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봉 산봉우리는 온통 숲으로 쌓여 있어서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실망하고 내려오다가 나무 틈새로 보이는 군항이 아침햇살에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습니다. 1900년 러시아는
앞에 보이는 군항을 조차하려고 하였으나 일본의 방해로 실패하였습니다. 1905년 러시아와 일본은 국가의 명운을 걸고 대한해협에서
일전을 치렀는데 일본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납니다. 그때에 일본의 도고 함대가 전투를 위해 정박 하였던 곳이 바로 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진해만 입니다. |
이 아름다운 항만을 다시는 외국의 침략에 빼았기는
치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모두는 국가의 부를 축적하고 국력신장에 힘을 합쳐 매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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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사관학교 라는 요람을 품으로
안고 사관생도의 체력을 단련하고 정신을 가다듬는 도장으로 이용되어 왔던 "망해봉"이라는 산봉우리는 진해만 이라는 군항을 내려다 보는
어머니의 품속같이 아늑하고 고향같은 푸근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1957년 2월 망해봉을 완전무장으로 오르는
훈련이 시작된 이후 , 그해 어느달에는 한달내내 밤10시 " 순검 끝 " 나팔소리와 함께 비상소집으로 망해봉 작전이 계속된 적도
있었습니다. 인간 인내의 한계와 고행의 끝이 어디까지 인가를 시험하듯 지긋 지긋한 기억이 서린 산봉우리
였습니다.
당시의 정상에는 검은 자갈밭이 있었고 자갈길 계곡이 아래로 이어져 선착순을
할때는 이자갈밭을 미끄러져 내려오면 빠르고 편하게 목적지인 연병장에 도달할수 있었습니다. 졸업때 까지 정상근처에
아직 자갈밭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자갈이 모두 아래로 이동하여 자갈밭 고랑이 아예 맨땅으로 변해 버렸으니 수많은 생도들의 피와 땀으로
승화되어 있었습니다.
내년4월이면 입교 50주년이니 자갈밭을 펄펄 날던 건강과 용기와 기백으로 뭉쳐진 젊은 용사들은 어디가고
머리는 백발이 되거나 아예 벌목해 버린 고목이 되어 해사 개교 60주년 행사에 6월2일 같이 하였습니다.
그옛날을 회상하여
새벽5시에 기상하여 망해봉을 찾았더니 예나 지금이나 힘들기는 마찬가지 였습니다. 나무사이로 보이는 저푸른 바다는 저와 같은 추억을 갖인
사람에게는 어머니의 품속같은 마음의 고향 입니다.
어머니의 품을 남에게 내주고 바다의 운영과 경영할 능력이 없을때 우리는
국권을 상실하고 36년이라는 굴욕적인 식민통치의 아픔을 역사는 기록으로 웅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모두 힘을 합하여 바다로 !
세계로 ! 미래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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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사진가 김대운(kdw123). http://chosun.com/visual/photo등록일:
2006-06-05 23:29
鶴山 ;
사진가께선 해사를 나오신 분 같습니다만, 저도 육군대학이 진해에 있었을 때, 꼭 30년
전에 1년 간 수학한 시절이 있어서 기억이 많이 나는 곳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