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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작가 畵壇

[스크랩] Pablo Picasso ( 1881~1973년)

鶴山 徐 仁 2006. 1. 14. 21:30

 

                                           


                                                        마리 테레즈

                       Pablo Picasso ( 1881~1973년)
                                                            1937년.

부드러운 곡선과 은은한 색상을 통해 여성스럽고 따뜻한 분위기가 묻어나는 작품입니다. 아름다운 금발을 가진 그녀의 헤어 스타일이 잘 나타나 있지요. 그는 마리 테레즈를 주제로 하여 그린 작품들이 특히 많습니다. 젊고 건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그녀는 피카소에게 있어 최고의 모델이었던 것이죠.

 

 

                                올가 피카소의 초상

                               Pablo Picasso ( 1881~1973년)

                                                    1923년.

처음으로 피카소란 성을 준 자신의 부인을 고전적인 표현으로 그렸습니다. 붉은 스카프와 푸른 드레스가 눈처럼 하얀 피부와 어울려 그녀를 더욱 우아하게 하네요. 올가를 그린 이 그림은 과연 피카소의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의 다른 작품들과 확연히 달라보입니다. 한 화가가 하나의 화풍을 다 이루지 힘들지만, 그의 생애에는 여러 가지의 화풍들이 한번에 등장합니다. 여기에 그의 천재성이 있다고 사람들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연인이었던 프랑소와즈와 그녀가 낳은 아들 클로드와 딸 파로마를 함께 작품에 담았습니다. 그녀 또한 젊고 아름다운 여류 화가였으며,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의지가 강하였고 주관이 뚜렷하였습니다. 그녀는 “떠나면 자살하겠다”고 협박하는 피카소에게 “그렇게 하세요. 그것이 당신을 더 행복하게 할거에요.” 라며 당당히 그를 버립니다.

 



                                            손을 겹치고 있는 자클린
  

                                      Pablo Picasso ( 1881~1973년)
                                                             1964년.

결코 80세가 넘은 화가의 작품이라 보기 어려울 만큼 힘과 패기가 느껴집니다. 화가의 강한 터치 만큼, 유난히 긴 목과 큰 눈은 모델에게도 강한 의지가 있음을 엿보이게 합니다. 그녀는 50살의 나이차를 극복하는 결혼을 행함으로서 세상에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꽃을 들고 있는 자클린
 

                                 Pablo Picasso ( 1881~1973년)
                                                   1864년.

두번째로 결혼한 여인 자클린은 피카소가 죽을 때까지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그를 도왔던, 생애 마지막 동반자였습니다. 그녀는 피카소가 죽자, 집안을 검은 커튼으로 가리고, 식탁에 그의 자리를 남기는 기이한 행동들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가 없는 현실을 이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거울 앞의 소녀

                                    Pablo Picasso ( 1881~1973년)
                                                         1932년.

앞면과 옆면을 동시에 나타나게 그린 이 작품을 보면 “빛은 직진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직진하는 빛으로는 보일 수 없지만 빛을 휘게 함으로써, 또 다른 면을 보이게 하였지요. 이러한 생각은 공간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깨뜨리는 것이었고, 전통적 물리학에 위배되는 것이어서 당시 사람들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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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t of a Woman with a Hat

Pablo Picasso ( 1881~1973년)
1962, colored linocut,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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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eping Woman (우는 여자)
       

                                      Pablo Picasso ( 1881~1973년)
                                        1937년, Tate Gallery, London

<게르니카>와 더불어 피카소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는 작품이죠. 내전으로 인해 불바다에 휩싸인 스페인을 보며 슬퍼하는 연인 도라 마알을 모델로 한 작품입니다. 전쟁의 공포와 아픔을 표현한 이 작품을 통해 피카소는 자신의 정치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덕분에사회적으로도 더욱 인정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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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l with a Boat (Maya Picasso),

Pablo Picasso ( 1881~1973년)
1938, oil on canvas,
Rosengart Collection, Luce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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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Dora Maar

Pablo Picasso ( 1881~1973년)
1937, oil on canvas,
Musee Picasso,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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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ream

Pablo Picasso ( 1881~1973년)
1932,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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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 with a Girl Drawing

Pablo Picasso ( 1881~1973년)
1935, 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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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 with Plaster Head

Pablo Picasso ( 1881~1973년)
1925, 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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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 with a Flower

Pablo Picasso ( 1881~1973년)
1932, oil on canvas,
Galerie Beyeler, Bas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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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Demoiselles d'Avignon


Pablo Picasso ( 1881~1973년)
1907, Giraudon,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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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mblers (Mother and Son)


Pablo Picasso ( 1881~1973년)
1905, gouache on canvas,
Staatsgalerie, Stuttg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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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queline in the Studio

Pablo Picasso ( 1881~1973년)
1956, oil on canvas,
City of Luce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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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rnica, detail

Pablo Picasso ( 1881~1973년)
1937, oil on canvas,
Museo Nacional Reina Sofia, Mad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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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Toilette

Pablo Picasso ( 1881~1973년)
1906, oil on canvas,
Albright Knox Art Gallery, Buffalo, 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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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vers


Pablo Picasso ( 1881~1973년)
1923,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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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Communion

Pablo Picasso ( 1881~1973년)
1895-96, oil on canvas,
Museo Picasso, Barcel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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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as Harlequin

Pablo Picasso ( 1881~1973년)
1924, oil on canvas, Musee Picasso,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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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ipes of Pan

Pablo Picasso ( 1881~1973년)
1923, oil on canvas, Musee Picasso, Paris

 


20세기 가장 위대한 화가로 불리고 있는 피카소. 그는 놀라운 작품 만큼이나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평생을 젊은 여인들과 함께 했던 그에게는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저항할 수 없게 만드는 그의 열정을 향한 여인들의 사랑들도 모두 광신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랍니다. 피카소의 인생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모두 일곱 명 정도입니다. 공식적인 연인들만이 그렇다는 것이니, 알려지지 않은 여인들까지 생각해 보면 훨씬 더 많았을겁니다.
스무 살 때 빈민굴에서 만난 피카소의 첫 여인은 조각가와의 결혼에 실패한 후 혼자 살고 있던 페르낭드 올리비에였습니다. 둘은 함께 살게 되었지만 너무나 가난해서 외출할 신발 조차 없어 늘 침대에 머물렀다고도 하고, 물감을 살 돈이 없어 한가지 색 톤으로만 그림을 그렸다는 얘기도 있지요. 이 시기에 그려진 그의 그림들에는 가난한 연인들의 생활이 묻어있기도 합니다.
조금씩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이루어 가게 되고, 사회적으로도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하였을 때, 그는 자신의 친구인 마르쿠스의 연인 “에바”에게 반하게 됩니다. 열렬히 구애를 하는 그를 거부할 수 없었던 에바는 결국 피카소와 함께 살게 되었구요. 하지만 함께 산 지 삼 년 만에 병약한 그녀는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어쩌면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 그녀에게는 다행일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을 버리는 피카소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더 아파했을지도 모르니까요.
에바가 죽은 후 피카소는 우아한 러시아 무용수 올가 코클로바에게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36세의 피카소는 25세의 올가와 첫번째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리고 첫 아들 파올로를 그녀에게서 얻기도 하구요. 당시의 피카소는 성공한 예술가가 되었지만, 집안에 유모, 하녀, 요리사, 운전수까지 두며 가정을 돌보지 않는 올가의 사치스럽고, 향락적인 생활은 그에게 외로움과 짜증만을 주었습니다.
결국 부인에게 애정이 식어버린 피카소는 십 년 만에 그녀를 버리고, 열 여덟 살의 어리고 아름다웠던 마리 테레즈에게 빠지게 되죠. 젊고 건강미가 넘쳤던 그녀를 모델로 하여 피카소는 많은 작품들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그는 몇 년이 못되어 순종적이고 소녀 같은 그녀를 무식하다는 이유로 버립니다. 후에 그녀는 피카소가 죽자 자살을 하는 순애보를 보여줍니다.
마리와 함께 살던 중에 이중적으로 만났던 도라 마알은 지성적인 사진작가였습니다. <게르니카>에도 큰 영향을 주었던 그녀는 파시즘과 나치즘에 대항하는 피카소의 정치적인 사상을 격려하고, 지원해 주었습니다. 회화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전쟁에도 대항할 수 있는 표현의 도구임을 주장할 수 있도록 가르쳐준 것이죠. 덕분에 2차 세계대전 이후 피카소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피카소는 자신의 아들보다도 더 어린 프랑수와즈 질로 때문에 도라를 버립니다. 그리고 그녀는 정신 착란을 일으켜 정신병원에 갇히고 말지요.
62세의 피카소와 21살의 프랑수와즈는 딸과 아들을 하나씩 낳습니다. 하지만 같이 살면서 인간적인 따뜻함을 느낄 수 없었던 그녀는 스스로 그를 떠납니다. 유일하게 피카소를 먼저 떠난 여자였던 그녀는 10년간의 동거 생활을 회상록으로 발간합니다. 그 책에는 피카소의 자기 중심적인 성격과 대인관계, 복잡했던 여자관계까지 모두 담겨 있다고 하네요.
피카소의 마지막 여인은 자클린 로크였습니다. 서른 살의 그녀는 여든 살의 피카소를 필사적으로 유혹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비밀 결혼식은 세상을 또 한번 놀라게 하였지요.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과 결혼했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고백했던 그녀는 피카소가 92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권총으로 자살하여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피카소와 결혼했던 일곱 명의 여인



 



※ 첫번째 연인-페르낭드 올리비에

피카소와 동갑이었던 그녀는
검붉은 머리에 키가 크고 균형잡힌 몸매를 가진 육감적인 여자였는데
항상 쾌활한 성격으로 피카소를 기쁘게 했다.
피카소는 페르낭드를 만나면서 청색시대를 마감하고
장밋빛 시대로 접어든다




※ 두번째 연인- 에바구엘

피부가 무척 하얗던 여인.
피카소는 구년에 걸친 페르낭드와 동거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그녀를 선택한다.
유달리 몸이 약했던 에바. 1차세계대전 이듬해인 1915년 12월 14일 이 젊은 여인은 결핵으로 죽는다.




※ 셋번째 연인- 올가 코클로바

<퍼레이드> 공연 때 만난 러시아 무용수,
피카소가 서른 여섯 살 때 처음으로 결혼을 한 여인이다.
올가는 서민적이고 편안한 것을 즐겼던 피카소와 달리 깔끔하고
상류사회적인 기질을 가졌다.
그녀는 피카소의 첫 아들 파울로를 낳는다.




※ 네번째 연인- 마리 테레즈 발터

피카소가 마흔다섯 살이 되던 해인 1927년 당시 열일곱 살의 건강하고 관능미 넘쳤던 소녀.
페르낭드와 에바, 올가가 갈색 머리카락을 가졌던 것과 달리 그녀는 금발이였다.
피카소의 두 번째 아이 딸 마야를 낳는다.
피카소에게 가장 창조적인 영감을 준 여성이었다고 전해진다,




※ 다섯번째 연인-도라 마알

친구인 폴 엘뤼아르의 소개로 만난 화가이며 사진작가.
피카소의 다섯 번째 연인인 도라는 지적이고 교양을 갖춘 여성으로
현대 미술에 열중했으며 특히,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 여섯번째 연인-프랑스와즈 질로

2차 세계대전 중에 만난 그녀는 아주 젊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류화가이다.
피카소가 예순세 살 때인 1945년부터 함께 살게 되는데 이 때, 그녀는 스무 살이었다.
완벽주의자이고 독점력이 강했던 프랑스와즈는 아들 클로드와 딸 팔로마를 낳는다.
피카소는 이대에 자신의 아이들을 소재로 해 매혹적이고도 생동감 넘치는 초상화들을 남겼다.
여기서 아이들은 때로는 어머니의 품에 안긴 모습으로,
때로는 자기들끼리 놀이에 빠져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 1953년,72세에 만난 자클린 로크
피카소의 마지막 연인이 된 그녀는 커다랗고 짙은 눈망울을 지닌 지중해 풍의 여인이다.
자클린은 1961년 피카소와 비밀 결혼식을 올린다.
후에 서른 살의 젊은 여인이 어떻게 곧 여든이 되는 사람과 결혼을 할 수 있느냐는 말에 그녀는 말한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과 결혼했어요. 오히려 늙은 사람은 나였지요"
그녀는 피카소에게 헌신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바친다.
피카소가 죽고 난 며칠 뒤 그녀도 그를 따라 죽음을 선택한다.

 

 


스스로 12살때부터 라파엘로처럼 그림을 그렸다고 자부한 그림 천재 피카소는 스페인 남부에서 화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열 네살에 한 달이 걸릴 그림을 단 하루만에 그려내기도 했으며, 열 여섯에서는 모든 콩쿨을 석권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열 여덟살에 스페인 대표로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회고전에 <마지막 순간>이란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습니다.

19세기 이후 피카소가 살던 당시의 스페인은 지금도 그렇지만 유럽 문명에 비해 변두리와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파리는 들라크루와와 마네로 인해 20세기 혁명적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구요. 따라서 19살의 피카소가 파리를 동경하고 그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피카소에게 있어서 파리는 전체가 거대한 미술학교 였으며, 활발하게 활동하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 그는 넋을 잃었습니다. 또한 30개의 아틀리에에 수도가 단 하나뿐이던 파리 몽마르트에서의 고통스런 생활을 견디어 낸 건 피카소의 열정이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피카소의 화풍을 일컬어 '청색시대, 분홍시대' 등으로 나누곤 합니다. 그 구분은 대부분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영향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의 절친한 친구 카사게마스의 자살과 궁핍한 생활이 그의 화면에 차가운 청색 단색조의 "청색시대"를 열었습니다. 그 후 그의 첫 여자 페르낭드 올리비에를 만나 "장미시대"가 시작되기도 합니다.
그는 상상을 초월한 여성편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평생 7명의 여자와 살았는 데 두 명은 그를 잊지 못해 자살하고, 두 명은 지나친 질투로 정신이상이 되었으며 한 여자는 요절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여자들이 모두 "그와의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 고백하였습니다. 그의 두번째 여자 청순 가련한 에바는 친구의 연인이었지만 열렬히 사랑했으나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세번째 연인이었던 발레리나 올가와는 아들도 있었으며 정식 결혼도 하였습니다. 마흔 살에 거부가 된 피카소는 올가의 사치에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17살이었던 네번째 여자 마리 테레즈를 만나고 그녀는 피카소에게 초현실주의 영향을 주었으며 최고의 모델이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딸을 낳은 22살의 테레즈를 버린 피카소가 만난 도라는 다섯번째 여자였고, 그 후에 만난 21살의 프랑수아즈는 법대를 나온 지적이며 자유분방한 여자였습니다. 일곱번째 연인 자클린은 그보다 40년 연하의 여자로 절대 헌신형이었으며 피카소 말년의 생애에 오직 작품에만 전념하도록 도와준 여자였습니다.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인 피카소였지만 예술에 대한 그의 정열과 독특한 개성은 그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카페에서 열기찬 토론이나 즉흥적 퍼포먼스를 즐겼던 그의 광란적 취미는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도 하고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1937년 4월 26일 히틀러가 3시간 동안이나 바스크의 작은 도시를 무차별 융단 폭격하여 주민 7천명 중 1천 이상이 학살당하고 도시 전체가 불바다가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에 분노한 피카소는 미친 사람처럼 24피이트 너비 11피이트 그의 대표적 작품 <게르니카>를 한 달만에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게르니카>는 파시즘 독재와 공포 앞에 의연히 맞선 분노의 외침이며 혁명이었습니다. 그는 나치의 블랙리스트 첫머리에 기재될 정도로 파시즘에 대항한 간판스타가 되어 수많은 추종자가 생겼습니다. "회화는 공격적인 전쟁의 도구" 라고 말한 그는 1차·2차 대전 등 엄청난 전쟁과 변혁의 시기였던 20세기에 새로운 메시지를 던진 선각자였습니다. 1973년 4월 8일 92세의 나이로 남프랑스의 별장에서 사망한 피카소는 거의 2만점이나 되는 작품과 20세기 가장 유명한 예술인이라는 명성을 남겼습니다. 또한 " 진실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 라는 마지막 유언과 함께…


 
출처 : 블로그 > 산돌 | 글쓴이 : Cool Guy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