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하나가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이 끝난다고 아쉬워하면서 이번 겨울에는 자기도 꼭 프라하에 가보겠다고 벼르더군요. 그러면서 작년 여름에 다녀온 저에게 이것저것 묻는데, 순간 가슴이 뜨끔했답니다. 작년에 프라하 여행기를 딱 한 회 써놓고 “다음에 계속!”이라고 외치고는 블로그를 방치한 채 몇 달 동안 안 나타났었잖아요. 블로그를 다시 돌보기 시작했을 때는 프라하 여행기를 까맣게 잊고 있었죠... 그렇다고 이제 와서 프라하 여행기를 다시 연재하는 것도 이상하고... 그 대신 관광책자에는 나오지 않는, Moon이 제나름대로 터득한 프라하 즐기는 법을 간단하게 정리해봤습니다.
프라하에서 꼭 해야 할 것!
1. 블타바 강을 따라 걸어가 댄싱하우스를 만날 것
프라하의 중심을 남북으로 흐르는 블타바 Vltava 강의 동쪽 강변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유명한 카렐교 Karlův
Most 에서 시작해 남쪽을 향해 걸어봤죠.
강변을 걸으면서 깨달은 것이 블타바 강에는
카렐교 말고도 아름다운 다리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은 곳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레기교 Most Legii 가
나옵니다. 거기서 더 내려가면 이라스크교 Jiráskův most 가 나오고요. 어떻게 보면 이 다리들이 카렐교보다 더
다리답습니다. 카렐교는 다리라기보다 물 위에 서있는 박물관 같아요. 차가 다닐 수 없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밀려다니면서
난간에 선 조각들을 향해 셔터를 누르는...아름답지만 과거의 시간 속에 정지된 곳 말이에요. 반면에 레기교나 이라스크교는 진짜
이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걸어서 또는 차를 타고 분주히 건너다니는 다리들입니다.
겨울의 레기교와 국민극장 (1924)
시몬 Tavik F. Simon (1877-1942) 작
블타바의 동쪽 강변을 따라 걷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었습니다. (서쪽 강변은 모래톱이거나 건물로
막혀있어 걷지 못해요.)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관광 인파는 줄어들고 대신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걷는 쪽과 강 맞은편으로 수많은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볼 수 있었고 국민극장 Národní divadlo 같은 장려한 건물과 마주치기도
했죠.
이라스크교가 있는 곳까지 오면 지금까지 보아오던 고풍스러운 건물들과는 충격적일 정도로 대조적인 건물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마치 옛 의상을 걸친 사극 인물들의 행렬 끝에 갑자기 우주복을 입은 외계인이 나타난 것 같은 기분이에요. 하지만 아주 재미있고 매력적인 외계인입니다. 이 건물은 명건축가 프랑크 게리 Frank O. Gehry 가 설계한 "댄싱하우스 Tancici Dum" 랍니다.
2. 댄싱하우스에 있는 프랑스 식당 "프라하의 진주"에 가볼 것
댄싱하우스 꼭대기 층에 있는 "프라하의 진주 La Perle de Prague"는 이 도시에서 알아주는 프랑스 식당이라고 합니다. 과연 이름값을 하는 곳이었어요. 창밖으로 보이는 블타바 강의 풍경도 좋았고 웨이터 아저씨들도 친절했고 음식도 맛있었습니다. 우리가 먹은 것은 비교적 싼 "비즈니스 런치" 코스였는데, 우리 돈으로 2만원 조금 넘었을 거에요. 전채와 수프 다음에 주요리로 저는 아래 왼쪽의 농어를, 같이 간 친구는 오른쪽의 쇠고기를 먹었지요.
점심을 다 먹고는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이 건물 사진에서 철사로 된 공(?) 같은 것이 얹혀진 곳 말이에요. 철사공 사이를 돌아다니는 것과 눈 아래 펼쳐지는 프라하 시내를 굽어보는 것...정말 해볼만한 일이었어요. 괜히 요금 내고 구시가 교탑에 올라가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죠. ^^
3. 밤에 그리고 아침 일찍 카렐교를 방문해볼 것
밤에 카렐교에서 바라본 프라하성 Pražský hrad 의 모습입니다. 이 다리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결코 소문보다 못하지 않았어요. 물 위에 드리워진 프라하성의 그림자를 보면서 다리 위 거리 악사들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있으면 마치 성의 그림자가 바이올린 선율의 섬세한 떨림에 맞추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문제는 카렐교가 밤에도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는 것이죠.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등 갖가지 말들이
바이올린 선율을 흐려놓는 가운데 "저게 젤 오래된 조각이제?"하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카렐교는 난간에 서있는 조각들로 유명합니다.
바로크 시대부터 성자들의 조각이 하나씩 만들어져 세워졌다고 해요.)
아래 사진은 카렐교에서 바라본 구시가 교탑, 즉 구시가 광장 Staroměstske Naměsti 쪽으로 난 탑 형태의 다리 입구입니다...사진을 잘 들여다보면 다리 위 어둠 속으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보일 겁니다...
고적한 카렐교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아침에 나와야 합니다. 아침 8시에 나와보니 프라하에 와서 처음으로 한가로운 카렐교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래 사진에 나온 것처럼 그 틈을 타 패션 화보를 촬영하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답니다. 좀더 운이 좋으면 영화 촬영하는 걸 볼 수도 있겠지요.
이 사진에 나온 것은 소지구 Mala Strana 쪽으로 난 교탑이에요. 이 문은 보시다시피 높고 낮은 두 개의 탑으로 되어있습니다. 다리 양끝에 탑으로 된 문이 있는 것도 재미있지만 더 재미있는 것은 두 교탑이 서로 다른 모양이라는 것이죠. 그나저나 저게 당연히 고딕 양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책을 보니 로마네스크 양식이라고 되어있네요. @o@
4. 아르누보 미술에 관심있다면 꼭 시민회관에 가볼 것
구시가의 화약탑에서 왼쪽 모퉁이로 돌아가면 바로 나오는 시민회관 Obecni Dum... 외부는 그냥
유럽에 흔한 공관 건물로 보이는데, 정문에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 장식이 심상치 않습니다. (아래 사진 왼쪽 위를 보세요) 바로 대표적인 아르
누보 예술가 알폰스 무하 Alfons Mucha (알퐁스 뮈샤 1860-1939)의 작품이랍니다.
시민회관의 내부는
온통 아르누보 양식입니다. 아래 사진들은 같이 간 친구가 찍은 것인데 굽이치는 무늬의 바닥에서부터 정교한 금속장식 아치까지 정말
사랑스러워요. 시민회관의 역사나 인테리어에 대해 상세히 알고 싶으면 위 사진의 출처를 클릭해보세요. 시민회관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려면 시민회관에서 상시로 열리는 소형 음악회의 표를 끊어 깊숙한 공연홀로 들어가는 게 좋답니다. 하지만 음악회 자체의
수준은 별로랍니다...
시민회관에는 유명한 카페가 있어요. 누보 Nouveau 라고도 하고 그냥 시민회관 카페 Kavarna Obecni Dum 라고도 하는 모양입니다. 드높은 천장에 샹들리에가 줄을 지어 드리워진 화려한 카페에요. 여기서 구야쉬 Gulasche (굴라쉬)를 처음 먹어봤습니다. 구야쉬는 헝가리 전통음식이라는데, 체코에서도 많이 먹는 모양이에요. 어느 식당에 가도 구야쉬 메뉴가 있습니다. 구야쉬는 한마디로 독특한 소스의 비프 스튜에 쫀득쫀득한 찐빵을 옆에 곁들인 것이죠. 맛있어요!
하지 않아도 될 것
1. 마리오네트 볼 필요 없음 (안 보기를 권함)
들고 간 여행책자에 프라하에 가면 꼭 한 번 마리오네트를 봐야한다고 써 있기에, 국립 마리오네트 극장 Národní divadlo marionet 에 갔습니다. 뭐, 거창하게 "국립"이라고 해봤자 작은 극장이에요. 들어가보니 놀랍게도 길에 보이던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모두 이 극장에 모인 것 같았습니다. 아는 사람까지 만났다니까요. 우린 모두 같은 여행책자를 봤나봅니다... 우리가 본 것은 가장 유명한 레퍼토리인 돈 조반니 Don Giovanni 였습니다. 모차르트의 동명의 오페라를 인형극으로 만든 거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미없었습니다.
인형극이라기에 일본의 분라쿠처럼 정교한 인형극을 기대했었죠. 그러나 체코의 마리오네트는 소박하고 희극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꼭두각시 놀음에 가까웠습니다 (인형을 조종하는 방법이야 전혀 틀리지만요.) 그렇다고 꼭두각시 놀음처럼 풍자적인 재담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어요. 이건 오페라였니까요. 따로 대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녹음된 오페라 노래에 맞춰 인형을 움직이는 것 뿐인데 그 움직임도 더없이 소박(좋게 말해서)하니... 한마디로 그냥 슬랩스틱 코미디에 가까웠습니다. 보다가 시간 아까워서 1막 끝나고 그냥 나왔습니다.
2. 프라하 성에 대해 너무 기대하지 말 것
서울에 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반드시 경복궁이나 창덕궁을 봐야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것처럼 프라하에 간 우리도 프라하성을 봐야한다는 의무감을 느꼈죠. 그 의무감이 틀린 것은 아니에요. 과연 프라하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니까요. 하지만 밤에 카렐교에서 보이는 것만큼 낭만적인 곳은 아닙니다. 그냥 전형적인 의무 관광코스에요. 의무감으로 몰려온 세계각지의 관광객들이 아침부터 북적거리기 때문에도 더더욱...
위 사진은 프라하 성 안에 있는 성 비투스 성당 Katedrala sv. Vita 의 외부와 내부를 찍은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우주목처럼 드높게 솟은 이 고딕 양식의 성당은 블타바 강 건너편에서도 쉽게 눈에 띌 정도로 장대하죠. 역시 성당은 르네상스나 바로크 양식보다는 고딕 양식이 더 숭고하고 신비로운 매력을 주는 것 같아요. 그러나 이런 느낌을 충분히 즐기기에는 관광객이 너무 많습니다...친구가 그러는데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도 이렇게 관광객이 많지는 않다고 합니다 -_-
프라하성에서도 유명한 황금골목으로 말하자면, 집들이 금빛으로 반짝이거나 금돌이 길에 깔려 있는 것은 아니더군요. 연두색, 노랑색 등등의 귀여운 집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아주 좁은 골목이었습니다. 이곳에 성의 연금술사들이 모여살아서 이름이 "황금 골목"이 되었다고 합니다... 거기 카프카가 살았던 하늘색 집도 있었지요. 같이 간 친구가 정말 기적적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순간 위의 사진을 찍었답니다.
왜 기적이라고 하냐 하면 좁은 골목이 발디딜 틈 없이 관광객들로 가득 차있었거든요. 골목이 좀 고적한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면 그리고 골목의 모든 집들이 남김없이 선물 가게나 레스토랑이 아니라 한둘이라도 옛 실내를 간직한 집이었다면 좀더 낭만적이었을텐데...
3. 소형 음악회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
아까 시민회관에서의 음악회 이야기를 했는데요, 프라하는 유서 깊은 건축물에서 하는 소형 연주회가 하나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인 모양입니다. 거리거리마다 콘서트 전단을 나눠주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콘서트 레퍼토리는 다 비슷비슷합니다.
시민회관의 아름다운 아르누보 홀에서의 본 현악콘서트는... 그러나...-_-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나 헨델의 "라르고," 파헬벨의 "카논" 등 너무나 익숙한 음악을 연주해 주는... 그야말로 관광객용 연주회였습니다.
그거 자체가 문제란 건 아니에요. 유서 깊고 멋스러운 장소에서 이런 친숙한 곡들을 편안하게 듣는 것도 즐거운
일이니까요.
문제는 비발디의 "사계"에서였습니다. 관중이 한 계절의 소악장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치는 거예요! 저도
클래식 연주회 많이 가본 사람은 아니지만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않는 것은 기본이라고 배웠거든요. 더구나 그 짧은
소악장마다 박수를 치다닛...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실수를 많이 한다고 어느 음악가가 투덜거리는 것을 봤는데, 뭐, 이 연주회의 관중은 대부분
유럽과 미국 관광객들이었다고요. 그 동네 사람들도 클래식 연주회 잘 안 가는 건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하여튼 박수는 그렇다고 치고 주 바이올린이 다른 악기들보다 지나치게 앞서 가는 데다가 어찌 그리 민망할 정도로 삑사리를 내는지...그래도 청중은 삑사리가 난 것도 모르는 것 같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하나요. 예술도 상품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질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철저히 관광객 용으로 상품화된 예술을 보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공연홀의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해서 연주회를 보는 것도 괜찮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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