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조영님 기자] 내가 있는 연대에서 용구시까지는 버스로 약 1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용구시 버스 터미널 종점에 도착하기 전에 '남산대불(南山大佛)'이라는 표시판을 보고 얼른 차를 세워 달라고 했다. 버스에서 내린 곳은 시원스럽게 대로가 뚫려 있었지만 지나가는 택시나 차량은 많지 않았다.
한참을 걸어가다가 택시를 탔다. 남산대불을 보러 간다고 하니까 그곳에서 약 20킬로미터 쯤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버스를 탈 테니 내려 달라고 하자 남산대불까지 가는 버스는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혹시 내가 중국말을 모른다고 나를 속이려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으로 잔뜩 의심에 찬 눈길로 이것저것 거듭해서 물어보고 나서야 겨우 안심을 했다.
몇 차례의 중국 여행을 통해서, 산동성 사람들은 낯선 외국인이라고 하여 함부로 속이거나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택시만 타면 자기 방어를 위한 본능인지, 아니면 중국말을 모른다는 위축감에서인지 운전기사에 대한 믿음이 서지 않는다. 친절하게도 택시 기사는 돌아갈 때는 어디에서 내려서 몇 번 버스를 타면 버스터미널에 갈 수 있다는 말을 여러 번 해주었다.
남산대불에 도착하여 표를 사고 한참을 걸어 들어갔다. 토요일 오전이어서 그런지 아직 관광객은 많지 않았다. 천천히 산책을 하듯이 걸어 올라가면서 먼저 본 곳은 '향수암(香水菴)'이라는 절이었다. 명나라 천후(天后) 연간에 건축된 이 사찰은 본래 '향수암(向水菴)'이었는데 1999년에 중수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절다운 절을 만나다
탈해문이라고 하는 산문전(山門殿)을 지나니 사찰 안에는 천왕전, 대웅보전, 장경루, 백자당, 응신당 등의 많은 전각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백자당 안에는 자식을 점지해 주는 송자관음보살과 백 여 명이나 되는 천진한 어린아이의 조각상이 있었다. 자식을 낳기를 희구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와서 기원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 사찰은 지나가는 관광객은 물론 스님조차도 보이지 않아 한적하기 이를 데가 없는 곳이었다. 불탑 끝에 매달린 종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댕댕댕 하는 청아한 소리를 내는 것을 듣고 있자니 내 마음조차 맑아지는 듯 했다. 중국에 와서 모처럼 절다운 절을 만난 것 같았다.
향수암을 보고나서 용구시가 자랑하는 남산대불을 보았다. 남산대불은 청동으로 주조한 석가모니 좌불상으로 높이가 38.66미터, 무게가 무려 380톤이나 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청동 좌불상이라고 한다. 남산대불에는 공덕당, 만불전, 불교역사박물관이 있다. 만불전(万佛殿) 안에는 9999개의 청동으로 주조한 작은 전신 불상이 진열되어 있고 그 앞에 불이 켜져 있는데 대단히 장엄하다.
나는 수 백 개의 계단을 하나하나 밟고 올라가서 거대한 좌불상의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면서 축원을 하였다. 우리네 할머니들이 불상 앞에서 그렇게 하였듯이 가족의 건강과 사업 번창과 어린 아들의 건강을 맘속으로 빌었다.
남산대불의 계단 아래에는 커다란 부처의 손을 본떠 만든 조각상이 있었다. 부처의 손을 어루만지면서 수복과 사업성취, 평안과 부귀를 마음 속으로 염원하면 뜻대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부처의 손바닥 중앙은 많은 사람들이 만진 탓으로 반질반질 윤이 났다. 가까이 가서 부처의 손금을 보니 우리네 인간의 손금과 너무도 달랐다. 재물복을 나타내는 선도, 명을 나타내는 선도, 성공을 나타내는 선도 보이지 않았다. 저것이 바로 초월자의 손금이구나 싶었다.
<남산대불 옆에 위치한 불교사원인 남산선사(南山禪寺)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남산도원(南山道院)으로 이동했다. 남산도원 석방에는 '국태민안(國泰民安)', '정통인화(政通人和)'이라는 대형 글씨가 좌우로 새겨져 있다. 중국의 전통사찰이든 도교사원이든 유명한 관광지이든지 간에 어느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문구 중의 하나가 바로 '국태민안'이다.
이곳의 규모도 역시 방대하다. 동서를 축으로 하여 삼성전(三星殿), 관성전(關聖殿), 원진궁(元辰宮), 재신전(財神殿), 탑원(塔院), 통현각(通玄閣), 경수궁(慶壽宮), 망학루(望鶴樓), 삼황각(三皇閣), 팔경궁(八景宮), 의성원(醫聖院), 서공묘(徐公廟) 등의 건축물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아들을 데리고 하나하나 둘러보면서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 관우, 장비에 관한 일화나 각 사당과 전각에 모셔진 신들에 관한 짤막한 전설적인 이야기를 해주니 재미있어 하였다.
팔경궁 안에 들어가니 공자, 노자, 팔선신 등을 모신 전각이 있었다. 안내원이 우리보고 따라오라고 하길래 가보니 작은 동굴 앞에 철과리가 철지팡이를 짚고 앉아 있는 동상이 있었다.
아마도 팔선인 중의 하나인 철과리라는 도인이 동굴에서 공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 동상의 손등, 등, 발, 술병이 반질반질하였다. 옆에 보니 발을 만지면 재앙이 소멸되고, 손을 만지면 재물이 생기고, 호리병을 만지면 병이 생기지 않는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아들 녀석은 복을 많이 받고 싶다고 하면서 동상의 이곳저곳을 한참을 어루만졌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도 복을 받기를 염원하는데 풍진 세상에 온갖 쓴 맛을 본 어른들이야 오죽하겠나 싶었다.
재신전(財神殿)에 와서 보니 여기 모셔진 분은 '비간(比干)'과 '범여(范蠡)'였다. 범여는 오나라 왕 부차를 도와준 인물이면서 중국 최초의 갑부로 알려졌으니 재신전에 모셔진 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렇지만 비간은 공자가 주나라의 세 성인이라고 했던 충신이 아니던가? 폭군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주왕의 폭정을 간하다가 가슴을 찢겨 죽임을 당한 사람이 어째서 재신전에 모셔져 있는가?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다
그 이유는, 비간은 충신이었으되 무심무향(無心無向)한 마음가짐과 공도(公道)를 지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재물을 모아 거부가 되기 위해서는 금전에 대한 특별한 경영 원칙을 넘어선 무심한 마음 상태에 이르러야 된다는 것이다.
눈앞의 작은 고기를 잡기 위해 아웅다웅하는 사람에게는 대어를 낚을 안목과 방법이 없다는 것을 상기해보면 재신전에 비간과 범여를 함께 모셔둔 중국인의 발상이 참으로 원대하다.
남산도원에는 십여 채의 전각과 이십 여 채의 누각들이 다양한 종류의 수목과 조화를 이루어 거대한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었다. 솔 냄새 짙은 작은 오솔길을 따라 느긋하게 산책을 하는 기분도 좋았다. 차와 다구를 준비해 가면 차를 마실 만한 곳도 꽤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남산대불과 남산도원을 관람하는데 두어 시간을 걸었기 때문에 도저히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서 간이 차편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남산대불 정문에서 출발하여 남산약사옥불까지 가는데 왕복 26원이었다. 꼬불꼬불 포장된 도로를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사방에서 바람이 어찌나 거세게 부는지 날아갈 것만 같아 한손으로는 아들 손을 꼭 잡고, 한손으론 카메라를 웅켜 잡아야만 했다.
산허리를 서너 개 쯤은 족히 넘은 것 같았다. 이 길을 걸어서 올라갈 생각을 잠시나마 했던 것이 아찔하기까지 했다. 중국이란 나라는 도대체 얼마나 땅덩어리가 크길래 아니면 얼마나 손이 크길래 이렇게 대규모의 관광단지를 조성할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푸른 초원에는 잘 정비된 골프장도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골프에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한국 사람들이 이곳 남산의 골프클럽을 많이 이용한다는 말을 들었다.
남산옥불전에는 중국에서 가장 크고 가장 높이 조성된 약사옥불이 전시되어 있다. 약사여래는 재앙을 없애주고 수복(壽福)을 더해주고 재물복을 가져다준다는 부처로 알려져 있다. 옥불전에서는 오백 나한의 모습과 사리탑, 불교와 관련된 각종 유물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옥불전을 관람하고 나서 송조(宋朝), 춘추원(春秋園)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춘추원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전시하기 위해 2003년에 조성된 곳이다. 곳곳에 공자, 노자, 맹자, 한비자 등 춘추전국시대 저명한 분들의 주옥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논어의 '인자안인(仁者安仁) 지자이인((智者利仁)-어진 자는 인을 편안하게 여기고 지혜로운 자는 인을 이롭게 여긴다'라는 구절도 보였다. 다양한 인물들의 조각상과 고사성어를 그림으로 그려놓은 벽화, 알기 쉽게 그려놓은 연대표 등이 있어서 중국 역사를 이해하고 공부하는데 유익한 장으로 활용될 것 같았다. 특히 청소년들이 견학하기에 좋은 곳으로 여겨졌다.
용구시에 위치한 남산관광구는 불교와 도교적 색채가 혼재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면서 세계적인 규모의 대형 골프장을 겸하고 있는 독특한 문화단지이다. 이같은 대형 문화 관광단지를 '남산'이라는 기업이 독단적으로 조성하였다는 말을 나중에 듣고서 더욱 놀랬다.
남산관광구를 돌아보고 내려오는 길에 아들은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엄마가 왜 나를 데리고 답사를 많이 다니는지 알았어요."
"그래, 뭣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밥 먹는 것도 공부고, 노는 것도 공부고, 잠자는 것도 공부라고 했잖아요. 답사도 공부니까 그렇지요. 답사를 하면서 많은 것을 볼 수 있으니까 그렇지요."
헉! 작년에 답사 다닐 때만 해도 조금만 다리가 아프면 업어 달라고 하여 업혀 다녔던 녀석이 어느새 커서 제법 신통한 말을 하니 대견스러웠다. 그래, 밥 먹는 것에서부터 공부 아닌 것이 어디 있겠는가? 정작 내가 한 말이지만 매사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공연히 어린 아들 보기가 미안하였다.
/조영님 기자
한참을 걸어가다가 택시를 탔다. 남산대불을 보러 간다고 하니까 그곳에서 약 20킬로미터 쯤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버스를 탈 테니 내려 달라고 하자 남산대불까지 가는 버스는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혹시 내가 중국말을 모른다고 나를 속이려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으로 잔뜩 의심에 찬 눈길로 이것저것 거듭해서 물어보고 나서야 겨우 안심을 했다.
몇 차례의 중국 여행을 통해서, 산동성 사람들은 낯선 외국인이라고 하여 함부로 속이거나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택시만 타면 자기 방어를 위한 본능인지, 아니면 중국말을 모른다는 위축감에서인지 운전기사에 대한 믿음이 서지 않는다. 친절하게도 택시 기사는 돌아갈 때는 어디에서 내려서 몇 번 버스를 타면 버스터미널에 갈 수 있다는 말을 여러 번 해주었다.
남산대불에 도착하여 표를 사고 한참을 걸어 들어갔다. 토요일 오전이어서 그런지 아직 관광객은 많지 않았다. 천천히 산책을 하듯이 걸어 올라가면서 먼저 본 곳은 '향수암(香水菴)'이라는 절이었다. 명나라 천후(天后) 연간에 건축된 이 사찰은 본래 '향수암(向水菴)'이었는데 1999년에 중수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절다운 절을 만나다
▲ 향수암 불탑에 걸린 종 |
ⓒ2007 조영님 |
이 사찰은 지나가는 관광객은 물론 스님조차도 보이지 않아 한적하기 이를 데가 없는 곳이었다. 불탑 끝에 매달린 종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댕댕댕 하는 청아한 소리를 내는 것을 듣고 있자니 내 마음조차 맑아지는 듯 했다. 중국에 와서 모처럼 절다운 절을 만난 것 같았다.
향수암을 보고나서 용구시가 자랑하는 남산대불을 보았다. 남산대불은 청동으로 주조한 석가모니 좌불상으로 높이가 38.66미터, 무게가 무려 380톤이나 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청동 좌불상이라고 한다. 남산대불에는 공덕당, 만불전, 불교역사박물관이 있다. 만불전(万佛殿) 안에는 9999개의 청동으로 주조한 작은 전신 불상이 진열되어 있고 그 앞에 불이 켜져 있는데 대단히 장엄하다.
나는 수 백 개의 계단을 하나하나 밟고 올라가서 거대한 좌불상의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면서 축원을 하였다. 우리네 할머니들이 불상 앞에서 그렇게 하였듯이 가족의 건강과 사업 번창과 어린 아들의 건강을 맘속으로 빌었다.
▲ 용구시가 자랑하는 대형 좌불상 |
ⓒ2007 조영님 |
그래서인지 부처의 손바닥 중앙은 많은 사람들이 만진 탓으로 반질반질 윤이 났다. 가까이 가서 부처의 손금을 보니 우리네 인간의 손금과 너무도 달랐다. 재물복을 나타내는 선도, 명을 나타내는 선도, 성공을 나타내는 선도 보이지 않았다. 저것이 바로 초월자의 손금이구나 싶었다.
▲ 이것이 부처님 손바닥. |
ⓒ2007 조영님 |
▲ 남산도원 입구 |
ⓒ2007 조영님 |
아들을 데리고 하나하나 둘러보면서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 관우, 장비에 관한 일화나 각 사당과 전각에 모셔진 신들에 관한 짤막한 전설적인 이야기를 해주니 재미있어 하였다.
팔경궁 안에 들어가니 공자, 노자, 팔선신 등을 모신 전각이 있었다. 안내원이 우리보고 따라오라고 하길래 가보니 작은 동굴 앞에 철과리가 철지팡이를 짚고 앉아 있는 동상이 있었다.
▲ 철과리의 발을 만지면 재앙이 소멸된다는 문구가 돌에 새겨져 있다. |
ⓒ2007 조영님 |
아들 녀석은 복을 많이 받고 싶다고 하면서 동상의 이곳저곳을 한참을 어루만졌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도 복을 받기를 염원하는데 풍진 세상에 온갖 쓴 맛을 본 어른들이야 오죽하겠나 싶었다.
재신전(財神殿)에 와서 보니 여기 모셔진 분은 '비간(比干)'과 '범여(范蠡)'였다. 범여는 오나라 왕 부차를 도와준 인물이면서 중국 최초의 갑부로 알려졌으니 재신전에 모셔진 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렇지만 비간은 공자가 주나라의 세 성인이라고 했던 충신이 아니던가? 폭군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주왕의 폭정을 간하다가 가슴을 찢겨 죽임을 당한 사람이 어째서 재신전에 모셔져 있는가?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다
▲ 재신전에 모셔져 있는 범여와 비간 |
ⓒ2007 조영님 |
눈앞의 작은 고기를 잡기 위해 아웅다웅하는 사람에게는 대어를 낚을 안목과 방법이 없다는 것을 상기해보면 재신전에 비간과 범여를 함께 모셔둔 중국인의 발상이 참으로 원대하다.
남산도원에는 십여 채의 전각과 이십 여 채의 누각들이 다양한 종류의 수목과 조화를 이루어 거대한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었다. 솔 냄새 짙은 작은 오솔길을 따라 느긋하게 산책을 하는 기분도 좋았다. 차와 다구를 준비해 가면 차를 마실 만한 곳도 꽤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남산대불과 남산도원을 관람하는데 두어 시간을 걸었기 때문에 도저히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서 간이 차편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남산대불 정문에서 출발하여 남산약사옥불까지 가는데 왕복 26원이었다. 꼬불꼬불 포장된 도로를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사방에서 바람이 어찌나 거세게 부는지 날아갈 것만 같아 한손으로는 아들 손을 꼭 잡고, 한손으론 카메라를 웅켜 잡아야만 했다.
산허리를 서너 개 쯤은 족히 넘은 것 같았다. 이 길을 걸어서 올라갈 생각을 잠시나마 했던 것이 아찔하기까지 했다. 중국이란 나라는 도대체 얼마나 땅덩어리가 크길래 아니면 얼마나 손이 크길래 이렇게 대규모의 관광단지를 조성할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푸른 초원에는 잘 정비된 골프장도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골프에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한국 사람들이 이곳 남산의 골프클럽을 많이 이용한다는 말을 들었다.
남산옥불전에는 중국에서 가장 크고 가장 높이 조성된 약사옥불이 전시되어 있다. 약사여래는 재앙을 없애주고 수복(壽福)을 더해주고 재물복을 가져다준다는 부처로 알려져 있다. 옥불전에서는 오백 나한의 모습과 사리탑, 불교와 관련된 각종 유물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옥불전을 관람하고 나서 송조(宋朝), 춘추원(春秋園)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춘추원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전시하기 위해 2003년에 조성된 곳이다. 곳곳에 공자, 노자, 맹자, 한비자 등 춘추전국시대 저명한 분들의 주옥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 춘추전국시대의 역사와 문화가 전시되어 있는 춘추원 |
ⓒ2007 조영님 |
용구시에 위치한 남산관광구는 불교와 도교적 색채가 혼재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면서 세계적인 규모의 대형 골프장을 겸하고 있는 독특한 문화단지이다. 이같은 대형 문화 관광단지를 '남산'이라는 기업이 독단적으로 조성하였다는 말을 나중에 듣고서 더욱 놀랬다.
▲ 춘추원에서 보니 만리장성이 한편의 그림처럼 보인다. |
ⓒ2007 조영님 |
"엄마! 엄마가 왜 나를 데리고 답사를 많이 다니는지 알았어요."
"그래, 뭣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밥 먹는 것도 공부고, 노는 것도 공부고, 잠자는 것도 공부라고 했잖아요. 답사도 공부니까 그렇지요. 답사를 하면서 많은 것을 볼 수 있으니까 그렇지요."
헉! 작년에 답사 다닐 때만 해도 조금만 다리가 아프면 업어 달라고 하여 업혀 다녔던 녀석이 어느새 커서 제법 신통한 말을 하니 대견스러웠다. 그래, 밥 먹는 것에서부터 공부 아닌 것이 어디 있겠는가? 정작 내가 한 말이지만 매사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공연히 어린 아들 보기가 미안하였다.
/조영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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