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도 잘팔리는 한국시장이 거품 키웠다
국내선 1억에 팔리는 에쿠스가 미국선 6500만원… 속 터지는 차값
국내선 2억원 육박 벤츠도 미국선 거의 반값에 판매
에쿠스 등 역수입 한다해도 세금 등 감안 땐 실익 적어
현대자동차가 내달부터 미국에 시판하는 승용차 에쿠스의 가격을 한국보다 4000만원 이상 저렴하게 책정했다. 그러나 같은 차종이라 해도 한국과 미국처럼 지역적으로 분리된 시장끼리 단순 가격을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모든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은 해당 판매 국가의 경쟁차 가격과 시장환경에 따라 값을 다르게 정하기 때문이다.현대차가 미국에서 에쿠스를 싸게 팔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한국에서는 왜 비싸게 파는지 '자동차 가격의 비밀'을 풀어본다.
◆에쿠스 가격 논란, 경쟁차 전체의 한·미 가격차 감안해야
미국에서 시판되는 에쿠스 4.6 기본형은 5만8000달러(약 6550만원), 뒷좌석이 비행기 퍼스트클래스처럼 눕혀지는 기능을 포함한 고급형은 6만4500달러(약 7290만원)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에쿠스 4.6은 1억900만원짜리 단일 모델이며, 미국 기본형과 사양이 비슷하다. 미국 에쿠스 4.6 기본형과 한국 에쿠스 4.6을 비교해보면 한국이 미국보다 66%(4350만원) 비싸다.
또 에쿠스와 LS460의 한국·미국 가격차를 비교해보면, 미국에서는 렉서스가 에쿠스보다 13% 비싸지만 한국에서는 22%나 비싸다. 따라서 현대차가 미국에서 에쿠스를 지나치게 싸게 파는 것은 아니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차의 '플래그십(旗艦·최상급 모델)'인 에쿠스의 가격은 경쟁차 가격, 판매목표, 대당 이익, 상징적 의미 등을 감안해 책정됐다"며 "값을 많이 내린다고 현대차의 전체 수익이나 이미지가 올라갈 것인지는 판단이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차 역수입, 경제성은 '글쎄'
에쿠스나 제네시스 같은 고급차를 미국에서 싸게 구입해 한국으로 역수입했을 때, 소비자가 이득을 볼 수 있을까? 제네시스 3.8의 경우 미국 기본가격은 3만3000달러(약 3700만원)로, 한국(기본가격 4798만원)보다 훨씬 저렴하다. 그러나 이 차를 한국으로 반입하려면 200만원 내외의 운송비, 관세(반입가격의 8%), 개별소비세(반입가격+관세의 10%), 교육세(개별소비세의 30%), 부가세(반입가격+개별소비세+교육세의 10%) 등 미국에서 구입한 가격의 최소 40%를 추가 부담해야 한다.
제네시스 3.8을 미국에서 구입해 한국에 가져오려면 5000만원 이상 든다는 얘기다. 또 제네시스 미국형과 한국형의 안전·편의장비의 장단점을 따져보면 한국형의 사양가치가 400만~500만원 더 높다. 따라서 제네시스 역수입은 경제성이 없다. 물론 에쿠스 4.6의 경우는 역수입시 1000만원가량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가 1000만원을 아끼기 위해 굳이 역수입을 위한 각종 절차와 시간 낭비를 감내할지는 미지수다. 또 한국에는 미국에서 팔지 않는 6000만원대의 에쿠스 3.8도 있으며, 판매 비중도 4.6보다는 3.8 모델 쪽이 높다.
에쿠스 역수입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에쿠스보다 한국·미국 가격차가 더 심한 LS460, 740i, S500의 역수입이 많아야 한다. 그러나 이들 차종의 역수입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시장, 고급차 가격거품 '여전'
그렇다고 에쿠스의 한국 판매 가격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한국시장에서 소형차 대비 고급차 가격 자체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현대차 i30 왜건의 경우, 미국은 1만7000달러(1900만원), 한국은 1600만원 선으로 한국이 오히려 싸다. 그러나 제네시스 3.8은 미국 3만3000달러(3700만원), 한국 4800만원으로 한국이 30% 비싸며, 에쿠스는 한국이 66% 비싸다. 그런데도 한국시장에서는 합리적인 값의 중소형차는 안 팔리고 값비싼 고급차만 잘 팔린다. i30는 지난달 겨우 124대가 팔렸다. 유럽에서도 인정받는 뛰어난 상품성을 지닌 해치백이지만, 같은 기간 BMW 5시리즈 판매량(980대)의 10% 수준에 그쳤다.
고급차만 잘 팔리는 '이상한' 한국 자동차시장이 결국 고급차의 가격 거품을 부추기고 있고 국산차는 물론 수입차 회사들이 이 상황을 만끽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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