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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하버드대에서 행한 박대통령의 특강 연설문

鶴山 徐 仁 2013. 11. 1. 21:00

 

 

 

 

 

  

 

 

하버드대 특강 연설문

 

 

< 대한민국과 미국, 함께 나눌 미래 >
Harvard Kennedy School / Arco (John F. Kennedy Junior Forum
  
존경하는 빌 화이트 정치학연구소 소장님, 데이비드 맥칸 한국학연구소 소장님, 앤토니 사이치 아시아센터 소장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미국의 산 역사이며 세계의 명문대학인 Harvard 대학의 교수님과 학생 여러분과 소중한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Harvard 대학은 한국과도 깊은 인연이 있는 학교입니다.
한국의 초대 대통령인 故 이승만 대통령께서 바로 이 곳 Harvard에서 역사를 공부하셨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UN 사무총장인 반기문 총장도 여러분의 자랑스러운 동문입니다.

우리 한나라당에도 Harvard 졸업생들이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곳 Kennedy School of Government에서 공부한 국회의원만 한나라당에 세 분이나 있는데, 모두 한나라당의 소중한 보배들입니다. (박진 MPP, 권영세 MPA, 박재완 Ph.D)
그 중 두 사람이 저와 같은 Park氏입니다.

제 아버지는 1961년 백악관에서 Kennedy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습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과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도 안되는 아시아 최빈국 지도자의 만남이었지만, 두 분은 자유진영이 공산주의에 맞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대한민국이 새로운 안보 질서의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서, 그 딸이 Kennedy School을 찾아왔습니다.

한국인들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여깁니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만남과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오늘 저도 Harvard와 Kennedy School과 좋은 인연을 맺게 되었으니 앞으로 여러분께서 저를 한 식구처럼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대한민국과 미국이 함께 나눌 미래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한국의 딸로서 대한민국의 60년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한국은 식민지배에서 해방 후, 분단의 고통과 전쟁의 참화까지 겪었습니다.
온 나라가 폐허가 되고 수백만이 죽거나 다쳤던 참혹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 큰 상처를 딛고 일어섰습니다.

1961년에 1인당 국민소득 82달러에 불과했던 한국이 올해는 국민 소득 2만 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1964년 1억달러였던 한국의 수출액은 작년에 3천억달러를 돌파했습니다.
겨우 40여년 만에 국민소득은 250배, 수출액은 3천배가 된 것입니다.

1968년 처음으로 미국의 자동차를 가져다가 조립했던 한국이 지금은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이 되었고, 미국에서도 한국산 자동차를 보는 일이 이제는 흔한 일이 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핸드폰은 세계적인 명품이 되어있고, 컴퓨터와 반도체 부문에서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일본, 중국과 아시아 각국에서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가 헐리우드 영화와 같은 대접을 받고 있고, 한국의 음반들이 아시아 시장에서 상종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 희망이 없던 나라가 기적을 이룬 것입니다.

제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역사는 또 있습니다.

산업화를 압축적으로 진행해서 어느 정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1980년대 후반부터는 민주화가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신 수많은 분들의 용기와 희생에 저는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이 분들의 희생 덕분에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은 20세기 후반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달성한 유일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세계인들은 이런 대한민국의 역사를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것을 ‘기적’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성취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 한국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의 국민들보다 많은 땀을 흘려야 했고, 많은 눈물을 쏟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단지 우리만의 노력으로 이런 기적을 일군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한국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도운 좋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은 그 친구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가깝고 좋은 친구였습니다.
친구를 넘어 피를 나눈 형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저는 오늘 Harvard 대학에 와서 교내 추모교회를 둘러보았습니다.
그 곳에서 이 대학 출신의 젊은이들이 한국전쟁에 나가 전사한 명단이 새겨진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날 한국이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바로 여러분의 선배들께서 흘린 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우리의 성장을 함께 해 온 미국민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일류 선진국을 건설하겠다는 한국인들의 꿈은 아직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더 풍요롭고, 더 정의롭고, 더 안전한 나라 그리고 국제평화와 번영을 위해 기여하는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저를 포함한 모든 한국인들이 간절히 소망하는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미동맹의 든든한 확립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최근 미국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각이 과거와 달라진 것에 대해 실망하고 섭섭해하는 미국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께서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심각한 진통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발전과정의 진통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 한국이 겪고 있는 진통은 한국의 역사에 기인한 한국적 특수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 진통 속에는 몇 가지 중요한 對比가 있습니다.
자유냐 평등이냐, 성장이냐 복지냐, 시장이냐 국가냐,
작은 정부냐 큰 정부냐 같은 대립이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냐 미래냐, 민족공조냐 한미공조냐, 반미냐 친미냐,
자주냐 외세냐 같은 대립도 있습니다.
이런 대립으로 한국 사회는 지금 혼란과 정체에 빠져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어느 나라에서나 발견되는 이념적 대립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민족끼리 남과 북으로 갈라져 아직도 휴전 상태에 있는 특수한 상황에서 북한이라는 현실의 존재가 한국사회의 이러한 갈등을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의 핵실험과 인권탄압은 분명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핏줄이라는 사실에 한국인들의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갈등의 현장에서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선택한 우리 헌법의 가치를 상기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입니다.
이 신념은 오늘의 대한민국이 다시 선택해야 할 길이기도 합니다.

한국이 가야 할 길은 분명합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더욱 발전시켜야 합니다.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노사관계에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목표로 자유를 확대해야 합니다.
성장의 토대 위에 복지가 이루어지는 구조를 만들어 커가면서 나누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이 걸어가야 할 외교적 입장도 명확합니다.
자주냐 외세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국가이익을 생각하는 실리외교를 펴야 합니다.
한미동맹도 21세기에 맞게 더욱 성숙시키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양국이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경제적 파트너로, 자유민주주의를 함께 지켜가고, 동북아시아와 더 나아가 세계 평화에 함께 기여하는 안보의 동반자로 자리 잡아 나가야 합니다.

저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길에 저의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Harvard 대학의 교수님과 학생 여러분,
저는 이제 여러분께, 우리 한국과 미국 앞에 던져진 시급한 두 가지 과제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그 동안 한국과 미국을 굳게 묶어온 안보동맹의 미래에 대한 과제입니다.

지금 한국은 북한이 던지고 있는 심각한 안보적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첫 번째 위기라면, 지금은 두 번째 안보적인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쟁 이래 북한은 여러 형태의 무력적 도발을 지속해 왔습니다.
청와대를 습격했고, 해외에서 우리 대통령에 대한 폭탄 테러를 자행했으며, KAL기 폭파, 서해 교전 등 북한이 자행한 대남 폭력도발 행위의 리스트는 실로 깁니다.

저의 어머니께서도 북한의 사주를 받은 사람의 총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때 제 나이 겨우 22살에 퍼스트레이디를 대행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북한이 핵무장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2006년 10월 9일 단행한 북한의 핵 실험으로 한반도 안보는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이제 한국의 미래는 핵무기로 무장한 북한의 안보 위협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억지하고 대처해서 한국의 지속적 발전에 기초가 되는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기본적으로 4가지 Key가 동원되고 있습니다.
즉 6자회담, 유엔 안보리 제제와 PSI, 미북 접촉, 그리고 남북 대화입니다.

현재 각 Key들이 각 Key별로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고 일부 진전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북한 핵이라는 단단히 잠긴 문을 열려면 이 요소들을 모두 통합하여 실질적 진전이 이루어지도록 접근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북한 핵은 용납될 수 없다는 국제 사회의 강력한 의지가 유지되어야 하고 이 점이 차질 없이 북한에 일관되게 전달되어야 할 것입니다.

북한 핵실험은 결코 ‘Business as usual’로 대처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6자회담이 재개되고 있고 미북간 접촉도 성과가 있다고 보도되고 있지만 앞으로 더욱 힘들고 어려운 협상 과정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에게 국제 사회의 강한 의지를 한 목소리로 전달해야 하고 한국 정부도 유엔 안보리 제제 조치와 PSI 조치에 적극 동참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4가지 Key 외에 북핵 해결을 위해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 또 하나의 Key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한미동맹이라는 Key입니다.
한미 군사 동맹은 지난 1953년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이 체결된 이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성공적으로 유지해온 한국 안보의 근간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이를 바탕으로 “오늘의 한국”이라는 기적을 일구어 냈습니다.
그렇게 한미 동맹은 가장 성공적인 그 효용성이 오랜 세월을 통해 입증된 군사 동맹 Formula인 것입니다.

최근 들어 안타깝게도 한미 동맹이 약화되고 있는 징후가 보이고, 상호신뢰에 손상을 끼치는 사례도 일부 증가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미 관계를 이혼 직전의 부부관계라는 비유마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미 양국 국가 이익을 위해서도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앞으로 한미 동맹의 미래를 결코 비관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한미 동맹이 그간 한미 양국의 국가 이익에 훌륭히 봉사해 왔고, 동북아의 평화 증진에도 기여하고 있음을 기억하는 양국민이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대한민국 국민도 미국 국민도 더 이상의 동맹 파괴 행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 앞에는 한미 FTA라는 과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진행중인 한미 FTA 협상이 성공적으로 매듭지어지면, 이것이 한미관계의 미래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키는 큰 걸음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한미 FTA는 한미 양국이 성장과 발전을 공유하고, 한국민과 미국민 모두에게 더 큰 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100%에게 만족과 이익을 줄 수는 없다고 해도, 최소한 양국 어느 쪽이라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는 국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실제로 양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할 경우 한미관계의 후퇴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자면, 한국의 농업은 미국의 농업과 상당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생각하는 산업적인 측면만을 가지고 한국 농업, 특히 쌀시장의 개방을 요구한다면, 한국민들의 동의를 얻어내기가 상당히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한미 FTA 협상이 차분하게 진행을 해서, 이것이 진정으로 한미 양국 관계 진전에 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합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일생을 시련 속에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머니께서 총탄에 돌아가셨을 때, 저는 지구 반대편 프랑스에서 유학중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조차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되지 않아서 다시 아버지까지 또 그렇게 보내드려야 했습니다.
정말 숨쉬는 것조차 고통스럽게 느껴졌던 시간이었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서로 다른 종류의 시련을 겪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자기가 겪는 시련이 가장 가혹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가족에서 태어났더라면’이라는 제목의 수필집까지 냈습니다.
그런데 그 책도 많이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저에게는 시련이었습니다.

이렇게 시련 속에 살아온 저를 정치로 불러들인 것은, 다름아닌 조국이 겪는 시련이었습니다.

청와대를 나와 18년간 소시민으로 살았던 저는 10년 전 IMF 사태로 조국 대한민국이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 혼자 편하게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금년 12월에 있을 한국의 대통령선거를 저는 ‘역사적 선거’라고 말합니다.

이 선거는 대한민국이 이대로 주저앉느냐 아니면 다시 일어서느냐를 결정하는 선거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번 선거는 한미동맹의 운명이 걸린 선거이기도 합니다.

저는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변해도 한국과 한국인들은 한국전쟁에서 소중한 목숨을 희생한 미국의 젊은이들을 결코 잊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의 부총리를 지내셨던 이한빈씨는 한국전쟁 당시 Harvard Business School의 유학생이었습니다.
그 분은 고국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공부를 중단하고 맥아더 사령관에게 귀국하는 비행기편을 부탁해서 통역관으로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이와 같은 아름다운 인연이 수없이 많습니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자유’와 ‘진리’와 ‘정의’라는 공통의 가치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공통의 가치관을 피와 땀과 눈물로 함께 지켜온 50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저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는 미국과 진솔한 대화를 통해 한미동맹의 미래를 설계해 나갈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한미동맹이 앞으로 또 다른 50년 아니 100년을 지속할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마련할 것입니다.
동맹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하고 리더십을 발휘할 것입니다.

저의 목표는 단지 하나입니다.

 

위기의 조국을 구하는 것입니다.
(I'm in to save my country.)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鶴山 ;

아직 국운이 쇠하지 않아서 어느 누구보다도 잘 준비된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었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이후부터 지금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패거리들 때문에 불필요하게 국력이

낭비되고, 사회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사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