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精神修養 마당

‘그들의 거짓말’에 이유를 만들지 말라

鶴山 徐 仁 2007. 8. 7. 23:19
‘그들의 거짓말’에 이유를 만들지 말라   

   

요즘 거짓말 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이들의 거짓말은 그 수위의 높고 낮음에는 차이가 있지만 학력 속이기 혹은 병역 의무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공통적 특징인 것 같다. 그 둘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두 가지 영역이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도 병역과 관련된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하면 곧 저항할 수 없는 아킬레스건이 되어 주저앉아 버리고, 학력 혹은 학벌 문제는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그것이 공론화되기 시작하면 일종의 뜨거운 콤플렉스 덩어리로 작용하게 되는 사회이니 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아이는(그리고 어른은) 거짓말을 한다. 부모 눈을 속여 학교 앞 오락실이나 만화방을 드나들어 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 것이며,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고 돌아다니다 와서는 애꿎은 친구 팔아 보지 않은 사람 얼마나 있을 것인가. 사실 3세가 채 안 된 아이들은 자기가 알게 된 것을 새로 배운 언어로 “표현해 보는 것”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 그것은 거짓말이라기보다 일종의 실험에 가깝다. 세 살에서 여섯 살 사이의 아이는 실제로 벌어진 일과 자기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상상을 잘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없는 이야기들을 꾸며낸다. 다른 사람을 속이기 위한 의도적인 거짓말, 그러니까 ‘진짜 거짓말’을 하는 것은 6세가 넘은 다음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한다.


그러므로 의도적인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의 정신이 그만큼 발달했다는 징후이기도 하다.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는 ‘마음읽기(theory of mind)’라는 인지적 능력이 필요하다. 마음읽기란 자신을 타인의 입장에 놓고 생각하는 능력이다. 즉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해서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한 상대방은 모를 것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나는 실제로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을 말할 수도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된 다음에야 ‘속이기’라는 고도의 정신활동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하나의 예로, 마음읽기 능력이 부족한 자폐장애나 아스퍼거장애(언어발달은 정상이지만 사회생활과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 발달장애) 아동은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한다. 따라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매우 사회적이고 관계지향적인 행동이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흔하고 단순한 것은 부모의 기대가 너무 높을 때, 그리고 부모가 아이의 능력이 실제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때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이때 아이의 마음속에는 나쁜 성적 또는 행동 때문에 부모가 자기에 대한 사랑을 거두어들이지 않을까, 나아가 부모가 자신을 떠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생기고, 그것을 막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사실 위조를 선택하게 된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두 번째 경우는, 왜 그런 ‘나쁜 행동’을 했는지 설명을 요구 받았는데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를 때이다. 이때 아이는 부모가 듣고 싶어하는 대답과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거짓말을 꾸며낸다.


세 번째는 어릴 때부터 칭찬이나 상을 받아 보지 못한 아이가 단지 주목 받고 싶은 마음에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네 번째는 거짓말이 나쁜 행동이라는 일관된 훈육을 받고 자라지 못한 경우이다. 또 다른 하나는 부모가 가진 한계를 시험해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빤히 드러날 거짓말’을 꾸며내는 것이다. 이럴 때 아이들은 속아 넘어가는 부모에게 분노와 냉소를 동시에 느끼며, 결국 부모가 폭발할 때까지 그런 거짓말을 반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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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정아 교수가 동국대에 제출한 학위증명서. 예일대측은 이 증명서가 위조된 것이며, 증명서 양식도 예일대의 것과 다르다고 밝혔다. 예일대측은“이 증명서에는 신 교수의 생년월일이 적혀 있는데, 예일대는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생년월일을 기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학위증명서에 사인이 돼 있는 파멜라 셔마이스터 부원장은“왜 내 사인이 거기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초등학생에게 아주 대표적인 거짓말은 성적을 속이는 것이다. 대개는 어설프게 했다가 금세 들켜 버리는 귀여운 수준의 것이지만 조금 더 간이 큰 아이들은 시험지나 성적표 일부를 위조하기도 한다. 학력을 위조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것은 아마 그런 행동이 좀 더 조직화되고 정교해진 것에 다름아닐 것이다. 물론 거짓말을 하는 과정의 복잡성과 당사자의 악의(惡意)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 밑에 내재하는 마음에는 유사한 부분이 있고, 아마도 위에서 이야기한 이유 중 몇 가지가 복합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아마 자신이 가진 것을 사용해서 살아 남고 경쟁에서 이기기엔 세상의 기대 혹은 기준이 턱없이 높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목표를 실제 능력치 혹은 조건에 맞춰 조율하기에, 세상의 기준은 마치 부모의 그것처럼 너무 절대적이라고 느낀 것은 아닐까. 혹은 자신이 실제로 갖고 있는 능력에 대해서는 충분히 보상 받지 못한 채, 미처 갖지 못한 어떤 것들 때문에 손해를 보고 있다고 느꼈을 가능성도 있다.


    아마도 “멈추고 싶었는데 참으로 오랜 기간을 와버렸다”는 영어강사의 사과 글에서 보듯이, 어쩌면 세상이 등을 돌리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 때문에 아주 사소한 첫 단추가 악순환을 멈추지 못하게도 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 마음의 일부에는 “세상이 내 말에 속는지 안 속는지”를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나 처음에는 없었지만 차츰 거기에 재미를 느꼈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얻어내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정작 더 우려되는 것은 그런 일련의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드러나는 많은 사람의 반응이다. 병역문제에 대해서는 대체로 엄격한 잣대를 대던 사람들조차 학력 위조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것 같다. 물론 자의든 타의든 자신의 학력이 그 동안 알려져온 것보다 훨씬 낮음을 고백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일종의 안쓰러움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피도 눈물도 양심도 없는 사이코패스(psychopath)가 아닌 다음에야, 증명서며 팩스 문서를 위조하며 얼마나 여러 차례 가슴을 졸였을 것인가. ‘성공적으로’ 거짓말을 해놓고 나서도 그것이 발각되어 대중 앞에 끌려나와 돌팔매를 맞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얼마나 오랜 불면과 불안의 나날을 보냈을 것인가.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그 사건들을 학력 중심 사회의 부작용, 나아가 학력이 제일이 아니라는 것의 방증이라고 해석하는 것을 보면 좀 걱정이 된다. “20·30대의 20%가 구직 시에 학력 위조의 유혹을 느꼈다”는 조사 결과 역시 그런 설명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부모가 “공부만 잘하면 무엇을 해도 묵인된다”는 메시지를 자녀에게 주는 것이 자녀로 하여금 성적을 속이게 하는 데 일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능력치를 평가하는 최고의 잣대로 학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회 분위기가 그런 거짓말을 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조금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고, 단기간에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에둘러 가서 개인의 또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도록 기다려 줄 수 있는 지혜가 없는 사회가 연예인들로 하여금 병역비리를 저지르도록 압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바람과 유혹을 실제 행동으로 계획하고 옮기게 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혹은 그 개인의 거짓말을 도와주는 소수)의 열등감, 양심 혹은 생존방식의 문제다.


    어쩌면 그들이 거짓말을 하게 만든 것은, 그리고 그 거짓말을 딛고 올라 성공의 계단을 오르도록 부추긴 것은, 어떤 행동이든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쉽게 투사하고 합리화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아닐까? 그래서 결국 당사자들마저 자신의 거짓말에 대해 “사회 분위기 탓” 혹은 “쉽게 속아 버린 대상들” 탓을 하게 된다면 아마 더 슬플 것 같다. 거짓말을 하는 아이는 고칠 수 있지만, 그것을 묵인하는 부모를 고치기는 훨씬 더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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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희정/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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