 장엄미사곡이라도 들으며. '보수'여, 현재로선 죽었느니라.
류근일 2017/5/20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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