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중에 맞은 7월 첫날 같은 월요일.
동쪽 하늘은 밝은 빛을 띠었지만
잿빛 구름 가득한 하늘이다.
이런 날은 꽃을 보면서
밝고 맑은 마음으로 시작할 일이다.
양전형 시집
‘꽃도 웁니다’의 시를 골랐다.
♧ 나팔꽃
휘청거리는
홍등가 골목
새벽녘
울타리 밖으로 고개 내민
화장기 가득한 얼굴
시간 있으세요?
짧은 사랑 긴 추억
따, 따, 따!
따세요 나를
♧ 부용화
엊그제 태풍이
가지 몇 개 부러트리고
꽃잎 다 날리며 지나갔지만
자꾸 피고 싶은 부용이의
욕망은 훔쳐가지 못했다
오늘 아침 몸 가득
하얀 꽃잎 열더니
태양과 마주했다
서로 바라볼수록
뜨거움에 취했다
서산해가 얼굴 붉힐 즈음
부용의 꽃잎도 붉어졌다
부용아 부끄러워 말아라
그건 진정 청순한 일이며
너와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세상 사람들 다 그렇다
♧ 백합
무슨 소리가 들린다
과속 자동차의 날파람에
여린 이파리 찢겨지는 가로수의 비명이다
해묵은 천식으로 쿨럭거리는
할아버지의 기침소리와
어제보다 더 굽은 등
절름거리는 할머니의 지팡이 소리다
아니 저건,
먼 인연 찾아다니다 지쳐
애꿎은 가뭄의 풀꽃들 피어나라 재우치는
마파람의 짓거리
초름한 불꽃들 신음소리다
그대 앞에 서면
별별 소리 다 들린다
귀 밝히는 백의의 천사들
애틋한 향기 단아한 순결로
세상을 향해 일제히 귀를 세운 유월
♧ 상가리 배롱나무
우뚝 핀 엉겅퀴를 머리에 인
홑무덤, 에워싼 울담 밖
상가리가 고향인 배롱나무
자홍색 꽃을 무덕무덕 열었다
망자의 꽃 같던 시절이 돌아온 것
싱그럽게 트인 말문
떨어지는 언어들은 바람이 풀어간다
달은 그때 그 시절의 달
그랬었지, 저 사람 절색이었지
팔월 햇살 뒤에 숨어
희부연 낮달이 수줍은 듯 웃는다
망자는 영면의 꿈을 꽃으로 말한다
세상을 엿듣던 들새 몇 마리
가만가만 꽃을 들고
배롱나무의 상가리는 의연하다
♧ 사계리 해당화
너울지며
바람 이고 달려와
산산조각 부서지는 숙명 파도가
흐드러진 꽃무더기 보았는 듯
오늘따라 갈기 높이 세웠다
갯마을 해당화는
바람의 속내를 단숨에 읽는다
그렇게 수십 년
모래밭에 내린 꽃의 뿌리는
외로움만 무시로 밀어 올린다
외로움으로 피워 낸 꽃은
풀풀 나는 향기가 요요롭다
어느 바다에서 흘러온 바람도
이 향기를 비켜갈 수 없다
이 잠결의 꽃잎을
한 번씩 품고 나서
풀린 다리 휘청이며 풀숲에 스러진다
외로운 향기 흐드러진
사계리 해당화
몰려드는 바람 모두 품으며 산다
멀리 일렁이는 파도를 보며
가끔, 눈물 뚝뚝 떨구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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