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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그녀-국회의원 나경원/ 여성조선

鶴山 徐 仁 2014. 9. 6. 23:48

돌아온 그녀-국회의원 나경원


나경원 의원이 33개월의 정치 공백기를 깨고 국회로 돌아왔다.
그에게 3만8천3백11표를 건넨 서울 동작구의 한 작은 공원에서 나경원 의원을 만났다.


글 | 김보선 편집 데스크   글 | 김가영 여성조선 기자   사진 | 정현석


  




이제는 3선, 나경원의 화려한 재기
나경원 의원의 이번 7·30 보궐선거 당선은 여러모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3년 만의 정치 복귀, 최대 격전지였던 ‘동작을’에서의 승리, 그리고 이번 당선을 계기로 새누리당 최초의 여성 3선 의원이 되었다는 점이다. 차기 대선 후보로도 거론될 만큼 그의 입지가 급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그간 못 나눈 정치 ‘썰’을 풀었다. 

얼마 전에 당 최고위원 후보로도 거론이 됐던데요.

저는 오랜만에 쉬다 들어와서요. 당의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하나하나 제 일을 챙기고 싶어요. 최고위원이나 이런 것보다는 해당 지역의 의원으로서, 국회의원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챙겨보려고요. (인터뷰 도중 나 의원은 주민들이 지나갈 때마다 “안녕하세요. 산책하시나 봐요” 하는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앞으로도 동작을 지역에서 출마할 계획인가요?
그럼요. 정치인은 한번 지역구를 정했으면 그 지역구를 옮기는 건 맞지 않고요. 사실 제가 이번에 지역구 옮기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이었거든요. (중구에서) 동작으로 왔으니까 잘 뿌리를 내려야죠. 동작 지역구는 할 일이 많은 것 같고, 그래서 일이 재밌을 것 같아요.

이기기 쉽지 않은 지역이었죠.
동작 지역이 그동안 워낙 ‘야세’가 강한 지역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선이 됐다는 점에서 이 지역에서 여당 의원으로서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2012년에는 당에서 공천(서울 중구)을 못 받았고 그전에는 서울시장에도 낙선했어요. 그러던 차에 된 이번 19대 국회의원 당선은 남다른 의미를 가질 것 같습니다.
정치를 다시 하게 됐다는 게 저한테는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사실 다선 의원들, 그동안 어느 정도 역할을 하던 의원들이 재기를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면이 있거든요. 이번에도 다선 의원들이 다 낙선하지 않았어요?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 입지가 있는 의원들한테는 그만큼 힘든 요구가 많았는데, 어쨌든 그걸 뚫고 다시 의회에 돌아갈 수 있게 되었죠. 

여당에서는 여성 최초로 3선에 성공했죠.
여성으로는 최고선 의원이 되었죠. 근데 또 여성, 남성을 떠나서 3선 의원이라면 해야 할 역할들이 있잖아요? 그런 부분들을 너무 급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시작할 생각이고요.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여러 선거에도 떨어져보고, 공천도 못 받고, 어떻게 보면 전부 내려놓을 수 있었던 33개월을 보낸 것이 저한테 큰 자양분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해요. 그전까지 약 10년을 정치권에 발 담고 있으면서 저도 모르게 국민들하고 멀어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거든요. (쉬는 동안) 국민의 입장에서, 정치의 아웃사이더 입장에서 정치를 바라보며 느낀 점도 있고요. 그런 것들이 다시 시작하는 정치활동에 큰 거름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겠구나, 그래서 우리 당이나 정치에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봅니다.

2002년도에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마음가짐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그때는 정치를 몰랐죠.(웃음) 그땐 ‘국회의원을 한다’고 생각하고 입법활동을 하러 들어왔다면, 지금은 정치인으로서 어떤 포지션을 갖고 조금 더 크게 생각한다는 차이점이 있겠죠. 

비례대표에 당선된 후 당시 인터뷰에서 “감동을 주는 정치를 하겠다”고 했어요. 33개월 동안 정치를 쉬고 다시 들어왔을 때는 어떤 마음가짐의 변화가 있었을까요?
지금은 정치가 국민들에게서 많이 멀어져 있다는 생각이 많잖아요. 맨날 여야가 합의를 했다가 깨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 이유가 여야 모두 너무 핵심 지지층만 바라보고 정치를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여당이든 야당이든 ‘내가 이겨야 돼’라는 생각이 강한 것 같아요. 나만 이기려고 하는 정치인 거죠. 저 역시 17대, 18대 의정활동 하면서 그랬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의 삶과는 자꾸 멀어지는 거고요. 결국 나만 이기는 게 아니라, 모두가 승자가 되는 정치를 해야 국민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이제는 3선인 만큼 그런 합의를 이끌어내는 영역의 정치활동을 하고 싶어요. 지금 보면 야권도 힘든 게 본인들 뒤에 있는 시민단체의 요구 등에 자꾸 끌려다니는 게 있고, 여권도 자신들의 핵심 지지층만 바라보기 때문이거든요. 예전에 그런 말이 있었어요. TV토론에 나가서 상대방 의견에 고개 끄덕이지 않고 내 의견만 강하게 주장한 날에는 당에 잘했다는 칭찬 전화가 빗발치듯이 온대요.(웃음) 열광하는 지지층들이 좋아하는 거죠. 근데 저쪽 얘기에 고개 끄덕이고 조금이라도 동의하는 날엔 ‘무슨 토론을 그렇게 흐릿하게 하느냐’며 욕을 엄청 한다는 거예요. 근데 이젠 우리가 그렇게 정치하면 안 된다는 거죠. 너무 핵심 지지층만 바라보고 왔어요.


33개월, 쉬는 동안 바라본 것들
2012년 3월 국회의원 불출마를 선언한 뒤 나경원 의원의 행보는 나름대로 바빴다. 그 스스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라는 장애인 관련 활동들을 스페셜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 있는 동안 집중적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는 동안 엄마로, 아내로 한 걸음 가까워진 삶을 살았던 지난 33개월의 이야기도 들었다.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 집행위원, 한국스페셜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 있는 동안 여러 가지 성과들을 거뒀어요. 개인적으로도 보람된 시간이었을 텐데요.

처음 (정치권에) 들어왔을 때도 장애인들을 위한 역할을 하고 싶었고, 그 당시 장애인의 문화향유권 같은 것들을 얘기하기도 했고요. 장애인들의 스포츠 문화 활동이나 지위 개선에 관한 활동들을 지난 33개월 동안 열심히 했죠. 남들은 조직위원장이라고 하면 이름만 가지고 있는 자리 아닌가 생각하는데, 사실은 하나하나 다 챙겨서 해야 하는 자리였어요. 그게 정말 재밌었고요. 돈 구하느라 애쓰며 ‘을’ 노릇도 많이 해봤죠.(웃음) 많이 배웠어요, 이제는. ‘평창스페셜뮤직앤아트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2회째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재재작년에는 정말 아주 적은 자금으로 우리 지적발달 장애인들의 뮤직캠프를 열었어요. 그때 정말 애들 물 나눠주고 청소하고, 밤에는 애들 감기 걸릴까 봐 방마다 에어컨 꺼주고 하면서 엄청 고생했거든요. 근데 고생한 게 기억에 더 오래 남더라고요. 제가 아주 하고 싶었던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어떤 면에서는 ‘이래서 을이 서럽구나?’ 하는 걸 느껴보기도 하고요.(웃음) 그래도 저는 굉장히 많이 도와주신 편이었죠.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NGO 단체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무튼 재밌게 일했어요. 

물론 개인에게는 소중한 시간이었겠지만, 겉에서 보기에는 낙선 후 시련의 시기로 비춰진 면이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1등만 하다가 처음 겪어본 큰 시련이 아닌가 싶은데요.
뭐, 뭐.(웃음)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이만큼 될 때까지 누구나 크고 작은 시련들이 있는 거죠.

최고의 시련이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겠죠? 
정치적으로는 저한테 시련의 시기였던 건 맞겠죠. 그러나 자기에게 닥친 여러 가지 시련을 어떻게 바꿔내느냐는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의 능력인 것 같아요. 저는 긍정의 에너지로 많이 바꾸려고 노력했어요.

잘 이겨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까요?
네.

다시 출마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나요?
한 33개월 쉬면서 남편도 저하고 정치적으로 생각이 많이 가까워진 것 같아요. 하라, 하지 마라는 아니었고요. 다시 (정치를) 할 생각과 준비는 하고 있었죠. 근데 중구에서 할 생각을 했었죠. 그러다가 동작으로 옮겨서 출마하는 것에 대해서 ‘이번에 출마하는 것이 맞느냐’ 같이 고민했죠.



가족들도 선거운동 할 때 많이 도와줬습니까?
저희 남편은 마지막 날 딱 반나절 선거운동 해줬고요.(웃음) 이번에 주로 아버님, 어머님, 시아버님, 우리 동생들까지 가족들이 되게 귀찮게 했어요. 많이들 도와주셨죠. 딸은 마지막 날 유세장에 한 번 왔고요. 그래도 엄마가 선거 유세하느라고 여기 와 있다고 열심히 엄마 옆에 붙어 있어줘서 고마웠죠. 

딸이 대학교 3학년이죠? 책에 보니 학교 졸업하면 빨리 결혼하고 싶어 한다고 쓰여 있던데요. (지난겨울 나 의원은 <무릎을 굽히면 사랑이 보인다>라는 저서를 통해 스페셜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서의 활동들을 전했다.)
요새 좀 바뀌었어요. 졸업하고 바로 안 간대.(웃음) 근데 얘는 너무 웃긴 게, 최근에 자녀들의 SNS가 문제 된 적이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자기가 선거기간에 그런 걸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거 보면 정말 마음이 아파요. 

졸업하면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나요?

뭐 시켜야 될지, 뭐 해야 할지 사실 정말 막막하죠. 자기는 일을 하고 싶어 하지만 쉽지 않은 거니까요.

전공을 살릴 생각은요? (딸 유나 양은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있다.)
우리 딸이 드럼은 곧잘 하는데요. 드럼 아주 잘하는 사람도 먹고살기 힘드니 이거 뭐. 어디 취직자리 좀 없나요?(웃음)

나 의원님이 4녀 중 장녀죠? 나머지 여동생들은 뭐 합니까?
다 일해요. 

어떤 일들을?
뭘 또 그런 걸 자꾸 물어보세요. 동생들의 사생활까지.(웃음) 그냥 일해요. 일하는 딸만 둔 엄마, 아빠는 별로 안 좋으실 거예요. 효녀들이 아니죠. 아무래도 일하다 보면 다 바쁘니까. 그중에서도 첫째 딸이 제일 빵점.(웃음) 중구에 살 때는 어머니, 아버지랑 위아래 집으로 살고 있었거든요. 근데 이제 동작구로 이사를 와야 되잖아요. 어머니, 아버지만 떨어뜨려놓고 오려니까 죄송해 죽겠어요. 

어머님 건강은 좀 괜찮아지셨습니까? (서울시장 선거 이후 6개월이 지난 뒤 어머니가 암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방송에서 고백한 바 있다.)
뭐, 그냥 아주 좋지는 않고 잘 유지하시면서 계세요. 위아래로 사니까 잠깐잠깐 들여다볼 수 있어서 편했는데 이제 떨어져야 해서 좀 걱정도 되고 그래요. 

시간 날 때 취미 삼아 했던 것들로는 뭐가 있을까요?
33개월 쉬는 동안 붓글씨 좀 썼어요. 열심히 다니지는 못하고 많이 빼먹기도 했는데, 어렸을 때 쓰고 오랜만에 쓰니까 되게 좋았어요. 

가족끼리 여행도 가고요?
휴가 같은 건 자주 가죠. 근데 최근에는 못 갔어요. 우리 딸이 요새 불만이 많아요. 엄마가 바빠서 자기랑 얘기를 못 한다고 아빠한테 은근히 이르고 있어요.(웃음) 같이 얘기하다가 제가 졸고 있으면 ‘엄마, 가서 자’ 그래요. 우리 아들도 마찬가지예요. 고등학생이라 공부한다고 밤늦게까지 앉아 있으면 제가 먼저 자기가 좀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걔 옆에 가서 저도 서류라도 좀 보다가 나중에 거의 자다시피 하고 있으면 ‘엄마, 가서 자’ 이러죠.(웃음) 나름 성의는 표하고 있으나 아이들에게 야단맞고 있어요.(웃음)

아들이 고2인가요? 부모 닮았으면 공부도 잘할 것 같은데요.
뭐, 애들이 저들 역할 잘 해줘서 고맙죠.

나 의원님은 학창 시절에 매번 1등만 하던 학생이었잖습니까.
매번 1등은요. 2등도 많이 했어요. 이렇게 말하면 화내겠지?(웃음)

비결이 뭘까요? 자식을 둔 독자라면 다들 궁금해할 텐데요.
제가 많이 하는 얘긴데,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거기에 미치지 않으면 안 되더라고요. 생각이 너무 여러 개면 되는 게 없어요. 저는 젊은 친구들에게 ‘네가 하고자 하는 것에 미쳐라’라는 말을 많이 해요. 제가 사법고시 여러 번 떨어졌잖아요. 나중에 돌이켜보니 대학교 1학년 때만큼 열심히 공부를 안 하고 있더라고요. 이것도 해볼까, 저것도 해볼까 하는 생각들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목표를 정했으면 그 하나만 미치도록 해야 되는 것 같아요.

나 의원님은 학창 시절 공부를 목표로 그 하나만 열심히 했군요.
근데 요새는 공부 잘해서 되는 거 아니지 않나요? 어떤 직업을 가져라, 라고 부모로서 말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지금은 공부 잘하는 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공부 외에) 뭔가 다른 걸 추구한다면 그걸 미치도록 하면 되지, 미치도록 하지도 않으면서 공부까지 안 하면 안 되는 거죠. 그럴 땐 공부라도 해야 되는 거예요. 학생의 기본이 공부니까요. 본인이 다른 재주가 없으면 공부라도 해야 되는 거고, 다른 재주가 있으면 그걸 미치도록 해서 (그 노력에 부합하는) 평가를 받는 거죠. 지금은 사회가 다양화됐기 때문에 야무지고 똑똑한 애들은 일찍 자기 인생을 설계하는 것 같아요. ‘내가 앞으로 이걸 할 건데 이걸 위해서는 중고등학교 때 적어도 이 정도 공부는 해야 된다’를 알아요. 자기가 정한 목표에 꼭 필요한 공부도 하면서 동시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준비하더라고요. 


함께라면 할 수 있어
‘투게더 위 캔(Together We Can)’, 그러니까 함께라면 할 수 있다는 이 말은 나경원 의원이 스페셜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 있는 동안 내건 슬로건이다. 나 의원은 인터뷰 중간에 이 말을 여러 번 강조했는데, 다선의원으로 경험치가 쌓인 지금 그가 국민들과 함께 만들어나가고 싶은 세상도 바로 이처럼 혼자가 아닌 ‘함께’를 강조하는 세상이란다.

정치인이라는 직업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직업일 것 같은데요.
그게 참 문제죠. 주위 사람들 힘들게나 하고 도움은 안 되니까요. 그래도 정치 안 할 때는 엄마 노릇도 좀 하고 그랬는데, 다시 정치하게 돼서 애들하고 남편한테 좀 미안하죠.



그런데도 하려고 하는 이유가 뭡니까?
제가 생각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쉬운 자리가 정치인 것 같아요. 아까 장애인 관련 활동에 관한 이야기도 잠깐 했지만, 정치 그만두고 초반에는 좀 쉽게 (일이 진행)되더니 올해쯤 되니까 힘에 부치더라고요. 뭘 하나 도와달라 그래도 정말 힘들더라고요. 정치 그만둔 초반에는 ‘곧 재기하겠지?’ 하고 열심히 도와준 것 같은데, 점점 ‘이 여자 재기하기 힘든 것 같아’ 싶었는지 안 도와주더라고요.(웃음) 어쨌든 제가 생각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정치인이 되는 게 가장 빠른 길이었어요). 

그게 어떤 세상입니까?
제가 아까 ‘함께 이기는 정치’를 얘기했는데, 그동안 우리 사회가 너무 나만 이기자는 주의였어요. 그게 대한민국 사회가 빨리 성장하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됐어요. ‘할 수 있다’ 정신, 새마을운동 같은 것들요. 근데 현재 우리 사회의 여러 갈등이나 적폐를 보면 ‘나만 잘 살아야겠다’ 주의가 너무 만연해서 일어난 현상들이 아닌가 싶어요. 지금쯤은 정신·문화운동을 통해 (그런 사고를) 바꿔야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스페셜올림픽 때 내건 슬로건이 ‘투게더 위 캔’이에요. 나 혼자 잘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함께하면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런 문화운동이 있지 않으면 안 돼요.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걸 인식하고 그 가치를 공유하는 데서 모든 게 출발한다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는 갈등들이 많다고 봐요. 그런 철학하에서 법이나 정책도 만들어야겠지만 무엇보다 그런 정신적, 문화적 가치를 가져야 사회가 지금보다 더 성숙해질 것 같아요. 대한민국 사회가 선진사회로 들어서지 못하는 마지막 고리가 바로 그런 정신·문화운동이 부족해서인 것 같아요. 물론 법이나 제도 등도 보완해야 하고요.

제가 이 지면을 통해 정치인도 만나고 정치평론가도 만나봤는데,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대립이라는 건 다들 인식하고 있어요. 근데 해결하기가….
근데 실천을 안 하죠.

실천을 안 한다기보다….
방법이나 철학에 있어서 여야의 차이가 있을 순 있어요. 그런데 제가 아까 ‘핵심 지지층’ 얘기를 했지만, 모두가 너무 자기의 지지자들만 쳐다봐요. 그러니까 실천을 안 하죠. 말과 행동이 다른 거예요.

정치하면서 그런 답답함을 많이 느꼈나 봅니다.
쉬면서 더 많이 절절히 느꼈어요.(웃음)



지금은 선거 끝난 직후라 바쁘겠지만 여유가 생기면 하고 싶은 일이나 관심사가 있나요?
정치에 관련해서는 외교통일위원회에 가서 우리나라 외교 관계도 풀어야 되고…. 지금 외교 환경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가 어떤 외교적인 역량을 갖고 자리매김할 것이냐가 중요한 시기거든요. 통일 어젠다(의제)를 (외교통일위원회가) 좀 더 구체화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상임위원회 활동을 중심으로 해서 ‘국제사회에서의 대한민국의 입지와 목소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역할을 하려고 해요.

몇 가지 질문만 더 하겠습니다. 사실 과거에 논란이 많이 있었어요.
1억 피부과요? 이제 그만 좀 물어보지.(웃음)

비단 그것만이 아니라 유독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논란이 많이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걸 이겨내는 방법이 무엇이었는지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여당의 대표적인 정치인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고요. 글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잠시 생각하더니 조심스레 말을 이어나간다.) 정권 교체기에도 제가 워낙 최전선에서 많이 싸웠어요. 여야의 민감한 이슈, 예를 들면 미디어법 분야라든지 어떻게 보면 가장 민감한 이슈 앞에서 몸을 아끼지 않았어요. 그때 제 지지자들이 늘 ‘그런 거 하시면 인기 떨어져요’라고 했는데, 저는 제 인기에 도움이 되고 안 되고를 생각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손해 보더라도 이게 맞는 거라고 생각하면 최전선에서 싸우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거든요. 근데 그 당시 여당 의원들이 그러더라고요. 나경원 의원이 얘기하면 사람들이 다 신뢰를 하는데 우리는 그런 무기가 없다, 자기네 쪽은 누가 얘기해도 안 믿는다고요.(웃음) 

본인의 성격이 정치에 맞는 편인 것 같나요? 판사를 할 때와 정치를 할 때는 또 다르니까요.
정치인하고 딱 맞는 성격은 아닌 것 같아요. 보시기에도 그렇지 않아요? 어느 집단이나 다양한 성격의 소유자가 필요하니까요. 아주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에요. 박근혜 대통령도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시잖아요. 

큰 꿈을 가질 생각도 하고 있겠죠? (차기 대선 주자로서의 생각을 물었다.)
글쎄요. 열심히 일하다 보면 기회가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는 건데… 그냥 주어진 역할 열심히 하려고요. 정치인은 소명의식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 국민들이 국회의원들 얼마나 욕하세요. 제가 아까 ‘정치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곳이 없다’ 해서 다시 돌아왔다고 말씀드렸지만, 정치는 참 중요하거든요. 정치인이 생각보다 되게 힘든 직업이에요. 개인적인 것들을 많이 버려야만 할 수 있거든요. 너무 손가락질만 하지 마시고 때로는 응원과 지지도 해주시면 어떨까 생각해요.(웃음) 물론 우리도 왜 외면받았는지 돌아보고 더 잘해야 되겠죠. 정치인들이 좀 더 합의의 정치, 덧셈의 정치를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스스로 내려놓아야 할 기득권들은 내려놓아야 되고요. 어떨 때 보면 불필요한 것들은 내려놓는 척하고 진짜 내려놔야 될 것들은 잘 안 내려놔요. 제가 (이번 선거운동 하면서) ‘정치개혁’과 ‘지역발전’을 얘기했는데, 그런 역할들을 조금씩 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