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델리 시가지
인도로 가는 길
1개월간의 인도 아프리카 여행, 참으로 오랫동안 벼르다가 떠나가는 여행이기는 하지만 무덥고 교통이 불편하며 열대풍토병이 많은 인도와 아프리카를 한 달 동안이나 여행하려니 솔직히 말해서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지리학을 전공한 나는 이론적으로만 아는 이 지구상의 모든 대륙을 골고루 밟아보고 싶어서 이러한 어려움을 무릅쓰고 천의 얼굴을 가졌다는 인도와 동물의 천국이라는 아프리카를 찾아가 보려고 이번 여행길을 나선 것이다.
오전 10시에 김해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3시간 반 만인 오후1시 반에 홍콩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부산에서 홍콩으로 직행을 하니 시간이 단축될 뿐만 아니라 경비도 절약되어서 좋다.
홍콩공항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오후 6시에 인디아 항공으로 갈아타고 뉴델리에 도착한 것은 밤 9시 반이었다. 시차가 3:30이니 6시간 30분이 걸린 것이다.
델리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차편은 예상했던 대로 만만치가 않았다. 택시를 대절하자니 캄캄한 밤에 생소한 곳에서 일행이 3대에 분승을 해야 하니 불안하고, 함께 탈 수 있는 봉고를 대절하기로 했지만 그들은 돈만 받아 챙기고 차를 가져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캄캄한 공항에서 곤욕을 치러야 했고 종교의 천국이라는 인도가 이런 나라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은 낡은 택시 3대에 나누어 타고 델리로 들어오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찾아가는 호텔마다 만원이어서 곤욕을 치렀다. 나중에 겨우 뉴델리 역 앞 메닌바자르에 있는 작은 호텔에 들기는 했지만 인도의 첫인상은 가히 좋지가 않았다.
붉은 성
1, 인도의 수도 델리
아침에 호텔 부근에 산책을 나섰더니 거리는 온통 쓰레기 천지였다. 길가에는 빵과 과일, 채소 등을 파는 노점이 늘어섰고 거리에는 삼륜차와 자전거 인력거, 소달구지,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면서 제멋대로 달려가고 있다. 길 위에 얽혀있는 수많은 전선들은 무질서한 인도사회를 보는 듯한데 거기에는 참새들이 앉아서 재잘대고 있다.
거리에는 색다른 노점 이발관이 있었다. 길가의 벽에다 거울을 달아놓고 그 앞에 의자 두 개를 놓아둔 것이 고작이었지만 그래도 거기서 이발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거리에 있는 공중화장실은 불럭으로 벽만 쌓아 놓았을 뿐 아무런 시설도 없다. 그래서 소변을 보면 그대로 하수구로 내려가 버리고 화장실 냄새는 코를 찔렀지만 여자들은 그것마저 없으니 어떻게 용변을 볼까.
먼지인지 안개인지가 자욱한 하늘에는 보름달 같은 해가 떠있고 사람들은 저마다 출근길을 재촉하는데 인력자전거가 닭장 같은 통 안에 초등학생들을 가득 싣고 달려가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인도의 아침거리는 이처럼 지저분하고 혼잡했다.
빵 몇 조각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인도 종단 열차표를 구입하기 위해 뉴델리 역으로 갔다. 역에는 외국인전용 창구가 마련되어 있어서 편리했다. 거기에는 서양 사람도 있기는 했지만 아프리카 흑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창구직원은 손가락 하나로 컴퓨터를 치는 것이 서툴기 짝이 없는데도 일을 하다가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으니 업무는 진척이 말이 아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차례가 되었지만 직원은 모든 사람의 여권이 있어야 한다기에 하는 수없이 나는 릭샤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서 여권을 가져오는 곤욕을 치렀다.
겨우 인도 종단 기차표를 구입한 후 이번에는 아프리카 항공권을 구입하려고 여행사로 갔지만 수많은 여정 중에서 나이로비에서 뭄바이로 돌아오는 좌석이 없어서 시간을 끌었다.
작은 삼륜차 같은 오토릭샤를 타고 델리의 대표적인 명승지인 붉은 성(Red Fort)을 찾아 나섰다. 인력자전거와 릭샤와 승용차와 화물차들이 경적을 울리면서 달리는 거리는 무서웠고 뿌연 먼지와 매연이 뒤범벅이 된 공기는 지독한 냄새가 나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붉은 성은 붉은 바윗돌을 다듬어서 성을 쌓은 것으로 그 규모가 대단했다. 이것은 무굴의 황제인 샤 자한이 1639년부터 10년간에 걸쳐서 쌓은 성으로 샤자하나바드(지금의 올드델리)가 수도였던 시절에 왕궁으로 지었던 것이다. 그러나 1857년 발발한 세포이 항쟁으로 상당부분 파괴되었던 것을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붉은 성은 입구인 라호르 게이트는 초대수상이었던 네루가 1947년 8월 15일 인도 민족해방 기념일에 연설을 하면서부터 인도의 정치적인 행사장으로 이름이 높다.
그 다음에 있는 찻다 촉은 옛날에 성안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보석 등을 팔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잡다한 기념품상가로 변해있고, 왕의 공식 접견장이었던 디와니암과 호화찬란한 공작 옥좌가 있었던 디와니카스, 왕족들의 호화스런 목욕탕이었던 함만, 독실한 이슬람교인이었던 아우랑제브가 건설한 대리석 회교사원 모띠 마스지드 등은 건물은 그런 대로 남아있었지만 내부 관리는 허술했다.
그래서 전쟁박물관으로 사용하는 나우밧 카나는 정전으로 문이 굳게 닫혀있었고, 인도의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을 시대별로 전시해둔 독립운동박물관 역시 선풍기도 전등불도 꺼진 캄캄한 상태에서 관람을 했으니 알만하지 않는가.
붉은 성 관람을 마친 일행은 델리의 명물이라는 찬드니 촉 구경에 나섰지만 거리가 복잡하여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길가에는 여러 가지 상품이 진열되어있었지만 소와 사람과 릭샤와 자동차가 함께 밀려가는 거리는 엄청나게 복잡해서 도깨비 시장이라는 별명처럼 제정신을 가지고는 다닐 수조차 없다.
다시 릭샤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가에는 거대한 모스크인 자미 마스지드가 우뚝 서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모스크는 1644년에 샤 자한 황제가 짓기 시작했지만 공사도중에 죽고 그의 사후인 1656년에야 완공을 한 것이다. 어쨌든 그의 걸작품인 이 건물은 무려 25,000명을 수용하는 인도에서 가장 큰 회교사원이다. 두 개의 뾰족탑은 높이가 무려 40m나 되어서 거기에 오른다면 올드델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고 하지만 그를 여건이 되지 않아서 그대로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여행사에 돌아오니 아프리카 여행일정을 조정해보아도 항공권 구입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문제는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뭄바이로 돌아오는 항공편의 좌석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불했던 요금까지 반환 받고 말았으니 아프리카 여행은 참으로 암담하다.
타지마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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