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다윗 같이 정직하게 왕상 15:9-22

鶴山 徐 仁 2021. 12. 7. 18:56

 

다윗 같이 정직하게 왕상 15:9-22

 
 
12월 07일 (화)
   
다윗 같이 정직하게 왕상 15:9-22


9.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제이십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
10. 예루살렘에서 사십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11.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12.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13.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14.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15. 그가 그의 아버지가 성별한 것과 자기가 성별한 것을 여호와의 성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이더라
16. 아사와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 사이에 일생 동안 전쟁이 있으니라
17.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와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18. 아사가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남은 은금을 모두 가져다가 그 신하의 손에 넘겨 다메섹에 거주하고 있는 아람의 왕 헤시온의 손자 다브림몬의 아들 벤하닷에게 보내며 이르되
19.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가 있고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 사이에도 있었느니라 내가 당신에게 은금 예물을 보냈으니 와서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20.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벧마아가와 긴네렛 온 땅과 납달리 온 땅을 쳤더니
21. 바아사가 듣고 라마를 건축하는 일을 중단하고 디르사에 거주하니라
22. 이에 아사 왕이 온 유다에 명령을 내려 한 사람도 모면하지 못하게 하여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가져오게 하고 그것으로 베냐민의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11-12절).
북왕국 초대 왕 여로보암은 그의 재위 기간 동안 남왕국 유다의 세 왕, 즉 르호보암, 아비얌, 아사를 상대했습니다. 그러나 역대하 13:20에 의하면 아비얌과의 전투 이후에는 다시 강성하지 못하고 결국은 여호와의 징계로 인해 죽습니다. 따라서 아사가 즉위할 무렵에는 여로보암이 패전의 후유증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었으므로 아사의 통치에 그다지 위협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게 바로 아사가 안정된 정세 속에서 눈을 내부로 돌려 과감한 종교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던 까닭입니다. 


그는 심지어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사르기>(13절)까지 했고,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서 온전하였다>(14절)고 했습니다. 단호한 개혁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고, 얽매이기 쉬운 혈통상의 관계마저도 극복하고 오직 진리를 수호하고 하나님 신앙만을 고수한 아사 왕을 두고 본문은 <그가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사가 이렇게 개혁적인 일을 단행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할 수 있었던 용기와 힘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요? 아버지 아비야 왕도, 할아버지인 르호보암도 다 그릇된 길로 갔고 우상을 섬겼는데 아사는 어떻게 해서 그 길을 버리고 다윗을 따라 평생 정직한 길을 갈 수 있었을까요?


정말 놀랍고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40년 동안 그렇게 남왕국 유다를 다스리며 자신의 마음을 지켰습니다. 대를 이어 구축된 악한 풍토에서 없던 새 질서를 수립하고 구조화된 악을 개혁하는 일이야 말로 결코 쉬운 게 아닙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 점에서 아사야 말로 성경에 등장하는 그 어떤 인물보다 더 위대할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그분의 뜻을 추구한다 해도 꼭 우리가 기도하고 바라는 방식으로 일이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모해도 긴장은 계속되고 갈등은 늘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해도 외부의 공격은 계속되고, 내부적인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인생이고 신앙생활, 교회생활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아사처럼 어렵고 힘들어도 끝까지 그분을 붙잡고 가는 삶, 다윗 같이 여호와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는 삶, 그게 우리 모두의 가장 절실한 소명일 것입니다. 
 
-아사의 생애를 신명기적 역사관인 2:3-4, 3:14, 11:38 말씀에 비춰 조명해보십시오.
-본문 13절에 나오는 <기드론 시내>는 그 위치가 어디 쯤일까요?
-아람의 왕 벤하닷(18절)에 관해 아는대로 적어보십시오.
 
주님, 아사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어려운 풍토에서 끝까지 다윗 같이 정직한 삶을 살며 개혁했고, 또 결코 짧지 않은 40년 동안 변함없이 오직 한 길만을 갔습니다. 저희도 아사처럼, 다윗처럼 주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가게 하시고 부단히 개혁하며 회개하며 살아가게 해주시옵소서.
 
   
최상의 인간 관계를 위하여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보면,
‘수사학’에서 설득의 수단으로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
logos의 세 가지를 구분한 바 있는데, 에토스는 품성이나 품격에서 나
오는 인간적 신뢰감,파토스는 감성적 호소력, 로고스는 논리적 구속
력에 해당 된다고 볼 수 있다.”


유영만 저(著) 《공부는 망치다》(나무생각, 246쪽) 중에 나오는 구절
입니다.  
고대 그리스에는 설득의 기술인 ‘수사학’이 발달하였습니다. 이유는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 정치 형태 때문입니다. 재판이 열리면 특정한
전문 법관만이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민중이 배심원이
되어 재판에 참석할 수 있었기에, 이들을 설득할 설득의 기술인 수사
학은 법원 송사의 승패에 있어서 큰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설득의 수단으로 크게 세 가지 요소, 즉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를 말합니다.
“에토스는 화자의 품성에서 풍기는 진정성이나 전하려는 메시지의
신뢰성,즉 화자의 인격과 품격에 해당하고, 파토스는 청중의 가슴을
파고드는 정서적인 호소와 공감력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로고스는 객
관적 사실이나 논리적 근거를 갖고 화자의 주장을 뒷받침함으로써 청
자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만드는 설명력이다.”(246쪽)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논리적 정확성(로고스)이 있어야 하고, 정서
적인 호소력(파토스)이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말하는 사람의 진정
성(에토스)이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하는 것은, 예수님 말씀의 논리성과 우
리를 공감하시는 정서적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를 위해 십자
가에 죽으신 그 삶의 진정성 때문입니다. ‘진정성’이 설득의 첫째 요
건이고, 동시에 인간 관계의 첫째 요건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
시니라.” (요13:1)
   
이사야 12장 3절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With joy you will draw water from the wells of salvation. Isaiah 12:3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채널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가? 
채널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채널을 사용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방법들은 
여러가지가 있다. 
성경, 교사들, 인상, 환경, 고통을 사용하시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항상 같은 방법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주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릭 워렌의 ‘결정하지 못함으로 받게되는 압력’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가를 
여러 가지로 성경은 제시해줍니다.
 삶은 여행이며 성경은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지도책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해 주십니다
성경을 읽지 않는 것은 마치 지도를 잃어버리거나
전화선을 끊어버린 것과도 같습니다. 
그런 상태 하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접근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로 사용하시는 채널이 
성경임을 알고
 또 다른 채널이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