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9월 02일
잉글버트 험퍼딩크(Engelbert Humperdinck)
잉글버트 험퍼딩크가 "Release Me"라는 곡으로 전 세계를 강타한 것이 1967년 초였으니 그가 MOR(Middle of the Road)황제로 군림하기 시작한지 올해로 만 40년이 되었다. 물론 쇼 비즈니스계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은 그 훨씬 이전이지만 서른이 넘어서야 그는 진가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Arnold George Dorsey(본명)는 1936년 영국령 인도의 마드라스에서, 영국인 아버지와 인도인 어머니 사이의 10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10살 때 가족과 함께 본국인 영국으로 이주했고, 학교 졸업 후 엔지니어 일을 했으나 타고난 끼를 버리지 못해 Gerry Dorsey라는 이름으로 쇼 비즈니스계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무명 시절은 생각보다 길었다. 신경쇠약에까지 이르는 좌절을 겪으면서 군복무까지 마치고 난 다음에야 당시의 거물 제작자인 고든 밀스(Gordon Mills)를 만났고 그때부터 그는 빛을 보기 시작했다. 새로운 출발을 하자는 의미에서 밀스의 조언에 따라 그때까지의 이름을 버리고 ‘잉글버트 험퍼딩크’라는 예명을 채택하게 된다. 알다시피 이 이름은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을 작곡한 독일의 클라식 작곡가 훔페르딩크(Engelbert Humperdinck)에게서 따온 것이다.
고든 밀스가 길러낸 60년대 영국 팝의 쌍두마차 톰 존스(Tom Jones)와 잉글버트 험퍼딩크는 각기 전혀 다른 매력으로 전 세계 대중음악팬-특히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톰 존스가 더할 나위 없이 야성적인 남성성으로 폭발하는 창법을 구사한 반면, 잉글버트 험퍼딩크는 일관된 낭만과 부드러움으로 ‘로망스의 제왕’(King Of Romance) 자리를 40여 년 동안 지켰다.
그는 어떠한 정해진 장르에 자신을 결코 국한시키지 않는 가수지만, 3옥타브 반을 넘나드는 성량 폭으로 모든 곡을 지극히 부드럽게 소화해내는 바람에 어떤 어려운 곡도 자기 식으로 유연하고 쉽게-따라 부르기도 좋게- 만들어 버린다. 그의 앨범은 64장의 골드 앨범과 24장의 플래티넘 앨범을 포함해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1억 5천만장이 넘게 팔렸다.
엄마 쪽 피를 많이 받은 탓인지 인도 혈색이 꽤 짙어 영국인으로 봐서는 이국적 용모의 사람이다. 그의 인도인 분위기 때문에 내 딸아이는 느끼하게 생겼다며 고개를 젓는다.ㅎㅎ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는 알만하다. 딸애가 말하는 종류의 느끼함은 사실 나도 결코 좋아하지 않지만, 잉글버트 험퍼딩크만은 절대적으로 예외다.
그 외에도 나는 인도계(영국령 카리브 해 출신) 영국작가 나이폴(V. S. Naipaul)과 팔레스타인 출신의 영문학자(&문화이론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를 ‘무척’의 정도를 넘어 말할 수 없이 좋아한다. 1935년생인 사이드는 백혈병으로 2003년 안타깝게 작고했고, 1932년생인 나이폴은 아직도 건재하다. 다들 내 아버지 세대의 사람들이지만 나는 그들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음이 너무나 행복하다.
역시 아버지뻘인 잉글버트 험퍼딩크에게 나는 청춘을 저당 잡혔었다. 그를 빼고 나면 내 10대 후반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람 목소리에 빠져 밤잠 설치며 정신을 못 차리고 산 세월이 얼마인지 모를 정도다. 나는 그 사람을 지독하게 사랑했다. 노래와 함께, 검고 짙은 그의 눈썹과 구렛나루는 너무나 매력적이었으며, 남달리 큰 손은 마음을 편안하게 했고 넓은 어깨의 상체를 받치는 유난히 긴 다리는 나를 넉 아웃시켰다. 게다가 넘치는 쇼맨십은 엔터테이너로서의 그에게 넋 잃게 만들었다.
보통은 클라식 음악을 편애해도 연주자나 지휘자를 꼼꼼히 가리고, 드물게 구입하는 대중음악의 경우엔 앨범의 양(?)과 질을 엄격히 따지는 편인데, 이안 보스트리지나 잉글버트 험퍼딩크의 노래 같이 대책 없이-무조건적으로- 구입하는 음악들이 간혹 있다. 거의 자신의 드라마를 위해서만 노래했던 중국가수 정소추도 유사한 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나로 하여금 식음과 수면을 전폐하게 만든 경험이 있는 사람들인데, 그 중 가장 오래 된 사람이 바로 잉글버트 험퍼딩크다. 이제 잉글버트도 칠순을 훌쩍 넘긴 푸짐한 아저씨(?)가 되어 예전의 섹시함은 찾을 수 없지만, 그와 함께한 추억은 죽을 때까지 내 가슴을 설레게 할 거다.
10대 초반에 할아버지 같은 로렌스 올리비에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을 필두로 아버지 같은 사람들만 사랑하다가 슬슬 큰오빠들로 넘어가더니(정소추, 가브리엘 번 등) 30대가 넘어서야 적당한 연상이나 또래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게리 시니즈(Gary Sinise), 숀 빈(Sean Bean), 양조위, 나가량, 랄프 파인즈(Ralph Fiennes), 이안 보스트리지 같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나이 마흔을 넘어서고 나니 연하까지 좋아지니 이 주책을 어찌하랴... 이를 테면 맷 데이먼(Matt Damon)이나 데이빗 보레아나즈(David Boreanaz) 같은 남자들 때문에 가슴이 설레는 거다. 급기야 데미 무어가 이해되려고 한다. 이러다가 나중엔 아들 또래를 좋아하게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도 내 인생에서 잉글버트 험퍼딩크만큼 사랑한, 그리고 사랑할 사람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내 감성을 소녀에서 어른으로 만들어 준, 내 통속성을 완성시켜 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를 사랑하면서 내 감정은 점점 여자가 되어 갔다. 그래서 어쩌면 그가 내 진정한 첫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고동창 중엔 내가 그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기억하는 친구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20대 초반까지 나는 이 남자에게 빠져 살았다.
요 며칠 마음이 극도로 심란했던 탓에 잠시 만사를(삶까지) 놓고 싶을 만큼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이럴 때 옛 애인의 추억이 더욱 절실한 법이다.^^* 전에는 엠파스에 잉글버트 노래가 한 곡도 없더니만, 언제부터인지 상당한 양이 엠파스 배경음악 샾에 풀렸기에 좋아라하며 배경음악을 그의 노래 위주로 바꿨다. 요즘 내 블로그에서 나오는 영어 노래들 대부분이 잉글버트의 음성이다. 그가 부른 거의 모든 노래를 좋아하지만, 지난 30년간 변함없이 가장 좋아하는 곡은 “In Time” 이다. 건지기 힘든 이 곡을 엠파스에서 감사하게도 구해 놨더라. 너무 좋아 숨 넘어 갈 뻔 했다.
유튜브(Youtube)가 생긴 이후로 클라식과 대중음악을 막론하고 주옥같은 (옛)동영상들이 슬그머니 살아 나온다. 좀체 인터넷항해를 할 시간이 없어 유튜브의 보석들도 도통 구경하지 못하는데, 오늘 밤은 모든 걸 포기하고 유튜브의 잉글버트와 함께하고 있다. 기분전환삼아 유튜브에서 잉글버트 험퍼딩크의 옛날 영상을 (오로지 나를 위해) 몇 개 가져왔다. 50대의 영상까지만 가져왔지만, 잉글버트 험퍼딩크는 칠순이 넘은 지금도 내년 초까지 스케줄이 빡빡하게 잡혀 있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물론 누구나 그렇듯 전성기 때와 비교할 수는 없다.
(20대의 앳띈 잉글버트 험퍼딩크)
(50대의 사진들; 개인적으로 콧수염은 좋아하지 않지만 '그'라서 봐준다.^^*)
아래는 (나를 위한) Youtube출처의 동영상들이다.
<30대 험퍼딩크의 Old영상>
(어찌 보면 무지 촌스러운 모습인데 난 그 촌스러움이 더 좋다.)
"Dommage, Dommage" (1966) http://youtube.com/watch?v=yMhKojize-s
(이 영상을 볼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세계적 명성을 얻기 직전, 험퍼딩크의 최초 히트곡이기 때문이다.
Oh, I absolutely thank Youtube!!)
“The way it used to be”(1969) http://youtube.com/watch?v=xYLEYm6BWoc
(내가 무지무지 좋아하는 곡이다.)
“Winter world of love”(1969) http://youtube.com/watch?v=D3qcdytbuFQ
(60년대 후반에 나온 최고의 노래들 가운데 하나다.)
“Release Me” (1967) http://youtube.com/watch?v=rCZO9xeYA8g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잉글버트의 첫 대박히트곡)
Dean Martin쇼에 출연한 잉글버트 http://youtube.com/watch?v=HmK1-vpYK_c
(타고난 끼는 어쩔 수 없는 것이지...)
"Am I that easy to forget" http://youtube.com/watch?v=ROkFbJVp_vQ
(이노래 역시 너무 많은 가수의 음성으로 잘 알려졌지만 잉글버트의 음성으로 가장 히트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스키터 데이비스나 짐 리브스의 음성으로도 상당히 친숙하다.)
"When There's no you" http://youtube.com/watch?v=uoVirfKSPus
(노래 부르면서 펼치는 손바닥의 면적을 보면 무서운 세상을 다 가려줄 것 같다.^^*)
"I'm a better man" http://youtube.com/watch?v=4AmH_l-kTo8
(He' s every case's better man, I think.)
"Spanish Eyes" http://www.youtube.com/watch?v=-jRvnhyHgWs
<40 대중반 at Hilton, LasVegas>
1982년 라스베가스 힐튼 호텔에서 열렸던 디너쇼는 그의 섹시한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그 중 몇 곡을 골랐다. (40대 후반을 바라보는 아저씨가 이토록 섹시해도 되나 몰라.^^)
“You make my pants” http://youtube.com/watch?v=H2SZXj5-or0
(그의 대단한 쇼맨십을 여지없이 즐길 수 있는 장면들이다.)
“Endless Love” http://youtube.com/watch?v=iM_WFHmNCnI
(브룩 실즈의 영화, 『끝없는 사랑』을 아마 대학 1학년 때쯤 봤나보다.
라이오넬 리치와 다이아나 로스의 듀엣으로 히트 친 영화 주제가인데
노안이 오기 시작하는 40대 중반 잉글버트의 과장적인 퍼포먼스가 정겹다. 공감하거든~ㅋ
1981년도 동경국제가요제 심사위원으로 왔을 때도 무대에서 안경을 찾더니만...^^*)
“Baby Me baby” http://youtube.com/watch?v=_h991phD0aY
(라스베가스에서의 공연인 만큼 그만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Welcome to my world" http://youtube.com/watch?v=bhfTvaFxxjE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부르며 엘비스의 목소리를 흉내내 농담하는 센스^^)
(쇼 끝부분이었는지 자기히트곡을 메들리로 부르는데, 지쳐 보여도 그의 춤이 좋다.
그의 긴 다리가 휘청거리며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 나는 새삼스레 넋 나가 버린다. )
<50-60대 시절의 콘서트 >
(잉글버트는 라이오넬 리치를 비롯한 흑인 가수들과도 꽤 친한 편이다.
요즘 라이오넬은 딸 니콜때문에 속 좀 썩지 않을지...^^)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 http://youtube.com/watch?v=u0uC05o5liE
(우리 세대라면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There goes my everything” http://youtube.com/watch?v=-1DL3R3LiKs
(Release Me의 후속타로 1967년에 히트한 곡, 엘비스도 불렀지만 나의 잉글버트와는 잽이 안된다.)
Ray Charles와 함께 부르는 “Release Me” http://youtube.com/watch?v=AGQk18Sqk-A
(앞이 안 보이는 Ray Charles가 피아노 반주를 한다. 다정하게 보이는 두 사람^^
잉글버트는 레이 찰스의 히트곡인 “I can't stop loving you”를 리바이벌하기도 했다.)
“Can't take my eyes of you” http://youtube.com/watch?v=FNiKW-_8pSo
60년대 초반 프랭키 밸리의 음성으로 히트 친 이 노래는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했다.
나는 잉글버트와 모튼 하킷(Morten Harket)의 음성으로 듣는 걸 제일 좋아한다.
" I believe" http://youtube.com/watch?v=8WiS0Fl-rJc
(60대 중반의 아주 묵직해진 아저씨.. 라이오넬과 친해서인지, 아니면 음악의 분위기가 맞아서인지 그의 노래를 꽤 부른다.
이것은 지난 2000년에 있었던 런던 팔라디움Palladium 공연의 실황영상인데,
로얄 필하모니와 공연한 십여년전의 Royal Albert Hall실황과 이 Palladium 실황 DVD는 갖고 있다.^___^*)
결국 나는 이렇게 밤을 새고 말았다.
(2007년 9월 2일 새벽, 버들아씨...)
Engelbert Humperdin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