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인사 청문회는 첩첩산중이었다. 하늘에 맞닿은 큰 산은 진작 올랐지만, 박수 받고 손 흔들며 산책 삼아 오를 고만고만한 야산들이 더 오르기 힘들었던 것이다. 의혹의 최루탄과 의심의 지뢰가 연신 터지고, 시샘의 수류탄과 무고(誣告)의 총알이 난무하는 바람에 몇몇 아까운 인재들이 혼비백산 집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나란히 앞서거니 뒤서거니 거행되어야 할 대통령 취임식과 장관 임명식이 멀리 멀리 떨어져야 했다. 놀랍게도 큰 산 오르기 경쟁에서 밀려난 자를 에워싼 무리들이 일제히 칭찬 릴레이를 벌인 적이 딱 한 번 있다. 그들은 한 인물에게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온다’며 ‘파도남’이라는 명예훈장까지 달아 주었다. 검찰총장 채동욱! 온 국민의 환호를 받은 이는 대통령이 아니라 검찰총장이었다.
채동욱은 거침없이 기소독점권의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전현직 대통령 4명을 향해 그의 서슬 퍼런 좌편향 칼날이 번득이기 시작했다. 떼법 야당이 ‘오빠!’를 연호하며 뒤집어졌다. 자유민주와 양립할 수 없는 소급입법에 의해 이미 오래 전에 소시민의 생활도 불가능해진 두 전직 대통령은 역시 자유민주와 양립할 수 없는 연좌제를 부랴부랴 급조하여 가족의 도움으로 속절없이 추징금을, 세 명의 좌파 또는 좌파 숙주 전직 대통령들에겐 흐지부지 원천 면제된 추징금을 완납하기에 이르렀다. 파도남이 독점한 정의의 칼이 겨누는 사람이 아직 두 명 남았다. 그들은 4대강 토목공사를 총지휘한 직전 대통령과 국정원 댓글 3개의 도움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현직 대통령이다. 큰 산 오르기 경쟁에서 파도남의 절대적 지지자들을 거푸 밀어낸 전현직 두 대통령이다. 세종시, 기업도시, 혁신도시 건설에서 낭비된 국고와 4대강에서 낭비된 국고 중 어느 것이 클까. 왜 그는 전자에 대해서는 박물관의 녹슨 칼도 한 번 빼어 보이지 않았을까. 평화의 이름으로 서해를 사실상 북한 인민군의 앞마당으로 만들어 주려던 핵심 인물을 향해 3번 짧게 빈정댄 것은 정치 중립을 어긴 국기(國基) 문란이지만, 100만 공무원에게 댓글을 달라고 최고 권력자가 직접 지시한 것은 정치 중립을 지킨 국기(國基) 바로 세움일까. 쌍말과 막말과 저주만 모아도 3의 3억 제곱 번도 넘은 나꼼수 국회의원 후보는 또 어떤가. 그가 거꾸로 갖다 바친 표는 관심 밖인가.
채동욱은 알고 보니, 축소 수사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곪을 대로 곪아 절로 터진 ‘스폰서 검사’ 사건, 밤과 낮에 대한 세상물정에 조금이라도 눈뜬 사람에게는 빤히 들여다보이는 스폰서 검사 사건을 채동욱은 100분의 1로 축소하여 아예 짓뭉개버렸다. 사행성 오락 ‘바다이야기’는 노무현 정부에서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수십만을 패가망신시킨 복마전으로 정치자금설이 난무하던 사건이었지만, 이것도 채동욱이 맡아 용두사미로 만들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리던 채동욱이 어느 날 신문에 크게 실렸다. 명문 사립초등학교의 한 생활기록부 아버지 란에 채동욱이 버젓이 올라와 있다는 내용이었다. 채동욱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며, 그건 검찰중립을 흔드는 정치적 음해라고 한갓 개인의 비리 의혹 제기에 맞서 검찰 조직을 총동원하여 하늘을 나는 새를 향해 레이저 눈총을 쏘았다. 얼마 후 아이의 엄마가 두 신문사에 편지를 썼다. 채동욱을 존경하여, 주점에서 절대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던 사나이를 존경하여, 아이의 아버지로 올렸다고 주민등록번호와 지장을 찍어 보증함으로써, 최소한 채동욱이 ‘모르는 일’이라고 한 말은 거짓임을 확인해 주었다. 아이의 실제 아버지가 채동욱은 아니지만 성씨는 그와 같이 희귀한 채씨를 쓴다는 것도 임 여인은 편지에서 주장했다. 초보 순경이 아니라 순경이 장래 희망인 초등학생도 어렵잖게 맞출 수 있는 숨은 그림 찾기 문제를 임 여인은 던졌다.
채동욱이 제일 높은 사람인 줄 알았더니, 그보다 높은 사람이 최소한 둘이 있었다.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 법무부 장관이 법에 따라 감찰하겠다고 하자, 채동욱은 바로 사퇴하고 잠적했다. 사퇴하면 공무원 신분이 아니라 감찰의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한다. 진실을 알고 싶은 국민들이 사퇴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아우성치자, 최고존엄은 다름 아닌 국민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는 대통령이 아니나 다를까 진상조사 전에는 사퇴를 안 받겠다고 했다. 그러자 채동욱과 떼법 야당이 사퇴를 애원하기에 이르렀다. 채동욱은 비유법의 거꾸로 달인 김한길보다 뛰어난 소설가인가, 한두 줄로 쓸 내용을 40페이지로 늘여서 정정보도 소송을 냈다. 한 마디로 횡설수설이었다. 편지의 내용대로라면 명예훼손이 분명하니까, 부인과 딸을 위해서라도 임 여인을 상대로 형사소송을 내야 하는데, 그러면 유전자검사도 법으로 강제할 수 있어 금방 진실이 드러날 텐데, 그는 백년하청식 소송 절차를 동원했다. 사생활의 보호막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검찰 내 호위무사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릴 게 아니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당당하게 계좌추적과 통화추적을 자청하라. 그러면 DNA를 맞춰 볼 것도 없이 진실은 하루 이틀 만에 드러날 것이다.
언론기관은 ‘언론의 자유와 (개인의) 인격권’을 저울질하여 의심할 만하면 얼마든지 보도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선고 2010다60950 판결)를 채동욱이 모를 리 없다. 설마, 머리가 비상한 그가 지킬 박사의 밤나들이 위선을 그런 식으로 영원히 숨길 수 있고, 386운동권의 커밍아웃 독선을 그런 식으로 떼법 야당으로부터, 또한 좌로 의식화된 70% 가량의 한국 지식인으로부터 진리 겸 정의로 인증 샷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좌파 정부 10년 동안 야비하고 집요한 언론탄압에 시달렸던 신문보다 ‘모르는 여인’이 더 존엄하고 임금의 잘못도 바로잡을 수 있는 대사헌의 정경부인보다 ‘모르는 여인’이 더 존엄하고,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보다, 떼법 야당의 갖은 방해에도 인기가 날로 상승하는 레이디 각하보다 검찰 내의 호위무사 대장이 더 높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처신은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고 있다.
라토나는 해의 신 아폴로와 달의 신 디아나의 어머니, 두 아이를 데리고 리키아 땅을 헤매고 있었다. 목이 말라 물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마침내 약간의 물을 발견하고 막 물을 마시려는 순간, 리키아 사람들이 와글와글 물 한 모금 못 마시게 가로막았다. 결국 라토나는 너희끼리 물을 실컷 먹으라며 그들을 모조리 개구리로 변신시켜 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물속에서도 계속 개굴개굴 떠들어댔다. 오비디우스는 이를 두고 이렇게 노래했다.
“Quamquam sunt sub aqua, sub aqua maledicere temptant.”
“(개구리가 되어) 물속에 있건만, 물속에서도 (개굴개굴) 비방 못해 환장하도다!”
(2013. 9.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