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찾은 포르투, 그 중심을 유유히 지나는 도우강. 포트 와인 화물선이 몇 척 떠있다. 너머로 구도심이 보인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있다. /WOW
가수가 무대에 올랐다. 무대라곤 하나 바닥보다 조금 높은 나무 판자에 가까웠고 극장은 비좁았다. 소박함은 애수를 극대화하기 좋은 조건. 연주자가 포르투갈식 기타 기타라(Guitarra)를 튕기자, 늙은 여가수가 항구의 바람소리 같은 것을 뱉어냈다. 파두(Fado). ‘숙명’의 뜻을 지닌 포르투갈 가요. 낯선 언어, 그래서 ‘파도’로 오역해도 관계없을 음정이 여름 저녁 공기에 물결칠 때, 해석할 수 없는 그 가사는 필시 배를 타...
매달 4·9일로 끝나는 날 오일장까지 더해지는 '강경 대흥시장'의 젓갈 골목. 짭짜름한 젓갈 냄새가 손님을 먼저 반긴다. 인심 좋게 생긴 젓갈집 주인이 새우젓을 담고 있다. /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감칠맛 내려면 이 정도는 넣어줘야 혀유~.” 한 강경 젓갈 상인의 말에 서울 손님이 받아친다. “소금도, 젓갈도 비싸져서 김장해 먹기 겁난다니까! 아유, 일부러 여기까지 왔는데 좀 더 담아줘요.” 주거니 받거니 흥정하는 사이에 새우 등 터지고 있는 내 이름은 새우젓. 그중에서도 몸값 비싼 ‘육젓’이올시다.
‘도깨비 언덕’이라고 불리는 올드 퀘벡 시티 아브라함 평원에서 커플 한 쌍이 석양을 바라보며 속삭이고 있다. 멀리 보이는 유럽의 성(城) 같은 건물이 퀘벡시의 랜드마크인 ‘도깨비 호텔’, 샤토 프롱트낙이다. /곽아람 기자
퀘벡(Quebec) 여행의 길동무가 될 만한 책을 찾는다면, 단연 캐나다 소설가 루이즈 페니의 아르망 가마슈 경감(警監) 시리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타일의 추리소설로, 주인공 아르망 가마슈는 단풍잎 붉게 물든 퀘벡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각종 살인 사건을 해결한다. 아마추어 화가인 노부인이 숲속에서 시체로 발견되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스틸 라이프’의 책장을 덮었을 때, 13시간의 긴 비행이 끝나고 마침내 퀘벡 공항에...
지난 18일 찾은 '국립농업박물관'의 야외 경작지에 업사이클링 작품인 허수아비가 벼 베기 체험 행사 전 호위 무사처럼 황금 들판을 지키고 있다. 행사 후 논밭은 월동 준비에 들어간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6-7면/농심찾아간수원여행/메인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아레초에 있는 마을 호텔 ‘일 보로’. 피렌체와 아레초 경계에 있어 분쟁이 많았고 쇠락한 마을을 페라가모 가문이 복원해 호텔로 만들었다.
“저기 보이는 다리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배경에 있는 다리예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아레초 기차역에서 차로 10분 달리면 나오는 ‘부리아노 다리’. 아르노강 위에서 746년을 버텨온 이 다리를 가리키며 아레초 사람이 말했다. 그냥 지나갔으면 전혀 몰랐을 것 같은 평범한 시골 마을의 오래된 다리다. 그림에서 여인의 오른 어깨 뒤쪽으로 작게 그려진 아치 4개짜리 돌다리는 모델이 누구인가만큼이나 미스터리였다. 현재까지...
남양주 '예빈산'은 다산 정약용의 마재마을(능내리) 고향집 뒷산과 이어져 그가 마재마을과 덕소를 오갈 때 애용하던 육로였다. 후대에 다산 정신을 되새기며 이름 붙인 '다산 능선' '목민심도'를 따라 예빈산 견우봉 부근에 오르니 마재마을인 능내리와 두물머리, 팔당호 일대가 마치 다도해를 품은 만(灣)처럼 보인다. 다산이 "나의 산"이라고 했던 '남자주(족자섬·10시 방향)도 눈에 들어온다. / 주민욱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경기도 남양주에 ‘목민심도(牧民心道)’가 있다는 걸 아시는지. 다산 정약용의 대표 저서로 꼽히는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본떠 이름 붙여진 ‘목민심도’는 등산객들 사이에서 ‘다산 능선’이라 불리는 구간을 포함해 남양주의 대표 산인 예빈산·예봉산·적갑산·운길산 등을 잇는 등산 코스다. ‘백성을 생각하던 정약용의 마음으로 걸어 보는 길’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일찍이 정약전·약종·약용 삼형제가 생가인 여유당(與猶堂·남양주 조안면 ...
중국 베이징에서 첫눈 오는 날 먹는 훠궈.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베이징에서는 첫눈이 올 때 훠궈를 먹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예닐곱 명의 친구가 모여서 말이다. 얼마 전 중국에 다녀온 사람으로부터 들었다. 머리에 맞은 눈을 털고 원탁에 앉아 훠궈를 먹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니 미소가 지어졌다. 이런 게 ‘미풍’이고 ‘양속’이 아닌가 싶어서. 베이징에 다녀온 그 사람은 중국에서 만난 사람들과 훠궈를 먹고 헤어졌다 한다. 원래는 공항에서 헤어지려고 했다가 비행기 시간이 남은 사람들끼리 밥을 먹...
알말이를 곁들인 부산 ‘해운대속씨원한대구탕’. 시원함을 넘어선 ‘씨’원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양세욱 제공
잔치는 끝났다. 열흘 동안 이어진 세계인의 영화 축제, 부산국제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여행객들로 붐비던 부산도, 들썩이던 해운대도 빠르게 평온을 되찾을 것이다. 한국영화학회 회원이자 영화를 사랑하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매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다. 벗들과의 반가운 만남은 늦은 술자리로 이어지고, 다음 날 아침이면 쓰린 속을 달래줄 해장 음식을 찾아 나선다. 해운대 주변 맛집 탐방도 영화제의 즐거움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음주량...
추모곡 '천개의 바람이 되어'의 노랫말이 지어졌다는 홋카이도 '오누마 국정공원'의 모습. 126개 작은섬 중 일부가 18개의 다리로 연결됐다. 사시사철 산책로가 아름답다. /홋카이도=박은주기자
숯불 위 고기에 육즙이 한두 방울 맺히기 시작할 때, 여행 계획표를 만들 때, 두근거린다. 기자는 휴가 갈 때 보고서 같은 일정표를 만든다. 지난 7월부터 쓴 계획서 첫머리에 이렇게 적어놨다. ‘야채가 좋은 홋카이도의 가을을 즐기고 농장, 목장 방문. 코로나 이후 오픈한 숙소에 주로 묵으며 일본 접객업 변화를 알아본다’. 한국 면적의 80%이면서 인구는 10분의 1(538만명)에 불과한 홋카이도는 일본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
서울 대치동 '보리수'의 육낙무침.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한여름 시골에서는 할 일이 없었다. 국민학교 시절 방학마다 가던 충북 음성군 생극의 시골집에서 동생과 나는 산과 들로 뛰어놀 뿐이었다. 하지만 햇빛이 뜨거워지면 지친 강아지처럼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별 수 없이 마루에 베개를 깔고 누웠다. 대낮에는 텔레비전도 나오지 않았다. 덕분에 라디오 드라마를 자주 들었다. 어느 날 흘러나온 드라마는 김유정의 ‘동백꽃’이었다. 닭에게 고추장을 먹였다는 대목에서 할머니가 말했다. “...
서울 종로구 경희궁 옆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에무'. /오세연 영화감독
9월 중순까지만 해도 지겨운 여름 언제 가나 했는데, 비가 몇 번 오더니 날이 금방 쌀쌀해졌다. 여름이란 계절은 참 이상해서 함께 있을 땐 지겹고 곁에 없을 땐 그립다. 분명 걸음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다녔을 텐데, 뜨거운 볕 아래 빨갛게 까맣게 탄 팔을 보면서 분개했을 텐데, 벌써 아름답게 미화돼서 그저 뜨겁고 청량한 시간이었던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다시 여름이 오면 또 깨닫게 될 거다. 여름이 얼마나 지독하게 덥고 ...
<아무튼주말>공부 부여 여행(아무튼주말 게재 전 사용금지)-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단언컨대, ‘백제로의 시간 여행’을 계획한다면 지금이 ‘제철’이다. 바로 오늘(23일)부터 10월 9일까지 공주와 부여에선 ‘대백제전’이 그야말로 떠들썩하게 열린다. 대백제전은 1955년 ‘백제 대제’를 시작으로 매년 가을 개최해 온 ‘백제문화제’에 ‘무령왕 서거 및 성왕 즉위 1500주년’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이라는 의미를 더한 대규모 행사다. 대백제전이라는 이름으로는 2010년 세계 대백제전 이후 13년 만이다....
프랑스 론 밸리 북부에 있는 콩드리유 마을의 와인 생산자 ‘도멘 조르쥬 베르네’의 포도밭. /도멘 조르쥬 베르네
마르셀 프루스트는 침대에 누운 채로 베토벤 현악 4중주를 듣곤 했다고 한다. 그의 특별한 요청을 받아들여 프루스트의 집에 방문한 4명의 연주자가 단 한 명의 청중인 그만을 위해 연주하는 실황으로. 프루스트에 대해 생각하면 마들렌 냄새보다 침대에 누워 연주를 듣는 그가 떠오르는데, 어떤 표정이었을지는 모르겠다. 감격스러운 마음을 표정으로 드러냈을지, 그런 건 부끄러워서 있는 힘을 다해 자제했을지 감을 못 잡겠다. 이런 음악 애호...
필자의 고향집 앞마당에서 끓고 있는 추어탕. 남원 추어탕은 미꾸라지와 무시래기만으로 맛을 낸다. /양세욱 제공
낮과 밤의 길이가 다시 같아지는 절기, 추분이다. 서늘한 바람이 일고 풀벌레 소리가 요란해지는 이즈음이면 물고기들은 벌써 월동 채비를 시작한다. 살을 찌우는 일이다. 민물이든 바다든 물고기들이 대개 초가을부터 제 맛이 도는 이유이기도 하다. 추어(鰍魚)라는 한자 이름을 가진 미꾸라지만큼 이 계절을 강렬하게 연상시키는 물고기는 드물다. 전적으로 양식에 의존하며 제철 개념이 희미해진 지 오래지만, 물 빠진 논과 개울에서 미꾸라지들...
인도네시아 발리 기아냐르 뜨갈랄랑에 위치한 ‘카펠라 우붓’. 캠핑 콘셉트로 수영장 파이프에서 물이 나오고 있다. /이혜운 기자
“여기가 ‘신들의 섬’ 발리 맞아?” 인도네시아 발리 덴파사르 응우라라이 공항에서 차로 1시간 반을 달리자 울창한 밀림이 펼쳐진다. 바다는커녕, 지나가는 차도 잘 보이지 않는 숲길. 풀벌레 소리만 요란하다. 발리의 중심 ‘우붓’이다. 차에서 내리자 계단식 논이 보인다. ‘뜨갈랄랑’ 지역이다. 광활한 열대우림 속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논 뷰’로 유명한 곳. 말을 잃을 만큼 웅장하다. 이렇게 산비탈을 깎아 농사를 짓는 계단식 농업...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있는 영화관 ‘허리우드 클래식’. /오세연 감독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영화 보는 일에 꽤 많은 시간을 들인다.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만든 고전 영화나, 영화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작품들, 해외 영화제에서 소개된 최신작이나 매달 수십 편씩 쏟아지는 극장 개봉작까지. 좋은 영화를 많이 봐야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영화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보고 싶지만, 사실 그건 불가능하다. 우선 물리적 시간이 따라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쥬흐네몽드’의 구움과자. 버터쿠키(앞)와 마들렌.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강남 한복판에 들어선 선정릉은 풀 냄새가 났다. 비가 와 축축이 젖은 땅 내음이 주변으로 흘러나왔다. 조금 바깥으로 나가니 강남을 격자무늬로 수놓는 도로 위로 콘크리트 먼지가 들썩였다. 다시 선정릉 품으로 돌아왔다. 차 배기음이 잦아들고 사람들이 거니는 골목이 나타났다. 빌라, 혹은 다세대주택, 상가 등 여러 가지 이름을 한 건물들 1층에는 부동산 중개소, 식당, 혹은 술집들이 작은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문을 열어 놓았다. ...
전국 5대 억새 군락으로 유명한 강원도 정선 민둥산은 억새 철이 오기도 전에 '돌리네'(1시 방향)를 보려는 이들이 줄지어 산에 오른다. 은빛 억새 옷을 갈아입기 전 민둥산은 바람이 쉬어가는 천상의 낙원 같다. 지난 1일 가족과 함께 민둥산을 찾은 이채현·수영씨가 돌리네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민둥산 하면 떠오르는 것은?” 이 질문에 “억새”라고 답한다면 최소 40대 이상, “돌리네”라고 답한다면 2030일 가능성이 크다. 강원도 정선군 남면 민둥산은 요즘 돌리네를 찾아 나선 젊은 층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돌리네(doline)는 석회암 지대의 갈라진 틈으로 스며든 빗물에 탄산칼슘 등이 용해돼 나타나는 침하 지형이다. 민둥산 정상부의 돌리네는 웅덩이 형태로 물이 고이면서 이색 풍광을 연출해 이곳 간판스타인 ‘은...
남해 다랭이마을에서 만든 다랭이팜 생막걸리./11번가
맥주를 액체로 된 빵으로 여긴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빵과 맥주 모두 좋아하는데 빵을 조금 더 좋아한다면서. 빵이 없으면 빵을 먹는 기분으로 빵 대신 맥주를 마신다는 걸 들으니 빵과 맥주가 꽤나 비슷해 보였다. 보리나 밀가루로 만든다는 것도, 구수한 냄새도, 빵빵하게 부풀어오르는 속성도 말이다. 친화력이 좋은 동성 친구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맥주를 마시는 내가 ‘음, 난 지금 액체 빵을 마시고 있군’이라고 생각한 적은...
새우와 부추로 속을 채운 가지를 바싹 튀기고 두반장 소스를 얹어낸 ‘두반가지새우’./양세욱 제공
중식당에서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면 온종일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즐겁지 않은 저녁 자리는 드물지만, 중식당처럼 흥분까지 일지는 않는다. 중식당 식사 인원은 네다섯 명이 적당하다. 세 명 이하면 다양한 메뉴를 맛보기 어렵다. 여섯 명이 넘으면 이미 회식의 범주로 넘어간다. 오늘의 인원은 다섯 명, 장소는 연남동 ‘진가’다. 업계의 소문난 실력자 진생용 셰프가 운영하는 중화요리 주점이다. 중국 산서성 행화촌에서 생산되는 청향형...
타이중 펑자(逢甲) 야시장으로 몰려드는 젊은이들. 타이베이 스린 야시장과 쌍벽을 이루는 이곳은 하루 방문객이 3만명이 넘는다. 중국식·일본식·서양식에 최근엔 한국식까지 가세한 대만 특유의 퓨전 음식 문화를 맛볼 수 있다. /타이중시 관광여행국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台北) 남서쪽 170㎞ 거리에 미식(美食)과 문화(文化)의 도시가 있다. 타이중(台中)이다. 타이베이에서 고속철도를 타면 한 시간도 걸리지 않지만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곳. 대만 중부에 있는 인구 280만 명의 타이중은 한국에도 잘 알려진 남부의 가오슝(高雄)과 대만 제2 도시 위상을 다툰다. 대만이라고 하면 흔히 타이베이와 가오슝만 떠올리던 한국인들의 발길이 최근엔 타이중으로 향하고 있다. “한 도...
일러스트=비비테
요즘 수영을 다닌다고 하면 주변에선 꼭 물어봤다. “텃세 심하지 않아?”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답했다. “누가 누군지도 몰라요.” 사실이었다. 수영을 조금만 다니면 수영복만 보고도 몇 년 차인지 감이 온다던데, 그건 불가능했다. 한국인은 검은색을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초급 레인에도, 중급 레인에도, 고급 레인에도 똑같은 수영복을 입은 사람이 몇 명씩이나 보였다. 내 눈으로 보기엔 다 엇비슷해서 누가 고참이고 누가 신참인...
경기 의정부시 자일동에 있는 솔가원의 소떡갈비.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수도권을 크게 도는데 의정부라는 글자가 보였다. 핸들을 잡은 손에 땀이 났다. 잘못 길을 들어 꽤 고생을 했던 기억 때문이다. 길이 멀었지만 의정부를 가야 할 이유는 늘 있었다. 수도권 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인 의정부는 미군 부대가 있던 과거와 북한에 가깝다는 지리적 특징, 또 외곽순환도로라는 교통망 확충에 따라 독특한 식문화가 발달한 곳이기 때문이다. 가야 할 곳은 의정부에서도 외곽에 있었다. 낮...
충주 하담의 '모현정' 아래로 흐르는 남한강 물길. 다산은 유배형을 받고 장기(포항)로 가는 길에 지금의 모현정 부근에 있던 부모 묘소에 참배하고 하직 인사를 시 '하담별'로 대신했다. / 조혜원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다산기행③ 습수
독일 모젤 지역에서 리슬링 포도로 만든 디저트 와인. / Dr. Loosen 인스타그램
소테른 와인을 뭐와 먹으면 좋을까 묻는 분의 질문에 무조건 푸아그라죠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푸아그라에 소테른을 즐겨서 그런 것은 당연히 아니고 소테른이 나올 때마다 푸아그라나 테린이 따라 나오기 때문이다. 책이든 영화에서든 말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무조건 푸아그라’가 튀어나왔다. 그분들은 말씀하신다. 그게 아니라면 로크포르 같은 블루치즈와 먹으라고. 정작 나는 그렇게 먹어본 적이 없다. 소테른을 마셔본 적도 있고 로크포...
순두부와 모두부, 황태구이, 가자미구이, 도토리묵, 메밀전병을 함께 내는 옥란정식 /양세욱 제공
처서가 지나고도 더위는 물러날 기세가 없다. ‘처서 매직’은 이제 통하지 않는 걸까. 긴 겨울 끝자락 봄기운이 그리울 때 남도 여행을 떠나듯, 물러갈 기세가 없는 늦여름 염천이 힘에 부치면 영동(嶺東)으로 떠날 일이다. 처서 매직은 미덥지 못해도 ‘태백 매직’은 분명하다. 올여름 태백산맥을 넘어, 아니 산맥 아래 서울-양양고속도로의 긴 터널을 지나 두 번 속초를 찾았다. 속초에서 여행객들 손에 들린 네모 상자는 피자가 아니라 ...
캄보디아 코롱섬에 위치한 리조트 ‘더 로열 샌즈 코롱’(The Royal Sands Koh Rong)과 속산(Sok San) 비치 전경. 야자수보다 낮은 높이의 단층으로 지어진 67개 단독 풀 빌라에는 개인 풀장과 오두막이 딸려 있다. 속산 비치가 코롱섬 서남쪽에 있어 해수면 위로 떨어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해변을 산책하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 더 로얄 샌즈 코롱
“삑삑- 삑삑-.” 시끄럽게 울리는 스마트폰 알람 소리를 꺼버렸다. 평일 수요일 아침 8시. 한국이었다면 노트북을 펼쳐 한창 일하고 있을 시간. 졸린 눈을 비비며 숙소의 통창을 열자 에메랄드빛 바다와 바람에 흩날리는 야자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찰랑이는 개인 풀장 수면 위로 비친 맑은 하늘, 풀장 옆 작은 오두막도 한 장의 풍경화처럼 느껴졌다. 갓 내린 커피 한 잔을 들고 해변가로 나갔다. 상쾌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벤치에 누워...
일러스트=비비테
왜 나는, 아니 왜 나만 다음 레인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는 걸까? 이유는 하나다. 너무 못하니까. 왕초보용 레인에서의 미션은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몇 번 해보면 다 되는 것이어서 선생님이 굳이 내 옆에 서서 말을 얹지도 않는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레인의 절반쯤 가면 아무리 열심히 발차기를 해도 멈춘다.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그러면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가 다시 출발하는 수밖에 없다. ...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서오릉순메밀막국수의 물막국수(왼쪽)와 들비(들기름비빔)막국수. /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고양시 서오릉은 옛 조선왕조의 다섯 능이 모여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옛 무덤터가 그렇듯 사방이 차분하고 아늑했다. 길가에 ‘서오릉순메밀막국수’라는 집이 보였다. 이층 단독건물에 자리한 이 집은 이른 점심 시간에도 들어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바빠 보였다. 여유롭게 경치를 즐길 틈이 없었다. 부리나케 가게로 들어가니 “마지막 남은 자리입니다”라고 안내했다. “운이 좋네요”라고 말을 받은 뒤 2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은 하늘을 나는 이색 체험은 물론 '패러글라이딩 일번지' 단양의 풍경을 색다르게 만날 수 있는 전망 명소로 인기다. 지난달 31일 가곡면 단양패러마을에서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하고 돌아온 커플이 겹겹이 이어지는 산 능선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심장이 쫄깃해지는 것들은 다 모여 있다!” 지난 7월 31일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액티비티 성지’로 꼽히는 충북 단양을 찾은 류정인(27)씨의 말이다. 류씨는 “푹푹 찌는 한여름엔 물놀이가 최고지만, 모처럼 소중한 휴가에 맞춰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패러글라이딩 체험을 하기 위해 일부러 단양에 왔다”고 했다. 단양은 패러글라이딩뿐 아니라 숲속을 가로지르며 타는 알파인코스터, 집와이어, 모노레일을 비롯해 남한강을 기반으로 ...
지난달 30일 제주 금릉해수욕장. 이 바다 앞에서 마시는 술이라면 무엇이든 맛있을 것 같다. /연합뉴스
관철동에 있던 ‘사슴’이라는 술집 이야기를 들었던 밤이 있었다. 아버지가 ‘사슴’이 있던 건물에서 출판사를 한 분으로부터였다. 아버지에 이어 출판사를 하고 있는 그분이 ‘낭만’이라는 술집과 ‘사슴’이라는 술집이 한때 종로에 있었다는 걸 이야기하는데 표정이 너무 좋았다.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아들이 있다니 신기해서 한참을 보았다.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아버지를 가진 자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었다...
금귤정과, 다식, 곶감단지, 개성주악, 호두강정으로 구성된 '티하우스 서하'의 다과상과 직접 만든 청자에 담긴 차 /양세욱 제공
차창 밖은 초록의 향연이다. 판교역을 출발한 지하철은 경기도 동부의 깊은 골과 너른 들의 녹음을 번갈아 가르며 49분을 달려 종착역인 여주역에 도착한다. 판교와 여주를 잇는 지하철이 경강선인 까닭은 경기도 시흥시 월곶역에서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강릉역을 잇게 될 긴 노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 미완의 경강선은 광주, 이천, 여주까지 우리나라 최대 도자 도시들을 잇는 ‘도자 라인’이기도 하다. 여주역에서 멀지 않은 ‘티하우스 ...
키안티 클라시코의 한 와이너리.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으로 꼽히는 토스카나 전원의 전형을 보여준다./키안티클라시코와인협회
‘닭표 와인’. 국내 와인 애호가들은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에서 생산되는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 와인을 이렇게 장난스러운 별명으로 부른다. 닭, 정확히는 검은 수탉이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와인병 라벨이나 병목에 검은 수탉이 빠짐없이 박혀 있다. 이 지역 와인 생산자들은 왜 ‘갈로 네로(Gallo Nero)’, 즉 검은 수탉을 상징으로 삼았을까. 겹겹이 포개지는 높고 낮은 언덕,...
일러스트=비비테
동네 체육센터 수영장에선 여섯 개의 레인을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누어 수준별 수업을 진행한다. 이제야 수영 이틀 차인 나는 당연히 초급반. 레인으로 들어가기는커녕, 높이 45㎝ 유아용 수영장에서 발차기 연습만 죽어라 한다. 걸터앉은 채로 발차기, 엎드린 채로 발차기를 완수하고 지칠 때쯤 물에 몸을 완전히 담근다. 물속에서 ‘음~’ 하고 길게 숨을 참고, 물 밖에서 ‘파하!’ 하고 재빠르게 숨을 쉬는 호흡법 훈련이 이어진다....
서울 광장시장 남1문 근처에 있는 ‘주영이네’의 쌀보리비빔밥.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광장시장은 한국인 반 외국인 반이었다. 어른 팔뚝만 한 순대, 갓 데친 김치만두, 선어회, 튀기듯이 부쳐내는 빈대떡 같은 것들이 만화 같은 압도적인 부피와 형태로 깔려 있었다. 외국인들은 한 손에는 조미김, 한국 과자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인파를 헤치며 먹을 곳을 찾아다녔다. 인파가 늘어서는 곳은 역시 시장의 중앙 교차로였다. 식당을 찾는 사람들의 시선이 엇갈릴 때마다 손님을 부르는 식당 주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청계천 쪽 ...
곡운 김수증이 '곡운구곡' 중 '정녀협' '신녀협'이라 이름 붙인 계곡을 다산은 '신녀회'로 새롭게 명명하며 구곡을 재해석했다. 물결치는 듯한 신녀협의 너럭바위 형상에서 시간의 신비가 느껴진다. /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6-7면/다산 발자취 기행②산수/
청량함이 느껴지는 덴마크 맥주 칼스버그. / 칼스버그 공식 인스타그램
<플라이트 투 덴마크(Flight to Denmark)>를 들으며 덴마크를 떠올린 시절이 있었다. 눈으로 온통 하얗게 된 숲에 무채색 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는 앨범 재킷을 보면서. 이 남자가 아마 앨범의 연주자인 듀크 조단(Duke Jordan)일 텐데 덴마크를 좋아한다는 마음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마음으로부터 울리는 서정적이면서 몽환적인 타건을 들으면서 덴마크가 어떤 곳이길래 저러나 싶었다. 그럴 만한 사연을 나...
기장 쪽파와 각종 해물에 쌀가루 반죽을 끼얹어 커다란 무쇠 번철 위에서 지져낸 동래해물파전. / 양세욱 제공
추적추적 장맛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리는 듯 마는 듯 지리멸렬한 장마보다는 시작과 끝이 또렷한 장마가 반갑고 미덥기까지 하다. 종일 비가 내리는 날, 파전에 막걸리 한잔 생각이 간절하다. 이 조건반사에 가까운 충동의 내력을 곰곰이 따져보려다 말고 우산을 챙겨 ‘동래할매파전’을 찾아 나섰다. 동래파전을 파는 식당은 많지만 부산시가 지정한 향토음식점 1호이자 백년가게인 동래할매파전은 부산 동래구 복천동에 있는 한 곳뿐이다. 지하철...
몰디브 북부 라아 환초에 있는 무러밴드후섬의 조알리 몰디브 리조트. 청록색 라군(죽은 산호 무덤)으로 가득한 바다 위로 수상 비행기가 착륙해 있다. 에메랄드 색으로 빛나는 바다는 하늘에서도 속이 들여다보일 만큼 투명하다./조알리 몰디브
커튼 사이로 아침 햇살이 들어온다. 파도 소리에 잠이 깬다. 몰디브 북부 라아 환초에 있는 보더푸시섬. 침대에서 일어나 선크림을 바르고, 수영복을 입고, 오리발을 신고, 스노클 마스크를 착용하면 준비 끝! ‘모닝 스노클링’을 하러 갈 시간이다. 번거롭게 배를 타고 멀리 나갈 필요는 없다. 수상 가옥 형태의 독채로 돼 있는 리조트 방문을 열고 곧장 바다로 뛰어들면 된다. 기하학적 모양의 산호초, 이름부터 화려한 무지개 물고기, ...
일러스트=비비테
7시 기상.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오늘만큼은 눈이 떠졌다. 첫 수영 수업이 있는 날이니까. 체육 센터에 도착해 수영장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소독약 냄새가 확 끼쳤다. 탈의실을 지나 샤워를 하고, 젖은 몸을 수영복에 억지로 끼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청천올갱이해장국의 올갱이 해장국./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화곡 교차로 사거리는 언제나처럼 차가 밀렸다. 고가로로 올라가려는 차와 고가 옆으로 빠지려는 차가 어깨 싸움을 하듯 힘을 겨뤘다. 고가 옆 좁은 도로로 조금 나아가니 오른쪽으로 뻗은 이면도로가 나왔다. 그 초입에 ‘청천 올갱이 해장국’이라는 간판을 단 집이 작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예전에는 24시간 영업을 했지만 이제는 힘에 부쳐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문을 열어 놓는다. 그마저도 지금 세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과한 노동...
팔공산의 비경 중 하나 '청운대'와 가까이 있는 군위 팔공산 '하늘 정원'. 나무 계단 따라 산책 삼아 올라간 전망대 머리 위로는 구름이, 발아래로는 팔공산 능선이 겹겹이 펼쳐진다. /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6-7면/팔공산국립공원/메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에 나오는 이탈리아 와인 콜티부오노. /badia_coltibuono 인스타그램
헤밍웨이와 하루키의 공통점은 안 가본 데가 없고 가본 여기저기에 대해 썼다는 것이다. 글의 톤은 두 분이 상당히 다른데, 헤밍웨이가 허장성세과라면 하루키는 담백과다. ‘이런 걸로 나대면 보기 안 좋다’는 겸양이 수맥처럼 흐른달까.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아시아인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의식하게 되었다. 눈동자 색이나 부모를 바꾸는 것보다 내가 나고 자란 아시아적 풍토를 없애는 게 더 어렵다는 것도. 이를테면, 혼자 있을 때라도...
펄펄 끓는 솥을 옮겨가며 붓고 따르기를 반복하는 토렴으로 덥혀낸 김해 ‘밀양돼지국밥’/양세욱 제공
기차가 좋다. 기차에 오르면 첫 수학여행 같은 기분 좋은 추억들이 떠오른다. 단잠에 들 수도 있다. 버스나 비행기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기차의 진동은 심장박동과 비슷하고, 객실의 안온은 태아가 쉬는 양막을 닮았다. 서울역을 출발해 부산역으로 향하는 KTX, 돼지국밥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두 시간을 달린 기차는 동대구에 닿는다. 박사 학위를 마친 해 출강을 위해 두 학기 동안 다니던 역사다. 첫차를 타고 동대구역에 내...
초대형 정원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거대한 수퍼 트리. 바오밥나무를 본뜬 인공 나무로, 밤마다 화려한 색색의 조명이 불을 밝힌다. /Unplash의 Hu Chen
일년 내내 한여름인 싱가포르엔 이런 농담이 있다. 이 나라도 나름 두 계절이 있다고. “바깥은 여름, 안은 겨울.” 기름 한 톨 안 나는 섬나라지만 어딜 가나 빵빵한 에어컨의 축복이 내리는 곳, 연중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 열대 기후에서도 털모자와 패딩을 파는 우쭐대는 나라. 호주머니 사정 넉넉한 이들의 명품 쇼핑지라고만 생각했던 그곳의, 에어컨 바람이 닿지 않는 ‘바깥’이 궁금했다. 날이 더워지면 마음이 달뜬다. 한여...
일러스트=비비테
결심과 실행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일이 있는가 하면, 결심과 실행 사이에 시간차가 발생하는 일도 있다. 나에게는 수영이 그런 일이었다. 지난해 여름 소셜미디어에서 집 근처 복합체육센터 수영장 사진을 보자마자 수영을 배울 결심이 섰다. 하지만 회원 등록을 하기까지는 1년 가까이 걸렸다.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 매달 중순에 치열한 수강 신청이 이루어지는 줄도 모르고, 월말이 돼서야 이미 마감된 접수창을 허망하게 바라보기만을 몇 달...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중국집 ‘일미1956′의 깐풍 갑오징어.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요리사들은 당연히 성격이 나쁠 것이라고 여겼다. 텔레비전이 문제였다. 고든 램지를 비롯한 유명 요리사들은 화면 속에서 접시를 던지고 쉴 새 없이 욕을 해댔다. 실제로 주방에 서보니 그런 요리사들이 차고 넘쳤다. 많이 나아졌지만 남자들이 절대 다수였고 게다가 요리사 대부분이 어렸다. 마초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인 그곳에 ‘미친 듯이 많은 일’이라는 폭탄이 떨어지면 전쟁터 같은 분위기가 자연스레 연출됐다. 나 역시 뜨거운 불 앞에서 ...
'열수'는 한강의 옛 이름이다. 다산의 고향 집 앞을 흐르던 물길을 따라 걸으면 다산이 누린 소박한 '상심낙사(마음으로 감상하는 즐거운 일)'를 느껴볼 수 있다. 이 물길은 다산의 발자취를 가장 빠르게 만나는 지름이길이기도 하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6-7면/다산기행/메인
영화 ‘사이드웨이’에서 주인공 마일즈가 전처와 마시고 싶었던 고급 와인 ‘샤토 슈발 블랑’을 혼자 플라스틱 컵에 담아 햄버거와 먹는 장면. / 20세기 폭스 코리아
단번에 전신을 꿰뚫는 느낌도 있지만 어떤 느낌은 시간을 두고 서서히 온다. 아주 서서히. 그렇게 이해되지 않던 일이 이해되기도 한다. 우연히 들은 말이나 만난 사람에게 열쇠를 얻기도 하는데, 열쇠인 줄도 모른 채로 있다가 어느 순간 딸깍 문이 열린달까. 그때의 기분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샤또 슈발 블랑이 지금 그렇다. “그런 와인도 있군”에서 “느낌이 오네”가 되기까지 이십여 년이 걸렸다. ‘나와는 관계없음’에서 ‘어쩌...
서울 충무로 인현시장에서 30년 넘게 해산물 요리를 내는 ‘진미네’의 병어조림. /양세욱 제공
철 따라 몸이 기억하고 앞서 반응하는 음식이 있다. 무논에 빼곡히 들어찬 모들이 초여름 산들바람에 흔들릴 무렵, 고향 마을 어귀에 정차한 생선 트럭에서는 요란한 호객 방송이 울려 퍼졌다. 여수나 목포에서 출발해 내륙 한가운데까지 실려 왔다는 생선들은 비린내로 동네를 들썩였다. 갈치, 고등어, 조기 무리 속에서 자태만으로 철부지의 시선을 끌기 충분한 생선이 병어였다. 농어목 병어과의 병어는 생선계의 베이글남, 베이글녀다. 이목구...
①하와이 와이키키에서 관광객들이 서핑 보드를 들고 해변으로 향하고 있다./@bongtographer_
스팸 무스비, 스팸 타코, 스팸 피자, 하다 하다 스팸 와플과 스팸 아이스크림까지…. 지난 4월 미국 하와이 와이키키의 칼라카우아 거리 양쪽으로 기상천외한 스팸 요리를 선보이는 부스들이 늘어섰다. 스팸 통조림과 스팸 무스비 모양의 인형 탈은 엄지와 새끼손가락만 편 하와이식 인사법 ‘샤카’로 관광객들을 반겼다. 매년 4월 와이키키에서 열리는 하와이의 대표 축제 ‘스팸 잼 페스티벌’에는 연평균 2만5000명의 인파가 스팸 요리를 ...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속 아침 식사 조리 장면. 베이컨에 달걀프라이를 곁들인 이 요리는 '하울 정식'이란 이름으로 인터넷 상에서 인기를 얻었다. /시네마서비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다고들 한다. 이때의 본성은 대체로 부정적인 느낌이다. 갑작스러운 변화 속에서 인간이 무너진다는 의미로 이해해도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생각은 다르다. 갑작스럽고 엄청난 변화를 겪었지만 굴하지 않고, 되레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 인간상을 보란듯 그려낸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의 주인공 소피 이야기다. 성실하게 부모님의 모자 가게를 지키는 소피는 마을에서 우연히...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있는 ‘나폴리3657’의 마르게리타 피자.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나폴리 중앙역 쇼핑몰에는 문 닫은 가게가 절반이었다. 이탈리아의 건국 영웅 가리발디 장군의 이름을 딴 역 앞 광장 주변에는 싸구려 장신구를 파는 노점상만 가득했다. 기차에서 내린 한 줌의 관광객은 붉은 벽돌로 뒤덮인 좁은 거리로 빠져나갔다. 낡은 건물과 지저분한 거리, 무표정한 사람들이 만든 살벌한 풍경에 긴장감이 돌았다. 10분 넘게 걸었을 때 사람들이 하얀 피자 박스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피자집 중...
'휴(休)'라는 한자처럼 온전한 휴식은 나무와 함께 하는 것.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 중 하나인 경기도 포천 '국립수목원'의 전나무 숲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회복과 치유를 선물한다. / 주민욱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6-7면/포천여행/메인/
프랑스 론에서 뮈스카 품종으로 생산되는 2009년산 '도멘 데 베르나르당, 뮈스카 드 봄 드 브니즈'. /플리커
그런 걸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나에게는 병이 있다. 책 속에서 본 요리는 먹어봐야 하는 병. 먹지 않으면 끙끙 앓는다,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자꾸 눈앞에 아른거리기에 어떻게든 해결하는 게 좋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책이란 소설이나 산문집이다. 요리책이 아니기에 조리법은 설렁설렁 이야기하는 편이라 오히려 여백을 마음대로 채워 넣을 수 있어 더 좋다. 무라카미 류가 일본의 요리 프로에 나와 망고 카레 레시피를 소개했다는 ...
라싸브어
서울 안 ‘작은 프랑스’ 서래마을에 들어서면 여행자가 된 기분이 든다. 사평대로에서 서래로로 접어들면 인구 구성부터 달라져 국내 프랑스인 열 가운데 넷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는 통계를 실감하게 된다. 1985년 한남동에서 옮겨와 서래마을의 구심 역할을 맡아온 서울프랑스학교 하교 시간이라도 겹치면 넓지 않은 거리는 유쾌한 프랑스어로 활기가 넘친다. 오랜만에 찾은 서래로 양편에 늘어선 카페며 와인바, 레스토랑 가운데 익숙한 간판은...
경기 성남시 수정구에 있는 지선당의 팥빙수와 떡구이.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외식을 하면 어머니는 쉽게 만족하지 못했다. “이 돈이면 집에서 몇 번은 먹을 수 있겠다”라며 비싼 값에 불만을 터뜨렸다. 어머니는 말만 하지 않았다. 카스텔라 굽는 틀을 사서 몇 번이고 구웠다. 어머니는 “이건 어떠니?”라고 매번 물었다. 대답은 늘 신중했다. 만약 ‘별로다’라는 식으로 답을 했다간 기계가 아예 없어질지도 몰랐다. 여름이 되자 어머니는 빙수 기계를 집에 들였다. 연유, 빙수떡, 젤리, 팥 통조림도 냉장고와 찬...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에서 양영희 감독의 모친 강정희씨가 예비 사위 아라이 가오루와 삼계탕을 만드는 장면. /엣나인필름
어머니는 과거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고, 딸도 구태여 묻지 않았다. 하지만 딸이 결혼할 사람을 데려오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어머니는 큼직한 닭을 한 마리 사와서는 배 속에 인삼과 마늘을 채워 네 시간 뭉근히 끓인 삼계탕을 대접했다. 사위가 될 이에게 잘 익은 닭다리 한 짝을 선뜻 떼어 주고는 그동안 잘 꺼내 놓지 않았던 기억들을 툭툭, 털어놓기 시작했다. 1930년에 태어난 어머니는 1948년 제주에 있었다. 그렇다, 바로 ...
①서구룡문화지구의 M+ 뮤지엄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홍콩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르고 있다. ‘뮤지엄 그 이상’이라는 뜻을 가진 이 미술관은 홍콩·중국을 넘어 아시아 전체를 대표하는 미술관을 표방하며 2021년 개관했다. 건물 외벽에 짙은 녹색 유약을 바른 도자기 타일을 덮어 대나무 기둥을 형상화했다. /홍콩관광청
긴 잠에 빠졌던 ‘아시아의 진주’가 깨어났다. 2019년 민주화 시위와 이듬해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으로 봉쇄됐던 홍콩이 다시 관광객들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4년간 공백을 겪은 홍콩은 관광 산업에 뼈아픈 타격을 입었지만 아시아 문화의 중심지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 치열한 의지의 결과물로, 코로나 이전에는 없었던 관광 랜드마크들이 홍콩 도시 곳곳에 새겨졌다. 쇼핑과 미식의 도시라는 과거의 영광...
강릉 사천 바닷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커다란 바위는 '이무기 전설'을 품은 '교문암(교암)'이다. '이무기가 떠나면서 바위를 깨고 갔다'는 이야기처럼 바위는 두 동강 난 듯 금이 가 있다. /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돌탑 3000개를 쌓으면 집안이 평안해질 것이니라.” 스물셋에 강릉으로 시집와 4남매를 낳았지만, 아들 둘을 차례로 잃고 집안에 우환이 끓이질 않았던 한 아낙네는 어느 날 꿈속에 나타난 산신령의 말대로 산속에 움막을 짓고 홀로 돌탑을 쌓기 시작한다.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며 장장 26년간 정성으로 3000개의 돌탑을 쌓고, 아낙네는 66세에 세상을 떠난다. ‘전설의 고향’이 아니다. 1986년부터 10여 년 전인 2011년까지...
극 중 회식 자리에서 소폭(소주+맥주 폭탄주)을 마시는 닥터 차정숙(엄정화). /JTBC
우연히 태권도 시범단의 경기를 본 적이 있다. 그저 그런 공연을 보고 나와 적적한 마음을 추스르며 걷는데 공원에서 5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대묘기를 펼치고 있었다. 정말, 그것은 대묘기라고 해야 한다. 태권도에 아무 관심도 가져본 적이 없는 나를 단번에 사로잡았을뿐더러 놓아주지 않았으니까. 주로 태권도 관계자와 학부모, 동네 주민으로 구성된 관객들 틈에 끼어서 관전하다가 박수까지 쳤다. 꽤나 열렬했던 나의 박수는 눈빛을 반짝...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주문한 달고기와 감자를 바삭하게 굽고 샐러드를 곁들인 ‘피시앤드칩스’를 들고 있는 경남 김해 '마조리'의 브레넌 셰프. /양세욱 제공
마조리에 들어서면 높다란 벽에 걸린 캥거루가 먼저 손님을 맞는다. 오스트레일리아 대초원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자라 지방 함량이 낮은 캥거루 고기는 스테이크는 물론 버거와 소시지, 육포, 피자로도 만들어지는 제법 흔한 식재료. 하지만 마조리에 캥거루 메뉴는 없다. 캥거루는 이 카페 주인장과 요리의 내력을 일러주는 상징일 뿐이다. 2012년부터 방송된 ‘마스터 셰프 코리아’를 즐겨봤다면 시즌1에 출연한 유일한 외국인 참가자를 기...
제주시 '해녀고기'에서 해녀 이유정씨가 구워주는 돼지고기를 먹는 마크 테토. /제주푸드앤와인페스티벌
“해녀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아세요? 바로 돼지고기입니다. 물질이 얼마나 힘든데요!” 지난 1일 새벽에 호맹과 태왁(그물 바구니)을 들고 문어와 성게를 잡았다는 해녀 이유정씨가 점심시간 집게와 가위를 들고 불판 앞에 섰다. 그 앞에 앉은 손님은 방송인 마크 테토(43) TCK 대표. 이씨는 잘 구운 돼지고기 위에 멜젓과 깻잎 장아찌를 올려 그에게 건넸다. 그다음 한 입은 직접 잡은 성게 알과 미역을 김에 감싼 것. 제...
영화 '피그'에서 주인공 롭(니컬러스 케이지)이 송로버섯의 향을 맡고 있다. /네온
영화 ‘피그’(2021)에서 롭(니컬러스 케이지)의 유일한 친구는 한 마리의 암퇘지다. 하지만 보통 돼지가 아니다. 롭은 송로버섯 채집가이고 돼지는 그의 조수다. 롭이 대략의 터를 잡으면 돼지는 코로 킁킁 냄새를 맡아 송로버섯의 위치를 특정한다. 전통적으로 돼지 아니면 개가 맡는 일이다. 그렇게 채집한 송로버섯을 롭은 식재료 중개인 아미르(앨릭스 울프)에게 판다. 롭의 삶은 그게 전부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문명의 혜택도 누리...
서울 서대문구 신촌 기차역 근처 뒷골목에 있는 '와플잇업'의 리에주 와플. 진주설탕이 뿌려져 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와플은 달궈진 두 철판 사이에 밀가루 반죽을 올리고 눌러 굽는 일종의 즉석 빵이다. 음식의 기원을 찾기란 김치찌개에 참치 통조림을 누가 처음 넣었는지를 밝히는 것처럼 어렵고 때로는 의미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와플이 언급된 문헌과 기록을 찾다 보면 프랑스와 벨기에 두 나라가 원조 격인 듯싶다. 특히 벨기에는 지금의 와플을 완성형으로 만든 나라다. 대학 때 매점에서 사 먹던 즉석 와플은 벨기에보다는 미국에서 먹는 쪽에 가까웠...
장욱진의 작품 '가족'(1977)으로 꾸민 '다시 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의 실내 포토존. 건축미가 돋보이는 소마미술관 창문으로 해가 스며드는 시간대가 인증 샷 '골든 타임'이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6-7면/한국근현대전/톱/
편백나무 찜기에 순대와 편육 등을 담아내는 소마미술관 부근 '청와옥 본점'의 편백정식.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한국 근현대 미술 거장 25인의 작품을 만나는 ‘다시 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8월 27일)은 드로잉까지 합해 작품이 159점이나 된다. 이 전시의 해설을 맡고 있는 이정한 도슨트도, 채보미 도슨트도 “기본 2시간은 전시 관람을 해야 하기에, 관람 전 ‘몸 보신’”을 권했다. 올림픽공원 주변으로 ‘방이동 먹자 골목’ ‘송리단길’도 있지만, 소마미술관 직원들과 도슨트들은 “동선과 체력 소진을 줄여야 한다”며 소마미술관과 최대한...
워 넣고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다들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수영장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 서 있었다. 준비운동을 해야만 입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
20시간 이상 고아낸 오리뼈 육수에 각종 차슈와 계란 고명을 얹은 마이니치라멘. /양세욱 제공
국수는 매혹이다. “혀에서 느껴지는 찰기, 끊을 때 이에 전해지는 쾌감, 식도를 통과할 때의 상쾌함이 삼박자를 이루고 빨아들일 때 입술을 통과하는 최대의 감칠맛까지 준다.”(’음식, 그 상식을 뒤엎는 역사’) 빨고 스치고 깨무는 동안 시각과 청각, 미각과 후각은 물론 ‘제2의 성기’ 입술의 촉각까지 강렬하게 자극하는 공감각의 음식은 국수 말고는 없다. 한국 라멘의 역사는 길다. 19세기 말 중국과 가까운 국제항이었던 나가사키에...
시드니의 상징 ‘하버 브리지’를 걸어 올라가는 ‘브리지 클라임 시드니’./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관광청
1983년 1월 1일 정부는 50세 이상 국민에 한해, 200만원을 1년간 예치하는 조건으로, 연 1회 유효한 관광 여권을 발급했다. 관광 목적의 해외여행을 최초로 자유화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40년, 해외여행은 달라졌다. 사람들은 유적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여행만 하지 않는다. 여행 트렌드 첫째는 ‘체험형’이다. ‘하나 둘, 하나 둘~’ 속으로 숫자를 세며, 바닥을 보고 걷는다. 괜찮다 다짐해도, 철판 밑으로 보이는 아찔...
분자 요리 창시자 페란 아드리아가 만든 맥주 ‘이네딧 담’/이네딧담 공식 인스타그램
멋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끔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최근에도 그랬다. 어느 전시에 갔다가 쇼케이스에 진열된 옛날 잡지를 보고 나서다. 꼭지명은 ‘그 사람과 멋’. 그 호의 멋을 담당할 사람으로 왼쪽에는 시인 서정주, 오른쪽에는 화가 박래현이 있었다. 서정주를 다룬 면의 제목은 ‘도시에 사는 이방인’이었고, 박래현을 다룬 면의 제목은 ‘멋 부리지 않는 멋’. 서정주에 대한 글을 쓴 사람은 화가 김환기였다는 것도 밝혀둔다...
인천 서구 불로동에 있는 ‘서해바다 숯불구이 쭈꾸미’./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상사가 퇴근을 하지 않으면 일이 없더라도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다. 15년 전이었고 지금같이 산들바람 부는 봄날이었다. 그날 따라 부장이 일찍 자리를 떴다. 상무가 집안일로 칼같이 퇴근했기 때문이었다. 연쇄효과처럼 모두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옆자리 사수가 말했다. “약속 없지? 밥 먹으러 가자.” 질문이 아니라 통보였다. 무엇을 먹으러 가는지 말해주지도 않았다. 사수의 구형 XG그랜저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때도 지금...
바닷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청보리가 군무를 춘다. 초록의 밭과 돌로 쌓은 밭담 너머 제주 바다가, 제주 바다 너머 송악산과 산방산, 한라산이 겹겹이 이어지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은 4월의 가파도뿐이다. / 허재성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보리는 어느 정도 자라서 바람결 따라 파도처럼 넘실거릴 때가 가장 보기 좋아요. 3월부터 4월 초까지는 초록빛은 좋긴 해도 보리가 웃자라지 않아서 ‘청보리 파도’를 보긴 어렵고, 사실 4월 중순부터 말까지가 가장 예뻐요. 5월 중순쯤에는 슬슬 보리를 수확하기 시작하니 청보리 보러 오려면 지금이 딱이지~.” 가파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이자 나이로만 따지면 이 섬의 서열 4위라는 가파도마을회 김부전(85)씨의 말. 제주 가파도 ...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에서 변호사 아서(왼쪽)가 바게트 한 보따리를 품에 낀 채 마이클과 대화하고 있다. /워너브라더스픽처스
불안은 온갖 양태로 피어난다. 남자에게는 한쪽 옆구리를 가득 채운 바게트 한 보따리로 피어났다. 바게트가 하나, 둘, 셋… 셀 수 있다, 하지만 세지 않는다. 그저 ‘많음’이 남자의 불안을 더 잘 드러내준다. 그렇게 빵 보따리를 옆구리에 끼고 골목으로 접어드는 그를 또 다른 남자가 허겁지겁 달려와 멈춰 세운다. 아서! 아서! 기다려! 남자는 멋쩍은 듯 배시시 웃으며 발걸음을 늦춘다. 대체 무슨 사연인 걸까? 영화 ‘마이클 클레...
마라탕을 새롭게 해석하고 한국인이 좋아하는 직화 곱창을 푸짐하게 올린 마라곱창전골과 최형진 세프. /양세욱 제공
‘현지에서 먹힐까?’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오너셰프 이연복과 주방을 보조하는 연예인들이 미국과 중국 현지에서 짜장면, 짬뽕, 탕수육, 깐풍기 같은 메뉴를 푸드트럭에서 파는 예능이다. 짬뽕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짜장면을 비롯한 다른 메뉴들은 현지인들로부터도 호평을 받았다. 사실 짜장면의 세계화는 내 아이디어였다. ‘중화’가 없는 한국 중화요리를 비판한 ‘짜장면뎐: 시대를 풍미한 검은 중독의 문화사’(2009)에서 짜장면의 세계화...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도심 전경. 도심 곳곳에서 중세 모습을 간직한 건물들을 찾을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냉대 기후에 속하는 발트해안지대는 겨울과 밤이 길다. 오후 4시면 해가 지는 겨울이 11월부터 3월 초까지 계속된다. 눈과 비도 자주 내리는 탓에 4월까진 두꺼운 옷과 우산이 필수다. 발트3국(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의 역사가 그 기후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트지대는 러시아와 유럽 내륙을 잇는 요충지인 탓에 역사적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소련에 강제 병합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혹독한 겨울에도 꽃은 피...
2013년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사카모토 류이치. /플리커
그다지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청소하면서 듣는 음악’, ‘마감하면서 듣는 음악’, ‘식탁에서 듣는 음악’ 같은 책을 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음악이 있고, 내가 닿기 어려운 세계가 있구나라고. 술 마실 때 듣는 음악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에게도 취향은 있으니 듣기 싫은 음악이 나오는 곳에서 마시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음악을 들으면서 술을 마시고 싶다고 특정할 만큼 음악에 대해 알지...
경기 성남시 수정구에 있는 ‘만선고등어’의 돌판 고등어묵은지조림.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아버지는 부산에 내려와서도 서울 입맛을 버리지 못했다. 25년 전, 서울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도 영도 산복도로 좁고 좁은 골목 한편에 자리를 잡았지만 서울에서 먹던 음식이 늘 밥상 가운데 있었다. 손에 잡히는 젓갈을 모조리 넣은 듯한 부산식 김치에 아버지는 손사래를 쳤다. 회가 흔한 곳이지만 아버지는 늘 회가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대신 부모님은 노가리포, 파채에 골뱅이를 넣고 비벼 을지로 공구거리에서 먹던 기분...
지난 2일 고군산군도 대장봉 정상에 오른 외국인 관광객들은 "spectacular landscape(멋진 풍경)!"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대장봉 아래 펜션 주인은 "섬을 찾는 외국인 대부분이 대장봉에 오른다"고 전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6-7면/고군산군도여행/메인
영화 '노 맨 오브 갓'에서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루크 커비)가 껌을 집어들고 있는 모습. /RLJE Films
고작 껌 한 점에 연쇄살인마가 입을 연다. 1985년,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행동과학부가 범죄 프로파일링을 시도한다. 연쇄살인범과 인터뷰가 필요한 가운데, 모든 요원들이 꺼리는 최악의 인물이 있다. 몇 명을 죽였는지조차 채 밝히지 않은 테드 번디(루크 커비)다. 머리가 좋은 데다가 연방수사국을 불신해 다루기 곤란한 번디는 결국 부서 신참인 빌 해그마이어(일라이저 우드)에게 넘어간다. 해그마이어는 매우 신중하게 번디에게 접...
농부과학자 이동현 대표가 운영하는 전남 곡성 '미실란'의 대표 메뉴는 발아오색낭만세트다. /양세욱 제공
호모 코쿠엔스(Homo coquens)는 요리하는 인간입니다. 요리하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무이합니다. 20만년 전부터 불을 사용해 요리한 음식을 다른 종과 나눠 먹으면서 인간의 몸과 영혼에는 대대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불로 요리하기’가 호모속(屬)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라고 주장하는 ‘요리 가설’ 을 지지하는 증거는 차고 넘칩니다. 요리를 통해 우리 사회와 문화를 변화시키고 있는 아름다운 이들을 만나 음...
/게티이미지뱅크
하노이, 호찌민, 다낭, 호이안, 냐짱, 달랏. 이 이름들이 낯설지 않다면 당신은 이미 한 번쯤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을 가능성이 높다. 베트남의 여러 도시들은 훌쩍 떠나기 쉬운, 우리와 친근한 여행지가 되었다. 특히 다낭에는 한국 관광객이 많아 ‘경기도 다낭시’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이 익숙한 도시들이 베트남 여행의 기본편이라면 베트남 남부 메콩 델타 여행은 심화편이라 할 만하다. 조금 더 깊이 베트남다움을 느낄 수 ...
고택찹쌀생주는 쿰쿰하고 구수하고, 달고 쓰다. 은은하면서도 복합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이 윤증고택 같다. /플리커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다. 어느 날 내가 딱 한 시간만 마시고 깨끗이 헤어지자고 했다 한다. 운동을 마치고서 딱 한 시간만. 민망해서 웃음이 나왔다. ‘깨끗이’라는 형용사가 참으로 구차하고도 간절해서. 얼마나 술이 마시고 싶었으면, 그런데 얼마나 여유가 없었으면 그랬을까 싶었다. 우리는 저녁마다 함께 요가를 하는 사이였고, 요가 스튜디오 옆에는 술맛 당기는 술집이 있었다. 술이 맛있거나, 안주가 괜찮거나, 분위기가...
서울 논현동 ‘노란상소갈비’의 정갈비.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한 달에 한 번 부모님이 운영하던 당구장이 쉬는 날, 우리 가족은 꼭 외식을 했다. 어느 날 가족과 함께 길을 나섰다 발견한 건 ‘신장개업’ 입간판이 선 로스구이집이었다. 자리를 잡고 주문하려니 서울 말투가 들려왔다. 홀 매니저였다. 서울 출신인 부모님이 반가워 말을 걸었다. “부산에서 자리 잡기 쉽지 않네요.” 그녀는 바쁘게 고기를 뒤집으며 말을 이었다. 기억나지 않는 사정으로 서울에서 내려왔고 이 집 사장의 부탁으로 매니저...
채도가 높은 집들이 빼곡하게 자리한 '감천문화마을'은 구한말 부산항을 기반으로 살던 일본인 이주민들이 산을 개간해 지은 집에 6·25 때 피란민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생긴 산복마을이다. 처절하고 억척스러운 삶의 흔적은 시간이 흘러 부산 여행의 명소가 됐다. 감천문화마을이 액자 속 그림처럼 보이는 '카페 아방가르드'.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6-7면/서부산시티투어/메인
최근 ‘한국 영화 위기설’이 다시 불거져 나왔다. 그리고 방증처럼 마동석표 코미디 ‘압꾸정(2022)’이 흥행에 참패하고 OTT로 빠졌다. 2007년, 내실은 없지만 사업 아이디어와 언변만은 확실한 압구정 토박이 대국(마동석)이 성형외과 의사 지우(정경호)를 만난다. 술기가 빼어나지만 모함으로 면허 정지를 당한 지우는 대리 수술로 근근이 번 돈을 사채업자에게 뺏기는 신세로 권토중래의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린다. 이런 지우의 잠재...
오레노라멘
김왕민 요리반상회 연구소장 겸 국물연구회 상임연구원은 국내 손꼽히는 식자재 전문가다. 지난 20여 년간 전국 수많은 식당에 최적의 식재료를 소개했고, 50년 노포 해장국집부터 미쉐린 가이드에 소개된 두부 맛집 등 다양한 식당들이 코로나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 HMR(가정 간편식)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지난해 음식 작가 박정배, 식품공학자 최낙언씨와 함께 만든 ‘국물 아카데미’는 한식의 근간인 국물 음식에 인문·산업...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현대카드 건물 주변에 행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16. 큰길가 건물 2층으로 올라가자 비밀스러운 빨간 문이 나왔다. 문 한가운데 적힌 글자는 재즈 클럽 ‘올 댓 재즈’. 문을 열고 들어가자 왼쪽에는 테이블이, 오른쪽에는 바(bar)가, 그 앞에는 붉은 조명 아래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다. 피아니스트 김광민(63)이 자연스럽게 무대에 올라가 피아노 의자에 앉는다. 그가 2017년에 발표한 곡 ‘너와 나’. 익숙한 피아노 선율에 진낙원(66) 올 댓 재...
멕시코 식물인 아가베의 속살로 만든 증류주 ‘메스칼’. /플리커
변관식이 1934년에 그렸다는 ‘수촌(水村)’이라는 그림을 보는데, 아티초크가 있었다. 그림의 오른쪽 부분에 있는 주먹을 쥔 것처럼 이색적으로 솟은 암석은 아무래도 아티초크처럼 생겼다. 아티초크를 직접 손질해보면 안다. 거대해 보여도 먹을 부분은 얼마 안 된다는 걸. 두툼한 껍질을 벗겨내고 안에 있는 ‘하트’라는 부분을 먹는데 어찌나 허무하던지. 그림을 본 날 넷플릭스 다큐에서 아가베의 하트도 보았다. 아가베의 하트는 ‘피냐’...
경기도 일산 '동무밥상'의 어복쟁반./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커다랗고 평평한 냄비가 올라왔다. 직원이 물었다. “어복쟁반 맞죠?” 동의를 알리는 끄덕임에 직원은 빠르게 가스불을 켜며 말했다. “다 익은 거니까 끓기 시작하면 드세요.” 냄비 중앙에는 간장 양념장이 놓였다. 그 주변으로 채소가 수북이 쌓였고 밑으로는 고기가 깔렸다. 맞은편에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이가 앉았다. 8년 전 각자 다른 회사의 명함을 들고 현장에서 만났다. 밤에 전화하다 잠들었고 새벽에 눈 뜨면 문자가 와 있었다...
영주를 여행하는 젊은 층 사이에서 부석사를 능가하는 인기 여행지로 등극한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지난 3일 "'당일치기 여행을 왔다'는 김찬우씨 일행이 외나무다리를 건너며 즐거워하고 있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6-7면/영주여행/메인
영화 ‘애프터 양’에서 인조인간 양(오른쪽)이 차를 들고 제이크와 대화하고 있다. /왓챠
복제 인간과 인조인간이 존재하는 가상의 미래에서 미카(말레아 엠마 찬드라위자야)네 가족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 미카의 아빠 제이크(콜린 패럴)와 엄마 카이라(조디 터너스미스)는 중국계인 미카를 입양하고는 양육을 위해 역시 중국계 인조인간인 양(저스틴 H 민)을 중고로 사 온다. 그렇게 네 식구가 평온하고도 행복하게 살던 어느 날, 양이 갑자기 작동을 멈춘다. 영화에서 ‘테크노 사피언스’라 부르는 인조인간은 작동을 멈추면 부패할...
서울 삼선동 '아삐에디'의 노르마 파스타(앞)와 봉골레 파스타./조혜원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모아놓은 돈이 많지도 않았던 부부가 둘 다 회사를 그만두고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했다. 다행히 부부는 굶어 죽지 않았다. 부부의 일상을 남편 편성준(57)씨가 맛깔나는 글로 풀어낸 에세이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는 많은 직장인들에게 한줄기 희망이 됐다. 이번엔 아내 윤혜자(53)씨가 ‘부부가 둘 다 잘 먹었습니다’(몽스북)를 펴냈다. 2021년 10월 1일부터 20...
①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부모님을 위해 알프스 지방 레만 호숫가에 지은 빌라 르 락.
“스위스 하면 떠오르는 세 가지는 무엇인가요?” 여행을 시작하기 전, 이 질문을 받고서 ‘알프스, 중립국, 시계’라고 답했다. 돌아와서 보니 이 세 단어는 스위스를 반의반도 설명하지 못하는 듯하다. 연방 의회에서도 통역 없이 3~4개 언어로 소통하는 나라. 그만큼 다양성과 개방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나라. 자연 못지않게 건축과 미술 작품을 사랑하는 나라. 한국-스위스 수교 60주년을 맞이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스위스의 ...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에서 브래드 피트(왼쪽)가 칵테일 ‘블러디 메리’를 마시고 있다. / 왓챠
헤르만 헤세는 나신으로 절벽을 올랐다던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나는 기벽이 세상을 그나마 덜 지루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생각난 김에 기벽을 사전에서 찾았더니 재미있는 예문이 나왔다. “그에게서 매력을 느꼈다면 그것은 그의 타고난 천진성과 기상천외의 기벽 때문이었다.” 기상천외까지는 아니지만, 최근에 들었던 기벽 중에 이런 게 있었다. 그는 어디에서나 블러디 메리를 마신다고 했다. 집에서도, 술집에서도, 비행기에서도...
이태원 공기 - 고추장찌개
설악산을 오르기 전 백담마을에 있는 작은 정육점에 들렀다. 그곳에서 돼지 목살 찌개거리를 샀다. 설악산을 거의 격주로 오르던 20대 후반, 매번 산장에서 끓여 먹던 라면이 지겨웠다. 그래서 고른 것이 고추장찌개였다. 땀에 흠뻑 젖어 산장에 도착하면 짐을 풀고 취사장 구석에 앉아 찌개를 끓였다. 산장에서는 모두 음식과 술을 나눠 먹었다. 어느 날 초로의 남자가 새우젓을 한가득 가져와 젓국찌개를 끓였다. 그가 나눠준 새우젓을 내 ...
전남 광양 매화 잔치는 홍매화부터 시작이다. 지난 17일 찾은 다압면 '청매실농원'엔 홍매화가 추위 속에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매화 중에서도 가장 먼저 피는 홍매화는 열아홉 살 바람난 가시나 같지요. 2월에 추운 줄도 모르고 피여. 한껏 뽐내는 게 딱 철딱서니 없어 보이기도 하고예. 그래도 새벽 찬 공기에 제일 먼저 그 조그만 꽃봉오리를 터뜨린 걸 보면 반가운 마음도 들고, 애틋함에 눈물도 나뿌리고… 머슴처럼 일하다 매화 보며 한참 혼잣말 씨부렁거리다 보면 마음속 찌꺼기가 다 녹아 저기 저 섬진강 물 따라 씻겨 내려가는 것 같지요. 그래서 매화 꽃은...
영화 '월레스와 그로밋'에서 월레스가 달에서 치즈를 맛보고 있는 모습. /National Film and Television School
발명가인 월레스와 반려견 그로밋이 휴일을 맞아 느긋하게 쉬고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유유자적하게 차나 마시려는데 치즈가 똑 떨어져 버린 것이다. 차도 크래커도 있는데 치즈가 없다니! 월레스는 치즈가 없으면 삶이 난감해지는 애호가. 대체 이 사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하늘을 쳐다보니 천창 너머로 달이 빛난다. 그렇다. “모두가 달이 치즈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달에 가면 원하는 치즈를 실컷 먹을 ...
서울 삼성동 ‘재희키친’의 메로구이(앞에서부터)와 돼지고기생강조림, 구운 주먹밥./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등 한국 대표 인물들을 향으로 표현한 ‘히어로즈 오브 코리아’ 향수 브랜드 공동창업자인 오하니<사진> 조향사는 자신이 “음식을 매우 즐기는 푸디(foodie)”라며 “뉴욕, 파리, 홍콩 등 주요 도시 레스토랑·카페 1500개 이상을 블로그에 소개했다”고 말했다. “흔히 맛이라고 표현하는 풍미의 80% 이상이 사실은 후각으로 인지하는 향이에요. 많은 분이 그러시겠지만 저도 음식을 먹기 전 눈과 ...
“한 번 죽는 것과 맞먹는 맛.” 중국 소동파는 복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서울 청와대 앞 통의동 골목에 있는 ‘태진복집’은 이 치명적인 맛의 주인공 복어를 가장 잘하는 식당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다. 1988년 탁자 다섯 개에 불과한 10평짜리 가게에서 시작해 오로지 복 하나만으로 역대 국무총리, 장관, 재벌 총수, 국회의원, 병원장, 법조인, 국민 배우 등 유명·유력 인사들을 단골로 수두룩하게 거느리며 35년째 영업 중이...
'파우더 스노'로 불릴 만큼 최고급의 설질을 자랑하는 후라노 스키장에는 초급자부터 상급자까지 즐길 수 있는 23개의 슬로프가 있다. /홋카이도 스키 프로모션 협의회
지난달 10일,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은 활주로를 제외하고는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전날 폭설이 내렸다고 했다. 입국장에는 스키 장비를 든 사람이 많았다. 스키복에 스키 장갑, 고글, 털모자로 완전무장한 외국인들이 눈길을 끌었다. 당장 스키장으로 달려갈 기세였다. 홋카이도는 1년 중 3분의 1은 눈이 내린다고 했다. 연간 적설량은 평균 6m로 관측된다. 11월에 첫눈이 오면 이듬해 3월까지 새하얀 눈을 볼 수 있는 겨울 ...
'횡성 귀촌 1세대'인 원종호 관장과 그의 아내 김호선씨가 자신들이 가꾼 '미술관 자작나무 숲'에서 아침 산책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1991년에 심었던 키 작은 자작나무 묘목들은 어느덧 숲을 이뤄 횡성의 힐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고향으로 돌아온 건 귀소본능이었어요. 모험 끝에 쉴 자리는 결국 나고 자란 곳이었죠.” 강원도 횡성에 있는 미술관 자작나무 숲 원종호(69) 관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원도 횡성 출신인 원 관장은 돌고 돌아 고향인 횡성으로 와 이 숲의 주인이자 ‘숲지기’가 됐다. 1991년 심을 당시 키가 무릎 정도 될까 말까 했던 자작나무들은 쑥쑥 자라 숲을 이뤘다. 숲 한쪽에는 이런 푯말을 세워놓았다. ‘내 삶을 후회하지 않기 ...
눈과 얼음으로 만든 퀘벡시티 아이스 호텔. /아이스 호텔 페이스북
한겨울의 캐나다 동부는 색(色)으로 먼저 각인됐다. 거리마다 온통 화이트였다. 온타리오주 나이아가라 폭포에선 거대한 물기둥보다 하늘을 찌를 듯 피어오른 뽀얀 물안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 퀘벡에도 흰 눈이 내려앉았다. 도깨비 김신(공유)이 도깨비 신부 지은탁(김고은)을 향해 ‘너와 함께한 모든 시간이 눈부셨다’고 고백했던 바로 그 도시. 둘이 마주 보고 서 있던 투르니 분수대엔 노란 단풍 대신 투명한 ...
폐허가 된 절터에 1400여 년 동안 역사의 증인처럼 자리를 지켜온 정림사지오층석탑은 부여 역사 탐방의 꼭짓점으로 삼을 만하다. 탑을 중심으로 백제 유적과 유물이 모여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6-7면/부여여행/메인
수원화성 동문인 창룡문 앞 잔디밭은 연날리기 명소다./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경기도 수원에는 신(新)도시가 2개 있다. 18세기 완성된 ‘수원화성’ 그리고 21세기 만든 ‘광교신도시’다. 수원화성과 광교신도시는 아버지와 아들 같다. 정조는 수원화성을 만들며 남녀노소 빈부귀천 모두가 행복의 길로 나아가는 도시를 꿈꿨고, 광교신도시는 정조의 꿈을 전승해 대한민국 신도시의 비전과 모델을 제시한다는 목표로 개발됐다. 계획도시답게 수원화성과 광교는 볼거리·즐길 거리·먹거리·편의 시설을 고루 갖춘 데다, 특히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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