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사성 (고려 공민왕 9∼조선 세종 20)
고려 말, 조선 초의 명재상(名宰相). 본관은 신창(新昌). 온양(溫陽) 출생.
1386년(우왕 12)에 문과에 급제.
1408년(태종 8)에 대사헌(大司憲)으로 왕에게 알리지 않고 부마(왕의 사위)
조대림(趙大臨)을 국문(鞠問)한 것이 태종(太宗)의 노염을 사서 한때 유배되었다.
그 후 예조판서(禮曹判書)를 거쳐 1427년(세종 9)에 우의정(右議政),
1431년(세종 13)에 좌의정(左議政)에 올랐다.
청렴하기로 이름이 높아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고
효자정문(孝子旌門)이 세워졌다.
시호는 문정(文貞). |
"고개를 숙이면 부딛히는 법이 없습니다"
열 아홉의 어린 나이에 장원 급제를 하여
스무 살에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은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무명 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그러자 무명 선사가 대답했다.
"그건 어렵지 않지요.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그런 건 삼척 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 줄 말이 고작 그것뿐이오?"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무명 선사가 녹차나 한 잔 하고 가라며 붙잡았다
그는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스님은 찻물이 넘치도록
그의 찻잔에 자꾸만 차를 따르는 것이 아닌가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칩니다"
맹사성이 말했다.
하지만 스님은 태연하게 계속 찻잔이 넘치도록 차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잔뜩 화가 나 있는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스님의 이 한마디에 맹사성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고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그만 문설주에 세게 부딛히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딛히는 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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