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國際.經濟 關係

위기 이후의 금융·통화 전쟁에 대비를

鶴山 徐 仁 2008. 10. 2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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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이후의 금융·통화 전쟁에 대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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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요즘 금융시장이다. 20일 주식시장은 바로 전날 정부가 내놓은 '10·19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비웃듯 주가가 연중 최저치까지 곤두박질쳤다가 가까스로 지난 주말 수준에 턱걸이 하면서 장을 닫았다. 내일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조마조마하다. '오마하의 현인(賢人)' 워런 버핏은 "지금이 주식을 살 때"라고 했지만 이 판에 누가 선뜻 지갑을 열 것인가.

    '금융은 신뢰가 모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금융시장은 국내외를 가릴 것 없이 신뢰가 실종된 지 오래다. 투자자가 금융기관을 못 믿고, 금융기관이 금융기관을 못 믿고, 시장이 정부를 못 믿는 총체적 불신이다. 세계가 일제히 금리를 내리고 은행에 수조 달러를 쏟아붓는 긴급처방을 내놔도 시장은 겁먹은 눈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다.

    그렇다고 시장을 탓할 일은 아니다. 이번 위기는 세계금융중심을 떠받쳤던 고층빌딩들이 힘없이 무너져내리고, 그 밑에 수십만 명이 깔려 죽은 '9·11테러급' 초대형 참사다. 긴급구조대가 투입됐다고 겁에 질린 생존자들이 금세 툭툭 털고 일어나 예전처럼 뛰고 웃을 순 없는 것이다. 지금 시장을 짓누른 죽음의 공포를 걷어내는 처방은 하나뿐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세계금융중심의 지반이 허망하게 무너져내린 구조적 문제점을 찾아내 그걸 뜯어고쳐야 한다. 그래서 더 이상 지반 붕괴는 없을 것이란 믿음을 시장에 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위기를 잉태한 달러 중심의 현재 국제 금융·통화 체제를 근본적으로 수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주목할 만하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나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말하는 '신(新)브레턴우즈 체제'도 같은 맥락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현재 세계에 유통되는 금융파생상품의 액면가치가 600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세계 모든 나라의 GDP를 다 합쳐도 54조 달러밖에 안 된다. 주식시장은 빼고 금융파생상품 시장 하나만도 이미 실물경제의 10배를 넘어섰다는 얘기다. 파생상품 시장은 지난 20년간 연 25%씩 성장해왔다. 새로운 파생상품의 탄생은 신용창출 메커니즘을 통해 시장에 1차 담보 가치의 수십 배에 해당하는 달러가 시중에 풀려나간 효과를 만들어냈다. 그 돈이 주가를 밀어올리고 집값을 밀어올리고 사람들 씀씀이를 대책 없이 부풀려 놓았다. 기업 생산성 향상과는 상관이 없는 유동성 거품이었다. 지금 세계 금융자산의 95%가 실물경제에 기반을 두지 않는 투기적 거래의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1971년 이전까지 세계기축통화인 달러는 1달러가 금 35온스의 가치를 갖는 금환본위제에 묶여 있었다. 그러다가 베트남전쟁으로 재정적자가 폭증한 미국이 금 태환 정지를 선언하면서 달러와 실물경제 간의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미국은 필요할 때마다 등가(等價)의 금을 보유하지 않고도 마음대로 달러를 찍어 내왔다. 사실상 달러가 무제한 자기 복제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지금 금융위기는 그런 달러 체제 아래서 기형적으로 확대된 금융 거품이 한계점에 이르러 한꺼번에 터진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국제 금융·통화 질서의 재편 과정에 세계경제 패권은 또 한 번 크게 요동칠 것이다. 지금보다 힘이 빠질 달러화의 빈 자리를 놓고 유로·엔·위안화 간에 치열한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그 속에서 이해를 같이하는 나라들끼리 '합종연횡'도 있을 것이다. 유럽과 중국에선 벌써부터 "경제권별로 기축통화를 나누자"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문제는 우리의 대응자세다. 정신 바짝 차리고 미리 대비하지 못하면 위기 이후 전개될 세계 금융·통화 질서의 새 판에서 변방으로 밀려나는 신세가 될지 모른다.
                                                                                                                                    

  • - 이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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