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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거창한 正義보다 '구제역 정의'부터/ 조선일보

鶴山 徐 仁 2011. 3. 3. 15:27

 

사설·칼럼
동서남북

[동서남북] 거창한 正義보다 '구제역 정의'부터

입력 : 2011.03.01 23:30 / 수정 : 2011.03.02 00:45

강경희 경제부 차장대우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상생(相生)을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익 나누기'를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생계형 트럭 운전자와 벤츠 타는 사람의 교통범칙금이 같은 건 공정사회가 아니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전직 국무총리가 앞장서서 '우리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며 '정의(正義)'라는 담론을 휙휙 날린다. 그렇게 해서 정의로운 사회가 될까.

멀리까지 갈 필요 없이 당장 소·돼지를 300만 마리 넘게 살처분하고, 2조원의 재정을 쏟아붓게 된 이번 구제역 파동이나 부실 저축은행 영업정지만 봐도 시급한 건 '내 앞의 정의'다. 우리 사회의 제도 설계나 정책 운영이 정교하질 않아 똑같은 사태를 맞았는데도 남들보다 훨씬 더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쏟아져 나오고, 정직한 사람이 오히려 손해보는 '불공정 구조'가 확대재생산되는 사회다.

이번 구제역이 시작된 경북 안동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봐도 억울한 심정들이 응어리져 있었다. 그동안 정부는 기업형 농가를 육성한다며 국토 면적이 우리의 4배쯤 되는 일본만큼 소·돼지 숫자가 많아지는 팽창적 축산 정책을 펴왔다. 안동 구제역은 베트남에 다녀온 축산농민 때문에 비롯된 것으로 정부가 추정했는데, 이걸 계기로 그 지역에선 돈 있고 힘깨나 쓰는 일부 축산부농(富農)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조합 돈으로, 심지어 관공서 지원받아 '선진 축산업 견학'을 한답시고 베트남으로 가는 수상한 여행이 적잖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업형 농가는 수십억, 심지어 100억원도 넘는 보상금을 손에 쥐는데, 남의 소 키워주던 위탁농이나 소 몇 마리를 식구처럼 키우던 영세농, 동네 고깃집에서 일하던 종업원은 생계가 막막해져서 구제역 파동으로 시골 마을의 양극화는 심각한 수준이 되어버렸다. 공급 과잉으로 소값이 떨어지는 추세이다보니, 규모를 엄청 키웠다가 살처분하는 농가가 열심히 위생관리에 신경써 구제역을 막은 농가보다 더 이득 보는 황당한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뒤늦게 위생 관리를 강화하고 규모를 줄이는 축산정책을 내놓겠다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저축은행 사태도 비슷하다. 당초 서민 금융기관이던 저축은행이 어느샌가 수억원의 여윳돈 있는 사람들이 5000만원 단위로 돈을 쪼개 맡기는 곳으로 변했다. 무리하게 거액의 부동산 대출을 해줬다가 물린 돈을 메우려고 고금리를 제시하는 부실 저축은행 창구에서는 "정부가 1인당 5000만원까지 보장해주니 걱정 말라"며 이자 빼고 원금 4700만원씩 맡기도록 예금자들을 부추기며 덩치를 키웠다. 비슷한 기간에 우량 저축은행 중에는 "예금을 많이 모아도 돈 굴릴 데가 없다"며 고금리를 제시하지 않고 작은 몸집을 유지하며 정직하게 영업한 곳도 있었다. 그동안 부실한 저축은행들에 맡긴 예금을 내주느라 예금보험기금의 저축은행 계정은 2조9000억원 적자 난 상태다. 모든 저축은행들이 낸 보험료를 다 쓰고도 모자라 금융위원회는 공동계정을 만들어 은행 등에서 낸 보험료로 이 적자를 메울 방안을 궁리하고 있다.

대통령도 읽었다는 베스트셀러 '넛지'의 저자 리처드 탈러 교수는 "섬세한 제도 설계가 똑똑한 선택을 이끈다"고 했다. 같이 법을 어겨도 생계형 트럭 운전자는 벤츠 타는 사람보다 교통범칙금을 덜 내는 정의보다는, 생계형 트럭 운전자가 정직하게 법 지키고 성실하게 일하면 손해볼 게 없는 정의가 우리에게는 더 시급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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