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혈사태 배후 지목된 '레비야 카디르'
92년 政協위원 활동하다 반체제 인사로 변신 2005년 미국으로 망명
중국은 이번 위구르족(族) 대규모 유혈 시위사태가 일반시민이 벌인 우발적 시위가 아니라 위구르 분리주의자들이 배후에서 치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배후로 지목한 사람은 세계위구르회의(WUC) 회장 레비야 카디르(Kadeer ·61). 현재 미국에 망명 중인 그녀는 중국의 위구르족 차별과 탄압을 서방에 폭로하는 대표적인 중국의 반체제 인사 중 하나다.
신장위구르자치구의 누얼 바이커리(努爾 白克力) 자치구 주석은 "카디르가 웹사이트를 통해 시위를 조직하도록 국제전화로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카디르는 5일 "위구르인들은 수십년간 중국 정부로부터 범죄자나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혀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다"며 "광둥(廣東)성 사오관(韶關)에서 일어난 사망사건에 대한 조사를 중국 정부가 공정하게 했다면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디르가 사실상 이번 시위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위구르인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카디르는 1948년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태어났다. 15세에 결혼해 아이 여섯을 낳았으나 남편의 구타에 시달리다 28세에 이혼했다. 이후 빨래판 세 개와 비누 다섯 장을 가지고 작은 세탁소를 시작해 점차 사업을 확장해 나가며 자산가치 수백만달러 규모의 무역회사를 세우고 우루무치시에 백화점도 세웠다. 한때 중국의 부자 순위 7위에까지 오른 카디르는 자신의 부를 위구르인들의 실업문제 해결과 복지 증진을 위해 쓰기로 결심하고 자선활동을 벌였다. 1992년 그녀는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政協) 위원으로 뽑힌다.
카디르에 대해 우호적이던 중국 정부의 태도가 돌아서게 된 것은 그녀가 1997년 3월 열린 정협 회의에서 위구르족에 대한 중국의 처우를 비판하면서부터. 이 발언으로 그녀는 정협 위원 지위를 박탈당하고 역시 반체제 인사였던 두번째 남편 시딕 로우지(Rouzi)와도 강제로 이혼하게 된다. 로우지는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 기자로 중국에서 위구르 독립운동을 했다.
그녀는 1999년 신장을 방문한 미국 국회 대표단과 회견한 뒤 중국 당국에 체포돼 2000년 3월 "국가 기밀을 훔쳐 외국에 유출했다"는 죄목으로 8년형을 선고받았다. 2005년 콘돌리자 라이스(Rice) 당시 미 국무장관의 방중을 앞두고 보석으로 석방돼 미국으로 망명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2004년 올해의 인권운동가로 카디르를 선정했다. 카디르는 2006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받기도 했다.
한편 위구르아메리칸협회의 알림 세이토프(Seytoff) 부회장은 "카디르를 시위의 배후로 모는 것은 중국 정부가 민족 간 유혈사태가 벌어졌을 때 전형적으로 들고 나오는 수법"이라고 반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