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안을 걷다
김 병 호
내가 한 그루 은사시나무이었을 때
내 안에 머물던 눈 먼 새들
바늘 돋은 혀로 말간 울음을 날렸다
울음은 발갛게 부풀어 둥근 달을 낳고
속잎새에만 골라 앉은 숫눈이
돌처럼 뜨겁게 떠올랐다
그믐 모양으로 흐르던 푸른 수맥의 흔적
그 사이로 비늘 떨군 물고기가
해질녘 주름진 빛과 몸 바꿔 흐를 때
내가 제일 나중에 지녔던 울음과
몸담아 흐른 기억마다에 피는 상여꽃
봄을 앓는 어머니가 누이의 머리채를 흔들고
꽃뱀이 누이의 다리를 휘감는다
한참 누이를 사랑하던 꽃뱀은
은사시나무로 다시 몸을 바꾸고
아버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연못으로 나가
허리를 꺾는다
어머니는 누이를 향해 자꾸만 손나비를 날리는데
검은 살의 물고기들이 달려와 은사시잎을 뜯는다
아버지는 자정의 종소리로 울리고
달빛 속의 누이는 한없이 부풀어 오른다
바람을 읽으면 별이 될 수 있을까
잎 큰 나무들이 바람을 모아
제 안에 나이테를 그려놓고
잎 떨군 나는,
눈 먼 새들의 울음을 모아 내 몸을 헹군다
출처 : 사랑 . 시. 그리움 하나
글쓴이 : 향기로운 추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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