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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격기_구식의 위력을 보여주다

鶴山 徐 仁 2016. 10. 22. 13:38

bemil 유용원의 군사세계



[무기의세계]


뇌격기_구식의 위력을 보여주다

소드피쉬(Swordfish)



상징과도 같은 760kg 어뢰의 모형을 장착하고 시범 비행 중인 소드피쉬 뇌격기. <출처: (cc) Tony Hisgett at Wikimedia.org>



무기, 특히 중화기나 중장비일수록 정작 제때 사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M16 소총처럼 절실히 필요한 순간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등장한 사례도 있긴 하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때문에 M16이 탄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했던 소총이 그 전쟁을 통해 빛을 발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또한 무기는 개발과 보유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므로 성능이 현격하게 뒤질 정도가 아니라면 내구연한을 채울 때까지 보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일단 기존에 개발된 무기로 싸우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오래전에 도입되어 구식이 되어버린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제2차 대전처럼 전쟁이 장기화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 신예 무기들이 속속 개발되므로 전쟁 초기와 말기의 무기를 비교하면 한마디로 차원이 다를 정도다. 예를 들어 독일의 1, 2호 전차와 5, 6호 전차는 단지 전차라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무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래전에 만들어진 무기라 해서 살상력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므로 필요하다면 계속 실전에 투입될 수 있다. 전쟁은 모든 것을 걸고 벌이는 거대한 도박이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시대에 뒤진 빈약한 무기들이 승리의 주역이 되기도 하고, 종종 예상을 뛰어넘는 커다란 전과를 올리기도 한다. 영국의 소드피쉬(Swordfish) 뇌격기가 바로 그러한 사례에 해당되는 대표적 무기였다고 할 수 있다.

제2차 대전 당시 맹활약한 소드피쉬 뇌격기는 스피트파이어, 허리케인 등과 더불어 영국인들의 자부심으로 남은 군용기다.

 

 

어뢰를 하늘에서도 투하하다


해전사를 살펴보면 탄약고 등에 직격탄을 맞고 굉침(轟沈)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사실 적함을 침몰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갑판 상부를 타격하는 것이 아니라, 배의 흘수선(吃水線) 아래를 격파하는 것이다. 군함은 갑판 위의 무장이 아무리 심한 타격을 입어도 선체만 온전하면 수리해서 쓸 수 있지만 침몰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포탄이나 폭탄으로 흘수선 아래를 정확히 타격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결국 이런 목적에 최적화된 무기가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어뢰다. 어뢰는 물속을 가로질러 표적을 공격하므로 선체 하부의 격파에 적합하다. 현대식 어뢰는 1866년에 탄생했지만 B.C 7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펜티콘터(Penteconter)에 장착했던 충각(衝角)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만큼 흘수선 아래의 공격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도된 적함 격침 방법이었다.

1940년 소드피쉬 편대의 기습을 받고 격침당한 이탈리아 전함 카보우르. 전쟁사에 뇌격기의 효용성이 빛을 발한 대표적 사례다.

엄청난 무장을 갖춘 거함이라도 선체 밑에 구멍이 나면 침몰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어뢰의 등장은 소형 함정이나 잠수함이 주력함에 맞설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소형 함정은 거친 대양에서의 작전이 어렵고 잠수함은 속도가 느려 목표물까지 신속히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비행기를 이용해 어뢰를 투하하는 방법이 궁리되었고, 이렇게 해서 탄생한 작전기가 바로 뇌격기(雷擊機)다.

현대에 들어와 대함미사일을 비롯한 다양한 공격 방법이 일반화되면서 뇌격기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작전기가 되었지만, 제2차 대전 당시만 해도 해전의 당당한 주역 중 하나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뇌격기는 해군 열강들이 사용했다. 지상 기지에서 연안 해역의 제해를 목적으로 운용할 수도 있지만 대양에서 사용하려면 항공모함에 탑재되어야 했다. 따라서 전사에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뇌격기는 대부분 함재기의 형태였다.

제2차 대전 발발 직전인 1939년 항공모함 아크로열 상공 위를 비행 중인 소드피쉬 편대.

 

 

정체기에 접어든 영국 해군의 고민


영국은 1913년에 81형(Short Type 81) 수상기를 이용해 어뢰 공중투하 실험을 사상 처음으로 실시한 국가다. 또 제1차 대전 당시 184형(Short Type 184) 수상기에서 발사한 어뢰로 적국(오스만)의 선박을 격침시키는 데 최초로 성공한 뇌격기 분야의 선도국이었다. 하지만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당한 항공모함 전력을 구축한 미국, 일본에 비해 서서히 전력이 뒤지기 시작했다.

미국이나 일본도 거함거포주의1)를 신봉했지만 나름대로 항공모함 전력 구축에 열심이었던 반면, 영국은 최초로 항공모함을 만들고 실전에 사용한 나라였으면서도 발전이 정체되어 있었다. 사실 이는 항공모함뿐 아니라 영국군 전반에 걸쳐서 나타난 문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20세기 들어 영국의 국력이 서서히 쇠퇴하면서 이전처럼 군비 확장을 추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전에서 최초로 어뢰를 공중투하해 격침 전과를 올린 184형 수상기. 정찰이나 뇌격기 용도로 사용된 184형은 총 936기가 생산되어 1930년대 초까지 8개국에서 사용한 베스트셀러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영국의 자존심이자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해군 전력은 현 상태가 유지되어야 했다. 제1차 대전 직전까지 계속된 대규모 신조함 건조 같은 대대적 투자는 불가능하다 해도 노후 무기의 순차적 대체는 할 필요가 있었다. 그중 1910년대에 개발된 Mk. III 뇌격기는 시급히 교체해야 할 대상 중 하나였다. 하지만 예산이 한정되다 보니 개발에 투자할 비용 등은 최대한 절감해야만 했다.

당국이 고민하고 있을 때 Mk. III 뇌격기를 해군에 공급했던 페어리(Fairey)로부터 제안이 들어왔다. 자체 개발 중인 그리스 수출용 해상 정찰기를 바탕으로 신예 뇌격기를 제작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해군은 페어리가 뇌격기를 만든 노하우가 있고 이미 기체가 완성 단계였던 관계로 개발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고 보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1933년 곧바로 사업이 시작되었고 이듬해 시제기가 초도 비행에 성공했다.

항공모함 퓨리어스에서 운용 중인 페어리 Mk. III 뇌격기. 1918년부터 사용한 구식 기종으로 이를 대체하기 위해 소드피쉬가 개발되었다.

 

 

독일 함정에겐 악마와도 같았던 존재


이 신예 뇌격기는 3명이 탑승하고도 760kg의 대형 어뢰를 장착할 수 있을 만큼 힘이 좋았고 경우에 따라 폭탄을 장착해 폭격기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최대 속도가 시속 230km로 느렸지만 뇌격기는 목표물에 저고도 수평 비행으로 접근하여 제한된 속도 내에서 어뢰를 투하해야 하므로 당국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각종 실험에 통과한 이 뇌격기는 소드피쉬(황새치)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1936년부터 양산이 개시되어 일선에 공급되었다.

그런데 이때는 전술기들이 고속 비행에 적합한 단엽기로 바뀌던 시기였다. 반면 소드피쉬는 1920년대 말에 설계가 완료된 기체를 베이스로 한 복엽기여서 이착륙, 선회력 등은 좋았지만 비행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기에는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미국의 뇌격기 TBD와 비교해 성능 차이가 크지 않았지만 오픈 조종석을 가진 복엽기여서 데뷔와 동시에 구닥다리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덕스포드의 전쟁박물관에 전시 중인 소드피쉬 NF370호. 1930년대에 탄생하였지만 복엽기에 고정식 강착장치와 오픈된 조종석을 갖춘 구식 기종이었다. <출처: (cc) Roland Turner at Wikimedia.org>





조금 늦게 등장한 일본의 B5N이나 미국의 TBF와는 비교가 곤란할 만큼 객관적 성능의 차이가 현격했다. 만일 사업이 2~3년 늦게 시작되었다면 소드피쉬도 당시의 트렌드를 따라 단엽기 형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시기에 등장한 영국 공군의 단엽기 허리케인(Hurricane)이 원래 복엽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이 때문에 영국도 전쟁이 발발한 후 즉각 소드피쉬의 후계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을 정도다.

이처럼 등장과 동시에 구식 취급을 받았지만 소드피쉬는 전쟁 내내 주인공 역할을 했다. 항공모함이 없었던 독일은 연안을 벗어난 함정들을 하늘에서 보호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소드피쉬들은 비행 성능이 좋지 않았음에도 요격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작전을 펼칠 수 있었다. 특히 대서양 일대에 출몰해 기습 공격을 가하던 독일의 U보트를 제거하는 데 많은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이는 신화의 일부일 뿐이었다.

시범 비행 중인 소드피쉬 편대. 항공대가 보잘것없었던 독일 해군의 함정에게는 그야말로 악마와 같은 존재였다.

 

 


구식 기종이 써 내려간 전설


1940년 11월 11일, 항공모함 일러스트리어스(HMS Illustrious)에서 출격한 12기의 소드피쉬들이 2차례에 걸쳐 이탈리아 타란토(Taranto) 항구를 급습했다. 2기가 격추되었지만 전함 3척을 격침하고 순양함 2척을 대파한 뒤, 유류저장소를 비롯한 다수의 시설에 타격을 입혔다. 1년 후 진주만 공습에 나선 일본이 교과서로 삼았을 만큼 획기적인 전과였다. 가뜩이나 영국 해군을 겁내던 이탈리아 해군은 이 사건 이후 지중해로 나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독일과의 해전에서도 엄청난 전과를 올린 일이 있었다. 영국 해군은 1941년 5월 18일 독일의 거대 전함 비스마르크(Bismarck)가 출항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즉각 추격에 나섰다. 최초의 교전에서 순양전함 후드(HMS Hood)가 굉침당하기도 했지만 5월 27일, 결국 대어를 낚는 데 성공했다. 소드피쉬가 쉴 새 없이 출격하며 발사한 어뢰 중 한 발이 비스마르크의 조타기를 손상시켜 조종 불능 상태가 되자 영국 함대가 추월해 공격에 성공했던 것이다. 작은 황새치가 고래에게 치명상을 안겨준 셈이었다.

독일 전함 비스마르크를 추격할 당시 항공모함 빅토리우스의 갑판에 주기 중인 소드피쉬 편대.



복엽기였던 소드피쉬는 탄생 직후부터 시대에 뒤진 구식 기종으로 취급받았지만 피격을 당해도 외피를 덮은 천에 구멍만 나는 정도여서 생존성이 좋았고 수리와 유지보수도 간편했다. 한마디로 가동률 측면에서 볼 때 뛰어난 효과를 올린 작전기라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하늘에서 적기를 만나면 속수무책이었고 많은 희생이 발생했다. 어쩌면 이러한 희생이 있었기에 황새치의 전설이 생겨날 수 있었을 것이다.

1940년부터 성능이 개선된 알바코어(Albacore)가 도입되었지만 영국은 소드피쉬를 1944년까지 총 2,391기 생산해 마르고 닳도록 사용했다. 하지만 독일이 항복한 직후 곧바로 일선 부대를 해체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부족한 점도 분명히 많은 기종이었다. 비록 소드피쉬는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으로 탄생했고 성능도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가장 중요한 시기에 묵묵히 제 역할을 기대 이상으로 완수한 대표적 무기다. 그 점만으로도 대단한 평가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성능이 뛰어나다고 볼 수 없는 구닥다리 기종이었지만 소드피쉬는 항공전사의 한 장을 당당히 차지할 전설을 써 내려갔다. <출처: (OGL) Photo: LA(PHOT) Abbie Herron/MOD at Wikimedia.org>

 

 

제원(Swordfish I 기준) 

전장 10.87m / 전폭 13.87m / 전고 3.76m / 최대이륙중량 3,450kg / 최대 속도 시속 230km / 작전반경 840km / 작전고도 5,030m / 무장 빅커스 7.7mm 기관총 2문, 760kg 어뢰 1발 또는 700kg 폭탄 1발 또는 RP-3 로켓 8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