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文學산책 마당

[스크랩] 양전형 여름 꽃 시편

鶴山 徐 仁 2016. 7. 4. 21:13


장마 중에 맞은 7월 첫날 같은 월요일.

동쪽 하늘은 밝은 빛을 띠었지만

잿빛 구름 가득한 하늘이다.

 

이런 날은 꽃을 보면서

밝고 맑은 마음으로 시작할 일이다.

 

양전형 시집

꽃도 웁니다의 시를 골랐다.

        

 

 

나팔꽃

 

휘청거리는

홍등가 골목

새벽녘

울타리 밖으로 고개 내민

화장기 가득한 얼굴

시간 있으세요?

짧은 사랑 긴 추억

, , !

따세요 나를

        

 

 

부용화

 

엊그제 태풍이

가지 몇 개 부러트리고

꽃잎 다 날리며 지나갔지만

자꾸 피고 싶은 부용이의

욕망은 훔쳐가지 못했다

 

오늘 아침 몸 가득

하얀 꽃잎 열더니

태양과 마주했다

서로 바라볼수록

뜨거움에 취했다

서산해가 얼굴 붉힐 즈음

부용의 꽃잎도 붉어졌다

 

부용아 부끄러워 말아라

그건 진정 청순한 일이며

너와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세상 사람들 다 그렇다

        

 

 

백합

 

무슨 소리가 들린다

 

과속 자동차의 날파람에

여린 이파리 찢겨지는 가로수의 비명이다

해묵은 천식으로 쿨럭거리는

할아버지의 기침소리와

어제보다 더 굽은 등

절름거리는 할머니의 지팡이 소리다

아니 저건,

먼 인연 찾아다니다 지쳐

애꿎은 가뭄의 풀꽃들 피어나라 재우치는

마파람의 짓거리

초름한 불꽃들 신음소리다

 

그대 앞에 서면

별별 소리 다 들린다

귀 밝히는 백의의 천사들

애틋한 향기 단아한 순결로

세상을 향해 일제히 귀를 세운 유월

        

 

상가리 배롱나무

 

우뚝 핀 엉겅퀴를 머리에 인

홑무덤, 에워싼 울담 밖

상가리가 고향인 배롱나무

자홍색 꽃을 무덕무덕 열었다

 

망자의 꽃 같던 시절이 돌아온 것

싱그럽게 트인 말문

떨어지는 언어들은 바람이 풀어간다

 

달은 그때 그 시절의 달

그랬었지, 저 사람 절색이었지

팔월 햇살 뒤에 숨어

희부연 낮달이 수줍은 듯 웃는다

 

망자는 영면의 꿈을 꽃으로 말한다

세상을 엿듣던 들새 몇 마리

가만가만 꽃을 들고

배롱나무의 상가리는 의연하다

    

 

 

사계리 해당화

 

너울지며

바람 이고 달려와

산산조각 부서지는 숙명 파도가

흐드러진 꽃무더기 보았는 듯

오늘따라 갈기 높이 세웠다

갯마을 해당화는

바람의 속내를 단숨에 읽는다

 

그렇게 수십 년

모래밭에 내린 꽃의 뿌리는

외로움만 무시로 밀어 올린다

 

외로움으로 피워 낸 꽃은

풀풀 나는 향기가 요요롭다

 

어느 바다에서 흘러온 바람도

이 향기를 비켜갈 수 없다

이 잠결의 꽃잎을

한 번씩 품고 나서

풀린 다리 휘청이며 풀숲에 스러진다

 

외로운 향기 흐드러진

사계리 해당화

몰려드는 바람 모두 품으며 산다

멀리 일렁이는 파도를 보며

가끔, 눈물 뚝뚝 떨구며 산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