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 모두 패배 시 불복 태세
정·교계 리더가 화합 이끌어야
불길한 예언일수록 맞는 법인가. 탄핵안 발의 직전이던 지난해 11월, 한자리에 모인 정계 원로 20여 명이 박근혜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을 촉구하며 던진 경고는 이랬다. “탄핵 심판이 시작되면 심각한 국론 분열이 일어날 것이다.” 불행히도 현자들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나뿐이 아닐 게다 “어떻게 결정되든 이 진절머리나는 혼란이 하루빨리 끝났으면” 하고 바라는 건. 하지만 과연 그렇게 될까.
지난해에는 국론 분열을 앓은 나라가 유독 많았다. 지난해 6월 유럽연합(EU) 잔류를 놓고 국민투표를 한 영국은 현역 의원이 살해될 정도로 혹독한 갈등을 치렀다. 특히 세대 간 갈등이 격심했다. 유럽 대륙을 제 집 드나들 듯한 젊은층은 잔류를 원한 반면 노·장년들은 탈퇴를 지지한 탓이다. 최악의 저질 대선을 치른 미국에서도 국론이 갈려 도널드 트럼프 당선에 대한 불복종 운동까지 벌어졌다.
한국과 비슷한 길을 걸었던 건 브라질이었다. 부패 의혹으로 첫 여성 대통령이던 지우마 호세프에 대한 탄핵안이 제기되자 400개 도시에서 찬반 시위가 격렬했다. 결국 그해 8월 탄핵안이 통과돼 호세프는 물러나야 했다.
주목할 대목은 탄핵 후에도 브라질의 찢긴 국론은 아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격렬한 시위는 계속됐으며 심지어 미셰우 테메르 신임 대통령마저 탄핵당하는 정치 불안이 이어졌다. 안정을 먹고사는 경제가 잘될 리 없었다. 2015년 -3.8%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 성장률도 -3.5%에 그쳤다. 실업률은 사상 최악인 12.6%로 치솟아 무직자가 1300만 명에 달했다.
우리도 브라질보다 별반 나은 게 없다. 곳곳에서 ‘촛불 좀비’ ‘아스팔트 할배’ 같은 증오의 막말이 넘친다. 탄핵 찬성 쪽은 “기각되면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반대 측은 “인용되면 아스팔트에 피가 뿌려질 것”이라고 협박한다. 적잖은 대선 주자들까지 “원하지 않는 결정이면 수용하지 말라”고 대놓고 불복종을 부추긴다. 이대로라면 온 나라가 지금보다 더 격렬한 국론 분열의 불구덩이로 뛰어들 게 뻔하다.
물론 상황이 어렵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외국의 대응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브렉시트로 나라가 쪼개진 영국에서는 테리사 메이 총리가 앞장섰다. 그는 취임 즉시 탈퇴파는 물론 잔류파까지 아우르는 내각을 꾸렸다. 탕평책으로 민심의 통합을 꾀한 거다.
종교 지도자들도 발 벗고 나섰다. 영국 성공회의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주교는 물론 첫 무슬림 런던 시장인 사디크 칸도 종교적 관용에 따른 화합을 역설하고 있다.
최근 가장 극적인 분열 극복 사례는 공화당 조지 W 부시와 민주당 앨 고어가 맞붙었던 2000년 미국 대선일 것이다. 당시 최대 격전지였던 플로리다주 선거는 투표 용지에 펀치로 구멍을 뚫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오목하게 들어가긴 했지만 구멍이 완전히 안 뚫리는 바람에 무효 처리된 표가 무더기로 나와 격렬한 논쟁이 빚어졌다.
결국 연방대법원이 부시의 손을 들어주는 바람에 고어는 고배를 마셔야 했다. 당시 민주당 측에서는 대법원 결정에 불복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 미국은 심각한 국론 분열 직전까지 갔었다. 당시 문제 투표소 모두 민주당 우세 지역이었던 탓이다.
하지만 고어는 “대법원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지만 미국인의 단합과 민주주의를 위해 수용한다”고 선언했다. 국론 통합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막강하다는 미 대통령 자리를 양보한 것이다.
지금까지 벌어졌던 혼란과 갈등만으로도 지긋지긋하다. 탄핵 심판 후에도 국론 분열이 계속되지 않게 영국처럼 정치인은 물론 종교계 지도자들도 힘을 보태길 바란다.
만약 탄핵이 기각된다면 박 대통령 스스로 “그간의 혼란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권좌에서 물러나는 게 현명한 처사다. 그러면 자신이 잃었던 명예도 단박에 회복하는 것은 물론 국민 대통합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남정호 논설위원
나뿐이 아닐 게다 “어떻게 결정되든 이 진절머리나는 혼란이 하루빨리 끝났으면” 하고 바라는 건. 하지만 과연 그렇게 될까.
지난해에는 국론 분열을 앓은 나라가 유독 많았다. 지난해 6월 유럽연합(EU) 잔류를 놓고 국민투표를 한 영국은 현역 의원이 살해될 정도로 혹독한 갈등을 치렀다. 특히 세대 간 갈등이 격심했다. 유럽 대륙을 제 집 드나들 듯한 젊은층은 잔류를 원한 반면 노·장년들은 탈퇴를 지지한 탓이다. 최악의 저질 대선을 치른 미국에서도 국론이 갈려 도널드 트럼프 당선에 대한 불복종 운동까지 벌어졌다.
한국과 비슷한 길을 걸었던 건 브라질이었다. 부패 의혹으로 첫 여성 대통령이던 지우마 호세프에 대한 탄핵안이 제기되자 400개 도시에서 찬반 시위가 격렬했다. 결국 그해 8월 탄핵안이 통과돼 호세프는 물러나야 했다.
주목할 대목은 탄핵 후에도 브라질의 찢긴 국론은 아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격렬한 시위는 계속됐으며 심지어 미셰우 테메르 신임 대통령마저 탄핵당하는 정치 불안이 이어졌다. 안정을 먹고사는 경제가 잘될 리 없었다. 2015년 -3.8%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 성장률도 -3.5%에 그쳤다. 실업률은 사상 최악인 12.6%로 치솟아 무직자가 1300만 명에 달했다.
우리도 브라질보다 별반 나은 게 없다. 곳곳에서 ‘촛불 좀비’ ‘아스팔트 할배’ 같은 증오의 막말이 넘친다. 탄핵 찬성 쪽은 “기각되면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반대 측은 “인용되면 아스팔트에 피가 뿌려질 것”이라고 협박한다. 적잖은 대선 주자들까지 “원하지 않는 결정이면 수용하지 말라”고 대놓고 불복종을 부추긴다. 이대로라면 온 나라가 지금보다 더 격렬한 국론 분열의 불구덩이로 뛰어들 게 뻔하다.
물론 상황이 어렵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외국의 대응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브렉시트로 나라가 쪼개진 영국에서는 테리사 메이 총리가 앞장섰다. 그는 취임 즉시 탈퇴파는 물론 잔류파까지 아우르는 내각을 꾸렸다. 탕평책으로 민심의 통합을 꾀한 거다.
종교 지도자들도 발 벗고 나섰다. 영국 성공회의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주교는 물론 첫 무슬림 런던 시장인 사디크 칸도 종교적 관용에 따른 화합을 역설하고 있다.
최근 가장 극적인 분열 극복 사례는 공화당 조지 W 부시와 민주당 앨 고어가 맞붙었던 2000년 미국 대선일 것이다. 당시 최대 격전지였던 플로리다주 선거는 투표 용지에 펀치로 구멍을 뚫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오목하게 들어가긴 했지만 구멍이 완전히 안 뚫리는 바람에 무효 처리된 표가 무더기로 나와 격렬한 논쟁이 빚어졌다.
결국 연방대법원이 부시의 손을 들어주는 바람에 고어는 고배를 마셔야 했다. 당시 민주당 측에서는 대법원 결정에 불복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 미국은 심각한 국론 분열 직전까지 갔었다. 당시 문제 투표소 모두 민주당 우세 지역이었던 탓이다.
하지만 고어는 “대법원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지만 미국인의 단합과 민주주의를 위해 수용한다”고 선언했다. 국론 통합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막강하다는 미 대통령 자리를 양보한 것이다.
지금까지 벌어졌던 혼란과 갈등만으로도 지긋지긋하다. 탄핵 심판 후에도 국론 분열이 계속되지 않게 영국처럼 정치인은 물론 종교계 지도자들도 힘을 보태길 바란다.
만약 탄핵이 기각된다면 박 대통령 스스로 “그간의 혼란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권좌에서 물러나는 게 현명한 처사다. 그러면 자신이 잃었던 명예도 단박에 회복하는 것은 물론 국민 대통합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