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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 칼럼] 美 航母가 오는데 왜 우리가 떠나

鶴山 徐 仁 2017. 4. 12. 20:59

[선우정 칼럼] 美 航母가 오는데 왜 우리가 떠나


입력 : 2017.04.12 03:17   

미국의 강공 전략에 한국이 먼저 두려워한다
용기도, 배짱도 없이 得失에나 연연하는 동맹국을 끼고 北核을 어떻게 해결하나

선우정 논설위원
선우정 논설위원


이란 핵(核)이 북핵과 다른 길을 간 데엔 거친 이웃들의 역할이 컸다. 이란의 핵개발 문제가 제기되자 이스라엘은 "미국이 막지 않으면 우리가 핵 시설을 폭격하겠다"고 했다. 말로 그치지 않고 이란의 핵 과학자 5명을 암살한 의심까지 받는다. 또 다른 이웃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국왕이 미국에 요구한 말은 무섭다. 뱀의 목을 쳐달라고 했다. 이란에 대한 선제공격 요구였다. 거친 이웃들이 와글거리는 가운데 미국은 이란에 카드를 내밀었다. '타협 아니면 폭격.' 확실한 신호였다. 게임의 정석이라 할 만하다.

북핵이 이란 핵 문제와 다른 길을 간 것에 대해 사람들은 여러 이유를 댄다. 북한의 숨통을 쥐고 있는 중국이 북한을 옹호하면서 북핵 문제에 미온적이기 때문이라고 원망한다. 미국이 중동과 테러 이슈에만 신경 쓰고 북핵 문제를 방치하다가 '실패한 30년'을 자초했다고도 비난한다. 무리한 비판이 아니다. 미·중은 핵 기득권자로서 한국의 핵무장을 막고 있다. 무슨 방법으로라도 북한의 핵무장을 막아야 할 의무가 그들에게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웃인 우리의 책임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제 밤 일본 공영방송 NHK가 한반도 긴장 상황을 보도했다. 미 핵 추진 항공모함 전단(戰團)의 한반도 이동을 보도하면서 '북폭설(北爆說)'을 소개했다. 미 정부의 강경 자세로 미뤄 낭설로만 넘길 수 없다는 뉘앙스였다. 하지만 실행되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자국민 피해를 우려해 북폭에 반대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발언이 마침 정부에서 나왔다. 통일부는 "(북폭설을)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장관도 나서 "안보의 핵심은 국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외교는 게임이다. 게임엔 전략이 있다. 강공(强攻)은 상대의 공포심을 자극해 양보를 유도하는 전략이다. 항모 전단 재배치와 북폭설도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얼마 전 미국은 시리아를 실제로 폭격했다. '타협 아니면 폭격'이라는 확실한 신호를 북한에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10년 전 이스라엘이 이란 폭격 의지를 내보이기 위해 때린 곳도 시리아였다. 그땐 세상이 믿었다. 그런데 지금은 확신하지 않는다. 북폭설이 나오면 북한보다 더 큰 공포를 느끼고 요동치면서 반대하는 쪽이 한국이기 때문이다. 적국을 위협했는데 동맹국이 먼저 떨면 어떤 강공도 통하지 않는다.

'떠다니는 군사기지'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 전단이 오는 15일 전후로 한반도 인근 해상에 도착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한미 합동 '독수리' 군사훈련에 참가 중인 칼빈슨호에서 지난 3월14일 F/A-18 전투기가 발진 준비를 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24년 전 서해의 한 섬을 취재했다. 미국의 북폭설이 퍼지면서 서울에서 사재기가 일어날 때였다. 그 섬은 전쟁이 일어나면 고립될 수밖에 없다. 피난처가 없는 곳이다. 주둔한 군인은 물론 주민도 폭격을 피하기 어렵다. 그곳에 사는 이상 각오한 듯했다. 만난 사람 모두 담담했다. 섬 주민의 이야기를 기사로 작성해 송고했지만 실리지는 못했다. 카터 전 미 대통령이 북한에 들어가면서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길었던 북한과의 타협은 결국 실패했다. 그때 서울이 서해 섬마을처럼 늠름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적어도 이 지경에 이르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이스라엘을 닮기는 어렵다. 70년 동안 같은 민족끼리 한 번 전쟁 한 나라와 아랍 전체를 상대로 네 번 이상 전쟁한 나라의 상무(尙武) 정신은 다르다. 두 나라 국민의 용기와 배짱 차이는 역사에서 겪은 고난의 농도에 비례할 것이다. 피를 피로써 갚는 그들의 생존술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분열된 중동에서 통할 뿐 강대국에 둘러싸인 동북아에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다간 나라가 지도에서 지워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나치다. 한반도 위기설이 돌면 먼저 주가(株價)를 걱정한다. 북 핵시설을 폭격하면 북의 무차별 공격으로 서울이 불바다 된다는 공갈을 당연하게 여긴다. 미 항모 전단에 우리가 몸을 떠는 현실은 여기서 비롯된다. 국방비로 매년 38조원을 쏟아 부어도 이렇게 흔들리면 한국은 누구도 이길 수 없다. 언젠가 동맹국 자격도 의심받을 것이다.

어느 대선 후보는 북폭설과 관련해 "전쟁은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국민 모두 같은 마음이다.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국가 지도자는 그렇게 말해선 안 된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정상적 타협이 물 건너가고 굴종만 남는다. 요즘 대통령 선거에 나간 후보들 사이에 가장 심한 야유가 '남자 박근혜'라고 한다. 그렇게 조롱을 당하는 처지이지만 박 전 대통령에게도 평가할 만한 업적이 있다. 그중 하나가 군사 충돌 위기에 굳건히 대처해 지뢰 만행에 대한 북의 유감 표명을 받아낸 것이다. 아집과 불통의 정치 뒤엔 이런 강한 측면이 있었다. 박근혜 시대를 부정해도 이것만은 배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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