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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日) "경제공동체부터 만들자"… 한(韓)·중(中) "신뢰 회복부터"

鶴山 徐 仁 2009. 10. 30. 09:46
국제
아시아

일(日) "경제공동체부터 만들자"… 한(韓)·중(中) "신뢰 회복부터"

韓·中·日 석학들 '동아시아 공동체구상'을 말하다
NEAR재단·조선일보 주최 국제세미나
"환율→ FTA→ 공동통화"… 日 "경제통합 지금이 기회"
韓·中 "日 진정한 변화 필요"… 역사교과서 공동집필부터

한·중·일(韓·中·日) 3국이 지금보다 정치·경제적으로 긴밀하게 협력해 공동의 평화와 경제적 번영을 이루자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은 실현 가능한 것인가. 이를 위해 3국은 어디에서부터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일본의 정권 교체와 하토야마 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주목받고 있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논의하기 위한 국제 세미나가 29일 서울 명동의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열렸다. '일본의 변화와 동아시아'를 주제로 한 이날 국제회의는 조선일보사와 NEAR(North East Asia Research·이사장 정덕구)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했고, 한·중·일 3국의 석학들이 참여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는 기존의 미국 중심에서 탈피해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방향으로의 외교정책 변화를 천명한 바 있다. 메이지(明治)유신 이후의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로 들어가자(탈아입구·脫亞入歐)'는 대원칙의 변화도 예견되고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공동체'에 접근하기 위한 길과 방법론에 있어선 한국과 중국·일본에서 이견도 적지 않다.

29일 열린‘일본의 변화와 동아시아’국제세미나에서 한·중·일 학자들이 토론하고 있다./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日 "지금이 기회"

일본측 참석자는 '경제 우선'이라는 원칙을 제안했다. 와세다대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교수는 "동아시아 공동체는 결코 꿈 같은 얘기가 아니다. 하토야마 정권이 한국과 중국에 던진 립 서비스도 아니다. 지금이 바로 찬스"라며 적극적인 입장을 취했다. 사카키바라 교수는 "미·일(美·日) 동맹은 여전히 중요하고 이것이 붕괴하는 일은 없겠지만, 새 일본 정권의 한국과 중국에 대한 외교정책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의 독주시대에서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 양국의 시대로 변화한 국면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한·일 양국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카키바라 교수는 동아시아 공동체와 관련, "동아시아 3국의 경제 통합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되고 있다"며 "유럽연합(EU)과 달리 동아시아의 통합은 시장과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했다. 한·중·일 3국과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들이 하나의 큰 공장을 이루고 있다는 비유도 했다. 한국과 대만에서 부품을 만들고, 중국에서 제품을 조립해 이것을 미국과 일본에 수출하면서 유기적인 관련성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주도한 것이 한국의 삼성과 LG, 일본의 도요타자동차 등 세계적 기업이라는 것도 강조했다.

그는 "우선 한·중·일 3국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들이 참여해 환율 변동을 안정화하기 위한 상시적 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환율 변동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것을 시작으로 지역 내 국가들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거쳐 40~50년 뒤에는 한·중·일 공동 통화(通貨)까지 발전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카키바라 교수는 "서로 다른 언어·정치적·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중·일의 정치 공동체는 불가능하지만 공통의 이해를 가진 경제 공동체를 추구한다면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 근접할 수 있다"고 했다.

韓 "일본의 진정한 변화가 필요"

한국측 발표자들은 일본 새 정권의 아시아 정책 변화 가능성을 기대하면서도 역사 교과서와 독도(獨島)문제 등 중요한 시점마다 불거지는 악재(惡材)를 극복하기 위해선 일본의 태도 변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은 "아시아 국가이면서 아시아 국가이길 거부했던 일본이 이제 변화의 시동을 걸고 있다. 서구 밀착관계를 지양하고 친(親)아시아정책을 추진하려는 의욕도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그러나 한국과 중국은 이와 같은 일본의 변화가 성공할 수 있을지, 일본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고 했다.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의 배경이 중국의 부상(浮上)과 미국·유럽의 약화에 따른 일본의 이익 추구전략의 변화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그는 또 중국의 패권주의적 전략에 대한 우려도 표명했다. 결론은 "일본과 중국의 생각이 진심으로 변화해야 한다. 일본이 기존의 궤도를 수정하고 중국도 대국(大國)의 위치에서 겸손한 자세로 정리한다면 한국은 조정자 역할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은 "역사 인식의 차이와 역사 교과서문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문제 등은 한국과 중국 국민의 감정을 크게 자극해 한·중·일 관계 발전의 발목을 잡아 왔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역사를 직시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겠다는 일본 새 정부의 자세는 일본에 대한 신뢰 조성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공 전 장관은 "거대한 중국과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라도 공동의 이해를 갖는 한국과 일본이 전략적으로 제휴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면서 "작은 차이를 버리고 공통점을 계속 발견해간다면 30~40년 뒤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은 꿈만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中 "신뢰와 행동이 중요"

중국사회과학원 리웨이(李薇) 일본연구소장은 새로운 기구나 제도를 만들기보다 한·중·일 3국이 신뢰를 쌓아가고 이에 따라 과단 있는 행동을 취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는 실현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문제를 설명했다. 리 소장은 "동아시아 공동체는 지역 경제의 협력에 기여하지만 장기적으로 안전을 보장하고 지역 충돌의 방지에 기여할 것"이라며 "내용상으로 역사 교과서를 공동으로 집필하거나 환경 대책에서 협력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리 소장은 "EU의 경우 관세→경제→화폐→사법→정치 공동체로 발전했던 것을 참고할 수 있다"며 "우선은 중국과 일본, 한국 간에 양자간 또는 3자간 FTA 체결에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국가와 국민간의 신뢰관계가 없이 경제적 이해나 일시적인 무드로 공동체를 추구한다면 이는 모래 위의 누각처럼 덧없고 취약한 것으로 끝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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