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인선 국제부장
요즘 지구촌엔 조용한 나라가 거의 없다. 중동에선 여전히 독재자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와 유혈진압이 반복되고 티베트에선 승려들의 분신(焚身)이 이어진다. 유럽의 거리에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시위를 거의 하지 않는 일본인들도 반(反)원전 시위에 나서고, 역시 시위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일이 드문 이스라엘에서도 사람들이 '못살겠다'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나라마다 시위 스타일도, 구호도 다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이건 아니잖아"라고 외치고 있다. 무언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걸 알지만 무능하고 감(感)이 없는 정부와 정치권이 무언가를 해줄 거란 기대는 버린 지 오래다. 자기 자리 지키는 일에 가장 유능한 관료나 정치인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란 희망도 없다. 그래서 이들은 스스로 창당을 하고 거리로 뛰어나가 구호를 외친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정당정치 시스템의 유효기간이 지났다는 것을 말해준다. 수십년 전에 만든 정강(政綱)을 바탕으로 똑같은 소리를 되풀이하고, 한번 당선되면 4~5년 임기 동안 다시 심판받지 않으며, 비슷한 짙은 색 양복 차림으로 모여 고만고만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이 시대의 문제 해결사도, 리더도 아니라는 것이다.
청바지를 입고 머리를 땋아내린 독일 해적당의 젊은 리더들은 말한다. "기성 정당들은 정당 색깔에 묻혀 한 주제에 대해 몇십년 동안 같은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래선 새로운 정책에 관심을 갖기 힘들다." 해적당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파악한 후 그에 대한 입장을 그때그때 논의한 후 당론(黨論)을 정한다. 중요한 것은 이 시대 사람들의 고민과 생각이지, 정당이 만들어질 당시 옳다고 믿었던 무엇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엔 어딘가 가려면 고속도로가 가장 빠르다고 믿었다. 과거에 그랬고 남들도 그렇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스마트폰이 어떤 길을 택해야 가장 빨리 갈 수 있는지 알려준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판단에 따라 신속하게 움직인다. 상점도 마찬가지다. 비싼 임대료 내고 화려하게 치장한 거창한 상점 말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팝 업 스토어'가 인기다.
과거엔 정당의 큰 조직과 대규모 자금동원 능력, 경험과 전문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젠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 신속하게 모였다 흩어지는 '모바일 정당' '팝업 정당'이 출현해야 하는 시대이다. 저마다 원하는 것이 달라 '일인일당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요즘 한국을 포함해서 우리가 보고 있는 지구촌의 정치현상은 말한다. 공룡처럼 거대하고 느리고 둔한 정당의 시대는 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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