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文學산책 마당

[스크랩]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마술 풍차

鶴山 徐 仁 2007. 6. 10. 19:11

 

                                     마술 풍차

 

                                                                                          김혜주

 

  빈들에 풍차가 서 있었다.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어머니가 그 옆에서 풍차를 돌리고 계셨다. 논두렁에 앉아 하염없이 어머니를 기다렸지만, 해가 설핏 기울 때까지도 어머니는 나를 모르는 척하셨다. 멈출 줄 모르던 풍차. 그 풍차가 미웠다. 검불이 날면서 자욱하게 일어나는 한 무리의 바람이 아득한 신기루 같아 보였다. 

나는 지금 농업 박물관 안에 전시된 풍차 앞에 서있다. 정확한 이름은 풍구로 되어 있지만, 내가 살던 곳에서는 풍차라고 불렀다. 풍구라 함은 바람을 일으키는 농기구를 아우르는 이름으로 아궁이 속에 왕겨를 넣고 불을 붙이는 손 풍구나 대장간 불 가마를 달구는 풀무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다.

나무로 만든 이런 풍차는 농촌에서 탈곡한 낟알을 고르는데 썼던 농기구이다. 커다랗고 둥근 북처럼 생긴 통 안에 여섯 개의 새의 날개 깃 같은 게 있다. 둥글게 뚫어진 구멍으로 바람을 빨아들인 다음, 날개를 퍼덕여서 새 바람을 만들어 낸다. 깔때기 모양의 넓은 아가리는 무엇이든 다 받아들일 태세지만 주입구 하단에 꽂혀 있는 나무공이가 들고 나는 것을 적당히 조절한다. 곡식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날개에서 나오는 바람에 의해 알곡과 검불이 자연스레 분리된다. 

어느 아녀자의 손길이 머물다가 멈춰버린 것일까. 무심하게 드러난 나뭇결 위에 시간의 흐름이 어룽져 있다. 닳아빠진 손잡이에 배인 노동의 흔적이 바라보는 마음을 서늘하게 한다. 돌지 않는 풍차. 박물관 한 귀퉁이에 고단한 삶을 내려놓고 평온하게 쉬고 있는 늙은 풍차가 내 안에 잔잔한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들녘의 저녁나절, 어머니를 기다리다 지친 나는 졸음이 쏟아져 깜박 잠이 들곤 했다. 그 꿈속에서 풍차를 만났다. 풍차는 낮은 휘파람 소리를 내며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다. 금빛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나오기도 했고, 마술처럼 하얀 날개 옷을 입은 천사도 바람을 타고 날아올랐다. 무엇이든 원하기만 하면 다 쏟아져 나올 것 같던 풍차를 바라보며 내 남루한 꿈도 슬쩍 나무공이로 밀어 넣고 싶었다. 그러자 뭔가 번쩍 스쳐 지나가는 빛 줄기가 보였다. 그 빛이 너무나 강렬해서 순간적으로 눈앞이 캄캄해질 지경이었다. 빛이 사위어갈 쯤, 그렇게 갖고 싶었던 노랑머리 인형과 초록색원피스가 팔랑팔랑 풍차 안에서 나왔다. 너무도 아련한 꿈이었다. 어느 틈에 내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잡을 만하면 사라지는 무지개처럼 꿈은 내가 달려간 만큼 더 멀리 있었다. 무지개처럼 손에 잡히진 않았지만, 그래도 꿈꿀 수 있어서 좋았다. 그때부터 나는 내 기억의 방에 마술풍차를 그려 넣었다.

탈곡기로 대충 후려낸 곡식에서 쭉정이와 꺼끄러기를 가려내는 일은 아녀자들의 몫이었다. 보리·밀·들깨·참깨 같은 것들이 풍차에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결 고른 낟알이 되어 나왔다. 어머니는 쭉정이 속에 잘못 쓸려간 알곡 한 톨도 키에 담아 까불어 정성껏 가려내셨다. 풍차로 가려낼 수 없는 것들은 키를 사용하였다. 

어머니의 손놀림에 반들거리던 자줏빛 팥알들이 차르르 화음을 만들며 널뛰듯 키 안에서 춤을 추었다. 낮은 소리로 수런거리면서 다시 키 안으로 떨어지던 모래알 같던 기장. 어머니는 일정하게 키를 까부르다가 고수의 장단처럼 추임새를 넣으며 한 번씩 키를 두드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간혹 섞여있던 마른 껍질이 감쪽같이 날아가 버렸다. 풍차로 바람을 일으켜 알곡을 수북하게 빚으시던 어머니는 진정 가을 들판의 마술사이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 어머니는 오랜 농사일을 놓았다. 풍차도 덩달아 멈춰 버렸다. 거미줄을 잔뜩 뒤집어 쓴 풍차는 헛간 한 귀퉁이에 쑤셔 박힌 채 숨바꼭질하는 아이들이나 도둑고양이의 은신처가 되기도 하였다. 

살다 지칠 때마다 나는 자주 마음속에 간직한 마술 풍차를 꺼내 마술을 걸어보곤 했다. 어디에도 출구가 보이지 않을 것 같이 꽉 막혀버린 현실 속에서, 상처받고 비루한 삶의 꺼풀들을 멀리 허공으로 날려 보내고 싶었다. 고단한 일상과 부질없이 부풀려진 욕망조차 풍차바람에 날려버리고 싶었다. 버거운 꿈은 풍차 안에 솔솔 풀어 놓고, 어느 하루 날을 잡아 풍차 바람의 꽁무니에 서서 기다리고 싶었다. 마술 풍차를 통과해 나오기만 하면 지리멸렬한 내 삶도 마술처럼 아름답게 빛날 것 같았다. 검불과 허접쓰레기들을 다 날려 보내고 튼실하고 윤이 나는 알곡 같은 꿈만을 삼태기 가득 쓸어 담고 싶었다.

제 기능을 상실한 채 도시 한복판에 유배된 풍차 위로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진다. 고향집 건넌방에 풍차 날개처럼 낡은 어깨로 쉬고 계신 어머니. 일평생 자식들의 앞날에 티를 가려내 주느라 늙어 쇠잔해지신 어머니는 오진 알곡 같은 자식들을 하나 둘 대처로 떠나 보내고, 성치 않은 무릎 때문에 전시장의 풍차처럼 꼼짝 않고 방안에 앉아 계신다. 홀로 기다림에 지쳐 계시다가도, 잊을만해야 얼굴을 내비치는 딸자식을 볼 때면 가을 햇살처럼 환하게 웃으신다.

한 장의 흑백사진처럼 정지된 기억으로 내 안에 멈추어 있는 풍차. 누르스름한 광목 앞치마 자락을 쉴새없이 일렁거리게 하는 풍차 바람 속에 어머니는 지금도 서 계신다. 풍차를 돌리고 서 계신 어머니 옆에 졸고 있는 내 모습도 환영처럼 스친다. 말라 바스러질 것 같은 어머니의 육신도 마술풍차는 순식간에 변신시켜 줄까. 기운 잃은 어머니의 두 다리에 푸른 물을 돌게 하고, 숱 없는 흰머리 대신 풍성한 검은머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다시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풍차를 바라본다. 어머니의 풍차도, 어릴 적 헛간도 이제는 흐릿한 기억일 뿐, 빈 들을 훑는 마술풍차 바람소리만 내 귓바퀴 안에 아득하다.  ( 2007년 대구매일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작) 


 

[심사평]


2007년 수필 부문 당선작은 서울의 김혜주 씨가 쓴 ‘마술 풍차’를 뽑았다. 두 사람의 심사위원은 예년과는 달리 어느 작품을 선택할 것인지 전혀 고심하지 않고 ‘마술 풍차’가 마술을 부리듯 쌩쌩 돌아갈 수 있도록 바람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농업박물관에 들렀다가 본래의 기능을 잃고 전시실에 박제되어 있는 낡은 풍구를 보는 순간 필자는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게 된다. 바람을 잃어버린 풍구 옆에 젊은 날의 어머니를 세워두고, 논두렁에 앉아 풍구질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어릴 적 자신을 투영시켜 아린 추억을 곰살맞게 풀어낸다.

빈들에 서 있는 풍구에서 출발한 의식의 흐름은 마치 영화의 회상기법처럼 과거와 현재를 무시로 넘나든다. 미사여구로 수선부리지 않는 간결한 문장과 탄탄한 구성이 좋은 점수를 얻었다. ‘마술 풍차’는 읽고 나면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들판 풍경이 밀레의 가을 추수 그림을 꿈에서 본 듯 흐릿하지만 너무나 선명하다. 좋은 작품을 건졌다는 기쁨이 앞선다.

이번 공모에는 지난해보다 30여 편 적은 440여 편이 응모했다. 최종심까지는 모두 5편이 올라 왔다. ‘냄새’(박성혜), ‘그리움’(김인현), ‘우렁각시를 찾아서’(신성애), ‘재석이’(김은경)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냄새’가 개인의 사생활까지도 숨김없이 드러내는 솔직함과 여태까지 금기시되어 온 수필에서의 성(性)문제를 다룬 용감성이 찬사를 받았으나 당선작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참으로 아까운 작품이다.

경험했던 과거를 글로 쓴다고 모두 수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추억으로 승화시켜 그 추억이 잊지 못하는 그리움으로 연결되는 글이 수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응모자의 문운을 빈다.

정혜옥(수필가), 구활(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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